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50화 〉episode7. 수중도시 베르틱 (3) (50/98)



〈 50화 〉episode7. 수중도시 베르틱 (3)

“숙소는 여기로 어떠신가요?”
“숙소…? 숙소라뇨?”
“묵고 가실 숙소를 말하는 건데요?”
“저는 그렇게 시간이 많지 않습니다만. 그렇게 시간 걸리는  할 수가 없어요. 벌써 마왕 퇴치자가 나온 참이거든요.”


밥을 먹은 뒤, 하찮은 이야기를 나누고 에리얼과 그 뒤를 따르는 시종들을 따라 어딘가로 따라갔다.
그리고 도착한 뒤, 그들은 커다란 방 하나를 가리키며 내게 묵고 가라는 듯이 숙소를 안내했다.
멈춰서 멍하니 방을 보던 나는 그들의 제안을 정중하게 거절하며 발을 내뺐다.
첫 번째 퇴치자가 나온 지금, 우후죽순으로 그 뒤를 이을 퇴치자가 늘어날 것이 뻔했다.
그러니 여기서 발이 묶여있을 수는 없었다.
당장에 나는 목숨이 걸린 일이라고.


“…성격이 급한 용사님이시군요.”
“오늘 내로 주시는 게 아니라면, 그냥 돌아가겠습니다.”


애초에 지상에는 지금 동료들도 있다.
내가 필요로 하는 동료들이 나 버리고 가면 그것대로 낭패였기에 빨리 돌아가야만 했다.
하지만 돌아가려면 그들의 마법과  안내가 필요하다.
내가  수중도시에 끌려온 이상, 주도권은 그들에게 있었다.
지금 당장 주는 것이 아니라면 ‘아크’라는 성창도 내겐 필요 없는 하찮은 물건일 뿐이다.
‘미카엘’이 있으니까.

“아쉽군요. 용사님에겐 더 알고 싶은 부분이 많았는데요.”
“전 여기서 더 알고 싶은 것이 없습니다.”
“하하. 명쾌하고 단호한 것은 아주 좋은 성격이에요.”

에리얼은 아쉽다는 듯이 자신의 턱을 어루만지며 쓸쓸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 표정 지어도 남아줄 생각은 없다.
단호하게 말해야 상대가 알아듣는다.

“그럼 어쩔 수 없군요.”

그렇게 에리얼은 그 자리에서 성창을 꺼내 내밀었다.
‘아크’라고 불리는 성창은 밝고 아름다운 붉은 빛을 자랑했다.

“어?”
“용사가 아닌 녀석이, 용사라고 조금 치켜세워줬더니 마냥 기뻐하면서 기고만장해지기는.”

무슨 일이 일어났나 싶어 고개를 떨구었다.
시선을 천천히 내리고 나니, 심장에는 성창의 날이 박혀 있었다.
울컥거리며 피를 토해내는 내 심장이 경련하듯이 떨렸다.
심장의 박동이 불규칙해지며, 빨라졌다 느려지기를 반복했다.
그렇게 눈앞에 날카로운 눈빛을 빛내는 에리얼이 내게 창을 겨눈 채 차가운 목소리로 이야기 하고 있었다.

“이건.”


그녀의 목소리를 보아하니, 시험 같은 것도 아니다.
그저 그녀에게 있어서 적의 제거인 걸까.

“당신, 어떻게 ‘미카엘’을 들고 있는 거야? 뭔가 반칙이라도 쓴 거지? 그걸 알려주면 좋겠는데.”
“…반칙?”
“용사가 아닌 낙오자가 있다는 이야기는 이미 들었어. 그런 낙오자가 어떻게 ‘미카엘’에게 허락을 받은 거냐고. 편법을 쓴 것 말고는 떠오르지 않아.”
“받을 수 있게 도와준 건 엘리샤가 한몫했지.”

창에 찔린 몸이 서서히 뒤로 밀려갔다.
너무 아파서 뒷걸음질 치니, 이내 벽에 막혀서 더 이상 뒤로  수 없는 처지가 되었다.
앞으로 가면 창에 깊숙이 찔리고, 뒤로는 갈  없고, 이게 진퇴양난의 상황이라고 하는 건가.
에리얼은 내가 ‘미카엘’을 어떻게 손에 넣었는지가 가장 궁금한 것 같았다.
아무래도 성창 ‘아크’를 어떻게든 쓰고 싶은 걸까.


“엘리샤? 테베레스의 셋째 공주?”
“그보다, 왜 그런  궁금한 건데.”
“우리 남편님이, 용사님이 그걸 궁금해하시거든.”


