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60화 〉episode8. 아크 (6) (60/98)



〈 60화 〉episode8. 아크 (6)

“진정해봐. 너무 흥분했어.”
[주인님이 안 꺼내기로  걸 말하니까 그렇죠!]

양손 깍지  채로 힘자랑하듯이 날 밀어붙인 ‘미카엘’은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인 채 흔들리는 눈동자를 내 쪽으로 고정했다.


[어? 주인님, ‘아크’가 빛나는데요?]
“너 때문에 그런 거 아니야?”

‘미카엘’과 한창 힘겨루기를 하고 있을 때, 갑자기 어두운 시야가 붉게 물들었다.
뭐지 싶어 빛의 근원지를 찾으려는 그때, 먼저 ‘미카엘’이 근원지에 시선을 옮긴 채 내게 말을 걸었다.
고갤 돌려 왼쪽 팔목을 보니, 그녀의 말대로 붉은 팔찌가 붉은빛을 울고 있었다.
‘아크’가 바다가 아닌 곳에서 의사 표현하는 것은 마나가 많이 소모된다 했음에도 이렇게 빛내는 것은 뭔가 할 말이 있어서겠지.


[‘미카엘’님.]
[왜?]
[제 아버지와의 과거를 들여다보셨죠.]
[네 과거를 훔쳐본  아니라, 내 과거에 네가 있던 거다.]

어느새 인간으로 변한 ‘아크’는 드레스 같은 수영복을 입은 채 붉은 눈을 빛냈다.
정말  말대로 ‘미카엘’이 과거를 보여준 것이 원인인 듯했다.
그녀의 목소리는 차가웠고, 눈빛은 싸늘했다. 자신의 과거가 들춰졌다는 것이 불쾌한 건지, 존댓말을 쓰는 와중에도 그녀의 말엔 가시가 품어져 있는  같았다.
하지만 ‘미카엘’은 그녀의 위압에도 아무런 미동조차 하지 않은  어쩔 거냐는 표정으로 그녀를 내려다볼 뿐이었다.
신이 직접 만든 것과 인간이 신의 지혜를 빌려 만든 것의 격의 차이는 분명했다.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둘이 이야기하는 것을 바라보았다.
침대 아래로 내려간 ‘아크’는 ‘미카엘’을 응시했다.


[너무하시네요. 아무리 ‘미카엘’님이 신의 아이라지만, 저도 그 정도의 격은 갖추고 있거든요.]
[호오. 네가 감히 나와 어깨를 견주려 하다니 어리석구나. 내 동생들조차도 나 하나 건드리지 못하거늘.]


‘아크’의 협박에 ‘미카엘’은 흥미롭다는 듯이 눈썹을 까딱거리며 황금빛 눈동자를 빛냈다.
둘의 시선 사이에는 알  없는 스파크가 튀는 것만 같아 조금 긴장되었다.
이걸 말려야 하나, 둘이서 풀게 놔둬야 하나 걱정하는 한편, 말려도 듣지 않으면 괜히 힘들어질 것 같아서 주저했다.

[저와  아버지의 일은 저만의 비밀인데….]
[신의 총애를 받던 자가 비밀을 가질 수 있을 리가 없지, 인간끼리의 이야기라면 몰라도 천계에 속한 내가 모른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미카엘’의 기백에 머뭇거리던 ‘아크’는 꼬리를 말고는 입을 비죽였다.
‘미카엘’은 ‘아크’의 말은 말이 되지 않는다는 듯 어깨를 으쓱이며 노아에 대해 입을 열었다.
천계의 주인, 그리고 그 첫째이니 ‘미카엘’이 말하는 것은 사실이리라.

[그리고, 내가 어찌 인간계에 묶이게 되었는지 주인님에게 설명하기 위해선 그 이야기가 필요했다. 너의 아비가 그러하지 않았더라면, ‘가브리엘’과 ‘우리엘’을 필두로 같이 추방당할 일은 없었을 테니까.]
[주인님…? 그저 ‘미카엘’님이 인정하신 용사님이 아니었던 건가요? 그보다, 어찌 하늘의 주인을 두고 따로 주인님이라는 존재를 두시는 거죠…? ‘미카엘’님도 결국 저의 아버지와 같은 길을….]
[인정은 본디 강자가 약자에게 하는 것이다. 나는 주인님보다 약했다. 그뿐이다.]
[‘미카엘’님을… 이겨요?]
“…그렇게 쳐다봐도 나도 잘 몰라서 해줄 말이 없어.”

