〈 64화 〉episode9. 7번째 마계 (3)
병사들로 만들어진 장벽들이 하나씩 무너지는 것 같더니, 그들의 몸에서 붉은빛이 흘러나왔다.
한 사람 당 하나. 그들이 목숨을 바쳐 붉은 탄환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들은 일제히 나를 향해 쏟아져 내렸다.
“으…?”
반응할 새도 없이 날아온 탄환이 몸을 뚫고 지나갔다.
탄에 한 사람의 의지가 있는 것처럼 몸에 박힌 탄들은 어느새 폭탄이 되어 다시 한번 몸에서 터져나갔다.
수만의 탄환은 내 몸을 꿰뚫고, 나를 무릎 꿇게 했다. 시야는 붉어지고 숨은 잘 쉬어지지 않을 정도로 숨이 벅차올랐다.
손이 잘려나가고, 내가 쥐던 무기는 바닥에 나뒹구는 소리가 들려왔다.
역시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건가. 내 능력의 발동 조건조차 몰라 신기의 힘을 빌렸는데도, 그 신기의 힘조차 발동되지 않아 나를 곤란하게 했다.
입안에서 피 맛이 느껴졌다.
아아, 아프다.
[심판자여.]
“…….”
[그대는 대체 누구인가?]
그렇게 쏟아지던 붉은 탄환들이 멈추는가 싶더니, 어느새 아몬이 다가와 고개를 숙여 물었다.
그의 목소리가 가까이 들려왔다.
나는 흐릿한 시야에 눈을 깜빡여 초점을 되찾았다. 대답할 힘은 없었지만, 몸은 점점 제자리를 찾아갔다.
뚜둑. 뼈에 균열이 가서 무너져 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키니 아몬은 나를 신기하다는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주인님. 괜찮으세요?!]
일부 탄환을 막으려 애쓴 ‘미카엘’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아크’를 주워들었다.
그녀를 뒤로하고 앞에 선 아몬을 응시했다.
한쪽의 시야를 가리던 피를 소매로 닦아내고 창을 쥐었다.
“내가 누구냐고?”
그리고 붉은 빛을 발현하는 창을 부서질 듯이 꽉 붙잡았다.
[나는, 심판자다.]
그 칭호를 입에 담은 순간, 모든 세상이 멈춘 것처럼 보였다.
앞에 있는 마왕에게 허풍을 떨기 위한 말을 입에 담은 순간, 나는 모든 시야가 일그러지는 것을 보았다.
-
저의 능력을 원하시는 건가요? 그렇다면, 자신을 심판자라고 불러주시겠어요? 그게 암시에요. 제 아버지도 그리하였듯이.
-
콰륵. 콰륵.
어디선가 거품이 이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붉은 광채가 레이저처럼 시야를 덮고, 세상을 덮었다.
거품이 이는 소리라고 생각한 순간, 눈앞에는 일그러짐이 눈에 들어왔다.
[…노아?]
아몬의 넋 빠진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내가 들고 있는 창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던지면 100% 명중한다.
이를 까득 깨물고 던지기 위해 도움닫기를 했다.
표적은 아몬. 마나는 ‘아크’가 먹고 싶은 만큼 줄 수 있으니까 걱정 없이 던지면 되겠지.
쾅!
내가 창을 던지기 위해 마지막으로 땅을 구르는 순간, 지진이 일어난 것처럼 땅에 균열이 생겼다.
[천적의 무기. ‘아크’의 개방을 직접 보게 될 줄이야. 그렇다면 나 또한 필사적이지 않으면 안 되겠지. 모든 병사여. 나를 원망하라. 나를 저주하라. 너희들의 죄는 이 못난 왕이 짊어지겠노라. 이 못난 주인이 너희들의 벌은 나 아몬이 대신 달게 받겠노라.]
손이 당장이라도 부러질 것 같았다.
던질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마법을 실어서 그런 건진 몰라도, 진심으로 ‘아크’를 쥐고 던지려 하니 누군가가 막는 것처럼 팔에 저항감이 생겼다.
