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58화 〉episode8. 아크 (4) (58/98)



〈 58화 〉episode8. 아크 (4)

노아의 행방을 알 수 없게 되자, 나 또한 시야가 흐려지더니 이내 처음 봤던 하얀 공간으로 이동했다.
여전히 내 신체는 없어서 말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보는 것만은 가능했다.
아무것도 없는 새하얀 공간에 홀로 앉아있는 소녀가 있었다.
‘미카엘’. 나는 그녀를 알고 있음에도 그녀에게 말 한마디 걸 수 없었고, 그녀 또한 나를 볼  없었다.


[언니. 아버지께서 우리의 처우를 내리겠다고 하셨어.]
[…그 노아라는 인간을 화나게 한 우리의 죄? 하지만 나는 목자가 아니야. 내가 받을 벌은 아니야.]
[맞아. 엄연히 말하면 나의 죄지. 내가 아버지의 말씀을 인간들에게 전하는 일을 맡았으니까.]

황금색의 눈을 반짝이던 ‘미카엘’의 뒤로 푸른 눈을 반짝이는 ‘가브리엘’이 나타났다.
왜인지 언니라고 불린 ‘미카엘’보다, ‘가브리엘’이 더 성숙한 모습이었다.
그냥 자신이 원하는 모습을 하는 걸까.
뚜벅뚜벅 걸어오던 ‘가브리엘’은 비장한 표정으로 ‘미카엘’을 불렀다.


[미안해. 내가  일 하나 제대로 하지 못해서 연대 책임을 내리신다고 하셨어.]
[그럴 수가. 나는 아직 내 일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는데.]

‘가브리엘’은 노아를 제대로  길로 이끌지 못한 것과, 그에 대한 책임을 다른 자매에게도 지게 한 것에 죄책감을 느끼는 것 같았다.
‘가브리엘’은 아랫입술을 꾹 깨문 채 ‘미카엘’에게 제대로 된 내용을 읊었다.
지금이 중세 시대고, 이건 그보다 과거의 일이니까 연좌제가 강하게 자리 잡을 때구나.
‘미카엘’은 자신만의 일이 있는 건지, ‘가브리엘’의 말을 듣고서 눈을 크게 치켜떴다.

[언니! 들었어요? ‘가브리엘’ 언니 때문에 저까지 휘말려야 한다니요!]
[‘우리엘’.]
[이거 봐. 진작에 나를 보내줬으면 내가 잘못된 길로 가는 악인들을 처리했을 텐데, ‘가브리엘’ 언니는 너무 물러요. 결국, 사태가 이 지경까지 왔잖아요!]

‘가브리엘’은 이미 다른 자매들에게도 말하고 온 건지, 그녀의 뒤로 붉은 눈동자를 가진 여성이 소리치며 다가왔다.
‘우리엘’이라고 불린 여성은 호전적인 성격으로 ‘미카엘’에게 붙어 ‘가브리엘’을 꾸짖듯이 말했다.
‘가브리엘’은 ‘우리엘’을 차갑게 불렀지만, ‘미카엘’을 방패 삼아 계속해서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떠벌렸다.
아무래도 ‘미카엘’은 생김새는 어려도 가장  것임에는 분명했다.
하지만 그녀의 동생들이 시끄럽게 떠드는 와중에도 ‘미카엘’은 혼자 있는 것처럼 슬픈 눈을 하고 있었다.


[다들 조용히 해주세요. 곧 아버지께서 오신다 했습니다.]
[‘라파엘’.]
[전 괜찮습니다. 저는 아무렇지 않으니까요.]

셋이 모여있는 곳에, 마지막으로 에메랄드의 눈동자 뽐내는 여성이 다가오더니 모두를 조용히 시켰다.
차분한 목소리임에도 그녀의 목소리에는 강렬한 느낌이 전해져 왔다.
그래도 이야기하는 것을 보니 네 명 중 셋째인 것 같았다.


- 나의 아이들아.
[아버지.]

