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2화 〉episode9. 7번째 마계 (1)
[아. 마나 다 썼다. 자, 잠들어….]
[이거라도 먹을래?]
[웁? 읏, 어? 제가 방금 먹은 건…]
[주인님의 정액인데 왜?]
[윽, 그거 먹어도 되는 거예요…?]
그렇게 아침부터 한바탕 하고 나니, 바다가 아닌 곳에서 내내 깨어있던 ‘아크’는 눈을 끔뻑거렸다.
나른해지는 듯 무거워진 눈꺼풀을 몇 번이고 억지로 뜨려 하던 ‘아크’는 더 이상 못 버티겠는지 몸을 무너뜨려 바닥에 드러누웠다.
그렇게 그녀가 잠들기 직전, ‘미카엘’이 손가락을 내밀어 그녀의 입에 밀어 넣었다.
뭔가를 꿀꺽 삼킨 ‘아크’는 몸이 그나마 가벼워진 듯, 팔꿈치로 땅을 짚고 상체를 일으켰다. 깜짝 놀라 자신의 입을 가린 채로 ‘미카엘’을 올려다보자, ‘미카엘’은 자신의 치마 안으로 손을 넣고있었다.
뭘 그런 걸 묻냐는 듯이 치마 속에서 손을 꺼낸 ‘미카엘’은 아직도 흘러내리는 정액을 손가락에 묻히고 있었다.
‘아크’는 질색하듯이 ‘미카엘’을 바라보았다.
“너 그렇게 먹여도 되는 거냐…?”
[마나가 떨어져서 잠드는 것보다야 낫지 않을까요?]
“글쎄다. 먹고 싶다고 한 것도 아닌데, 먹이는 것도 좀 아닌 것 같아서.”
나는 ‘미카엘’의 행동을 바라보다가 머뭇거리며 입을 열었다.
‘미카엘’은 당장에 급한 일을 해결했을 뿐이다. 라는 듯 당돌하게 말하고 있었다.
대체 무슨 감각인 걸까. 비위 상한다고 삼키지 않으려고 하는 사람이 대부분일 텐데.
[괘, 괜찮네요. 생각보다 좋아요.]
[봤죠. 주인님?]
“이상하네… 신기가 대부분 이런 부류인 건가…?”
솔직히 ‘아크’는 볼 때마다 노아가 떠올라서 건드리기 꺼려졌다. 괜히 죄책감 들고 그래서 나쁜 길로 안 들기를 바랐지만, 벌써 뭔가에 눈을 뜬 듯, 그녀는 눈을 반짝이고 있었다.
‘미카엘’은 ‘아크’의 상태를 보더니 의기양양하듯 가슴을 내밀었다.
작은 가슴을 내민다고 뭐가 더 나오진 않았지만, 자신감이 넘친다는 것 하나로도 괜찮아 보였다.
나는 두 신기의 모습을 보고 턱을 어루만지며 난감한 기분에 봉착했다.
“…성하 씨?”
“…안녕?”
‘아크’랑 ‘미카엘’의 일을 제대로 수습하지 못한 채 멍하니 있었는데, 그 사이에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그 문이 열린 뒤에는 엘리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녀의 목소리는 어딘가 한기가 느껴지고, 공기가 싸늘해지는 눈빛이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나는 떠듬떠듬 인사를 건넸다.
그녀를 돌려 보내놓고 두 명이랑 즐긴 것처럼 보이니까 더 난감했다.
“…좀 있다가 사람 불러서 청소시켜 둘게요.”
“고마워.”
뭐라고 따박따박 달려들 줄 알았는데, 그러지 않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는 ‘미카엘’과 ‘아크’를 한 번씩 슥 훑어보고 나가버렸다.
왜인진 모르지만, 분위기로는 엘리샤의 압박이 엄청나게 센 것 같았다. 그녀가 분위기를 잡으면 긴장되고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이었다.
그래도 잘 넘어간 거 같으니 됐겠지.
“성하 님!”
“세라? 잘 잤어?”
[여긴 공공시설이에요?]
[주인님에게 프라이버시란 없는 것 같은데요.]
