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3화 〉episode7. 수중도시 베르틱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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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태를 파악한 이곳의 병사들은 빠르게 우리를 찾고 있었다.
아무래도 졸개들도 성창의 존재를 아는지 나를 놓치 않으려고 애썼다.
“그놈은 성창을 들고 도망갔다!”
“여왕님의 복수를 하라!”
“성의 내부는 잘 알지 못할 거다! 헤매는 사이에 출구를 막아라!”
안 그래도 오고 나서 밥만 먹었더니 성의 구조를 알 턱이 없었다.
분개한 목소리들이 계속해서 가까워지니 조금씩 초조해졌다.
최대한 빠르게 길을 찾는다면 최소한의 접촉으로 빠르게 탈출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입을 꾹 틀어막은 뒤 발걸음 소리를 죽였다.
FPS 게임 할 때도 소리에 이렇게 집중한 적은 없었는데, 진짜 심장이 떨린다.
“젠장.”
빠르게 움직이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성창이 너무 거슬렸다.
솔직히 탐나서 가지고 오긴 했는데, 에리얼이 했던 것처럼 진주목걸이처럼 변하지는 않았다.
역시 변하는 것도 마력이 있어야 하는 건가. 이럴 때면 왜 나는 마력이 없는 건지 한숨만 나온다.
맨날 애들이 말하는 건데, 이 세계에는 마력 없는 사람이 없다고 한다.
이 정도면 그냥 휘말린 지구인인데.
“저쪽으로 간 것 같다!”
어떻게 아는 거지.
“그러네! 핏자국이 이쪽으로…!”
아, 신발에 묻은 핏자국이 아직도 조금씩 남아있었구나.
신발에 있는 틈 사이에는 손가락이 들어가질 않으니 닦아내진 못했다.
애초에 그럴 시간이 없었다.
빠르게 일어나 창과 검을 든 채로 빠르게 뛰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미카엘’ 손가락 안 꺾는 건데, 그냥 얘도 뛰게 시켰어야 했다.
괜히 들기 힘들어지기만 하고 뛸 때 불편했다.
“허억, 허억.”
초인적인 힘은 없다. 데자뷰 같은 기억이 샘솟을 때면 잠시 샘솟기는 해도 그건 일시적일 뿐이고, 심지어 나는 그 기술의 발동 조건조차 모른다.
뭔가 있다는 건 알겠는데 어떻게 하는지 방법이 나와 있질 않으니 답답할 뿐이었다.
아까도 필요한 힘이었지만, 지금도 필요하다.
일시적인 힘으로는 내 몸 하나 건사하기 힘들었다.
지금 당장에도 감으로 성을 달리는 것이 최선이었다.
그저 이곳이 출구기를 바라며 앞만 보고 달렸다.
“어! 나왔, 다!”
그렇게 수많은 목소리를 뒤로하고 아무도 마주치지 않은 채 거대한 문을 발견했다.
이제 성을 나왔으니 정원을 나갈 차롄가.
머메이드들이 물고기의 몸으로 쉽게 이동하기 위해 발목까지 차오른 수면은 내게 계속해서 페널티를 주고 있었다.
뛰면 뛸수록 허벅지에 경련이 오는 것 같았고, 발은 점점 무거워졌다.
너무 억지로 힘을 끌어내 달리는 바람에 종아리는 당장이라도 쥐가 날 것만 같았다.
“그 침입자다!”
“저건 성창이 아닌가!”
“여왕님이 죽었다는 말은 사실인가!?”
“그래. 방금 전파 마법으로 안내받았어.”
“여기 있다고 방금 송신했네.”
제길. 겨우 공들여 정문으로 오면 도망갈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내 착각이었다.
운 좋게 최단 루트로 성을 빠져나온 것은 좋았지만, 통신 마법이 있다면 포위도 금방 됐을 터.
이 수중도시가 하나의 감옥이 된 셈이었다.
성만 빠져나간다고 해서 나갈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눈으로 마주한 채 발걸음을 멈추었다.
촤아악, 하고 물보라를 일으키며 멈춰선 곳 앞에는 수많은 머메이드가 정문을 지켰다.
최대한 적은 수의 사람을 만나길 빌었지만, 역시 정문에는 사람이 몰려 있었다.
나는 이쪽 문밖에 모르니까 어쩔 수 없지.
“싸울 생각인가 본데?”
“여왕님과 그 수하들을 모두 몰살한 장본인이라 하니 혼자라고 방심하지 마시게.”
