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9화 〉episode7. 수중도시 베르틱 (2)
물속으로 가라앉는 기분.
당장이라도 눈 감고 자고 싶은 기분이 든다.
마법 덕분인지 깊어지는 바다에도 수압은 그리 세지지 않았다.
오히려 기분 좋은 듯한 압박이 몸을 편안하게 만들어갔다.
“아까 위에는 왜 그렇게 몰려온 거예요?”
“그것은 우리들의 여왕님이 말해주실 것이다.”
나는 부드럽게 움직이는 몸을 틀어 주변을 보았다.
아까보다 눈도 조금 편해진 것 같은데 마법 덕분인가.
죄다 마법으로 편해지는 걸 보면 마법 만능주의에 잠들어버릴 것만 같다.
그러면 마법 하나 못 쓰는 나는 무능이라 불리겠지?
바다에는 물고기 떼처럼 많은 머메이드들이 삼지창을 든 채로 물살을 갈랐다.
멋지게 만들어지는 공기 방울을 바라보며 아까 군대를 몰고 왔던 이유를 물었다.
하지만 머메이드는 쉽게 이야기해주지 않은 채 어디론가 계속해서 향했다.
“어서 오세요, 용사님. 이곳은 수중도시, 베르틱입니다.”
그렇게 얼마나 헤엄쳤을까. 어둡기만 한 바닷속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런 것도 아니었다.
역시 이세계라고 해야 하나, 아름다운 에메랄드빛이 조명된 도시에 진주처럼 알알이 박힌 빛들이 시야를 밝혀주었다.
옆에서 가장 고참으로 보이는 머메이드는 손으로 정중하게 자신의 도시를 가리키면서 마을을 안내했다.
나는 멍하니 그 도시를 눈에 담았다.
“안으로 드시지요.”
그의 안내에 나는 말 없이 그를 따랐다.
첫 만남에 내 손에 쥐어진 ‘미카엘’을 뺏으려고 한 건 아니니 나를 해치려는 것은 아닌 것 같았다.
위험하다 하더라도 ‘미카엘’이라는 무기가 일반적인 무기가 아니라 의식이 있는 성검이니 조금 보험 같은 느낌도 있었다.
혹여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난다면, ‘미카엘’이 어떻게든 해줄 거라는 막연한 기대감이지만.
“여기가 베르틱이라는 도시라고요?”
“네. 용사님을 위해 만찬과 여인들을 준비했습니다. 혹여 다른 성별을 원하신다면….”
“아니, 일단 저는 용사가 아닌데요.”
도시 안으로 들어오니 멀리서 봤을 때보다 더 밝은 풍경을 뽐내고 있었다.
역시 안으로 들어와야 하는 건가.
커다란 공기 돔으로 이루어진 도시 안쪽은 인어의 몸을 가진 그들이 쉽게 움직일 수 있도록 바닥에 물이 흘렀다.
나는 걸을 때마다 웅덩이를 밟는 기분이지만, 완전히 수중에서 이야기하는 것보단 나았다.
그런데, 이 사람들이 착각하는 게 있는데 나는 용사가 아니다.
멋대로 기대해서 만찬을 준비하고 여자를 준비했다고 한들, 그건 내 것이 아니었다.
“…그런 이야기는 안쪽으로 들고 하시지요.”
하지만 고참 머메이드는 그런 내 얼굴을 빤히 바라보더니, 미소를 지으며 다시 나를 안내했다.
이놈들, 내가 설마 속인다는 생각을 하면서 놔주질 않는 건가?
그렇게 그들의 안내를 받아 따라가니 거대한 궁이 하나 있었다.
찬란한 오색 빛을 내뿜으며 자신의 부와 지위를 뽐내는 수궁은 아름답게 자신을 빛내고 있었다.
나는 숨을 죽인 채 그곳으로 발을 디뎠다.
“글뤼탱이 여왕님을 뵙기를 청하옵니다.”
처음부터 내 옆에 있던 놈의 이름은 글뤼탱.
혀도 안 꼬이고 어떻게 저렇게 빠르게 발음하는 걸까. 자신의 이름이라 그런가?
