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47화 〉episode6. 45번째 마계 (4) (47/98)



〈 47화 〉episode6. 45번째 마계 (4)

용사들이 마음에 드는 것은 아니지만, 뭐 나름 대로의 생각이 있던 거겠지.
저 잘난 맛에 사는지라 나 같은 놈을 껄끄럽게 여기는 게 싫을 뿐이다.
의미 없이, 노력 없이 받은 힘에 취해 자신보다 못한 놈을 하대하는 놈들이 싫을 뿐이다.
그래도, 한규상이라는 놈은 그나마 나은 편이었다.
영웅 놀이에 취해 있는  같았지만 처음 만났을 때부터 인류애가 뚜렷이 보이던 놈이었으니까.


[미안하지만, 나는 사냥감을 잡을  최선을 다한다네. 자네가 혼자 남는다 해도 나는 최선을 다해 자네를 죽일 것이네.]


비네는 하늘을 향해 화살을 치켜들었다.
아까보다 확연히 줄어든 별똥별들을 향해 활을 겨누고 활시위를 튕겼다.
퉁. 하고 강렬한 소리가 나는 순간, 비네의 앞에 있던 그의 모습이 사라졌다.
카앙. 하고 부딪힌 순간, 모든 것이 일변했다.


[주인님.]


손이 멈춘 것 같았다.
아니, 느려진 건가.


[주인님.]


‘미카엘’인가. 하고 고개를 슥 돌렸다.
그녀를 향해 고개를 돌리자, ‘미카엘’은  손을 꼭 잡고 있었다.
아니 내가 ‘미카엘’을 잡고 있던 것인가.

[정말 주인님은 저 마왕을 뺏을 생각이 없는 건가요? 뺏어도 누가 뭐라 하지 않을 텐데요?]


왜인진 모르겠지만, ‘미카엘’이 나를 재촉하는 것 같았다.
나보고 저놈이  깎아 먹은  뺏어달라는 것 같았다.
‘미카엘’이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생각해보니 나랑 같이 행동하는 이유도, 뭔가 원하는 바가 있었기 때문일까.
리타는 새로운 세상을, 새로운 감각을 더 알고 싶다며 내게 빌며 붙었다.
세라는 내가 끌고 다니는 게 이유긴 하지만, 그래도 마나를 주고 있었다.
큐라는 그동안 친구가 없었기에, 나 같은 친구를 필요로 했다.
엘리샤는 모르겠다. 죄책감에  도우려는 것이 아니면 그냥 내가 좋아서 그런 걸까.  모르겠다.
뭐 각자 자의든 타의든 모종의 이유가 있어 움직이는 걸 텐데, 그것은 의식을 가지고 있는 ‘미카엘’도 예외는 아니다.

“응. 없어.”

모든  천천히 흐르는 것처럼 보이는 시야에서 한규상이 비네가 쏴댄 빛의 창을 모두 튕겨내고 전진하는 모습이 눈에 보였다.
다른 애들은 입을 벌리는 것조차 저렇게 느린데, 한규상은 그에 비해 엄청 빠른 속도로 움직이고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을 눈에 담으며 ‘미카엘’의 질문에 대답했다.


[그런가요….]
“원하는 거라도 있어?”
[글쎄요. 신님이 지상에 버린 성검이라, 그런 건 진작에 잊은 지 오래예요.]

‘미카엘’이 그렇게 말하고 눈을 감는 순간 세상이 돌아오는 감각이 느껴졌다.
순간적으로 모든 게 느려 보였던 세계가 다시 원래의 시간으로 돌아왔다.
깜짝 놀라 시선을 돌리자 어느새 ‘미카엘’은 검으로 돌아와 있었다.
아무래도 아까 그것은 ‘미카엘’의 짓인 것 같았다.
몰래 나누고 싶었던 이야기였는지 굳이 그런 짓까지 벌였다.


[활잡이라고 내가 근접전에서 밀릴 줄 알았나 보군!]
“큭!”


하늘에 쏟아지던 빛의 창 하나가 비네의 옆에 박혔다.
비네는 자신에게 다가오는 한규상을 응시하더니 창을 뽑아 휘둘렀다.
활시위가 워낙에 단단해 보여서 그런가, 비네의 근육이 돋보였다.
카앙. 하고 창과 검이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시동.”
[뇌격.]

서로의 무기를 맞댄 직후 둘은 거리를 벌리며 서로를 조용히 응시했다.
그리고 동시에 입을 열었다.

“리버스.”
[흑뢰전마.]

한규상의 검에서 붉은빛이 흘러나오는 동시에 형체가 사라졌다.
 고속으로 이동했나 하며 시야를 돌리려 했으나, 비네의 마법에 눈을  수가 없었다.
천둥소리를 머금던 검은 말이 형체를 부풀리더니 안에 우르릉거리는 뇌성과 함께 번개를 머금었다.
검은 틈새 사이로 엄청난 양의 전기들이 파직거리는 것이 보였다.
마찰음이 나는 것과 동시에 말은 거대한 창의 형태를 이루고 비네의 손에 쥐어졌다.

