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57화 〉episode8. 아크 (3) (57/98)



〈 57화 〉episode8. 아크 (3)

“반쪽의 몸이 명하노니, 구 인류의 왕은 내 부름에 답하라.”

노아가 두 구절을 읊으니, 배는 흔들리고, 바다에서는 거센 파도가 일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파도 속에서는 검은 머리카락과 검은 피부의 사내가 나타났다.
붉은 눈이 형형하게 빛나고, 그 끝에는 노아가 있었다.
나를 응시하는 것은 아닌데,  사내의 모습은  숨을  막히게 하고 있었다.


[…노아.]


이미 사내는 노아를 알고 있었고, 노아도 그 사내를 아는 눈치였다.
그런데 역시 판타지 세계는 판타지 세계인가보다. 누군가의 기억으로 이루어진 건지, 아니면 과거를 엿보게 하는 능력인 건진 몰라도 생생하게 그때의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무슨 낯짝이지? 그 흉흉한 붉은 창을 들고 이곳까지 찾아와서는, 내게 볼 일이라도 남았나?]


노아가  인류를 모두 몰아냈다는 것 치고는, 사내의 반응은 담백했다.
누굴 증오하는 목소리도 아니었으며, 누굴 향해 이를 드러내는 표정도 아니었다.
그저, 배 위에서 벌벌 떨며 자신을 부른 노아를 바라보며 담담하게 말할 뿐이었다.


“내가 한 가지 부탁만 해도 되겠나.”
[될 리가 있나. 자네가 나를 버리지 않았나. 신의 명령을 받았다지? 우리는 신에게 버려진 건가? 자네는 나를 죽이러  건가?]
“신의 부름에는 나 또한 바라마지 않으며, 나를 위해 목자를 불러주신다. 함에 나는 기꺼이 응했네.”
[그렇겠지.]

벌벌 떠는 노아는  위에 위태롭게 서서 사내에게 말했다.
사내는 한번 들어보겠다는 듯  위에 앉아 배를 안정시켰다.
그는 아무런 영창 없이 손을 허공에 휘둘러 파도를 잔잔하게 만들었다.


“그러할 진데, 신께서는 내 딸아이를 버리라 하심에, 나는 차마 그 말씀을 따를 수 없었네.”
[하늘의 말석을 원해 우릴 몰아내 놓고, 여기까지 와서  자리를 차 버린다? 지금  말인가? 그렇다면 왜 우리를 몰아낸 것인가.]
“내가 아니라도, 다른 누군가가 이 역할을 맡았을 거네. 나는 사사로운 정에 휩쓸리는 탓에, 구 인류의 왕들을 대부분 보내주었네. 물론 감사하라는 소린 하지 않아. ‘아크’로 죽인 구 인류의 수는 아득히 많아졌으니, 나는  이상 지을 수 있는 죄도 존재하지 않네.”
[호오. 그렇게 말하면 또 괜찮게 들리는군. 그래서 73개의 왕과 나라의 주민을 놓아준 까닭이 사사로운 정이란 말인가?]

‘아크’는 입을 꾹 닫은 채, 노아와 사내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나 또한,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사내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힘은 강대했으며 보는 이를 숨막히게 할 정도였다.
하지만 노아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표정의 일그러짐 하나 없이 사내를 응시한 채 자신의 마음을 토로하기 시작했다.
천천히  가는 목소리에 사내도 흥미롭다는 듯 노아의 목소리를 듣기 시작했다.


“그래. 나는 지금 그 벌을 받는 것이겠지.”
[그렇다면, 여기까지 와서 나를 부르는 까닭은 무엇인가?]
“신께서 내 딸아이를 버리라 하심에, 나는 그 연유를 묻지 못한  말씀하신 곳으로 왔네. 하지만, 차마  말씀엔 따를  없어 이리 자네를 불렀네. 나는 자네가 내  아이를 구해주기를 바라네.”
[…뭘 원하는 것이냐?]
“깊은 바다 아래에, 내 딸아이가 있을 곳을 만들어주길 바라네. 그리한다면, 나는 필시 벌을 받겠지. 하지만  딸아이는 살 수 있네. 내 딸 아이는 외롭지 않을 수 있네. 나는 한순간 살다가는 미물일 뿐이지만, 내 딸아이는 그렇지 않아 버리면 사무칠 정도로 외로워지게 될 것이야.”
[아버지…!]

