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3화 〉episode9. 7번째 마계 (2)
[너는 혼자서 무얼 할 수 있지?]
귓가에 이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눈을 뜨니 일변한 풍경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여긴 어디야…? 다른 애들은 다 어디로 간 거야?”
나는 머뭇거리며 주변에 있던 애들을 찾으려 했지만,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다행히도 ‘미카엘’과 ‘아크’는 그대로였다. 나는 어찌 되든 괜찮지만, 다른 애들이 걱정이었다.
[다른 애들을 걱정할 틈이 있나?]
검은 머리카락, 검은 피부. 그가 마족이라는 것쯤은 누구든 알 수 있었다.
그가 말을 함과 동시에 입을 쩍 벌리니 늑대 같은 이빨이 빛나고 있었다.
그를 배경으로 한 붉은 하늘, 푸른 대지가 위화감을 만들어내는 것 같았다.
[네 동료는 내 40개의 군단이 맞이해주고 있으니 걱정하지 말게. 나의 이름은아몬. 제7 마계의 왕이다.]
“일곱 번째…?”
그 많은 72개의 마계 중에 하필 7번째라니, 아무래도 꽝을 뽑은 것 같았다.
게다가 마계의 상황을 알 틈도 없이 바로 마왕을 만나다니 도망갈 수도 없게 되었다.
45번째도 그렇게 강했었는데, 7번째는 얼마나 강한 걸까.
눈을 끔뻑이며 거대한 사내를 올려다보았다. 그는 붉은 눈을 빛내며 씩 웃어 보였다.
“아. 구 인류…!”
[…그댄 누구인가? 우리의 사정을 다 알고 있고, 마족이라고 칭하던 자들과는 확연히 다르군.]
“나는 유성하. 그… 소환자다.”
[용사가 아닌 건가?]
“사정이 있어서 용사가 되진 못했지만, 뭐라 하든 괜찮아 이젠.”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갑자기 ‘미카엘’이 보여줬던 광경이 떠올랐다.
나는 아몬을 가리키며 퍼뜩 떠오른 생각을 입에 담았고, 그는 내 목소리에 눈썹을 들썩였다.
아무래도 구 인류, 신인류에 관한 이야기를 알고 있던 나에 대해 호기심을 품은 것 같았다.
[하지만 그대도 마계에 말없이 발을 들인 이상, 내 목숨을, 영지 주민들의 몰살을 바라는 거겠지?]
“영지 주민…? 아니? 그냥 마왕만 잡으러 온 거였는데, 마침 네가 앞에 있네.”
아몬은 살기를 내뿜기 시작했고, 그 앞에 선 나는 ‘미카엘’을 꽉 쥐었다.
갑작스레 일어난 일이었지만, 당장에 마왕이라고 하는 아몬을 두고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다.
다른 애들이 나처럼 혼자가 되어 군단을 맡게 된 거라면 다른 애들이 위험하다.
45번째 마왕을 물리친 그놈도 기껏 빈 소원이 한 동료의 소생이었다.
그러니, 그런 일이 일어나기 전에 움직여야 했다.
[우리 인류를 몰살시키러 온 것이 아닌가?]
“어. 그건 아니야. 대신에 신이라는 작자가 너희들의 목숨에 우리들의 목숨을 걸어서 말이지.”
[흐음 이상하군. 심판의 날에는 분명 우릴 모두 몰살시키려 했던 작자였을 터인데. 우리는 실패작이고, 신인류는 차기작이라는 느낌이었지.]
아몬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자신의 턱을 쓰다듬었다.
나는 그의 말에 고개를 저으며 부정했다. 그리고 내가 왜 들어왔는지 솔직히 털어놓았다.
뭔가 이대로 이야기를 나누면 더 많은 정보를 알 수 있지 않을까 싶어 계속해서 입을 열게 된다.
새로운 정보, 내가 모르던 이야기가 궁금했다.
너무 갑작스럽게 진행되던 하루하루가, 벌써 이렇게 종막을 내리게 될 줄은 몰랐기에 더더욱 호기심이 일었다.
“그러냐.”
그 호기심을, 지금 당장 급박한 이 상황에서는 죽여야 한다는 게 조금 마음 아팠다.
이를 까득 깨물고 두 손에 가득 쥔 칼을 뒤로 물린 후 자세를 잡았다.
[벌써 싸울 생각을 하는 건가? 더 이야기할 기회가 있는데도?]
“어, 네 군단이 우리 동료를 죽일까 봐 더는 이야기 못 하겠다.”