아몬은 40의 군단을 모두 붉은 빛으로 한데 모아 자신의 손에 창을 만들었다.
그는 눈물을 흘리는 것과 동시에 병사들에게 사죄하며 창을 휘둘렀다.
[이것은 나를 믿은 생명이요, 죄악이니.]
[칫!]
나는 혀를 참과 동시에 손에 쥐고 있던 ‘아크’를 있는 힘껏 던졌다. 그 많은 저항감을 이겨내고 억지로 던져내니 손가락이 모두 부러져 있었다.
너무 고통스럽다. 버틸 수가 없을 정도로 아팠다.
아무리 스스로 낫는 몸이라 하지만, 이렇게 고통을 느낄 때면 버틸 수가 없어 몸부림치게 된다.
[어디다 던지는 거냐?]
[끄윽… 윽.]
오른손을 붙잡고 맞춰지는 것을 바라보면서 신음을 토해내고 있을 때, 아몬은 어이가 없다는 듯이 허공을 가로지른 창을 돌아보았다.
아몬의 뒤, 허허벌판을 찌른 ‘아크’는 내 마음도 모르는지 이상한 곳으로 날아가 있었다.
철썩.
여기는 땅 한복판인데, 어디선가 파도 소리가 들려왔다.
이상하다. 고 생각한 순간 ‘아크’를 중심으로 거센 파도가 일었다. 콰르륵 하고 생겨나는 바닷물의 소용돌이가 이들을 모두 삼키기 위해 흉포하게 움직였다.
[주인님! 잡아요!]
뒤에서는 ‘미카엘’이 나를 지키기 위해 뛰어들었고, 나는 이를 꽉 깨문 채로 힘겹게 ‘미카엘’에게 몸을 맡겼다.
나를 포근하게 감싼 ‘미카엘’은 나를 편하게 해주었다. 손에 일던 고통도 감화되어 나는겨우 눈을 감을 수 있었다.
잠시 눈을 꾹 감고 숨을 고르며, 고통에서 멀어지는 감각을 느꼈다.
아픈 것이 날아가는 순간에도 바닷냄새가 코를 찔러왔다.
[성창…! 바다의 재앙… 홍수…! 으아아아!]
자신의 병사를 모두 자신의 무기로 응집시킨 아몬은 고함을 치며 자신의 창을 휘둘렀다.
그때마다 바다는 반으로 갈라지고, 어느새 파도를 갈기갈기 찢어갔다.
바다는 가를 수 없다. 고 하던데, 그건 또 아닌지 아몬이 팔을 휘두를 때마다 파도는 잠잠해졌다.
[주인님! 눈 떠요! 앞을 보세요!]
[뭐…? 윽!?]
‘미카엘’의 목소리에 겨우 눈을 뜨니 붉은 창이 나를 향해 날아오고 있었다.
마법으로 이루어진 창이 아닌, 내가 들고 있던 붉은 창이었다.
창은 제 역할을 다 한 뒤 내게로 돌아온 것이었다.
겨우 잡은 나는 숨을 허덕이며 정면으로 시선을 돌렸다. 너무 힘들고, 숨도 잘 쉬어지지 않아 고통스러웠다.
목을 막은 선혈을 토해내고, 당장에 너덜거려 움직임을 방해하는 옷들을 걷어냈다.
[다시 한번 할 수 있어요?! 이번엔 그냥 맞출게요. 원래 아버지는 이렇게 하셨는데….]
[네 아버지는 몰살이 아니라 몰아내는 것에만 힘을 줬으니까 명중하지 않은 거야.]
[그, 그런 거였나요. 죄송해요!]
[시시덕 떠들어댈 시간이 있나?]
카가각!
잠시 인간으로 돌아온 ‘아크’는 쩔쩔매는 얼굴로 고개를 연신 꾸벅이며 다시 한번 던져달라고 이야기했다.
나는 잠시 마음을 다잡고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아크’가 창으로 돌아왔음에도 나는 던지지 못했다.
어느새 다가온 아몬이 ‘아크’를 쥔 손을 잘라내고 저 멀리 던져버렸다.