‘미카엘’은 나를 힐끔 쳐다보더니 입을 열었다. 자신이 추방당해서 인간계에 수천 년이라는 세월을 묶여 있어야 했던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선 필수불가결이었다고 ‘아크’를 설득했다.
하지만 그 와중에 ‘아크’는 ‘미카엘’이 입에 담은 호칭을 보며 경악했다.
그 주인님이라고 하는 자가 나인 것을 깨달은 ‘아크’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짓더니 동공에도 지진이 일어난  극심하게 떨렸다. 그리고 그 시선은 ‘미카엘’에게서 나한테로 옮겨졌다.
‘미카엘’은 자신이 나를 주인님이라고 부르게 된 까닭을 실토했고, 그 말을 들은 ‘아크’는 입을 틀어막은 채 일어날 수 없는 일을 들은 사람인  마냥 경악했다.


[그렇다면 저도 용사님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겠네요. ‘미카엘’님을 이기는 용사님이 나오리라곤 생각도 못 했어요. 아마, 용사님이 신과 가장 가까운 인간이겠죠.]
“어, 미안한데… 난 용사가 아니니까 그냥 이름으로 불러.”
[어?]
[주인님의 말대로, 주인님은 용사가 아니다. 용사와 나란히 할 능력도, 보정도 없다. 그에게는 특별히 주어지는 용사의 특혜가 없다.]

‘아크’는 잠시 입을 다물어 침묵을 지키더니, 얼마 안 가 어렵게 입을 뗐다.
그 전에, 나는 손을 살짝 들어 ‘아크’의 오해를 고쳤다. 그러자 그녀는 입을 벌린 채로 아무런 말도 잇지 못하고 얼빠진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그리고 ‘미카엘’이 거기에 추가타를 날리듯 과장되게 양손을 조금 펼치면서 입꼬리를 씩 올렸다.


[그렇기에  특별한 존재이신 것이다. 주인님만이, 내 오래된 비원을 이뤄주실 수 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과장돼. 그만둬.”
[넹.]


과장된 포즈, 우아한 손짓으로 뭔가 선언하듯 말하는 ‘미카엘’을 보자니 내가 다 민망했다.
애초에 그렇게까지 기대하면, 내가  기대에 부응해야 할 것만 같아서 부담스러워진다.
그럴 능력이 되는지,  되는지조차 모른 채 된다고 단언한다면 그것은 상대에 대한 기만이다.
‘미카엘’의 옷자락을 붙잡고 내가 도끼눈을 뜬 채로 바라보니, ‘미카엘’은 아차. 하는 듯한 표정을 짓더니  손으로 입을 꾹 틀어막고 고개를 끄덕였다.

[‘미카엘’님의 비원이요? 그게 뭔가요?]
“성장하는 거…? ‘카보드’를 찾는 거?”
[‘카보드’를 찾고 성장해서 천계로 돌아가는 것이에요. 주인님.]


바닥에 쭈그려 앉은 ‘아크’가  손을 침대에 가지런히 얹고 나를 올려다보았다.
나는 ‘아크’를 빤히 쳐다보다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대답해주었다. 나도 사실 들은  있지만, ‘미카엘’이 무엇을 우선시하는지 몰라 이런 식으로밖에 대답해줄 수 없다는 게 조금 마음 아팠다.
 말을 듣던 ‘미카엘’은 눈을 내리감고 깊은숨을 내쉬더니 작은 손을 내 어깨에 얹었다.

“그러냐.”
[‘미카엘’님이 말하는 성장은 ‘가브리엘’님처럼 인간의 모습이 성숙해지는  말하는 건가요?]
[…그래. 최대치에 비례해 힘을 가지면 가질수록 인간이 가지는 전성기의 모습에 가까워지지.]
“노인은 안 돼서 다행이네.”
[주인님….]