세라가 문을 벌컥 열고 들어오자, ‘아크’가 고개를 슥 올려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걸터앉은 침대에서 일어나 세라에게 아침 인사를 건네며 세라를 들어 한바퀴 빙 돌았다.
꺄르륵 웃으며 즐거워하는 세라의 뒤에선 ‘아크’와 ‘미카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도 모르겠다. 이 세계에서 프라이버시를 찾으면 안 되는 걸지도 모른다.
아무도 들어오기 전에 노크하질 않으니 기분이 싱숭생숭했다.
[성하, 일어났느냐.]
“큐라도 왔네.”
“성하.”
“리타도…?”
여기 무슨 정모 장소냐.
[갑자기 쓰러져서 그 뒤로 잘 깨어있나 확인하러 왔다만… 이 비린내는 뭐냐?]
“앗, 성하 님. 저 빼놓고 마나를 낭비한 거예요?!”
“아침부터 절륜하네요.”
큐라와세라, 그리고 리타는 차례차례 들어와 침대 상태를 보더니 나를 빤히 쳐다보며 이상한 소리를 늘어놓았다.
솔직히 이건 불가항력이었달까. 이미 밤샌 뒤라 머리가 잘 돌아가지 않아 변명할 거리도 제대로 떠오르질 않았다.
뭐라고 해야 잘 넘어갈 수 있을까 싶어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았다.
[낭비? 허튼소릴 하는구나? 주인님의 마나는 내가 먹어치웠다.]
‘미카엘’은 혀로 윗입술을 핥으며 도발하는 것 같은 자세와 표정으로 세라의 말에 반박했다.
그녀의 다리 아래에 정액이 흐른 것들이 보이고 있었다.
“저, 저도 주셔야 해요! 며칠 동안 못 받았는지 아세요?!”
원피스 아래로 흘러내린 정액을 본 세라는 발끈하더니, 내 품에 달려드는 것과 동시에자신의 옷을 벗고 있었다.
아침엔 좀 쉬고싶은데 날 놔주질 않는다.
“세라. 그쯤 하는 게 좋을 거야.”
“엣?!”
한숨을 내쉬며 나를 넘어뜨린 세라를 올려다보자니, 그 뒤에는 어느새 나갔다 생각한 엘리샤가 세라를 말리고 있었다.
싸늘한 표정으로 검을 들이댄 엘리샤는 차갑게 세라를 내려다보았다.
세라는 식겁한 표정으로 고개를 빳빳이 세우고 천천히 엘리샤를 돌아보았다.
[뭐냐 왕녀. 동료에게 단검을 겨누다니, 너무한 것 아니냐?]
갑작스레 일어난 상황에, 큐라는 이를 드러내며 엘리샤를 경계했다.
그리고 동시에 방 안의 분위기는 차갑게 일변했다. 대체 왜 내 방에 다 몰려와서 이러는 건지 나는 알 수 없었지만 그래도 지금 이 사태가 평범하지 않다는 것만을 알 수 있었다.
다 나가줬으면 좋겠다.
“엘리샤. 됐으니까 검 좀 내려놔. 세라는 옷 좀 입고.”
“…성하 씨도 문제에요. 아무리 사람의 체액에 그 사람의 마나가 흐른다고는 하지만 왜 자꾸 여성들과 몸을 섞는지 이해할 수가 없네요.”
“미안해. 나도 반성하고 있어.”
“하아.”
나는 엘리샤를 진정시키기 위해 세라를 뒤로 물렸다.
그러자 세라는 겁먹은 표정으로 후다닥 나와 내 뒤로 돌아와서는 옷을 주섬주섬 입기 시작했다.
그걸 본 엘리샤는 단검을 쥔 손을 내려놓고 나를 원망하는 듯한 눈으로 빤히 바라보았다.
나는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그녀에게 사과했다. 그러자 엘리샤는 할 말을 잃었는지 한숨을 크게 내쉴 뿐이었다.
“우리, 다음 마계의 위치를 찾았어요. 거기로 가야 해요.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라고 하는 거예요.”
그리고는, 엘리샤가 충격적인 발언을 내뱉었다.