“단신으로 정예를 모두 죽이는 것은 어려웠을 터인데.”
사람이 많아서 그런가 한 마디가 나오면 바로 수십 마디가 튀어나왔다.
이들은 성 밖에서 온 자들이니 기사들이나, 일반인일 경우도 있을 것 같았다.
나는 빠르게 쿵쿵 뛰는 심장을 진정시키기 위해 떨리는 한숨을 내쉬었다.
왼손에는 성창, 오른손에는 성검, 둘 다 휘두를 수는 없다.
둘 다 두 손으로 사용하는 무기이기 때문에 하나는 포기해야 했다.
하지만 하나라도 내려놓는 순간 회수는 어려울 것 같은데 어떡하지.
[주인님. 곤란해 보이시네요.]
“깼냐. 그럼 됐다.”
오른손에 갑자기 온기가 느껴졌다.
한 손에 잡히던 칼자루가 조금씩 부풀어 오르는가 싶더니 이내 작은 팔뚝으로 변해있었다.
완전히 기절한 줄 알았던 ‘미카엘’이 머쓱한 표정으로 일어나 작은 몸을 일으켰다.
나는 한숨을 내쉬며 그녀의 팔을 내려놓고 ’아크‘를 두 손으로 쥐었다.
[죄송해요. 너무 오랜만의 감각이라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거든요.]
“됐어. 사람도 많으니까 너도 좀 도와. 너 혼자 싸워도 세잖아.”
[믿어주시니까 정말 더할 나위 없네요.]
‘미카엘’은 자신의 행색을 제대로 갖추고 자신의 검은 드레스를 깔끔하게 정리했다.
큐라는 흰 드레스인데 꽤 대비되는 모습이었다.
뭐, 혼자 알아서 잘 하겠지.
‘미카엘’을 들기 전 봉을 무기로 삼던 기억을 되짚어 창을 휘둘렀다.
천천히 감각을 되돌리기 위해 허공에 휘두르는 창은 금방 손에 익어 빠르게 돌릴 수 있었다.
위협적인 소리를 내는 붉은 창은 상대방을 겁먹게 하는 데 효과적이었다.
“가자.”
[네.]
솔직히 요즘 들어, 나 혼자 남아 험한 꼴 보는 일이 잦아진 것 같다.
이게 무슨 고생인가 싶지만, 주변에 너무 강하고 능력 있는 사람이 많다 보니 내가 감당을 못하는 것뿐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 조금만 더 능력이 있었다면 이런 일들은 나 혼자서도 감당할 수 있었을 텐데, 너무 감당하기 힘든 일들만 넘친다.
그래도 ‘미카엘’이 옆에 있으니까 다행이다.
나는 창을 들고 ‘미카엘’과 함께 천천히 걸어나갔다.
무기를 들고 있는 수많은 머메이드를 향해 시선을 옮기는 것과 동시에 땅을 박차고 앞으로 돌진했다.
[주인님 이거 보세요!]
순간적으로 돌진한 ‘미카엘’은 나보다 빠르게 적들에게 도착했다.
그리고 동시에 해맑은 표정을 보며 내게 소리쳤다.
뭔가 싶어 ‘미카엘’ 쪽으로 시선을 돌리니, 그녀는 쾅. 소리와 함께 머메이드의 머리를 터쳤다.
좀 호러틱한 장면에 주변의 머메이드들은 경악하며 몸을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주먹에 폭탄이라도 달렸나, 어떻게 한 대 칠 때마다 머리가 터지는 거지. 에리얼도 저렇게 죽였겠지.
저렇게 작은 손으로 주먹을 내지르면 폭음과 함께 머리의 살점들이 산산조각이 났다.
“대체, 어떻게 저렇게 강한 건지.”
금세 나도 ‘미카엘’의 뒤를 따라잡고서 땅을 세게 밟았다.
콰득. 하고 흩어지는 수면 위로 공포에 물든 그들의 얼굴이 보였다.
“끄아아악!”
“대체 왜 이런 괴물을 데리고 오신 거야 여왕님은?!”
“미친 괴물이야. 괴물이라고!”
발목에 차오른 물은 모두 피로 물들고, 비명이 그들의 죽음을 알리고 있었다.
낙엽처럼 흩어지는 생명을 뒤로한 채 계속해서 ‘미카엘’과 합을 맞추어 머메이드들을 죽여나갔다.
그렇게 ’미카엘‘이 있는 방향으로 창을 휘두른 순간, ‘미카엘’이 가볍게 뛰어올라 내 창을 짓밟았다.