넷이 모여 슬슬 자리를 잡기 시작하더니, 이내 울리는 듯한 목소리가 귀를 가득 메웠다.
깜짝 놀라 시야를 돌려 신의 모습을 확인하려 했건만, 목소리가 나는 곳에서는 하나의 빛이 있을 뿐이었다.
원래 저런 모습인 건지, 아니면 자신의 모습을 감추는 건지는 알 수 없어도 하나 확실한 건 신의 본 모습을 알 수 없다는 점이었다.
신의 부름에 ‘미카엘’이 대표해서 대답했다.


- 내가 말한 대로 노아는 따르지 않았다. 이는 신에 대한 믿음의 부족이오, 신을 향한 반역이니라. 이를 올바른 길로 인도해야 할 목자. ‘가브리엘’과 ‘우리엘’의 탓이 크다.
[죄송합니다.]
[죄송할 따름입니다.]


신이 그리 말하자, ‘가브리엘’과 ‘우리엘’은 아까의 기세는 온데간데없이 벌벌 떠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신은 위엄있는 목소리로 자신의 뜻을 거스른 노아에 대해 진노하는 듯한 말투로 말했다.
아무래도 노아라는 존재를  아낀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런 만큼, 뜻을 거스른 노아에게 느낀 배신감은 컸던 거겠지.

- 책임은 너희 자매가 지도록 해라. ‘미카엘’은 잃어버린 ‘카보드’를 찾아오도록 하라. ‘가브리엘’은 앞으로  인류를 모두 목자로서 인도하도록 하라. ‘라파엘’은 신인류가 제대로  의술을 알 수 있도록 하며, ‘우리엘’은 악인들을 처단하여 세상에 악이 없도록 하라.
[아버지! 그, 그것은…!]
- 이는 나의 뜻이니, 이를 지키는 자는 다시 영예를 찾을 것이요, 하늘에 발을 디딜 수 있으리라. 그렇지 못한 자는 평생 나의 피조물이 있는 곳에 자리하게  것이니, 내가 말하는 바를 잘 이해하고 따를 수 있도록 하라.
[그럼 저희의 처우는 추방입니까…?!]
- 그러하다. 너희가 모은 힘을 다시 몰수하겠다. 번복은 없다. 떠나거라.


신은 엄숙한 목소리로 그녀들에게 통보했다.
다들 어려운 과제를 받은 학생들처럼 눈을 크게 뜨고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벌벌 떠는 목소리로 ‘우리엘’이 고개를 들어 뭔갈 말하려 했지만, 신이 그걸 허락하지 않으려는 듯 말을 계속 이었다.
결국, 발언권을 받지 못한 ‘우리엘’은 이를 까득 깨물고서 고개를 숙였다.
신은 그리고 충격적인 추방 선언을 했다. 그러자 ‘가브리엘’은 덜덜 떨며 간신히 목소리를 내었다.
그러자 신은 그녀의 대답에 긍정하며 홀연히 사라졌다.
커다란 충격과 함께 꺼진 빛은 그녀들에게 싸늘함만을 남기고 사라졌다.

[이거 어떻게 할 겁니까! 그동안 모은 힘이 사라지다니!]


신을 바라보다, 그녀들에게로 시선을 돌리니 그녀들은 어린아이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미카엘’은 평소에도 저 나잇대의 모습을 하고 있던 반면, 성인의 모습을 하고 있던 세 자매 또한 ‘미카엘’만큼 작아져서는 충격에 휩싸였다.
‘우리엘’은 기겁하며 소리쳤지만, 이제 아무도  사안을 거스를 사람은 없다는 것을 아는지 다들 침묵한 채로 소리치는 ‘우리엘’을 바라보았다.
아무래도 그녀들의 외견으로 보이는 나이는 자신이 원하는 대로 조절하는 것이나 살아간 대로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가지고 있는 힘의 성장에 따라 정해지는 듯했다.


[결국, 우리는 천계에서 쫓겨나는군요.]
[이게 뭐야….]


‘가브리엘’은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자신에게 일어나는 빛을 보았다.
그 빛은 인간계로 전이되는 마법인 건지, 그녀는 그 빛을 보면서 깊은숨을 내쉬었다.
‘우리엘’은 망연자실한 모습으로 자신의 머리를 쥐어뜯으며 울상을 지었다.


[의술을 전해주는 게 일이라니, 조금 바쁜 나날이 되겠네요.]