마법으로 만든 수많은 생명의 응집체라 그런지, 아주 예리하고, 강했다.
형태를 사용자의 마음에 따라 임의로 바꿀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엄청난 메리트였다.
“‘미카엘’. 준비됐지? 이번에는 할 수 있지?”
‘아크’를 손에서떼니, 방금까지만 해도 느꼈던 강대한 힘이 빠져나가는 기분이었다.
그래도 ‘미카엘’이 아직 내 수중에 있으니까 할만했다.
[신기를 가지고 내 세계를 농락하다니. 구 인류는 어찌 이리 미움받고 있다는 말인가.]
“읏?!”
잠시 거리를 벌려놓고 ‘미카엘’의 힘을 빌리려 했는데, 아몬은 그 먼 거리에서 창을 휘둘러 공격해왔다.
아무리 형태를 임의로 바꿀 수 있다고 하지만 사거리까지 제 맘대로라니 역겨운 무기였다.
아니, 군단 40개의 목숨을 모두 하나로 응집했으니 저 정도는 해줘야 하는 걸까.
[언제까지만 막기만 할 거냐? 이게 창의 모습을 하고 있다고 정말 창이라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아몬이 도발하듯 목소리를 높이고, 창을 허공에 휘둘렀다.
왼손이 생겨나는 순간, ‘미카엘’을 양손으로 꼭 잡고 휘두르는 방향을 응시하고 방어하기위해 검을 들었다.
하지만 아까와 같은 공격이 아니었다.
창에서 일부 떨어져 나간 마나가 탄환이 되어 내 배와 심장을 꿰뚫었다.
시야가 멀어진다. 아무리 되살아난다 해도, 이렇게 치명상을 입고 의식이 멀어지는 것은 약점이었다.
[몇 번을 되살아나는 능력. 몇 번이고 치유하는 능력. 나는 그 능력을 본 적이 없다.]
“…하아. 하아.”
얼마나 의식을 잃었을까. 한순간이었을까. 아니면 꽤 많은 시간이 흘렀을까.
시야를 되찾은 순간, 아몬이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나지막이 이야기를 읊었다.
나는 숨을 고르며 몸을 일으켰다.
너무 힘들다. 심장이 꿰뚫리는 순간 절명하는 것은 아직도 적응되지 않았다.
아니. 적응되면 안 되는 건가.
[초재생의 수준을 아득히 뛰어넘은 그 능력.]
아몬은 입을 꿈틀거렸다.
[신이 하사한 ‘카보드’인가?]
“‘카보드’라니…?”
그 이름이 왜 갑자기 나오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미카엘’이 그토록 찾는다는 것을, 1번째 마왕도 아니고, 7번째 마왕이 알고 있는 것인지도 의문이었다.
나는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한 채 떨리는 목소리로 그에게 되물었다.
그는 창을 잠시 바닥에 꽂아둔 채로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신의 영광은 꺼지지 않는 불꽃으로 묘사되지 않던가? 그 불꽃은 생명을 살리고, 적을 불사르는 아주 따스하면서도 강렬한 심판의 불꽃이지. 그것을 네가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쿡. 큭, 크하하하! 용사가 아니라 했던 주제에, 제일 이상한 것을 갖고 있구나! 신의 총애를 받는 자이니 심판자의 이름을 빌릴 수 있는 거겠지. 그러니 신기를 손에 쥘 수 있는 거겠지. 하하하하!]
아몬은 어깨를 으쓱이며 나를 계속해서 바라보았다.
그가 입에 한마디, 한마디를 담을 때마다 내 손에 쥐어진 ‘미카엘’은 우웅, 하고 떨려왔다.
그리고, 이내 사람의 모습으로 바뀌어서는 내 손을 꽉 쥐고 있었다.
‘미카엘’의 손에서는 수많은 감정이 흘러들어오는 것만 같았다. 착잡함. 괴로움. 떨림. 설레임.
당장에 ‘미카엘’이 천계에 돌아갈 수 있는 수단이 나한테 있다니, 믿을 수 없었다.
