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6화 〉episode8. 아크 (2)
‘미카엘’의 충격적인 발언에, 일단 세라의 사역마 위에 타고 나서 이야기하기로 했다.
‘미카엘’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얌전히 입을 열었다.
[신님의 제작 방식을 받은 인간, 노아가 제작한 창이에요. 그래서 근본은 저희와 비슷하죠. 목적이 분명하다는 점을 제외하고요.]
노아. 어디서 들어본 이름이다.
‘미카엘’이 성경에서 나온 이름이었던 것이 우연이 아니라면, 노아는 아마 방주를 만들었던 사람인 걸로 알고 있다.
아. 방주가 ‘아크’구나.
멍하니 ‘미카엘’의 목소리를 들으며 전 세계에 있던 이야기를 떠올렸다.
이해하기 쉽도록 쓴 건지, 아니면 내 원래 세계와 그리 다르지 않은 세계인 건지, 묘할 따름이었다.
그럼 ‘아크’가 바다에서만 힘을 쓸 수 있는 것도 이해가 간다.
그런데 왜 ‘아크’라고 했으면서 배가 아니라 창인 거지.
[심판자의 이름을 빌리고 있는 ‘아크’는 구 인류를 인간계에서 몰아낸 후 역할을 잃어 바다에 버려졌어요. 그걸 이제 머메이드가 갖게 된 것이죠.]
“토사구팽당한 거네.”
“안타깝네요.”
검은 사역마 위에서 ‘미카엘’이 꺼내는 이야기는 매우 충격적인 사실들이었다.
그 위에 타고 있던 전원이 그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엘리샤는 왕족이라 그런가,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는 듯이 쉽게 납득하는 모습이었다.
역시 높은 자리에 있을수록 들어오는 정보의 양과 질이 다른 건가.
“그럼 구 인류는 멸망한 게 아니라면 어디에 있는 건데?”
[…지금 마족이라 불리는 인류가, 구 인류예요.]
“…모, 몰살한다는 게 저, 저 말하는 거였어요?”
‘미카엘’은 몰살했다. 멸망했다. 라는 말이 아닌, 인간계에서 몰아냈다.라는 말을 사용했다.
그렇다면 그 구 인류라 불리는 무리는 어딘가에서 살아간다는 뜻이다.
그 행방이 궁금해 던진 질문에, ‘미카엘’은 눈치를 보더니 이내 시선을 세라에게로 옮겼다.
그리고는 나지막이 던진 말에, 세라가 기겁하고는 겁먹은 표정으로 몸을 움츠렸다.
나 같아도 그럴 만도 하겠다. 자신의 종족을 멸망시키기 위해서 태어난 병기 같은 게 있다는 사실을 알면 나라도 기겁할 텐데 세라는 오죽할까.
[그래. 검은 머리카락. 너 같은 종족이 결국 끝까지 살아남아, 신님은 용사를 소환한다는 방식을 쓴 거야.]
‘미카엘’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점점 퍼즐을 맞춰갔다.
평소 같았으면 의문을 던진다 해도 돌려받지 못할 대답을 이렇게 듣다니 귀중한 기회였다.
‘미카엘’이 아니었다면 듣지 못했을 세상의 의문점 아니었을까.
이곳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은 너무도 당연해서 품지 않았을 의문에, 대답을 듣는 순간 온몸에 전율이 흘렀다.
[결국, 이 싸움은 마족이라는 구 인류가 모두 죽어야 끝나는 싸움이란 거죠. ‘아크’가 하지 못한 일들을 용사라는 시스템으로 끝내는 거예요.]
‘미카엘’은 한없이 차가운 목소리로, 세라를 바라보며 이야기했다.
그녀도, 하나의 마족이니 곱게 보이지 않을 만도 했다.
아니, 전까지는 그런 분위기 보인 적이 없었는데, ‘아크’ 때문인가?
“저, 저는 마, 마계로 돌아가지 않아도 괜찮아요. 성하 님만 있어도 되니까 사, 살려주세요….”
이미 ‘미카엘’이라는 성검의 힘을 본 세라는 드센 목소리 하나 내지 않은 채 겁먹은 목소리로 빌었다.
퍼덕이는 검은 사역마도 그녀의 감정에 감응하듯 흔들리는 것 같았다.
흐트러지는 사역마는 비행기가 난기류라도 만난 듯 격하게 흔들리고, 어딘가에 부딪힌 것 같은 충격까지 받게 했다.
[흥. 어차피 그런 건 내 역할이 아니다. 구 인류의 우두머리들이 존재하는 한, 구 인류는 살아남기를 반복하겠지. 그러니 신님은 용사들을 소환하신 거다.]