‘라파엘’은  와중에 상관없다는 듯이 평온한 표정으로 하늘을 우러러보았다.
어딜 보아도 하얀 공간뿐인데, 신을 향해 말하는 걸까.

[‘카보드’라. 또 나 홀로 성장하지 못하겠구나.]


‘미카엘’은 어려진 다른 자매들의 모습을 보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다른 자매들과는 달리 차원을 달리하는 난이도를 가진 과제인 건지 ‘미카엘’은 처음부터 포기한 채로 전이에 응했다.
그리고 내 시점은 ‘미카엘’을 따라갔다.
‘미카엘’은 내게 말을 돌리기 위해 이곳으로 부른 줄 알았는데, 그저 그녀가 인간계로 내쳐진 꼴이 ‘아크’와 밀접한 관계가 있어서라는 것을 깨달았다.

[목자 ‘가브리엘’은 신의 쇠뇌였고, 의인 ‘라파엘’은 신의 지팡이였으며, 심판자 ‘우리엘’은 신의 검인데, 나는 무엇인가.]


혼자 남은 ‘미카엘’은 우울증에 걸린 환자처럼 자신에 대한 존재 의미를 찾으며 터덜터덜 걸었다.
그리고 푸르디푸른 초원 위에 걸터앉아 바람을 만끽했다.

[안 그래도 나 홀로 성장하지 못했음에 우울한데, 잃어버린 ‘카보드’마저 찾아오라니, 나는 일평생 아버지의 피조물과 살게 되겠구나.]

‘미카엘’은 햇살과 바람을 맞으며 우울한 소리를 내뱉더니 몸을 웅크렸다.
자신의 무릎에 얼굴을 파묻은 ‘미카엘’은  번이고 훌쩍이더니, 내가 아는 대검으로 변했다.
우웅. 하고 울리는 대검은 서글픈 듯이 계속해서 빛과 소리를 발산했다.

[이것이 ‘아크’의 일이고, 제가 인간계에 붙잡히게  이유에요. ‘라파엘’은 이미 천계에 돌아갔으며, ‘가브리엘’은 구 인류를 처단하기 위해 쇠뇌로서 일하고 있을 것이고, ‘우리엘’은 세상의 악을 처리하기 위해 뛰고 있을 테죠.]


그렇게 또 다른 ‘미카엘’의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려 뒤를 바라보자, 순간적으로 모든 시야가 하얀색으로 뒤덮였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 ‘미카엘’이 자신의 치맛자락을 꽉 붙잡은 채로 고개를 떨군 채 말하고 있었다.
모든 이야기가 끝난 건지 내 신체는 원래대로 돌아와 있었고, 나는 내 손을 잡아 감촉을 느끼는 것과 동시에 ‘미카엘’을 바라보았다.


[저는 네 자매 중에서 저 홀로 성장해본 적 없는 어린아이예요. 오래 살았을 뿐이지, 결국 스스로 성장한 적 없는 꼬맹이일 뿐이죠. 제 속내를 딱히 말하고 싶지는 않았어요. 하지만, 주인님이라면 제 성장을 도와줄  있으리라 믿었죠. ‘카보드’를 찾아줄 수 있으리라 믿었죠.]
“아, 아아.”


‘미카엘’은 우울한 표정으로 눈물을 머금은 채 자신의 속내를 털어놓았다.
숨기려 했던 속내를 털어놓은 탓인지, 그녀의 표정은 후련해 보이면서도 어딘가 후회하는 것 같았다.
그녀는 어금니를 세게 깨물고서는 자신이 바라는 것들을 하나하나 말했다.
나는 사라졌다 만들어진 목을 가다듬으며 헛기침을 했다.
‘미카엘’은 그런 나를 빤히 바라보더니 내가 입을 열기도 전에 말을 이어갔다.


[신님은 이제 무기를 들지 않으세요. 저는 인간을 상대로 만들어진 존재가 아닌 만큼, 제 성장은 그대로 멈춰있어요. 인간을 이끄는 목자도 아니고, 인간에게 의술을 전하는 의인도 아니며, 인간을 심판하는 심판자도 아니에요. 이런 제가 어찌 스스로 성장하고 힘을 모아 커질 수 있겠어요? 그저 약하디약할 뿐인 제가 홀로 ‘카보드’를 찾을 수 있을 리가 없어요.]