멍하니 그녀의 말에 대답하고 있자니, 그녀와 그녀의 시종 뒤에서 누군가가 걸어 나오기 시작했다.
휘황찬란한 겉멋 든 의식용 갑옷을 입고 있는 검은 머리 놈이었다.
이를 갈고 멍하니 그쪽을 바라보니, 에리얼의 목소리와 함께 모습을 드러냈다.
용사 놈 중 하나가 이미 이쪽 여왕님 꼬셔놨구나.


“예의 낙오자. 길드에서  적 있어.”
“그러냐. 난 너 본 기억이 없다.”
“궁금한 게 있는데, 어떻게 ‘미카엘’을 다룰 수 있는 거야. 일반인은 잡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았는데.”
“그런  알아서 뭐하게? 이미 내 건데.”


얼굴이 기억도 안 나는 장발 남의 모습은 좀 보기 그랬다.
딱히 기억하고 싶은 얼굴도 아니거니와, 여기 나라에서 소환된 용사들은 다 껄떡대면서 자기 잘난 체만 해서 정이 가질 않는다.
에휴. 이게 내 인생이지. 그럼 그렇지. ‘아크’라는 성창을 곱게 내어줄 리가 없었다.

“1대 2로 그런 검을 제대로 지킬 수 있을 거라 확신하는 거냐?”

검의 길이는 다른 장검처럼 길지는 않지만, 날은 아름답게 빛나는 특수한 유리 같아 보이는  검은 ‘미카엘’이다.
두께는 대검 같아서 검이 길지 않더라도 무게는 엄청났다.
하지만 검이 짧은 것도, 두꺼운 것도 아무런 단점이 되지 못했다.


“자. 들 수 있으면 들어 보든가.”


 손에 꽉 쥐어진 ‘미카엘’을 그에게 내던졌다.
내가 ‘미카엘’을 들고 싸운다는 선택지도 있지만, 당장에 그가 무슨 능력이 있는지 모르기 때문에 괜한 도박은 하지 않기로 했다.
안전하게 그를 잠재울 수 있다면.

“허. 이걸 들면 바로 시험이 시작되는 무자비한 검이라며?”
“그렇지. 괴로운 과거가 없다면 금방 풀려날 거다.”

난 그에게 팁을 알려주는 것과 동시에 그 용사가 검을 잡기를 기다렸다.
그 검을 잡으면 바로 1대 1의 상황이 된다.
 녀석은 나와 같이 하루를 지새우고 일어나게 될 것이다.
애초에 의식이 있는 검에게 이길 리가 없지. 신의 작품이라고.

“…경석 씨. 괜찮은 건가요?”
“괜찮아 에리얼.”

경석이라고 불린 놈은 천천히 심호흡하고는 내가 내던진 검의 칼자루를 집어 들려 했다.
하지만 그는 들지 못한 채 그 자리에서 쓰러져 누웠다.
시험이 시작된 것이다.
만약 그가 시험을 통과하고 나온다면, ‘미카엘’이 그를 새로운 주인으로 인정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건 ‘미카엘’이 단순한 마검 같은 놈이라면 이라는 전제에 있었다.
그녀는 지금 이 순간에도 내 목소리를 듣고, 내 상황을 알고, 내 처지를 보고 있었다.
그러니 그에게는 이미 빠져나오지 못할 정도로 혹독한 시험이 주어지고 있을 것이다.
그렇게 빌어야겠지.


“후우. 이제 우리 이야기  해볼까.”
“너랑 할 이야기 없어.”
“경석 씨는 내게 지상에서 살아갈  있도록 세계를 만들어 준다고 했어. 수중도시에서 수상 도시로, 수상 도시에서 지상 도시로 계속해서 이전할 수 있도록 만들어 준다 했으니까, 나는 그에게 모든 걸 맡겼다고.”
“그래서? 그래서 ‘미카엘’을 탐낸 거야?”
“그렇지. 그게 꼭 필요했거든, 마왕을 처치하고 내 소원을 이뤄주겠다 약속한 남편님에게 뭐든 해줘야 했거든.”

나는 내 심장에 박힌 ‘아크’를 꽉 잡았다.
우웅. 하고 뭔가가 울리는 것이 느껴졌다.
저놈이랑  오래 만났는지, 홀딱 빠진 것이 피부로도 느껴졌다.
에리얼은 아름답기도 하고, 한 나라의 수장이기도 하니 이런 여자에게 모든 걸 다 해주겠다는 놈이 있을 수도 있겠지.