노아는 씁쓸한 표정으로, 서글픈 표정으로 사내를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자신이 원하는 바를  흐르는 듯한 목소리로 사내의 마음을 움직여 나갔다.
사내의 붉은 눈은 점점 빛나며, 그의 표정은 흥미롭다는 듯이 변해가고 있었다.
‘아크’는 그런 노아를 말리려 했지만, 노아는 이번 일에 양보할 수 없다는 듯이 ‘아크’를 손으로 막았다.


[그렇군. 그런 거로군. 그럼 내가 원하는 것도 들어줄  있겠나? 자네의 바람 정도는  쉬이 들어줄 수 있지만, 자네도  바람 정도는 들어줄 수 있지 않나? 그래야 수지도 맞지 않겠나? 솔직히 우릴 몰아낸 자네를 곱게  수는 없지만, 죽일 수 있음에도 몰아내기만 한 그대의 배려에 이렇게는 답해줄 수 있네.]
“고맙네. 내가  들어주면 되겠는가?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인가?”
[그대는  인류의 피가 섞인 자. 구 인류와 신인류의 사이를 걷는 자. 아무리 평범하다 할지라도 신의 선택을 받은 자를 무시할 수는 없겠지. 나는 바라네. 그대가 모든 마나를 내게 내놓기를.]
“정말, 그거면 되겠는가.”
[정말, 그거면 된다네. 아무리 자네가 죽음을 각오하고 있다지만, 나는 그것만을 원하네. 자네가 죽길 바라지도 않아. 자네는 한때 나의 친우였으며 전우였으니 곱게 보내주겠네. 대신 자네의 마나는 내 야망을 위해 쓰일 텐데, 괜찮겠나?]
“괜찮네. 나는, 그걸로 만족하네.”

노아의 목소리를 듣던 사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턱을 어루만지며 뭔가를 고민하는가 싶더니 사내는 제안을 내놓았다.
자신만 해주는 것은 수지에 맞지 않는다 생각했는지, 자신도 원하는 바를 내놓으며 거래하자고 제안했다.
나 같아도 그렇게 해줄  같았다. 자신이 종족을 몰아낸 노아를 당장에 찢어버리지 않은 것만 해도 꽤 속이 넓은 사람 같았다.


[그럼 성립이로군.  힘으로는 어인을 만드는 것 정도는 거뜬하지. 자. 가거라. 물고기들아. 가거라. 너희들은 지성을 얻게 될지어다. 너희들은 너희만의 세상을 지을지어다.]

마왕은 물고기에게 먹이를 주듯, 엄지손가락을 중지와 약지에 비비며 물고기들을 모았다.
그리고는 뭔가 빛을 흩날리며 주문을 외웠다.
그러자 그 자리에 있던 수많은 물고기는 하나씩, 하나씩, 머메이드라 불리는 종족이 되어 자신의 자리를 찾아갔다.

[아버지. 이렇게 하는 것이 옳은 일이라 생각되십니까? 정말,  같은 것 하나 때문에 아버지가 어찌 된다 해도 괜찮다는 말씀입니까?]
[가만히 있거라. 아무리 나의 동족을 몰아낸 원수라지만, 자식을 생각하는 아비의 마음은 그 무엇보다 강인하단다. 그러니 귀를 열고 듣거라, 눈을 열고 보거라. 너의 아비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를.]