*
엘리샤의 말에 눈을 퍼뜩 뜬 그녀들은 정신을 차린 채 몸을 움직여 자신의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미카엘’과 ‘아크’는 챙길 것 없이 원피스 하나 두른 채로 내 옆에 붙어서 내가 나르는 짐들을 하나씩 거들어주고 있었다.
[갑자기 마왕이라니 놀랍네요.]
“내가 기절하고 있을 때 뭐 알아둔 거라도 있나 봐.”
“성하. 잠깐만 괜찮을까요?”
“어, 애들아 잠깐만 다녀올게.”
[그럼 저흰 이거 먼저 나르고 있을게요.]
‘아크’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마른 음식들을 바라보며 맨발로 총총 걸어 다녔다.
나 혼자서는 무거웠던 짐들도, 그녀들은 쉽게 나르는 걸 보니 뭔가 부조리했다. 괜히 자괴감을 느끼는 것 같달까.
그보다 맨발로 걸어 다니면 발 안 아픈가 싶었다.
짐을 나르며 엘리샤의 말을 곱씹으며 생각에 잠길 때, 한쪽에서 리타가 손짓과 함께 나를 부르고 있었다.
나는 잠시 짐들을 내려놓고 ‘미카엘’과 ‘아크’를 뒤로하고 리타에게 걸어갔다.
“무슨 일이야?”
“에리가 이상해요. 우리랑 있을 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갑자기 마계를 알았다고 하잖아요.”
“뭐야. 나 기절할 때 알아온 거 아니었어?”
“아니요. 에리는 아무 데도 가지 않았어요. 돌아온 뒤 아무와도 접촉하지 않았고요.”
리타가 갑작스레 날 부를 이유가 뭐가 있지. 하고 다가가니, 그녀는 심각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는 엘리샤의 마계 발언에 대해 알 수 없다는 얼굴로 내게 심정을 토로하는 게 아닌가. 나는 내가 기절하고 있던 사이에 정보를 알아낸 건줄 알았는데 마냥 그런 것도 아니었다.
그녀는 자신의 친구라고 하는 엘리샤를 의심하고 있었다.
“에리가 무슨 생각인지는 모르겠지만, 조금 조심해야 할 것 같아요.”
“그래. 고마워.”
리타는 마지막으로 당부하듯이 나를 바라보며 단단히 일렀다.
나는 씩 웃으며 고마움을 표했다.
그렇게 다시 돌아가려던 중, 엘리샤가 모퉁이에서 튀어나왔다.
“리타와 무슨 이야기를 했나요?”
“아니, 그냥 마왕을 또 한 번 보러 간다는 게 좀 무섭다 하더라고.”
“그래요? 그럼 리타는 이참에 빼고 가는 것도 나쁘진 않죠.”
“아니야. 그럴 필욘 없어. 그냥 내가 잘 지켜 주기로 했으니까 괜찮아.”
요새 분위기가 흉흉한 엘리샤가 나를 빤히 바라보더니 리타와 뭔 이야길 했냐고 추궁하기 시작했다.
나는 대충 둘러대기 위해 아무 말이나 지껄였는데, 엘리샤도 강적이었다.
괜히 잘못 둘러댔다가 리타가 파티에서 방출당할 뻔했다. 나는 식은땀을 흘리며 엘리샤를 진정시켰다.
“…성하 씨는 좋은 사람이니까. 믿고 있을 거예요. 분명 그럴 거예요.”
엘리샤는 입을 닫더니 몇 초간 침묵을 지켰다.
그리고 입을 열어 따스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녀의 밝은 미소 뒤에, 무슨 검을 숨기고 있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자 가죠. 마왕을 처치하러. 이번에야말로 저희가 죽이는 거예요.”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엘리샤는 머쓱 한지 내 소매를 끌고 나섰다.
솔직히 긴장된다. 내가 먼저 그 마계의 마왕을 잡으러 가게 되는 게 진짜라면 나는 제대로 준비한 게 맞는 걸까.
엘리샤가 준비한 위치 확인 반지도, 장갑도, 제대로 꼈다.
