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51화 〉episode7. 수중도시 베르틱 (4) (51/98)



〈 51화 〉episode7. 수중도시 베르틱 (4)

“별거 없다고 들었는데….”
“용사님이 일반인이랑 다를  없다고 했는데, 전혀 그렇지 않아.”
“이거, 역시 ‘미카엘’을  수 있는 게 한정적인 사람인 건 아닐까?”


나이프를 쥔 후, 전의를 대거 상실한 머메이드 무리에서 이런저런 목소리가 들려왔다.
단순한 일일 줄 알고 용사와 여왕을 도운 시종들일 뿐이다.
제멋대로 나오는 주마등 같은 데자뷔들이 내게 기묘한 감각과 함께 힘을 준다.
솔직히 발동 조건도 몰라서 나도 좀 곤란하긴 하지만, 급박한 상황일 때는 그나마 하나씩 튀어 나와주니 고마웠다.
나이프를 거꾸로  채, 양손을 교차했다.
나이프를 쥐지 않은 손은 나이프를 쥐고 있는 손을 밀기 위해 가슴팍에 더 가까이 두었다.
완력이 부족하다면 객기 부리지 않고 비어있는 손을 이용한다.


“시종들이여!  자를 죽이는 자에게는 부와 명예를 주겠다!”


이대로는 승산이 없을지도 모른다고 판단한 에리얼은 성창을 든 채로 자신의 시종들에게 고함치듯 외쳤다.
나는 그 직후 상황을 지켜보았다.
용사는 ‘미카엘’을 쥐고 있었지만, 일어날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미카엘은 뭔가 우웅. 하고 울리고 있는  보면 시험은 진행 중인 것 같았다.
부와 명예를 준다는 말에 다시 침을 꿀꺽 삼키고 다가오는  명의 시종, 그리고 하나의 주인.


“읏?!”

빠르게 땅을 짚듯 고개를 숙인 뒤, 발차기를 내질렀다.
내 몸을 꿰뚫으려던 창이 허공을 가름과 동시에 나에 의해 튕기듯 올라갔다.
내가 이런  반응할 줄은 몰랐는지 에리얼은 뒷걸음질 쳤다.

“쳐라! 놈은 혼자다!”
“누구 하나 정도는 부와 명예를 차지할 순 있겠지.”
“죽여!”

내 손에 쥐어진 나이프 한 자루.
거의 써본  없는 예비 무기와도 같은 느낌이었다.
모든 무기를 효율적으로 사용할  안다면  순간에서도 유용하게 썼을 텐데, 나는 그렇지 못했다.
당장에 떠오른 감각은 완력이 급격하게 상승한 감각이었다.
아무리 내가 무기에 젬병이라 할지라도 힘으로 해결할 자신은 있었다.
검선이 이쁘지 않더라도, 검선의 효율이 떨어진다 해도 당장에 칼을 강하게 꽂는다면.

“뭐야! 머리에 칼이 박혔어!”


아까와 같이 발을 굴러 천장에 닿을 듯이 날아올랐다.
솔직히 3미터가 넘는 높이를 제 발로 뛰어오를  있을 줄은 몰랐다.
이게 바로 내 능력인 걸지도 몰라. 라는 불확실한 지레짐작과 함께 나는 나이프를 높이 치켜들었다.
성창 ‘아크’를 쥐고 있는 에리얼을 상대하기엔 뒤에 있는 시종들이 거슬렸기에 시종들을 모두 처리해야만 했다.
어차피 나을 거야. 죽지는 않아.
그렇게 생각하며 나를 겨눈 나이프를 향해 몸을 날렸다.
그리고 동시에  머메이드의 머리에 강하게 나이프를 찍듯이 꽂아 넣었다.
그의 머리에서는 뇌수가 흘러나오고, 정수리는 어딘가에 치인 것처럼 머리가 음푹 패여 있는 것이 눈으로 보였다.
3미터를 날아오를 정도의 완력이니 사람 하나 병신 만드는 건 충분히 가능하구나.


“제길! 제길!”