‘아크’는 오로지 자신만을 위해 만들어지는 ‘머메이드’의 탄생을 보며 기겁했다.
그리고는 노아의 어깨를 잡으며 마지막으로 설득하듯이 흔들어 그를 불렀다. 자신 때문에 그르친 판단을 하지 말라는 그녀의 목소리는 닿지 않았다.
그러자 수면을 바닥 삼아 앉아 있던 사내가 ‘아크’를 막으며 아이를 달래듯 타일렀다.
노아를 붙잡은 그녀의 손을 떼어 내더니, 앞에서 한없이 작아진 어깨를 늘어뜨린 노아를 가리켰다.
우울해 보임에도, 서글퍼 보임에도 그의 눈빛에는 하나의 줄기가 있었다.


[안 됩니다. 아니 됩니다. 저 때문에 그르친 판단을 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하늘에! 하늘에 계신 아버지가 이를 보고 계십니다! 하늘에 계신 천사들이 우리를 주시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어찌 그르친 판단을 내려 앞길을 암흑으로 이끄십니까?!]

‘아크’는 눈물을 머금으며 사내를 뿌리쳤다.
그리고서 울먹이는 목소리로 고함쳤다. 그녀는 이 상황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소리쳤다.
그 목소리를 들음에, 노아는 배 위로 눈물을 떨어뜨렸다.
노아는 겁을 먹은 건지 몸을 덜덜 떨었다. 그리고는 ‘아크’의 손을  잡았다.

“아이야. 나는 너를 만든 것에 단 한치의 후회도 없단다.”

금발의 사내는 푸른 눈을 빛내며 ‘아크’를 바라보았다.

“신의 말씀대로, 신님이 알려주신 방식대로 너를 만들었을 때 나는 기뻤단다.”

푸른 웨이브의 소녀는 붉은 눈을 빛내며 노아를 바라보았다.


“그러니 단언하마.”

그리고 검은 머리카락, 검은 피부의 사내가 붉은 눈으로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나 또한, 그 광경을 눈에 담았다.


“나는 태어나서  번도 그르친 선택을 하지 않았단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아닙니다. 지금 이 판단이 그르친 판단입니다. 저 때문에 아버지의….]


노아는 그 슬픈 표정 속에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아크’는 계속해서 자신의 아버지를 설득하려 했지만, 결국  표정을 보더니 소녀의 목소리는 흐려졌다.


“너로 인해 그르치는 일은 하나도 없단다. 자랑스러운 나의 딸아이야. 너로 인해 나는 꿈을 꾸었고, 너로 인해 나는 행복할 수 있었다. 그러니 이 선택은 그릇되지 않았단다. 자,  딸아이를 안전한 곳으로 보내주시오.”
[안, 안돼.]

노아는 ‘아크’의 손을 꼭 잡고 눈물을 흘리며 마지막으로 자신의 감정을 토로했다.
그리고는 강제로 그녀를 붉은 창으로 만들었다.
사내는 노아가 이럴 줄은 몰랐는지 멍하니 바라보았다.


[이래도 괜찮은 건가?]
“머무르면 머무를수록 떠나기 힘들어지네. 그것은 사람의 마음도 마찬가지지.”

사내는 노아에게서 붉은 창을 받았다.

[물고기야. 너는 머메이드 족의 여왕이  것이니, 너의 이름은 에리얼이요. 너의 가치는 이 붉은 창을 지키는  있을 것이니라. 이 창을 잃을 때, 너는 죽을 것이다.]
“고맙네.”

노아의 간절한 목소리를 들은 사내는 어느 어인을 불러, 창을 건넸다.
 어인의 생김새를 보니, 나는 그녀를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이름을 떠올리기도 전에, 사내의 목소리가 그녀의 이름을 읊었다.
정말, 내가 아는 그녀라는 것을 알려주듯이 붉은 창을 쥔 머메이드는 원을 그리며 헤엄치다가 자신의 세상을 만들기 위해 심해로 빠져들었다.
노아는 그런 사내의 행동에 감사하며 고개를 들었다.