“그런데, ‘아크’는 쓸 곳에 다 써버려서 버려졌다 치는데, 넌 왜 버려진 거야?”
[그, 그건, 그건 제가 사정이….]
“‘아크’ 사정은 다 떠벌려놓고, 네 사정은 왜 말 안 해?”
겁에 질려 비는 세라를 보고, ‘미카엘’은 자기랑은 관련 없다는 듯 신님이 내린 최후 통보를 입에 담았다.
마족을 죽이는 이유에 이런 배경이 있을 줄은 몰랐다.
‘미카엘’의 싸늘한 모습에, 세라는 한껏 위축된 모습으로 내 등 뒤에 몸을 숨겼다.
나는 세라를 진정시켰고, ‘미카엘’은 나랑 시선을 마주치는 순간 눈빛이 부드러워졌다.
‘미카엘’과 눈을 마주한 채로 ‘미카엘’에 대한 것을 물었다. 그러자 ‘미카엘’은 시선을 피하며 대답을 회피하려 했다.
왜 남의 이야기는 쉽게 하면서 자신의 이야기는 피하려고 하는지 모르겠다.
“말해봐.”
[죄송해요. 주인님, 이건, 이것만은….]
‘미카엘’이 난처한 표정으로 그런 말을 하니까, 내가 뭔가 나쁜 짓을 하려는 사람 같았다.
나는 입꼬리를 내리던 것을 멈추고 세수하듯 손을 움직여 표정을 고쳤다.
애초에 상하가 있는 관계면 표정 하나도 압박으로 변질된다. 조심해야지.
애써 표정 관리한 뒤에, 깊은숨을 내쉬었다.
어쩌면 좋지. 계속 물어보기엔 뭔가 죄책감이 들고, 묻어가기엔 궁금한 게 많았다.
혹여 그녀가 자신의 신에게로 돌아갈 방법이 있다면, 돌려보내는 것도 하나의 일일 것 같았다.
내 일이 끝난다면 돌려보내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
[죄송해요!]
“어?”
*
이곳은 ‘미카엘’에게서 시험을 받았을 때와 같은 감각을 주는 공간이었다.
아무것도 없는 새하얀 공간 한가운데 서 있는 ‘미카엘’은 내게서 등을 돌린 채 서 있었다.
검은 머리카락은 그녀의 엉덩이까지 내려와 있었고, 새하얀 피부는 아기 피부같이 부드러워 보였다.
새하얀 원피스를 입은 그녀는 맨발로 총총 걸어 내 앞에서 멀어지려 했다.
“‘미카엘’?”
그녀는 내 부름에도 대답 없이 계속 걸어나갈 뿐이었다.
그리고.
“뭐야.”
그녀의 발 뒤로 천천히 균열이 생겨났다.
‘미카엘’의 뒤에 있던 나는 그 균열에 삼켜지듯이 틈새로 떨어졌다.
그렇게, 내 시야는 추락하듯이 어느 세계로 빠졌다.
그리고 그곳은 엄청난 폭풍우가 세계를 집어삼키려 하는 것이 보였다.
내 몸은 형체도 남지 않은 채 관측자가 되어있을 뿐이었다. 그저, 나는 지켜보기만 해야 했다.
‘미카엘’은 모두가 보는 이야기를 하는 것보다, 내게만 보여주려 했던 것 같았다.
나는 조용히 그 광경을 지켜보기로 했다.
“신이시여! 당신의 말대로 창을 만들고, 악이라 불리는 저들을 몰아내었습니다! 제게 신인류를 이끈다는 가혹한 운명을 그대로 따랐습니다! ‘아크’는 어찌해야 합니까! 알려주십시오! 저는 이제 어찌해야만 하는 겁니까!”
금발의 사내가 푸른 안광을 비추며 소리쳤다.
폭풍우 중심에는 그 사내가 성창 ‘아크’를 쥔 채로 서서 하늘을 향해 울부짖고 있었다.
그의 주변에는 검은 머리카락을 가진 마족들의 시체가 즐비했다.
참상이라 불러도 좋을 시체 더미 위에서 그는 갈피를 잡지 못한 채 다음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신께서는 그대를 어여삐 여기고 계시네. 그대의 죄는 모두 면제될 것이니 축복하라. 그대의 삶은 헛되지 않았도다, 그대의 삶은 윤택해질 것이다. 신께서는 그대를 보살필 것이며, 아버지의 세상에 도착할 때, 그대만을 위한 목자가 그대를 맞이하리라.]
그런 사내의 위에는 먹구름이 갈라지고 그 사이로 광채가 내려왔다.