동생들도 하는 성장을, 자신만 하지 못했다는 열등감에 휩싸인 건지 그녀는 우울하게 잠긴 목소리로 토로하듯 자신의 속을 털어놓았다.
빨개진 그녀의 눈은 그녀의 마음을 대변하는 듯, 눈물을 머금기 시작했다.
자기 스스로 힘을 모을 수 있는 동생들과는 달리, 신의 뜻대로 움직이며, 신만을 상대로 하는 ‘미카엘’은 자신이 아무것도 할  없는 존재라면서 자신을 한없이 까 내리고 있었다.
강인해 보이는 그녀의 모습 뒤로, 이미 성숙하다 보이는 그녀의 모습 속에는 아주 약하고, 여린 소녀가 있을 뿐이었다.
지금 그녀의 모습 그대로 어린아이나 다름없었다.
새하얀 공간  한가운데 홀로 선 아이는 눈물을 흘리며 내게 말했다.

[저는 뭘 해야 천계로 돌아갈 수 있는 걸까요.]

나도  모르는데, 그걸 말해봐야 내가 알  있을 턱이 없었다.
어떻게 하면 성장하는지 ‘미카엘’ 본인도 모르는데, 내가   있을 리가 없지.
게다가 ‘카보드’도 뭔지 모른다.
그게 어떻게 생겼는지 모르거니와,  하는 데 쓰는 물건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내가 ‘미카엘’에게 해줄  있는 이야기는 없었다.


“몰라.”
[…….]
“마왕이 가지고 있기를 빌어야지.”
[그렇겠죠…?]
“노아랑 있던 그 마왕이 가지고 있지 않을까?”
[…! 그런, 건가요? 근데 저는 그자가 어느 마계의 왕인지 몰라요.]
“…그럼 나도 몰라. 있길 빌어야지 뭐.”

머리를 긁적이며 솔직하게 말하자, ‘미카엘’은 실망한 표정으로 고개를 떨구었다.
그래도 노아를 기점으로 구 인류와 신인류가 나뉘는 거라면,  전에 잃어버린 듯한 ‘카보드’는 구 인류가 들고 있을 확률이 컸다.
그렇기에 그녀에게 희망을 주는 정도의 말은 할 수 있었다.
그 말을 들은 ‘미카엘’은 실낱같은 희망이라도 본 듯, 눈을 빛내며 나를 바라봤다.
하지만 너무 기대해도 내가  기대에 부응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다.

“뭐, 마왕 하나 잡는다고 바로 돌아갈 생각은 없으니까….”
[네? 안 돌아간다고요?]
“기억만 가지고 돌아가기에는 조금 아쉬워서 그렇지.”


어차피 나도 마왕 하나만 잡고  생각은 없으니, 그 사이에 ‘미카엘’이 바라는 것을 얻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내게 험한 꼴을 보여줬다 해도, 그녀에게 도움을 받은 것이 있으니까.
마왕을 잡으면 처음에는 기억을 특전으로 받고 나서  다른 마왕을 잡아야 한다고 다짐했다.
기껏 이세계에 와서 이만큼 생고생하는데 특전이랑 기억은 모두 챙겨가고 싶은 욕심이 일었다.


[주인님… 저를 위해서 남아주는 건가요?]
“그건 아니야.”

감동하려는 ‘미카엘’에게 단호히 잘라 말한 뒤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래도 ‘미카엘’은 도와준다는 말이 기뻤는지 해맑게 웃었다.
그리고 동시에 땅에는 균열이 일었다.


[이제  봤으니 돌아가야겠죠.]
“그래. 아무한테도 말 안 할게. 네가 사실은 울보라는 거.”
[그래요. 아무한테도… 아니! 저 울보 아니거든요!?]


세상이 파괴되는 것 같은데, 전에 봤던 것과는 달리 불길한 감각 따윈 없었다.
심상이라 그런 걸까. 아니면 ‘미카엘’이 만든 것이라 그런 걸까.
‘미카엘’이 볼을 부풀리며 내게 항의하듯  가슴팍을 치고 있었고, 그 뒤로는 세계가 무너져내리고 있었다.
‘미카엘’을 보니 왜인지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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