아몬은 어이없다는 듯 크게 웃으며 내가 ‘미카엘’을 쥘 수 있던 이유도, ‘아크’의 힘을 빌릴 수 있는 이유도 모두 뱉어내고 있었다.
[주인님. ‘카보드’는… 주인님이 가지고 있는 건가요?]
“나도 몰라.”
[…죄송해요.]
‘미카엘’은 손을 꽉 잡은 채로 천천히 입을 열었다.
희망에 찬 눈으로 나를 올려다보던 ‘미카엘’은 내 단호한 대답에 축 늘어져서 고개를 숙였다.
순간적으로 예민해진 내반응에 기가 죽은 것처럼 보였다.
[‘카보드’가 어찌 생겼는지 볼 수 있는가? ‘카보드’라는 것은 무슨 형상으로 존재하고 있지? ‘카보드’라는 것이 실재한다면, 어떤 형태로 지니고 있지? 신을 제외하고 아무도 보지 못했다던 그 ‘카보드’의 존재를 알 수 있게 해주는 것이냐?]
아몬은 입을 연 뒤, 급작스럽게 공격을 가했다.
붕. 하고 바람 소리가 나는 것과 동시에 내 머리카락을 잘리는 것이 눈에 보였다.
내가 피한 것이 아니라, ‘미카엘’이 내 무릎을 쳐 자세를 무너뜨려서 피하게 만든 것이었다.
붉은 창이 시야를 지나가는 것과 동시에 내자세도 무너져 바닥에 엉덩이를 찧게 되었다.
“윽!”
[내가 알지 못하는 것들이 이리도 많은데, 어찌 내가 죽을 수 있겠나? 그 ‘카보드’라는 것을 내게 보여다오.]
콰륵, 하고 입에서 불을 머금은 아몬이 엄청난 속도로 눈앞에 다가왔다.
배로 날아오는 주먹에 반응조차 하지 못한 나는 그대로 배에 충격을 받고 날아가야 했다.
시체 더미 위에 날아간 뒤 고개를 드니 참상이 눈에 먼저 들어왔다.
아까까지만 해도 적 하나만 신경 쓰느라, 몇천의 병사가 죽든 몇만의 병사가 죽든 눈길 하나 주지 않았다.
하지만 고통에 잠겨 배를 끌어안고 시선을 올리니 수많은 시체가 눈에 들어왔다.
시체를 쿠션 삼아 착지한 나는 내가 깔아 누웠던 시체를 덜덜 떨며 바라보았다. 입을 틀어막은 채 몸을 일으켰다.
시체가 너무 많아 발하나 디디는 것조차 꺼려지는 게 지금의 현실이었다.
[너의 존재가 이들을 죽인 것이다. 너의 행동이 이들을 궁지로 내몬 것이다.]
“지랄 마. 네가 죽인 거잖아.”
[심판자라는 이름을 빌리고, 신기를 두 자루나 챙겨온 그대가 그들에게 그런 판단을 하게 만든 것이다.]
이들의 죽음을 내 책임으로 모는 아몬을 향해 이빨을 드러내자, 아몬은 어깨를 으쓱이며 말을 이었다.
나는 그저, 마왕이라는 존재를 하나 죽이기 위해 왔을 뿐인데 어쩌다 이렇게 된 걸까.
처음에 갔던 마계의 주민들이 모두 죽은 이유가 그 탓이었던 걸까.
마왕이라는 존재는 모두 자신의 위험을 그들의 생명으로 벗어나는 걸까?
우두머리가 살기 위해서 주민의 목숨을 희생하는 종족에 의미가 있는 걸까.
그 답에 해답을 내기란 어려웠다.
수많은 주민을 우선해야 할지, 통솔할 줄 아는 자를 우선해야 할지. 그것을 결정하기란 참 어려운 문제였다.
정치에 발을 담가봤다면 쉽게 낼 수 있는 답일까. 그것 또한 잘 모르겠다.
“‘미카엘’.”
[네…!]
나는 비틀거리며 발을 땅에 디뎠다.
몸을 일으키니 정면에는 아몬이 자세를 잡고 있었다.
나는 ‘미카엘’의 이름을 불러 그녀를 내 손에 불러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