[주인님과 저는 상성 발군이네요.]
“노리고 한 건 아니지만, 뭐 그런 것 같기도 하고.”
내 창을 짓밟은 순간, ‘미카엘’은 나를 향해 윙크하고는 탄력을 받아 그대로 하늘로 뛰어올랐다.
아니, 날아오르는 것처럼 보였다.
너무 가볍게 뛰어올라서 그런지, 날개가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나는 그녀를 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동시에 그녀가 짓밟은 힘을 원동력 삼아 창을 빠르게 휘둘렀다.
고속으로 원을 그리는 창을 제대로 받아치지 못한 머메이드들은 베이고, 창 대에 맞아 뼈가 부러져 금세 재기불능 상태가 되어 쓰러졌다.
“아파. 아파….”
비명은 얼마 안 가 그들의 신음으로 바뀌었다.
그들의 전의는 금세 절망으로 바뀌었고 성의 정문은 묘지가 되었다.
머메이드들이 움직이기 쉽도록 설계한 발목까지 차오르는 물은 그들의 피와 살갗으로 메워갔다.
[주인님!]
“어?”
[받아주세요!]
“아무것도 안 하고 돌아올 거면 왜 날아간 거야….”
‘미카엘’이 날아갔는데, 이미 정문에 있던 적들은 전멸해버렸다.
‘미카엘’은 대체 뭘 하려고 날아간 거였을까.
나는 한숨을 쉬며 ‘미카엘’을 받기 위해 손을 들었다.
검일 때랑은 다르게 그녀의 신체는 가벼우니까 받을 수 있겠지.
[잡아주면 바로 제 이름을 외쳐주세요!]
대체 뭘 하려는 걸까.
고개를 들어 ‘미카엘’을 보는 순간, 성안에서 나를 찾던 머메이드들이 나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아까 통신 마법 때문에 그들이 내 위치를 알았던 것인지 금세 전투태세를 갖추고 뛰어왔다.
어쩔 수 없이 ‘미카엘’이 하려는 일을 순순히 따라줘야 할 것 같았다.
“‘미카엘’!”
순식간에 내 위로 날아온 ‘미카엘’의 손을 마주 잡았다.
그리고 그녀가 말한 대로 그녀의 이름을 입에 담았다.
그러자 ‘미카엘’은 순식간에 자신의 몸을 검으로 바꾸고는 엄청난 빛을 발산했다.
“저 녀석이다!”
“뭐야 정문에 있던 놈들은 모두 죽은 거냐?!”
“여왕님과 용사님을 모두 몰살한 실력자다!”
엎어지면 코 닿을 곳까지 다가온 그들을 향한 것이 아닌, 이 베르틱의 하늘의 정 가운데를 겨눈 검은 찬란하게 빛을 내뿜더니 내 몸을 감쌌다.
‘미카엘’의 마법인지, 전과 같은 감각이 내 몸을 둘렀다.
순간적으로 시야가 트이고, 강대한 힘이 내 몸을 감싸는 기분에 지금 당장 내 주변에 달려오는 적들에게 관심을 줘야 할 필요성조차 느끼지 못한 채 하늘을 바라보았다.
’미카엘‘과 하나가 되는 기분이었다. 전에 들었던 것처럼 그녀를 잡고 이름을 부르면 공명하는 것이 느껴졌다.
[빛이여. 창대하리라.]
내가 말하는 데도, 내가 말하는 것 같지 않은 기묘한 기분이었다.
내 몸이 타의로 움직여지는, 게임의 캐릭터가 된 것 같았다.
‘미카엘’에서 엄청난 빛이 일더니, 베르틱과 바다를 구분하던 공기 방울의 막에 구멍을 냈다.
공기 방울에 구멍이 나는 순간, 귀를 찢는 굉음과 함께 순식간에 바닷물이 베르틱에 차올랐다.
모든 건물을 부수려는 듯 거센 기세로 바닷물이 사방으로 차오르고, 나를 향해 따라오던 머메이드들은 순식간에 바닷물에 휩쓸려 몸을 가누지 못했다.
순식간에 만들어진 거대한 공기 방울은 보글거리는 소리를 내며 수면 위로 향했다.
한가운데 있던 나는 휩쓸리듯이 공기 덩어리에 의해 몸이 수면 위로 쓸려나갔다.
당장에 공기 방울 밖으로 나가면 몸에 엄청난 압력이 들어왔다.
“저놈이 우리의 터를 없앴다!”