멍하니 궁 안에 들어서 커다란 문에 도착하니 진짜 왕이 있을 것 같은 방처럼 보였다.
“들라.”
그 여성의 목소리가 들리자, 문을 양쪽에서 지키던 머메이드는 문을 막던 삼지창을 거두고 문을 열어주었다.
끼이익. 하고 문이 열리자 안쪽에는 아름다운 모습의 여성이 눈에 들어왔다.
뭐 여긴 미스 머메이드 그런 거 해서 대표를 뽑는 건가?
“내 이름은 에리얼. 베르틱의 수장이다. 그대는 용사가 맞는가?”
“저는 유성하고요. 전 용사가 아닙니다.”
“…용사가 아니라고?”
“네. 그보다 당신들의 군대는 어째서 해안에 발을 들인 것입니까?”
자신을 에리얼이라 소개한 여인은 사람 같은 모습을 한 채로 내게 말을 걸어왔다.
생각해보니 이 안은 공기가 있는 돔 안인데 다른 애들도 유창하게 말하고 있었다.
뭐, 지금 당장은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기에 차차 알아가기로 하고 내 소개를 했다.
그녀의 물음에 나는 아니라고 단호하게 대답함과 동시에 내가 궁금한 것을 먼저 물었다.
“용사가 아니라기엔, 그 손에 쥐어진 검은 무엇인가.”
“아, 이거요? 저는 용사는 아닌데 용사들과 같은 세계에서 온 소환자입니다. 그래서 얻을 자격이 된 것 같습니다.”
“소환자는 필시 모두가 용사로 소환되는 것이 아니냐?”
“아니요. 저는 낙오자라고 불립니다.”
나는 손에 쥔 ‘미카엘’을 꾹 잡고서 천천히 그녀의 말에 해명하듯 대답했다.
그런데 괜히 이런 곳에 휘말려 받는 질문 때문에 내 쓰라린 상처를 후비는 것 같았다.
세계가 계속해서 내게 ‘넌 그저 휘말린 소환자지 용사가 아니야. 네 주제를 지켜.’라고 말하려는 것만 같았다.
좀만 잊으려 해도 바로 이런 상황에 닥치니 난 또 스스로 내 주제를 상기시켜야만 했다.
“하지만 그 검은… 성검이 아니더냐? 용사여도 쉬이 허락되지 않을 터인데.”
다른 사람들은 마검이라고 하던데, 이 검을 성검이라 한 사람은 지금까지 하나도 없었다.
‘미카엘’ 자기 자신만이 자신을 성검이라고 소개했을 뿐, 모두가 마검이라고 칭했다.
하지만 그것을 알고 있다는 듯, 에리얼은 내 손에 쥐어진 ‘미카엘’을 가리키며 말했다.
나는 에리얼의 시선을 따라 내 손에 쥐어진 검을 힐끔 보았다.
“그러니, 나는 그대를 환영할 준비가 되었다. 만찬을 즐기면 좋겠군,”
“아니, 잠시만요. 저는 당신의 군대가 왜 해안에 진입했는지가 먼저 듣고 싶은데요.”
에리얼은 손짓을 하며 다른 병사들을 불렀다.
하지만 나는 그런 흐름에 따라갈 생각이 없었다.
애초에 나는 순순히 이야기 다 해줬는데, 내가 원하는 대답은 듣지 못했기에 가만히 떠나줄 이유도 없었다.
내가 검을 쥐고 자세를 잡으며 주변의 병사들이 다가오지 못하게 하자, 에리얼은 흥미롭다는 듯이 입꼬리를 올렸다.
“호오.”
자신의 성처럼 아름다운 오색 빛을 빛내는 그녀의 머리카락이 흩날렸다.
그녀는 두 발로 뚜벅뚜벅 걸어와 내 사정거리에 조금 닿지 않을 위치에 섰다.
그리고선 자신의 목에 찬 진주 목걸이를 만지면서 나를 힐끔 바라보았다.
“그대는 용사가 아니면 무엇인가?”
에리얼은 또 똑같은 질문을 던졌다.
하지만 그 직후의 물음에는, 똑같은 의도로 말한 것이 아님을 알아챌 수 있었다.