몸을 일으키는 것과 동시에 누군가가 내 옆구리에 칼을 찔렀다.
그것을 신호탄으로 누군가가  목을 잡고 제압하기 위해 몸에 체중을 실었다.
그리고 아홉의 머메이드가 나를 죽이기 위해 몇 번이고  몸에 나이프를 쑤셔 넣고 뽑아내기를 반복했다.
푹푹푹푹.
하고 얼굴, 몸, 팔다리 어디라고  것 없이 전신을 찔러댔다.
그렇게 마지막으로 심장을 찔린 직후  몸에서 피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오는 것을 본 뒤, 나는 눈을 감았다.






*


“…죽은 게 아니었어? 심장은 확실히 멈췄었는데…!”


시야가 붉다. 아무래도 내가 뿜어댄 피가 내 시야를 가리고 있는 거겠지.
나는 몸을 휘청거리며 일어났다.
다들 나를 죽였다고 생각하고는 자신의 여왕에게 가서 자신의 공적을 이야기하려는 듯이 보였다.
아까 온몸이 찔린 탓에 온몸이 후들거리고, 전신의 근육이 내 말을 제대로 듣질 않았다.
대체 얼마나 찔렀는지 감이 오질 않았다.
내 옷은 상당량의 피를 머금고 무거워졌으며,  갑옷은 피를 머금은 바람에 더 이상 쓸 수 없게 되었다.
차라리 내가 기초 체력이 많았으면 철제 갑옷을 입었을 텐데, 가죽 갑옷을 쓰는 바람에 피를 머금으면 썩어서 쓸 수가 없게 된다.


“죽였다 하지 않았느냐?”
“죽, 죽였었습니다. 정말로!”
“심장이 멎는 것을 저희가 확실히 봤단 말입니다!”
“동공도 풀렸다고요!”

에리얼의 꾸짖는 듯한 목소리에 다른 머메이드는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기 위해 심장에 손을 얹고 소리쳤다.
나는 목을 풀며, 주변에 떨어진 나이프를 주섬주섬 들었다.
내 몸을 쑤셔 박은 이후로 살갗과 피로 이가 상해 버려진 나이프들이 많았기 때문에 내게 무기가 금방 생겨났다.
이거라도 있으면 당장에 1대 10은 거뜬하겠어.


“으윽?!”
“저 녀석이 나이프를 던진다! 여왕님을 보호해!”
“제길 이가 상한 나이프로 어떻게 저런 짓을…!”

나이프를  손을 까딱거리니, 아직도 아까 본 데자뷔가 준 힘은 그대로 남아있는  같았다.
좋아.  힘이면 조금만 날카롭더라도 몸에 처박을 수 있다.
그렇다면 나는 이대로 자세를 잡아서 아무나 맞기를 바라며 던지기만 하면 된다.
괜히 회전해서 나이프 손잡이가 맞게 하면 무기를 주는 꼴이 되니 제대로 맞춰야 한다.
아까 양쪽에서 나를 견제하던 포지션에서, 나와 그들이 마주하는 포지션이 되니, 확실히 뒤를 신경 쓸 필요가 없어서 마음이 편했다.


“좋아.”
“아니! 다음 증원을 불러라! 굳이 여기에서 다 죽을 필요는 없다!”

에리얼은 침착하게 뒤에서 제대로 방어하지 못할 몇 명의 머메이드를 뒤로 보내며 증원을 요청했다.
현명한 판단이지만, 내게는 상황이 불리해질 이야기였다.
곱게 놔주고 싶지는 않았지만, 나이프를 던지는 순간, 이미 나이프를 맞고 죽어가는 녀석이 자신의 몸을 던져 그들에게 날아가는 나이프를 막고 쓰러졌다.
살아있는 시중은 여덟이지만, 증원을 요청하러 간 놈 덕분에 이 자리에서는 일곱이 되었다.

“낙오자라고 불리는 것과는 다르게 용사님들이랑 비교할만한 실력자군. 아니면… 소환자라면 기본적으로 그 정도의 힘은 받고 시작하는 건가?”
“글쎄다. 낙오자라 불리는 놈은 나 하나뿐이어서 말이야.”
“참. 세상은 불공평하단 말이지.”
“그러냐? 그게  도시의 수장이 할 소린 아니지.”