“그런데… 넌  죽지 않지? 심장을 찌르고, 계속 이야기하는 중인데.”
“내 능력을 아는 용사는 없어.”
“…무슨 소리야.”
“다른 누가 모르는 걸 굳이 너한테 이야기할 필요가 있나?”

내가 심장을 찔린 채 죽지도 않고 계속 살아있다는 것에 늦게 의문을 품은 그녀는 내게 물었다.
 몸을 고정하기 위해서 창을 뽑지 않았다곤 해도 심장을 찌른 이상 얼마 되지 않아 죽어야 한다는 게 그녀의 생각이겠지.
하지만 창을 뽑지 않아 상처가 벌어지지 않았고, 나는  자리에서 의식을 잃지 않고 내 몸을 치유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몸이 고정된 채로 있어 봐야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이제 1대 1이네?”
“여긴 시종도 있는데, 해보려고?”
“어차피 용사란 놈은 일어나지도 못할 텐데 말이야.”
“어?”

‘미카엘’을 내려놓은 지금, 내 양손은 비어있었다.
나는 ‘아크’를 쥐고는 피가  정도로 꽉 잡았다.
아프다. 솔직히 이렇게까지  필욘 없는데, 내가 여기서 이겨서 나가려면 이렇게 해야 했다.

“어떻게?! 몸이 갈라지는….”

성창을 빗겨 쳐 내 몸을 찢고 나가게 했다.
내 몸을 고정하던 창은 허공을 가르고 나는 자유가 되었다.
에리얼은 과격한 방법을 쓰는 나를 향해 놀라는 듯했지만, 여기서 끝낼 거라면 그딴 짓은 하지도 않았다.
심장 부분부터 옆구리가 찢겨나가는 고통에 당장이라도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금방 나으니까, 라고는 해도 아픈  어쩔 수가 없나 보다.

“녀석을 쳐라!”

우르르 몰려오는 머메이드의 시종들은 물고기 같은 하반신을 바닥에 차오른 물에 물장구를 치며 내게 달려들었다.
그들은 자신의 상의 뒤에 숨겨두었던 나이프를 들고 나를 베기 위해 일제히 합을 맞추어 달려들었다.
내가 죽어도 살아난다는  모르는 놈들은 내 약점을 알지 못한다.
아무리 베도, 찔려도  몸은 원래의 형태로 돌아온다.
몸이 고정만 당하지 않으면, 고정만 당하지 않으면 어떻게든 된다.

“윽!”
“네놈의 능력은 설마 재생이냐?”


우르르 나와 스치듯 움직이던 시종들의 칼은 내 몸을 여러 군데를 베었다.
등이나 팔뚝 같은 둔한 곳은 몇 번 베어도 그나마 참을 만도 한데, 예민한 옆구리가 파이고, 손가락도 잘리니 고통스러워서 당장이라도 몸부림치고 싶었다.
여기는 그들이 주도권을 가지고 있는 소굴. 나는 개미지옥에 들어온 개미 같은 신세였다.
그래, 당장이라도 도망치고 싶은 곳이다. 역시 나는 물 많은 곳이 싫다.


“저 녀석, 아무리 베어도 다시 치유하는데 어떻게 할까요?”
“그래도 한계가 있을 것이다. 한계에 다다를 때까지 계속 베어!”


그들은 서로 합을 맞추려는 듯 고함을 치며 몸을 들이밀었다.
하반신이 날생선인 놈들이 꿈틀꿈틀 다가오니 참 가관이었다.
너무 눈을 돌리고 싶잖아.


“그렇다면 나도 비장의 수를  수밖에.”
“죽어!”


에리얼이 성창을 들고 나를 죽일 듯이 달려들었다.
재빠른 속도, 간결한 몸놀림을 보아하니 여왕이라고 단순히 수발만 받은 것은 아니라는 것이 느껴졌다.
성창을 들고 있던 주인이라 그런 건지, 창술에 대한 이해도도  있는 편이었다.


-

1대 다수로 적을 상대할 때는 오겠죠.
그땐 어떻게 하냐고요?
단순하잖아요.
그만한 힘과 기술이 있어야겠죠.
그러니 알아두세요. 이건, 저의 격투술이에요.

-


어디선가 들었던 목소리.
리타에게서 이런 이야기를 들었던가?
아니면, 다른 어딘가에서 주워들은 이야기였나.
일단 전의 세계에서 들을만한 내용은 아니었다.
그래도 당장에 도움은 될 것 같았다.
이렇게 주마등 같은 기억들이 지나칠 때면 내 몸은 깃털처럼 가벼워지기 시작한다.
가벼워진 몸을 이끌고 몸을 움직여 상대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아까까지 관심 없어 세지 않았던 시종들의 수를 빠르게 센다.