내 모습을 본 아몬은 아쉽다는 듯이 눈을 가늘게 뜨며 나를 내려다봤다.
나는 그런 그의 말을 자르고 자세를 낮추었다.
‘미카엘’이있다면 어떻게든 되겠지. 라는 생각과 함께 검을 휘둘렀다.
붕. 하고 공간을 가르는 순간, 아몬은 무릎을 굽혀 검을 가볍게 피했다.
[뭐냐. 이 정도로 나를 죽이러 온 것이냐?어리석은 사내구나. 그것은 용기가 아니라 만용이다.]
“…뭐라는 거야.”
[검술이 형편없다. 검을 쥔 지도 얼마 되지 않은 거겠지.]
내 검을 쉽게 피한 놈은 우습다는 듯이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리고 동시에 내 검을 재고 있었다.
“끅?!”
내가 그를 보고 어이없다고 생각한 참에 갑자기 생각지도 못한 주먹이 복부를 강타했다.
뭔가가 부러지는 소리와 들려오는 것과 함께 내장이 뒤틀리는 기분이었다.
내 얼굴처럼 큰 주먹이 내 복부를 후려치는 데 갈비뼈가 멀쩡할 리가 없었다.
피를 토해내고 주저앉으니 그가 가까이 다가와서 내 머리채를 꽉 잡아 들었다.
[이상하군. 이렇게 연약한 자인데, 어찌 그대에겐 그토록 강한 동료들이 있는가?]
“…시발.”
머리카락을 잡힌 채로 농락당하는 기분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이게 압도적인 강함인 걸까.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아무런 반응도 할 수 없었다.
압도적인 실력 차이에 저항조차 하지 못하고 이렇게 당하기만 하다니, 굴욕적이었다.
“‘미카엘’!”
가끔 일어나는 데자뷔 같은 능력이 발동된다면 어떻게든 해결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왜인지 지금 당장에 데자뷔 같은 능력은 발동하지 않았다.
아직도 내 능력에 대해 발동 조건도 모르다니, 정말 멍청하기 짝이 없었다.
결국, 나는 ‘미카엘’의 이름을 불렀다. 어느 정도는 내 힘으로만 해결하고 싶었다. 나 혼자서도 뭔갈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미카엘’의 이름을 부르는 순간, 키이잉. 소리와 함께 검에 빛이 응집됐다.
[뭐냐… 그것은 성검…?]
겨우 휘둘러 내 머리채를 잡은 아몬의 팔을 잘라내니, 아몬은 경악하는 것과 동시에 내 검을 바라보았다.
얼마 안 가 아몬의 팔은 재생했지만, 내가 성검을 들고 있다는 사실에 놀란 듯 눈을 크게 뜨고 있었다.
[크아아악! 괴물 자식! 결국, 신이 우리를 몰살하려 하는구나! 결국, 이날이 오는구나! 신인류를 몰아내고 구 인류가 세상을 차지하려던 꿈은 이뤄지지 못한 채 두 번째 심판자가 나타난 거구나! 으아아! 바알이시여! 우리의 꿈은 이뤄지지 못하는 겁니까! 으아아아!]
갑작스레 이를 까득 깨문 아몬이 포효하더니 하늘을 향해 울부짖었다.
그는 절규하듯이, 어딘가에 호소하듯이 소리쳤다. 소리치던 아몬은 입을 쩍 벌리며 몇 번이고 소리쳤다.
그가 계속해서 소리칠 때마다 하늘이 울렸다.
땅이 쿵, 쿵, 울리는 것과 동시에 손에 떨림이 전해져 왔다.
[바알! 바알! 제1 마계의 왕이시여! 아아, 결국 두 번째 심판자가 나타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그의 칼 같은 눈빛이 나를향했다.
[그러니, 내가 그 슬픔을 끊겠습니다.]
뭔가를 다짐한 듯한 그의 표정이 나를 향했다.
[40의 군단이여, 나 대후작 아몬의 명을 따르라.]
쿠르릉.
천둥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구름이 낀 것은 아니었다. 구름이 아니라 군단이 몰려오는 발돋움 소리라는 것을 안 것은 얼마 지나지 않은 뒤였다.
[심판자. 심판자를 죽여라.]
“용사는 무섭지 않다고 했으면서, 심판자는 무섭나 보지?”
40의 군단을 모두 부르다니, 다른 애들에게서 위험을 배제했다고 생각하면 다행이었다.
하지만 이제 그뒤가 문제였다.