[큭!]
“제길!”

사라졌던 한규상의 몸이 비네의 뒤를 찌르듯이 나타나 조용히 검을 휘둘렀다.
비네의 목에 검이 조금 박힌 듯했지만, 비네는 반사신경으로 몸을 트는 것과 동시에 창으로 검을 쳐냈다.
목에서 피가 흘러내리는 비네는 그의 기술을 하나씩 반응해나가고 있었고, 한규상은 그것을 상회 하려는 듯이 발을 다시 내디뎠다.


“성하. 우린 이제 아무것도  해도 되는 겁니까?”
“어. 이젠 우리가  건 없어.”
“왜 마왕을 같이 치지 않는 거죠? 혹여 마지막 공격만 성공해도 성공으로 쳐주는 게 아니었나요?”


큐라가 처리하지 못한 잔당을 마저 처리하던 리타가 흘러내리는 땀을 닦으며 다가왔다.
양쪽에 세라와 큐라에게 밥을 주면서 관전만 하는 내가 못마땅한 걸까.
‘미카엘’도 그렇고, 아니, 혹시 여기에 있는 모두가 내게 그런 의문을 품는 걸지도 모른다.
그냥 말만 하지 않았을 뿐, 모두가 내게 왜 아무것도 하지 않느냐고 묻고 싶어할 것 같았다.


“그냥. 마왕을 토벌하고 난 뒤에 메리트만 있는 건지, 페널티도 있는 건지 알고 싶어서.”
“페널티요?”

나는 건조한 목소리로 둘의 싸움을 지켜보면서 덤덤이 말했다.
그러자 엘리샤는 깜짝 놀란 듯이 나를 바라보면서 되물었다.
아무래도  발언이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거겠지.

“그냥 그런 기분이 들었어.”


그냥 감이야. 라고 말하기엔 조금 쪽팔린 감이 있었다.
엘리샤가 이상한 표정으로 날 바라보고 있네. 이럴 줄 알았어.
솔직히 생존권 운운해놓고 갑자기 이런 태도를 보이는 내가 나도 잘 이해가진 않지만 몸이 쉽사리 움직여지지 않았다.
마치 이번 싸움에는 끼지 말고 지켜보라는 것처럼.

“허억.”

그렇게  번의 합이 이뤄진 후, 그들의 싸움에는 결착이 났다.

[제길. 믿는 구석이 있어서 그렇게 빨리 달려온 것이었나?]
“죽어.”

비네는 몸은 만신창이가 되어 너덜너덜해졌다.
멀리서 봐도 그의 몸이 피를 뿜으며 비명을 지르고 있다는 것쯤은 알 수 있었다.
솔직히 45번째 마왕인 것 치고는 강한 모습을 보였다.
그 번호가 순위를 말하는 거라면 아마 1번째 마계의 마왕은 우리가 이길  없는 존재겠지.
한숨이 절로 내쉬어졌다.

“드디어, 드디어 이겼어.”

한규상이라는 놈은 소환된 지 이제 한 달 된 것 같은데 드디어.라는 말을 쓰고 있었다.
뭐, 무료하게 나날을 보내던  세계보다는  달이라는 시간이 훨씬 길게 느껴지겠지.
나도 3주간 리타와 보내던 시간보다, 이번 1주간이 더 길게 느껴졌다.
내 죽음을 기점으로 모든 시간이 알차게 쓰이는 것 같았다.
3주간 나와 리타 이외엔 아무도 없던 무능한 파티에서, 1주일 만에 많은 동료가 생겼다.

“이제, 나는 살 수 있어… 그런데, 그런데 나는….”

저것이 마왕을 잡은 용사의 모습이구나.
하지만 한규상은 눈에 슬픔을 담은 채 감격에 젖더니, 이내 애도로 바뀌었다.
허공에 대고 주먹을  쥐던 그의 모습은 점점 바닥으로 무너지더니 그는 이내 지면에 엎드려 오열했다.
한 달이라는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던 시간에 생사를 같이하고 동고동락하던 그의 동료는 이미 싸늘한 시체가 되어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동료애라는 것이 싹틀 시기인데, 그 동료들을 잃었으니 기뻐할 새도 없이 좌절해야만 했던 거겠지.
그렇게 바닥에 엎드려 오열하던 한규상의 머리 위에 하늘이 무너지듯 파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설마 마왕이 죽으면 마계가 무너지는 건가 싶어 자세를 취했다.

“세라, 탈출할 준비를 해야 할 것 같은데.”
“아니, 아니에요.”