“정말, 바닷바람은 상쾌하구나.”
[그럼 이제 내가 원하는 것을 받아갈 차례군.]
“그렇게 되겠지. 나 또한  일에 보답하지 않으면  되겠지.”
[노아여. 그댄 신을 거슬렀다. 신은 필시 이 일을 알아차리시겠지. 하지만 그대의 심판은 그대가 죽고 나서일 테지. 혹여 나와 같이 나의 터로 돌아가지 않겠는가?]


 명이 타고 있던 배는, 하나가 사라져, 하나만이 남았다.
노아는 잔잔히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눈을 가늘게 떴다.
그걸 보던 사내는 자신의 차례가 됐다는 듯이 노아의 옆에 서서 그를 내려다보았다.
노아는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줄 각오로 눈을 감고 있는데, 사내는 그러지 않았다.
신을 거스른 그를 위해 자신이 자리를 내어주겠다 말했다.

“아니 되네. 이미 신께선, ‘가브리엘’께선 나를 주시하고 계시네. 이대로 자네는 돌아가는 게 좋네.”
[그렇군. 그렇다면 그대의 마나를 대신 가져가겠네.]
“제안해줘서 고맙네. 나의 친우여.”
[거절해줘서 고맙네. 나의 전우여.]

노아는 사내의 제안에 거절하며 어깨를 으쓱였다.
아무래도 노아에게 말씀을 전하던 그 천사의 이름이 ‘가브리엘’인 것 같았다.
‘가브리엘’의 이름을 들은 사내는 눈을 커다랗게 뜨더니 침을 꿀꺽 삼켰다.
아무리 위압감을 뿜어내는 사내도, 천사의 이름이 거론되니 긴장하는 모습이었다.
결국, 사내는 노아를 회유하는 것을 포기하고 원래 거래대로 마나만 가져가겠다 했고, 노아는 그 말에 웃으며 대답했다.

“갔군.”

그리고, 모든 마나를 빼앗긴 그는 사내를 보낸 뒤 홀로 배에 남아 바다를 바라보았다.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던 노아는 하늘을 우러러보며 침울한 표정을 지었다.
신을 등졌음에 하늘에서 그의 말석은 불타 없어졌다. 그럼에도 그는 후련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  시간을 멍하니 있던 노아의 위로, 그에게 말씀을 전하던 천사가 모습을 드러냈다.
하늘이 열리는 듯한 광경에, 빛을 하사하는 듯한 모습에 노아는 눈을 가리며 고개를 들었다.

[어찌 신의 말씀을 거역했지? 어찌하여 그릇된 판단을 하여 신에게서 등을 돌렸지?]
“‘가브리엘’님.”


자세히 보니, ‘가브리엘’은 내가 알던 ‘미카엘’과 다르게 성인 여성의 몸을 하고 있었다.
기다랗게 자란 팔다리와 우아한 곡선을 자랑하는 그녀의 몸은 차마 그녀의 원피스로도 다 가려지지 않았다.
그런 아름다운 모습을 한 ‘가브리엘’은 싸늘한 표정으로 노아를 꾸짖듯이 말했다.
노아는 놀란 듯이 ‘가브리엘’을 바라보더니 슬픈 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저는 그릇된 판단을 한 적이 없습니다.”

노아는 ‘가브리엘’을 향해 환히 미소를 지었다.
그와 동시에, 하늘이 그를 꾸짖는 듯 우르릉거리는 소리와 함께 먹구름이 지기 시작했다.
비바람이 치고, 거센 바람이 커다란 파도를 만들어냈다.
쩌적하고 갈라지는 천둥과 시야를 가르는 번개가 끊임없이 내리쳤다.
신을 진노하게 한 자는, 그럼에도 미소를 잃지 않으며 ‘가브리엘’을 응대했다.
그렇게 신을 진노하게 한 자는, 자신이  작은 배와 함께 파도에 삼켜져 사라졌다.
어디로 갔는지,  수 없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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