꽃이 피듯이 내려온 그녀는 검은 머리카락에 푸른색 눈동자를 자랑하고 있었다.
‘미카엘’이 아니었다. 이것은 ‘아크’의 과거인 건가. 나는 시야를 넓히듯이 이리저리 고개를 돌려 주변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노아를 향해 신 대신 발언하듯 계시를 입에 담았다.
[그대 만든 성창을 바다에 버리고, 그대의 삶으로 돌아가라. 그리한다면, 그대에게 하늘의 영광이 주어질 것이다. 이상의 욕심은 그대의 영혼을 더럽히며, 오만은 그대를 맞이할 목자의 환멸을 사게 되느니라. 그러니 성창을 들겠다는 욕심을 버리고, 자신이라면 버틸 수 있다는 오만을 버리거라.]
“아, 알겠습니다! 그리하겠나이다!”
노아는 그녀를 보자마자 엎드려 계시를 받고는 연신 감사 인사를 입에 담으며 눈물을 흘렸다.
구원받은 듯한 표정을 지은 그는 어딘가 슬퍼 보였다.
아무래도 구 인류라는 것을 모두 몰아낸 것이 마음에 걸렸던 거겠지.
그렇게, 노아는 자신이 만든 성창을 버리기 위해 황급히 자리를 떴다.
내 시점은 내가 원하지 않았음에도 자연스레 노아를 따라갔다.
‘미카엘’은 이것을 보기 원하는 거였을까.
“‘아크’.”
[네. 아버지.]
“미안하다. 신께서 너를 바다에 버리라 명하셨다.”
[괜찮아요. 저는 바다를 좋아해요.]
노아는 천천히 걸어 선착장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사람이 겨우 둘 탈 수 있는 작은 배를 타고는 노를 젓기 시작했다.
‘미카엘’과 비슷한 모습의 천사가 그에게 명했을 때와는 다르게, 그는 침울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까까진 명 받은 대로 곧장 따를 것처럼 대답하더니, 그런 것만은 아니었나 보다.
그는 내내 슬픈 표정을 지으며 노를 저었다. 하지만 하늘은 그런 그의 심정도 모르는지, 세상을 위해 일한 그를 찬양하기 위해 비바람을 멈추고 그가 바다로 쉽게 가도록 선선한 바람을 일으켰다.
그 탓에 그는 그러기를 원치 않았음에도, 그가 생각했던 시간보다 바다 한가운데에 빠르게 도착했다.
그는 눈물을 머금은 채, 자신의 성창에게 말을 걸었다. 그러자 덩그러니 놓여 있던 붉은 창은 이내 사람으로 변해 대답했다.
파도 같은 웨이브가 들어간 푸른 머리카락, 붉은 눈의 어린아이가 된 ‘아크’는 노아를 바라보았다.
‘아크’가 인간의 모습으로 변하니 더욱 죄책감이 들었는지 노아는 자신의 심장을 끌어안은 채 오열하듯이 신의 명령을 읊었다.
그런 노아를 보던 ‘아크’는 눈웃음을 지으며, 애써 노아를 위로했다.
“내 어찌 너를 버릴 수 있겠느냐.”
[아버지.]
“너는 무기라 할지라도, 내 자식이다. 내 딸이다. 그런데 내 어찌 너를 바다 한가운데 버릴 수 있겠느냐.”
[아버지. 괜찮아요. 구 인류랑은 다르게, 신인류는 마법을 쓸 수 없다고 하잖아요. 제가 있어서는 아버지가 만든 세상이 무너지게 돼요. 그러니, 대의를 위해 저를 희생시키는 편이 옳아요.]
오히려 ‘아크’가 노아를 위로하니, 노아는 결국 터져 나온 목소리로 울며 말했다.
그런데 내가 아는 것과는 다른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닌가.
신인류라 불리는 지금의 인류는 이미 마법을 쓸 줄 아는데, 마법을 쓸 수 없다니 무슨 이야기인 걸까.
‘미카엘’이 보여주는 세계는 대체 무슨 세계인 걸까. 전에 받았던 시험대로 허황된 세계인 걸까.
아니, 그런 세계를 보여주려는 것처럼 보이진 않았다.
나는 잡생각을 멈추고 그들의 이야기에 다시 귀 기울였다.
“나는 신께 명 받은 대로 너를 만들고, 마음을 주었다. 그 덕에 신께선 나를 어여삐 보시고, 살아남은 신인류의 사람들은 나를 최고의 대장장이라 부르며, 나를 영웅으로 추앙했다. 그런데 그 끝이 너를 버리는 것이라니, 이 어찌 저주받은 결말이란 것이냐. 신의 명으로 너를 만들었다 하지만, 너는 내 마음으로 낳은 자식이다. 너는 내 아픈 손가락이다. 바다에 빠지게 되면 너는 앞으로 나오지 못한다. 누구도 너를 도와줄 수 없다.”