에리얼은 어차피 무기도 없어진 시중들에게 맡길 필요 없을 거라 판단한 건지 그들을 뒤로 물리고서 성창을 들어 자세를 취했다.
나를 가늠하는 눈빛으로  전신을 훑고, 나를 떠보려는 듯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하지만 뭐 비교 대상이 없으니 나도 알 턱이 없어서 그녀의 말엔 대답해줄 수 있는  없었다.
 알아야 대답을 하지. 나도 영문도 모르게 이세계에 끌려와서 3주라는 시간을 허투루 보냈을 뿐이다.

“그 짧은 검으로 성창에 견줄 수 있을 거라 생각하나?”
“해보면 알겠지.”

그녀의 말에,  또한 자세를 잡고 정면을 응시했다.
갑옷을 버려 몸을 조금이라도 가볍게 만들고, 허리춤에는 이가 상한 나이프 세 자루를 끼워 넣었다.
왼손으론 나이프를 거꾸로 쥐고 오른손으론 나이프를 제대로 쥐었다.
비교적 힘이 약한 왼손 부분은 이런 식으로 쥐면 어느 정도 커버가 된다.
그리고 또 한 번 전진하기 위해 손을 교차했다.


“…이럴  내가 선택받지 못해 ‘아크’의 본질을 이끌지 못해 아쉽군.”
“이걸로 상대해주는 걸 고맙게 여겨라.”


에리얼은 투정을 부리듯이 ‘아크’의 제대로 된 힘을 못 끌어내는 것이 아쉽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지금 ‘미카엘’이 옆에 있는 데도 쓰지  하는 상황인데 배가 불렀다.
제대로 된 무기가 있다는  얼마나 안심이 되는 일인데, 너무 성창의 기능에 의존한다.
나는 투박하게 내 살갗과 피로 물들어 이가 상한 나이프를 쥐고 있는데, 그런 소릴 해서 무슨 이득이 있나 싶다.
밑밥 까는 것도 아니고 대체 뭐하자는 건지.


“간다!”

나는 그녀의 말을 빠르게 끊고 손을 허리 뒤로 옮겼다.
내가 겉멋에 빠져 검 두 개를 동시에 쓰는 이도류를 배웠다면 모를까, 하루하루 생존에 필사적인 나는 그런 검술을 배울 기회도 없었다.
그러니 이렇게 검을 들어봤자 풍차 돌리기 같은 팔 허우적거리는 기술이나 쓰겠지.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거리가 월등히 긴 성창에 대한 견제였다.

“윽?!”


오른손을 몸 뒤로 가린  빠르게 손을 휘둘러 나이프를 던졌다.
그리고 동시에 내 허리 뒤에 쟁여둔  자루의 나이프 중 하나를 다시 손에 쥐었다.
내가 던진 나이프를 막기 위해 붉은 창을 휘두르는 에리얼의 모습에 당혹스러운 모습이 역력했다.
다가갈 수 있다. 한 번만  하면 가까이 가서 나이프로 유효타를 먹일  있다.

“시발.”

하지만 뭐든지  맘대로 되는 일은 없다고 알려주는 듯, 에리얼은 내 나이프를 튕겨내자마자 성창을 휘둘렀다.
전에 대장간에서 창을 쥐었을 때, 별별 설명을 들었던 것을 생각하면 까다로운 무기라는 것쯤은 알고 있다.
중세시대 전쟁 영화만 해도 병사들이 검보다는 창을 들고 사거리의 우위를 점함과 동시에 대열을 유지한다.
근접 무기 중에서 사거리는 길어 상대의 접근을 막는 것과 동시에 휘두르면 둔기, 찌르면 날붙이 무기로 때에 맞춰 쓸 수 있었다.
원심력을 이용해 휘두른 창을 겨우 팔로 막았지만, 동시에 내 팔이 부러졌는지 이상한 방향으로 꺾여 있었다.

“후우. 정말 까다로운 상대네.”