내가 해결해야만 하는 일이 많이 커져 버렸다는 것을 깨달은 나는, 그 거대한 일을 당당히 마주하고 있었다.
[그래. 수백의 용사가 몰려오는 것보다, 하나의 심판자가 오는 것이 무섭다. 노아라고 불린 사내도, 성창 하나 들고 구 인류를 몰살시킬 뻔했던 것처럼 말이지. 심판자는 마왕, 마계의개인 문제가 아니다. 마족이라는 거대한 하나의 문제다. 그 문제를 마주한 내가 여기서 저지해야만 한다.]
“인류라. 거창하네.”
입에 흘러내린 피를 닦으며 정면을 응시했다.
아몬은 겁을 내면서도, 각오를 다진 듯 앞으로 다가왔다.
뒤로 물러서는 일은 없었다. 뒤에는 많은 군대가 대지를 가득 메운 채로 몰려왔다.
나는 그것을 둘러보는 것과 동시에 다시 ‘미카엘’을 손에 쥐었다.
아무래도, 마왕을 죽이고 물러나는 용사보다, 마족 전체를 몰살시킬 뻔했던 과거 심판자의 명성을 두려워하는 것이리라.
[병사들이여, 그대들이 사랑하는 사람을 지켜라. 그대들이 소중히 여기는 것을 지켜라. 그 모든 것을 파멸시킬 자가 눈앞에 있으니.]
그의 목소리에 수만의 병사들이 쩌렁쩌렁 답했다.
그들의 각오에는 광기가 어려있었다. 그들의 눈빛에는 각오가 깃들어있었다.
“파멸이라니 말도 안 되는 소릴…!”
어금니가 부서질 것처럼 이를 강하게 깨물었다.
그와 동시에 손에서는 ‘미카엘’의 진동이 팔을 움직였다.
강하게 울리는 이 울림이 내 마음을 더욱 다짐을 강하게 만들었다.
앞에 있는 것들은 모두 나의 적이자, 나의 기회였다. 그들을 물리치고, 그들의 왕을 죽여야만 나는 미래를 보장받을 수 있었다.
그 생각이 나를 움직이게 했다.
다른 용사들이 가지고 있는 정의도, 대의도 나는 가지고 있지 않았다. 인류애라던가, 정의감이라던가 내게는 너무 멀게만 느껴질 뿐이었다.
“심판자라니, 이제야 우리가 터를 잡았다 생각했건만!”
“심판의 날이 오는 것을 우리가 막아야 한다…!”
다들 필사적으로 절멸하지 않겠다는 듯이 내게 달려들었다.
모두가 살아남기 위해,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 나를 죽이려 했다.
난 심판자는 아니었지만, 굳이 아니라고 해명할 필요도 없었기에 말없이 검을 휘둘렀다.
그럴 때마다 흩날리는 빛들이 그들을 싸늘한 주검으로 만들었다.
순수한 ‘미카엘’의 힘. ‘미카엘’이 방출하는 마법이 그들의 몸을 동강 내었다.
[큭! 이번에는 정말 제대로 된 심판자를 모셔놨군. 다들 내게 심장을 바쳐라…!]
“예!”
모두가 한뜻이 되어 아몬에게 목숨을 바치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다.
아몬이 손짓하자 전방에 있던 수많은 병사의 몸에서 빛이 흘러나갔다. 그것은 그들 몸에 있던 생명력과 마나 모두인 건지, 빛을 발산한 병사는 모두 시체가 되어 다른 병사들의 발판이 되었다.
붉은빛을 손에 모은 아몬은 빛의 검을 만들고서 나를 똑바로 응시했다.
[블레이드.]
키잉. 레이저를 쏘는 것 같은 소리와 함께 그의 검이 형태를 만들어갔다.
거대한 검, 하지만 무게는 없는지 그는 손에 쥔 검을 가볍게 흔들어 보였다.
“‘미카엘’.”
나는 그에 응하듯 아몬을 응시하며 검의 이름을 또 한 번 불렀다.
‘미카엘’과 동조하는 느낌은 언제 느껴도 묘한 기분이 들었다.
황금색 빛이, 내게 흘러오는 것을 바라보며 나는 검을 휘둘렀다.
[덮쳐라. 죽여라!]
“윽!”
강대한 적을 앞에 두는 바람에 수많은 병사를 순간적으로 잊고 있었다.
그 탓에 뒤에서 달려드는 병사에게 반응하지 못한 채 팔을 꿰뚫렸다. 왼팔이 고정된 채로 움직이려는 순간, 다른 병사들도 뒤이어 나를 향해 달려왔다.