여분의 가죽 갑옷을 챙겨 어깨, 가슴, 팔꿈치, 무릎을 가리고, 다리에는 판자를 덧대 묶었다.
주 무기는 ‘미카엘’ 보조 무기는 단검과 ‘아크’면 충분했다.
[성하. 이번에, 마왕을 처치하게 된다면, 너는 돌아가는 것이냐?]
엘리샤의 손에 이끌려 짐들이 즐비한 곳으로 걸어가자, 큐라가 옆에서 나를 붙잡았다.
울먹이는 듯한 목소리가 나를 향해 쏟아지고 있었다. 가지 말라는 듯이 내 손을 꽉 잡고 놔주지 않으려 했다.
며칠 본 건 아닌데, 벌써 며칠 본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정이 든 걸지도 모르겠다.
같이 사경을 헤매서 그런 걸지도 모른다.
“아직은 모르겠어.”
[너는 가혹하구나. 나는 무력하고, 언젠가 이날이 오리란 건 알았지만, 너는 너무 강해서 금방 떠나게 되는구나.]
나는 아직 그것을 정하지 못해, 확답을 주지 못했다.
그러자 큐라는 슬픈 얼굴을 한 채로 자신이 입은 원피스의 가슴팍을 꽉 쥐며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자신이 뭘 할 수 없다는 무력감에 휩싸였는지, 확답을 주지 못하는 내게 씁쓸한 표정만을 짓고 있었다.
“성하 님… 벌써 떠날 때가 되었나 봐요.”
“그러네.”
[영원한 이별이라.]
[세계가 달라지면 더 이상 만나지 못하게 되는 거니까요. 언젠가. 라는 기약은 세계를 같이할 때나 의미가 있는 법이죠.]
슬슬 이별 준비를 하는 듯한 파티의 모습에 뭔가 내 마음도 미어졌다.
세라는 주춤거리는 목소리로 나를 바라보았다.
엘리샤는 그런 나를 말 없이 짐들을 늘어놓은 곳으로 이끌었다. 그곳에는 마른 음식, 무기, 갑옷의 스페어들이 있었다.
‘미카엘’은 씁쓸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아크’ 또한 ‘미카엘’의 말에 동조하듯, 고개를 끄덕이면서 뭔가 생각에 잠긴 듯 했다.
아버지의 일을 떠올리는 걸지도 모른다.
“모두 모였죠?”
[어디로 출발하면 되는 거냐?]
“바로, 여기에요. 세라. 문을 열어요.”
“어…?”
리타가 마지막으로 걸어오자, 엘리샤는 주변을 확인했다.
리타, 세라, 엘리샤, 큐라, ‘미카엘’, ‘아크’ 그리고 나.
모두가 서서 서로를 바라보고 고개를 끄덕였고 큐라는 자신이 이동할 수단이라며 본체로 돌아가려 했다.
하지만 엘리샤는 그런 큐라를 막아 세운 뒤, 세라를 바라보았다.
근데, 여기라니. 여긴 왕도 한복판이라고. 무슨 소릴 하는 거야. 하는 순간, 세라의 얼굴이 얼어붙었다.
“여, 여긴… 진짜 마계가 있는…. 여, 열게요?!”
세라의 안색이 새파래졌다. 정말 마계가 있는지, 세라의 손이 조금 떨리기 시작했다.
애초에 다른 어디도 아닌, 여기에 마계가 있다는 것을 알 턱이 없지. 나도 방금 들었을 때는 무슨 농담이야. 싶었을 정도였다.
애초에 마족도 감지하려고 마음먹은 게 아니라면 감지할 수 없었을 것이다.
나는 결국 제대로 된 각오도 하지 못한 채 이렇게 사지로 발을 붙이게 되는구나.
[미리 검으로 변해야겠네.]
[그럼 전 전처럼 팔찌로 변해 있을게요.]
세라의 마법에, ‘미카엘’은 몸을 빛내는 것과 동시에 검으로 돌아가 내 손에 들어왔다.
그리고 ‘아크’는 내 왼쪽 팔목에 채워지듯 몸을 빛냈다.
나는 순간적으로 이동하는 이 감각에 익숙한 감각을 받으며 눈을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