왼팔로 막았더니 그 충격으로 왼손에 쥐고 있던 나이프가 떨어졌다.
금방 나을 거긴 하지만 그때까지는 나이프를 손에  힘이 남아있진 않겠지.
어차피 오른손잡이니까 괜찮아. 방어는 계속해서 왼팔로 하면 된다.
떨어트린 나이프를 쥐었으니 이제 오른손에 나이프  개, 허리 뒤에 나이프 두 개.
에리얼은 계속해서 버티는 내가 징 하다고 생각하는지 한숨을 내쉬며 계속해서 공격을 이어나갔다.
솔직히 나이프랑 창이랑 생각하면 사거리 차이가 너무 많이 난다.
다가가는 것조차 이렇게 버거운데, 어떻게 이길 수 있긴 한 걸까.
역시 ‘미카엘’을 수거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하지만 수거하면 바로 1대 2의 상황에 놓일 것 같아서 고민된다.


“그 성창. 아무래도  용사는   없나 보지? 처음부터 들고 있지 않은 걸 보니 실패한 것 같은데.”


 번 합을 맞대어보니 조금씩 추리할 틈이 생기는 것 같았다.
에리얼이 성창을 쥐고 있음에도 능력을  수 없는 것을 보아하니, ‘미카엘’과는 다르게 쥐는 것에는 조건이 붙지 않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이 용사는 구태여 그 창을 들지 않은 채 내 ‘미카엘’을 탐냈다.
그렇다면 이 용사는 아마 능력이 없는 창을 쓰느니 검을 쓰는 쪽을 택한 거겠지.


“어차피 우리 남편님은 검을 좋아하시는 분이니까 그렇지.”
“그거 우연이네, 나도 그런데.”

내 추리가 맞았는지, 에리얼은 눈썹을 까딱이며 몸을 낮춘 채로 창을 찔렀다.
몸을 틀어 나이프로 쳐내자 나이프는 이가 갈리듯이 가가각, 거리는 소리를 내며 불똥이 튀었다.
이 나이프는 완전히  써먹게 됐네.
완전히 갈려 나간 이를 보니, 이건 살갗에 꽂히지도 못할 것 같았다.


“찌르면 접근하기 쉬울 줄 알았어?”
“윽?!”

미친놈들이 진짜 물리법칙을 무시하는 건지, 판타지 세계에서는 저게 상식인 건지, 저런 젓가락 같은 팔다리로 이런 힘이 어떻게 나오는 걸까.
찌른 틈을 타서 앞으로 달리려고 했는데 옆에 있던 창이 그 짧은 거리를 엄청 강한 힘으로 다가와 내 몸을 가격했다.
죽을  같다. 토할 것 같다.
붕붕 하고 날카로운 바람 소리를 내는 창은 이내  몸을 휘갈기며 상처를 만들어냈다.
 그래도 칼질당하는 바람에 옷이 숭숭 뚫려 있는데 아예 옷을 베어 넘기네.


“이젠 그만 투항하는  어때? 내가 부른 병사들이 이미 널 죽일 텐데.”
“쯧.”
“재미는 있었어.  죽어달라니, 나는 그만한 실력이 있는 줄 알았잖아.”
“미안한데, 나는 마력이 없어서 장비빨이 좀 심해.”
“마력이 없는 게 말이 돼? 그런 사람은 이 세계에 존재했다는 문헌 자체가 없어.”

에리얼의 뒤로 많은 병사가 검과 창, 그리고 지팡이를 들고 우르르 몰려왔다.
이렇게 되면 이런 나이프 가지고는 택도 없다.
아무리 버텨봤자 여기서 발이 묶일 뿐이다.
 용사가 무슨 능력이 있는지 몰라 묶어두려 했던 건데, 어쩔  없지.
내 말을 믿지 못하는 에리얼을 뒤로하고 나는 내 손에 쥐어진 나이프를 바닥에 던져놓고 숨을 골랐다.

“‘미카엘’”


키이이이잉. ‘미카엘’이 빛을 내뿜으며 엄청난 소리를 쏟아냈다.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바라보던 에리얼은 시선을 천천히 옮겼을 때는 이미 ‘미카엘’이 날아서 내 손에 쥐어진 후였다.
용사를 재워두겠다고 이 이상 시간을 끌면 나만 손해였다.
혀를 차는 것과 동시에 나는 복도를 메우며 다가오는 병사들을 향해 시선을 고정했다.
그리고 조용히 검의 이름을 부르며 자세를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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