오른손만으로 ‘미카엘’을 들어 휘두르려 하니, 모두가 내 행동을 저지하기 위해 내 몸을 붙잡으려 했다.
검으로 내 몸을 찌르고, 창으로 몸을 꿰뚫고 땅에 고정했다.
배가 찢어지는 바람에 내장이 흐트러져 쏟아져 내리는 것이 보였다. 눈앞이 핑 돌고, 시야는 붉게 물들었다.
당장에 ‘미카엘’을 놓쳐 버릴까 봐 두려웠다.
왜 전처럼 제대로 되질 않는 걸까. 데자뷔 능력은 어디 갔는지 발동되지도 않고, ‘미카엘’의 이름을 아무리 불러도 감응하지 않았다.
설마 이 마계가 내 능력의 카운터인 건 아니겠지?
별생각을 하는 것과 동시에 나는 ‘미카엘’을 던졌다.
“날 도와줘… ‘미카엘’!”
[네! 주인님!]
몸을 고정 당한 나는 ‘미카엘’에게 외쳤다.
하늘로 붕 날아오른 검은 황금빛을 자랑하며 세상을 빛으로 물들였다.
붉은 하늘을 금빛으로 물들이는 것과 동시에 ‘미카엘’이 인간으로 변신했다.
지금이라면, 별다른 각오 없이 그녀에게 내 마나를 공급할 수 있다.
[뭐냐?! 자살… 그럴 리 없다…! 그가 생각하는 대로 움직이지 못하게 해라!]
‘미카엘’의 검이 내 심장을 꿰뚫고, 나는 그 뒤로 의식이 멀어졌다.
검게 물드는 시야, 멀어지는 소리 중에 경악하는 아몬의 목소리만이 들려왔다.
다른 애들은 지금쯤 뭘 하고 있을까. 다들 40개의 군단과 뒤에서 싸우고 있는 걸까. 무사했으면 좋겠다.
나는 그렇게 눈을 감았다.
*
“허억?!”
[주인님! 일어나세요!]
“어떻게 됐어?!”
[이 마왕이라면, 뭔가 ‘카보드’를 들고 있을 것 같아요. 엄청 강해요!]
“네가 강하다고 할 정도면 대체 어느 정도야?”
기겁하며 일어나니, 피비린내가 먼저 코를 찔러왔다.
‘미카엘’이 주변에 있던 병사들을 모두 죽여버렸는지, 내 주변은 모두 시체 더미가 되어 있었다.
‘미카엘’이 깨우자마자 상황파악을 하려는데, ‘미카엘’은 싱글벙글 웃으면서 나를 일으켰다.
[성검이라더니, 별거 없군.]
그리고, ‘미카엘’의 뒤에는 본성을 드러낸 듯한 아몬의 모습이 일렁였다.
입에서 불을 뿜는 그의 모습에는 위압감이 느껴질 정도였다.
‘미카엘’은 1대 1로 이길 수 없었는지, 잠시 물러선 것처럼 보였다.
능력조차 발동되지 않는 지금을 타파하기 위한 해결책이 뇌리를 스쳤다.
“‘미카엘’ 잠시 가만히 있어. …‘아크’!”
[네에. 제가 활약할 시간은 아닌가 보네요….]
왼쪽 팔목에 두르고 있던 붉은 팔찌를 꺼내며 성창의 이름을 입에 담았다.
자신의 차례가 사라진 ‘미카엘’은 입을 비죽였지만, 이내 내게서 흡수한 마나를 가지고 개별행동을 하려는지 몸을 일으켜 주변을 바라보았다.
‘미카엘’의 시선에 다른 병사들은 거리를 벌리고, 나는 자연스레 아몬과 1대 1 상황을 만들었다.
[뭐냐. 그것을 네가 어떻게 손에 넣고 있는 것이냐.]
“이게 뭔지 잘 아나 보네.”
[오로지 구 인류를 몰살시키기 위해서 만들어진 구역질 나는 창을 어찌 내가 잊을 수 있겠느냐!]
내가 붉은 창을 두 손에 쥐고 자세를 잡는 것과 동시에 아몬이 고함쳤다.
그리고 동시에 아몬이 손짓하니 주변의 병사들에게서 번쩍임이 사라지질 않았다.
[군단의 목숨은 나의 무기. 탄환이자, 검. 이 주변은 나를 위한 무대라는 것이다.]
아몬이 손가락을 튕기는 순간, 붉은빛이 탄환이 되어 나를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