“열둘, 그리고 용사와 여왕.”


하나는 리타이어, 내가 상대해야 할 수는 열셋.
재빠르게 튀어 올라 공중을 돌았다.

“갑자기 몸놀림이 달라졌어?”

허공에 ‘아크’를 휘두른 에리얼은 당황한 목소리를 내며 눈을 치켜떴다.
성이랍시고 천장이 높으니 야외처럼 뛸  있어 좋았다.
실내란 점에서 복도의 폭은 그리 넓진 않아 자유로운 행동은 제한되지만, 어떻게든 되겠지.
누군가의 기억이 나한테 흘러들어오는 걸까?
나는 배운 적이 없는데, 당장에 내가 배운 것처럼 몸에 스며드는 기분이었다.


-

주먹을 허리에 채우고, 180도 돌리는 것과 동시에 정면으로 지르세요.
회전하는 것처럼요.
그것이 가장 기초, 정권이란 거에요.


-

쾅.


“대체 뭐냐!”
“하나가 당했습니다!”
“왜 하나를 제압하는 게 안되냔 말이다!”
“그게 너무 빨라서 되질 않습니다!”


허공에서 착지하는 것과 동시에 한 놈의 안면을 부술 듯이 내리쳤다.
당장에 힘과 속도가 비약적으로 상승한 나는 마법이 아니더라도 누구 하나 기절시킬 힘은 충분했다.
코뼈가 부러진 채로 쓰러진 머메이드 하나. 아직 열둘이나 남아있었다.
내가 때리는 것과 동시에 내 팔을 베어내려고 한  같지만, 금방 나으니까 괜찮다.
나는 베어 갈라진 팔을 잡고 힘을 꽉 쥐었다.
그러자 피를 흘리며 갈라진 상처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원래대로 돌아와 있었다.


-

발을 내딛는 것과 동시에 회전하면, 원심력을 이용해서 발차기에 더 힘을 실을 수 있어요.
회전하는 것도 좋지만, 어지럽지 않게 시선을 잘 분배하는 것도 중요해요.
그리고 마지막에 발차기의 타점도 중요하고요.


-


콰직!


“끄아아!  허리가!”


왼발을 짚는 것과 오른발을 박차 몸을 빠르게 회전시켰다.
원래 상태에서는 불가능했던 것도, 지금 상태라면  바퀴든 돌 수 있을 것 같았다.
순식간에 돌아가는 시야에도, 주마등처럼 지나간 기억에, 내 것처럼 몸에 밴듯한 감각에 시선을 분배하고 발을 내둘렀다.
날아갈 것 같은 기분이었다.
맨 앞 선두에 서서 칼을 휘두르던 시종의 허리를 발로 강하게 내리쳤다.
허리뼈라도 부러진 건지, 경쾌한 소리를 내며 몸이 옆으로 90도로 꺾인 머메이드는 울부짖는 소리를 내더니 이내 절명했다.

“뭐, 뭐야. 발차기 한 번에 사람이 죽는 위력이라고?”
“낙, 낙오자라며?!”

남은  명의 시종은 전의가 상실된 건지, 아니면 마음이 꺾인 건지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나고 있었다.
하지만  하나의 여왕은 성창 ‘아크’를 든 채로 내게 적의를 품었다.


“힘을 숨긴 거냐….”
“아니, 이게 내 능력일지도 몰라.”
“몰라. 라니 기만하는 거냐?”
“그야 나는 다른 용사들처럼 스테이터스  띄우는 능력이 없으니, 내가 뭘 가지고 있는지 모르지.”

자신이 무슨 재능을 가지고 능력을 지녔는지 손쉽게 볼 수 있었다면 얼마나 편했을까.
그렇다면 전에 있던 세계에서도  방향성을 깨닫고 공부에 좀 더 의욕을 낼  있었을까.
그렇다면 이번에 있던 세계에서도 내 능력을 어필해서 명예 용사라는 타이틀이라도 받아낼 수 있었을까.
긴장한 채로 내게 창을 겨눈 에리얼에게 차분하게 말했다.

“뭐, 됐어. 난 용사도 아니니까. 여기서  죽어줘. 이 이상은 내게 방해니까.”


용사가 아니니까. 라는 이유로 나를 배척한다면, 나도 용사가 아니기에 그들을 배려할 이유가 없어진다.
나는 죽어버린 머메이드가 쥐고 있던 15센티 되는 나이프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가볍게 돌을 차듯이 에리얼을 응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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