“그대가 용사가 아니라면 누가 용사인가. 나는 그 ‘미카엘’을 다루었다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그 검을 쥔 자는 자신의 잊고 싶은 과거를 들춰지고, 보고 싶지 않은 미래를 꿈꾸게 하고, 절망을 안겨주는 현실을 보게 한다.”
뚜둑, 뚝. 하고 그녀의 목걸이의 끈이 끊어졌다.
하지만 진주 알들은 떨어지지 않은 채 허공을 맴돌았다.
천천히 에리얼의 주변을 맴돌기 시작하는 진주 알은 하나하나 빛나기 시작했다.
“그런 광경을 보고 마음이 무너지지 않는 네가 용사가 아니라면 무엇인가? 일반인의 범주는 이미 아득히 지났을 터.”
그렇게 내 말에 이상한 말을 하던 그녀는 입을 한 번 닫고서 다시 입을 열었다.
“군대를 보낸 이유는 간단하다. 그들이 우리들의 바다를 더럽히고 있었다. 그렇기에 우리는 그들을 벌해야만 했다. 하지만, 자네를 본 순간 그들은 모두 철수했지.”
“이 검이 ‘미카엘’이라는 것은 어떻게 안 건가요?”
“그야. 내가 들고 있는 ‘아크’와 공명하고 있기 때문이지.”
그녀는 내게 몇 번이고 호기심을 던지더니, 이내 자신이 지상에 군대를 보낸 이유를 입에 담았다.
아무래도 내 존재에 흥미가 동한 모양이었다.
에리얼이 어떻게 ‘미카엘’의 존재를 알아차리고 있나 싶어 조심스레 물었다.
하지만 그녀는 내가 예상하던 대답과는 다른 대답을 꺼냈다.
어디선가 봤다, 전승되어 오던 이야기가 있었다. 이런 답이 아니었다.
“진주가… 창으로…?”
“이것의 이름은 ‘아크’. ‘미카엘’과 같은 성창이다.”
에리얼은 자신의 진주를 한 점에 모아 깨질 듯이 꽉 쥐었다.
꽈드득, 거리는 소리를 내며 이내 커다란 창이 되었다.
그녀의 손에 들린 붉은 창은 ‘아크’라는 이름을 가진 채로 우웅 떨리고 있었다.
그에 감응하듯 내 손에 쥐어진 ‘미카엘’이 떨려왔다.
진짜 성검이나 성창 같은 동급의 무기는 서로 반응하는 건가?
“‘아크’를 줄 테니, 시련을 받아보겠나?”
“에리얼 님이 쥐고 있는 걸 보면 이미 ‘아크’의 주인이 되신 거 아닙니까?”
“아니, ‘아크’는 아무나 쥘 수 있네. 처음부터 선택을 받아야 쥘 수 있는 ‘미카엘’과 달라.”
“…성창을 주신다면 뭐, 저야 고맙죠.”
“그럼 일단 만찬을 즐기게.”
에리얼은 자신의 손에 쥐어진 붉은 창을 내밀며 입꼬리를 올렸다.
나 같은 낙오자를 용사라고 치켜세워주며 이런 기회를 주는 사람은 드물다.
애초에 평범한 창도 아니고 성창이라면 정말 귀중한 기회였다.
‘아크’가 무슨 능력이 있는진 모르지만 일단 받아두면 무조건 쓸 수 있는 거겠지.
그녀의 제안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그녀는 만찬을 준비했다.
에리얼이 손가락을 튕기자 병사들이 우르르 몰려와 나를 어디론가 안내했다.
아니 눈을 돌리니 병사는 극히 일부고, 나머지는 시종인 것 같았다.
“왜 자꾸 만찬 타령을 하는 건지… 한국 사람 마냥 밥심이라도 있는 건가?”
“그녀들은 그대를 이미 마음에 품고 있는 듯하군.”
주변에 널린 음식들을 보며 앓는 소리를 내며 주변을 바라보자, 많은 여인이 이쪽을 응시하는 것이 보였다.
뭐, 이국적이게 생겨서 그런 걸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릇을 보며 뭘 먹을까 집으려던 찰나, 옆에서 에리엘이 우아한 하얀 드레스를 입은 채 모습을 드러냈다.