“저 새끼 잡아!”
금세 모든 머메이드들이 상황을 파악하고 나를 향해 헤엄쳐왔다.
공기 중에서는 그나마 싸울 수 있었는데, 물속에서는 수압도 그렇고 시야도 보이지 않아 너무 불리했다.
방금까지 있던 빛들은 모두 허상이었다는 듯, 수중도시 베르틱과 함께 저 검은 바다 아래로 멀어졌다.
왜 심해 공포증이란 게 있는지 알 것 같았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바다에 접촉된 내 몸은 당장이라도 찌그러질 것같이 고통스럽고, 손에 쥔 검과 창은 휘두를 수 없을 정도로 저항이 심했다.
움직이는 것조차 제약을 받는 와중에, 내 숨을 틀어막히고 있었다.
“끅.”
한강 같은 데서 죽는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폐를 감싸던 갈비뼈가 으스러지는 것 같은 고통에 몸부림치며 검을 움켜쥐었다.
은은하게 새어 나오는 빛에 의존하며 나를 향해 헤엄치는 머메이드를 몇몇 내려다보았다.
저놈들은 태생이 바다라 그런지 이런 수압에도 멀쩡하게 움직이는 것 같았다.
여기서 의식을 잃어 손에 힘이 빠지기라도 하면 나는 기껏 얻은 성검과 성창을 잃는 꼴이 된다.
하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수중에서는 버틸 수 있다는 희망이 보이질 않았다.
아아, 이대로 몸이 가라앉는다면 나는 마왕이 모두 죽을 때까지 저 바닥에서 죽고 살아나기를 반복하겠지.
그거야말로 지옥이었다.
나보다 먼저 떠오른 공기 방울은 더 이상 남지 않아 내 몸을 지켜주지도, 산소를 공급해주지도 않았다.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어떻게 해야 이 상황을 타파할 수 있을까.
[‘미카엘’님을 들고 있는 당신은, 용사인가요?]
그렇게 눈앞이 흐려지는 순간에 붉은 창이 붉은빛을 내뿜으며 내게 말을 걸어왔다.
놀란 나머지 손에 쥐고 있던 창을 놓칠 뻔했다.
나는 눈을 커다랗게 뜬 채로 왼손에 쥔 창을 빤히 바라보았다.
우웅, 하고 울리는 성창 ’아크‘는 손에 확실한 진동을 느끼게 해주었다.
‘미카엘’에게 존댓말을 쓰는 ’아크‘는 뭔가 후배나 동생이라는 느낌을 받게 해주었다.
[걱정하지 마세요. 바다는 저의 무대니까요.]
성창 ‘아크’는 진동을 울리는 것과 동시에 목소리를 내더니 이내 나를 끌고 거대한 마법을 행사했다.
콰르르르.
거대한 기포를 만드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바다의 움직임이 격변하더니 해류는 금세 내 등을 수면 위로 떠밀어줬다.
‘아크’가 갑자기 말을 걸어올 줄은 몰랐는데, 당장에 도움이 되어주니 정말 고마울 따름이었다.
‘아크’가 바다를 자신의 무대로 삼는 창이었을 줄이야.
[조금 나아지셨나요? 숨도 쉴 수 있을 거고, 수압도 조금 완화됐으리라 생각하는데요.]
“푸하! 고, 고마워.”
‘아크’의 말에 나는 숨을 트는 것과 동시에 주변을 바라보았다.
당장에 여유가 생기니 아까 따라오던 머메이드들이 골치였기에 빠르게 검을 잡았다.
어떻게든 떨어뜨려 주겠다. 라는 생각이 무색하게 ’아크‘가 만든 해류가 머메이드들을 모두 헤집고선 내게서 멀어지게 했다.
정말 친절한 성창이다 싶어 다시 고개를 들자, 성창 ’아크‘와 시선이 마주쳤다.
[역시, 오랜만의 바다는 기분이 좋네요.]
‘미카엘’과 같은 여자아이로 변한 ’아크‘는 창일 때와는 다르게 푸른 머리카락을 하고 있었다.
아니, 눈 색이 붉은색인 걸 보니 무기는 눈동자 색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건가.
바다 같은 머리카락 색을 뽐내던 그녀는 나를 위해 빛을 만들어 주고, 내 손을 잡고 수면을 향해 빠르게 헤엄쳤다.
잠시 돌아본 그녀의 모습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그녀가 나를 이끌고, 해류는 내 등을 밀어주어 나는 빠르게 바다에서 탈출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