‘미카엘’의 말에 허탈한 웃음을 지으며 콧방귀를 뀌는데, ‘아크’가 갑자기 눈을 반짝이며 ‘미카엘’을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미카엘’의 과거를 봤을 때도, 그녀는 힘을 뺏기기 전도, 후도 모두 아이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잘 생각해보면 다른 자매들이 성숙한 어른에서 세라와 같은 모습으로 작아질 정도의 힘을 환수해갔는데, ‘미카엘’만은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그렇다면 그녀는 다른 자매들에 비해 힘을 가질  있는 저장량이 무지막지하거나, 신의 총애를 받아 페널티를 덜 받은 것이 된다. 솔직히 후자는 그렇게 가능성 있어 보이지 않았다. 그 ‘라파엘’도 관련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가브리엘’, ‘우리엘’과 같이 힘을 환수당했으니까.
그러면 그에 비견하는 힘을 준다면, ‘미카엘’이 성장할 수 있는 것 아닐까.

“그거, 나  수 있을 것 같은데.”
[어?]
[네?]


‘가브리엘’, ‘라파엘’, ‘우리엘’보다도 더 많은 힘이 필요하다면, 아마 끝을 보기 어려운 자원이 있어야만 했다.
하지만 그런 걸 무슨 수로 찾는가. 그것이 문제였다. 이 세계에서의 강함은 마나라는 개념에 덮여 덩치가 크고 근육이 많다고, 기술이 화려하고 강력하다고 강한 것이 아니었다.
그렇게 생각이 생각의 꼬리를 물다 보니, 어느샌가  심장에 도달해 있었다.
무한한 생명력. 죽지 않고, 상처도 금방 낫게 하는 미친듯한 재생력은, 내 몸에 가득 찬 농밀한 마나를 기반으로 이루어져 있다.
일개 사람들과 다르게 내 신체의 마나는 고갈되지 않으며, 다른 사람이 평생 가지고 갈 마나의 양이 한 손가락에 들어있기도 했다.
단점이 있다면, 나 자신에게 마력이 없어서 그 마나를 활용하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숨을 몰아쉬고 ‘미카엘’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원피스 끝자락을 붙잡은 채 나지막이 말하자, ‘미카엘’과 ‘아크’는 새된 목소리로 나를 바라보았다.


“아프긴 하겠지만,  가능해. ‘미카엘’을 성장시켜줄 수 있어.”
[자, 자, 잠시만요! ‘미카엘’님을 성장시킬 힘이 일개 소환자에게 있다고요?! 이미 용사의 범주를 넘어 섰어요!  자가 용사가 아닌 게 말이 안 되잖아요!]

나는 내 가슴에 손을 얹은 채 떨리는 목소리로 말하며, 시선을 내 손이 있는 곳으로 떨구었다.
‘미카엘’은 당장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지만, ‘아크’가 믿을  없다는 듯이 다급한 목소리로 달려들어 소리치고 있었다.
마나의 보유량으로만 따지면. 그런 이야기는 많이 들어왔다.
그렇지만 그렇기에, 나는 창고 같은 개념으로 쓰일 뿐, 나 스스로 대단한 사람이 될 수 없었다.
용사가 되지 못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했던 사실이었다.


[…정말요?]


침묵하던 ‘미카엘’이 떨리는 목소리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어두운 공간 속에서, 그녀의 황금색 눈빛이 나를 응시했다.

“세라랑 큐라한테도 인정받은 인간 마나 창고야. 그리고 난 죽지 않거든.”
[주인님은 두렵지 않으세요? 계속해서 죽는다는 게, 그리고 죽지 않는다는 게. 죽지 않는 몸은 의식을 잃은 것과 죽은 것의 경계를 모호하게 되죠. 결국, 자는 것조차 죽는 것과 같다고 느낄 때가 올지도 몰라요. 애초에 주인님의 죽음에 횟수 제한이 있는지 없는지조차 모르는 거잖아요. 정말 두렵지 않나요?]
“괜찮아.”