“무슨 헛소리를 하십니까. 전 그들을 본 적이 없는데.”
“어찌 꼭 보아야 마음에 드는 것이냐? 당돌한 녀석이로고.”
“그리고 어차피 저는 원래 세계로 돌아갈 생각이기에, 여기서 여자놀음 할 생각도 없습니다.”
“그래? 내가 눈을 빌린 바로는, 그대의 동료들은 모두 여자인 것 같다만.”
“우연입니다. 어차피 헤어질 사람이니 신경 안 쓰고요.”
나는 에리얼의 말을 받아치며 쟁반에 담긴 회를 집었다.
근데 얘네도 반은 물고긴데, 이거 먹어도 되는 건가?
멍하니 그릇에 음식을 집자, 에리얼은 내 말을 논파하려는 듯이 씩 웃으며 여자들을 가리켰다.
시선 끝에 있는 여자들은 얼굴을 붉히며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거 몰래 카메란가 싶을 정도로 갑자기 귀까지 붉히니 내가 뭐 할 말이 없었다.
나는 그들에게서 시선을 돌린 채 단호하게 잘라 말했다.
“호오. 이번 세계에 남으려는 용사들도 있을 텐데, 원래 세계에 미련이 많나 보군?”
“뭐, 미련이랄까. 부모님도 있고, 제가 일부러 죽어서 온 것도 아니니까요. 어차피 여기 남아봤자 낙오자라고 불릴 뿐이고, 남아서 좋을 건 없죠.”
“그럼 베르틱에 남는 것은 어떠한가? 자넬 용사로 추앙하고 환대할 터인데.”
“저는 물 많은 곳이 싫어요.”
“당돌한 녀석이야. 솔직하고 좋구나. 곧 돌아갈 거라 여자놀음은 하지 않는다. 라. 좋은 말이네.”
에리얼은 내게서 호기심이 사라지지 않는지, 계속해서 내 뒤에 따라붙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려 했다.
나는 무심하게 움직이며 그릇에 음식을 담고 근처의 테이블에 앉았다.
그러자 그녀도 내 앞에 마주 앉더니 내게 제안을 했다.
내가 박대받는다고 하니, 자신들이 환대하겠다고 해주니 고마울 따름이었다.
하지만 뭐, 여기서 남는다 해도 머메이드들만 있을 것 같고, 별로 좋은 것 같진 않았다.
“맛있네요.”
“베르틱 최고의 요리사들이 이곳에 모여있으니까 당연하지. 그래서… 그댄 ‘미카엘’을 어찌 손에 넣었는지 물어볼 수 있겠나?”
“뭐, 그냥 어쩌다 보니… 얘가 제 영향인진 몰라도 시련에서 저한테 주도권을 뺏겼더라고요.”
“‘미카엘’이 주도권을 빼앗겨? 하하하하! 자네 솔직한 줄 알았는데 허풍도 늘어놓을 줄 아는 남자였군!”
나는 음식을 입에 넣은 채 시선을 이리저리 움직였다.
에리얼은 아무것도 먹지 않으면서 내 앞에서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밥 먹는데 그렇게 앞에서 빤히 쳐다보면 부담스러운데.
나는 그녀의 대답에 포크를 까딱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사실대로 이야기했는데, 내가 하는 소리가 허풍으로 들렸는지 에리얼은 호쾌하게 웃었다.
뭐, 어찌 생각하든 내 알 바는 아니니 그냥 내버려 두기로 했다.
“…진짜인가?”
내가 아무런 반응 없이 다시 밥을 먹기 시작하자, 그제야 에리얼은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글쎄요.”
나는 그런 그녀의 말에 모호하게 대답했다.
뭐, 사실대로 말해도 허풍이라 생각한 사람한테 뭐가 진짜라 말해도 믿지 않을 것이다.
믿든 말든 자유다. 어차피 ‘미카엘’은 내 손에 들어온 것은 누가 뭐라 하던 사실이니까.
나는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는 에리얼을 앞에 둔 채 계속해서 음식을 입에 넣었다.
경치 좋고, 밥맛도 좋고, 여기 와서 회를 먹을 수 있을 줄은 몰랐는데 운이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