노아는 ‘아크’를 앞에 둔 채로 엎드려 울었다.
이 장면만 보아도, 노아라는 사람이 ‘아크’를 얼마나 아꼈는지 알 수 있었다. 얼마나 귀하게 여겼는지 알 수 있었다.
그는 자신이 신이 어여삐 봐주지 않는 것보다, 인간들이 자신을 미워하는 것보다, 자신이 만든 ‘아크’를 버리는 것을 더 슬퍼하는 것처럼 보였다.
[전 정말 괜찮아요. 짧은 시간이었지만, 아버지가 저의 아버지여서 저는 행복했어요.]
“아니다. 나 같은 아버지는 만나지 말았어야 했다. 필요성을 따져 만들고 버리다니, 이 얼마나 추악한 인간의 모습이더냐. 이 얼마나 더러운 인간의 본성이더냐. 나는, 나는 너를 버릴 수 없다.”
[버리셔야 하늘에 계신 신님이 아버지를 반길 거예요. 그래야 아버지가 원래 자리로 돌아갈 수 있어요.]
‘아크’는 입꼬리를 천천히 올렸다.
그리고 눈을 슥 감으며 눈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녀는 슬픔을 가리려는 듯이 노아를 향해 해맑은 미소를 지었다.
그것을 보니 내 마음도 미어지는 것 같았다. 자신의 딸 같은 존재를 버려야 한다니, 나 같아도 망설일 것 같았다.
노아는 자괴감에 빠져 머리를 쥐어뜯으며 오열했다.
신을 거스르려는 노아의 모습에, ‘아크’는 그가 잘못된 길을 가지 않도록 그를 붙잡아 설득하려 했다.
하지만 이미 노아의 표정은 심각하게 굳어져 있었다.
비장한 그의 표정을 보니 나라도 알 수 있었다. 뭔가의 각오를 다졌다는 것을.
“구 인류의 반을 걸치고 있는 나라면 너를 구할 수 있다.”
[안돼요! 안돼요. 아버지! 그래서는 아버지가 구원받을 수 없어요!]
“너를 구원받을 수 없는 곳에 내던질 수는 없다. 빛이 닿지 않고, 사람은 들어갈 수조차 없는 곳에 딸을 버릴 수는 없다. 이러지 않으면 너는 외로울 것이다. 너는 구원받지 못할 것이다. 그러니 이럴 수밖에 없다.”
노아는 이를 까득 깨물고 손을 꽉 쥐어 자신의 가슴 앞에 가져다 댔다.
‘아크’는 노아가 무슨 짓을 하려고 하는 건지 알아차린 듯, 급하게 노아를 말리려 몸을 일으켰다.
작은 배가 흔들렸다.
노아는 이미 각오를 다졌고, ‘아크’는 그의 각오를 꺾을 수 없었다.
그의 마음에는 이미 신이 주는 자신의 자리보다도, 인간이 주는 자신의 명예보다도, ‘아크’가 커다랗게 자리하고 있었다.
“신에게 버림받아도 좋다. 인류가 등을 돌려도 좋다. 나는, 너를 구할 것이다.”
[아버지. 제발 그것만은…! 그래서는 아버지가 오히려 구원받지 못해요! 애초에 저는 인간이 아니니까요! 괜찮아요! 저는 괜찮다고요! 저는 바다가 좋아요…!]
“조용히 해! 내 말을 들어! 그동안 내 말에 순종적이었으면, 끝까지 들으란 말이다!”
[그동안 순종적이었으니, 이번만큼은, 이번만큼은 들을 수 없어요!]
배가 일으키는 파도는, 그들의 마음을 표현하는 것 같았다.
보는 나조차도 심란한데, 당사자인 그들은 오죽할까.
‘미카엘’에게 단순히 전해 들었던 것과는 다르게, 자세한 내막을 알게 되니 더욱 처절한 장면이었다.
“신의 섭리는 내 부름에 응하라!”
그렇게 노아의 영창이 시작되고, 노아의 손에서는 기이한 빛이 마그마의 움직임처럼 천천히 흘러내렸다.
아까 그가 자신을 구 인류의 반쪽이라 했던 것은 이것을 말하는 거였을까. 마족과 똑같이 그도 지팡이 없이 마법을 쓸 수 있었다.
노아는 자신을 뜯어말리려는 ‘아크’를 슬픈 눈으로 바라보면서 다음 영창을 입에 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