나는 주먹으로 내 가슴으로 두드리며 애써 태연한 척하려 입꼬리를 씩 올렸다.
하지만 ‘미카엘’은 그렇게 간단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녀는 눈썹을 축 늘어뜨린 채 자신의 치맛자락을 꽉  채로 부들부들 떨며 이야기하고 있었다.
자신이 혹여 내 생명까지 다 빨아 먹을까, 그리고 그 뒤로 내가 일어나지 못할까 두려운 듯했다.
그녀의 황금색 눈에는 어딘가 망설임이 있었다.


[저, 용사님… 아니, 뭐라 해야 하지….]
“성하로 괜찮아.”
[앗, 네. 성하 님은 대체 얼마나 많은 양의 마나를 가지고 있기에 ‘미카엘’님의 성장을 돕는다고 말하는 건가요. 제가 아무리 ‘미카엘’님에 비하면 아기라곤 하지만, 그래도 ‘미카엘’님에 대해선 어느 정도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아크’는 계속해서 믿을 수 없는 이야기가 눈앞에서 오간다는 사실에 정신을  차리는 건지 어버버 거리면서 질문을 던졌다.
‘아크’가 알기로도, ‘미카엘’의 성장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고 생각하는  같았다.


“내가 내 몸을 과신하는 걸지도 몰라. 하지만 마나가 많다는 것은 확실해. 그러니까 어느 정도는 도울 수 있어.”
[…주인님?]

나는 ‘미카엘’의 힘이 필요했다.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 치면 이미 대마법사에 다다랐을 정도지만, 마력이 없어 아무것도 되지 못했다.
그렇기에 더더욱 ‘미카엘’의 힘이 필요했다. 없는 마력을 메꾸기 위한 필수적인 존재였다.
언제나 파티에 속한 모두에게 도움을 받을 수도 없는 노릇이니,  스스로 뭔갈 할 줄 알아야 했다.
점점 간절해지는 난, 초조하게 속을 태웠다. ‘미카엘’은 내 상태가 심상치 않다는 듯이 고개를 숙여 내 안색을 살폈다.

“검으로 변신해. 그러면 돼.”


나는 각오를 다지고, ‘미카엘’에게 명령했다.
하지만 ‘미카엘’은 멀뚱멀뚱 서서 나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미카엘’?”
[꼭 그렇게  해도 돼요.]
“뭐야. 다른 방법이라도 있어?”
[주인님이 가장 잘 아시는 방법이요.]


가만히 서 있는 ‘미카엘’을 올려다보며 그녀의 이름을 부르자, 그녀는 갑자기  무릎에 걸터앉아 몸을 가까이했다.
그리고서 얼굴을 가까이 댄 채로 자신의 원피스를 들어 하반신을 드러내 보였다.
그녀의 모습을 보니, 마나를 넘겨주는 방법이 하나  있다는 것을 떠올렸다.

[어? 어어? 뭐, 뭐 하시는… 헉.]


옆에서 고개를 내밀던 ‘아크’는 하반신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미카엘’을 보더니 눈을 커다랗게 뜨며 입을 쩍 벌렸다.
아니 뭐 내가 노출증 걸린 환자도 아니고, 이런 상황에 닥치면 꼭 관람객이 하나씩 있는 기분이었다.
세라 때도 그렇고, 엘리샤 때도 그렇고.

“야, 야…! 잠깐만, 옆에서 보고 있잖아.”
[아. 보이는  좋아하시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어요?]
[앗.  내보내지 마세요!]
“보이는 걸 좋아할 리가 없잖아.  그냥 불가항력이었다고.”
[으음.]

돌진해오는 ‘미카엘’을 막으며 옆에 있던 ‘아크’를 손으로 가리키니, ‘미카엘’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순수한 목소리로 물었다.
내 말의 의도를 알아챈 ‘아크’는 미어캣처럼 고개를 위로 쭉 빼더니 고개를 휙휙 저었다.
대체 밤중에 이게 뭐 하는 짓일까. 한숨밖에 안 나오는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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