내가 경계태세를 갖추는 것과 동시에 시선을 돌렸다.
하지만 엘리샤가 그게 아니라고 단언하면서 상황을 지켜보았다.


“저것이 용사의 특전이라는 건가요?”
[호오. 저것은 신이라는 작자가 내리는 선물인 게냐?]


리타는 호기심에 젖은 눈으로 하늘을 바라보았다.
큐라는 내 팔에서 입을 떼더니 신기하다는 듯이 눈을 떼지 못했다.

“아름다워요….”


세라의 말 그대로, 한규상의 모습 위에는 찬란한 빛이 쏟아져 내렸다.
어둡고 짙은 파란색의 하늘을 찢고 빛이 쏟아져 내리자 하늘은 우리가 알던 그 밝은 하늘색이 되었다.
그리고 그 아래에는 빛의 구슬이 하나 떨어져 내렸다.
설마 보상을 받는 장면까지 우리가 볼 수 있는 건가?


축하합니다. 당신은 45계의 왕을 물리쳤습니다. 당신에게는 이후 생존권을 보장하며 돌아갈지, 남을지를 선택할 기회와 함께 원하는 소원을 들어드립니다.
“뭐든지?!”


하늘에서 공명하는 목소리.
 말은 매우 달콤했고, 누구나 혹할 것 같은 소원을 제시했다.
그러자 한규상은 우물을 찾는 목마른 자의 표정을 하고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생존권도 주고, 돌아갈 기회도 주는데, 뭐든지 소원 하나를 들어준다니 이 얼마나 꿈에 젖은 소원인가.
아무런 페널티가 없는 것 같은데, 이럴  알았으면 내가 막타라도   그랬다.


“그럼, 내 동료들을 모두 살려줘.”
- 조건에 부합하지 않는 소원입니다. 당신은 한 명의 사람만을 구할 수 있습니다.
“되, 되살리는 게 일단 되는 거지…?”

내가 봐도 저건 너무 욕심이 지나쳤다.
72명의 마왕 중에 이제  하나의 마왕을 잡았을 뿐인데 그런 형평성에 어긋난 소원을 들어줄 리가.
하늘에서 공명하는 목소리는 당연히 그의 소원을 거절했다.
하지만 그래도 하나라도 살릴 수 있다는 말에 희망을 품은 그는 저울질하듯이 주변에 널브러진 동료들의 시체를 하나씩 돌아보았다.
그러고는 결심했는지 침을 꿀꺽 삼켰다.


“카, 카밀라를 살려줘.”
빛의 구슬을 그녀에게 주면 소원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고마워. 고마워….”


한규상은 겨우 입을 열었다.
하늘은 그의 소원을 받아주고는 빛을 거두었다.
이제 그의 앞에 남은 것은 빛의 구슬 하나였다.
사람을 살리고 싶다는 소원을 빌었기에,  구슬은 사람을 살릴 수 있는 구슬이 되었다.
한규상은 그 구슬을 소중히 안아 들고는 자신이 소중히 하던 마족, 카밀라에게 다가갔다.
그리고는 그 구슬을 그녀의 가슴에 얹었다.


“사람을 되살리는 소원까지 빌 수 있다니, 역시 선택된 용사에겐 저런 특전도 주는군요.”

리타는 말도 안 되는 광경을 보고서 입을 다물지 못한  얼빠진 표정으로 하늘을 바라보았다.
다시 어두운 파란색을 자랑하는 하늘은 얼마 남지 않은 별똥별을 품은 채 입을 닫고 있었다.


“저 사람은 마족을 선택했네요.”
[제일 많이 안았나 보지. 마나를 주거나 했을 테니까.]


세라는 자신의 가슴에 손을 얹은 채 한규상이 카밀라를 살리는 장면을 바라보았다.
큐라는 당연한 걸 뭐하러 말하냐는 듯이 시큰둥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그러고는 나를 힐끔 바라봤다.

“로맨틱하네요.”

마지막으로 엘리샤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그 뒤로 한규상이 있던 자리에서 빛이 뿜어져 나왔다.


“이게 무슨, 일이죠… 저는 분명 빛의 창을 맞고 죽었을 텐데.”
“카, 카밀라. 살아서 다행이야!”
“규상….”


카밀라가 되살아나고, 둘은 감동의 재회를 맞이했다.
울먹이는 한규상을 보자니, 저런 놈이 저런 면도 있었구나 싶었다.
역시 자신의 파티에는 한없이 따뜻한 놈이라 이거지.

“마왕을 처치하는 데 성공했나요?”
“응. 성공했어. 네 덕이야.”
“단둘이서 될 줄 몰랐는데, 다행이네요.”

하지만, 그 감동의 재회도 잠시 나는 그들의 대화에 괴리감을 느끼고 있었다.
저 파티는 6명인데,  단둘이라고 말하고 있는 거지.

“뭔가 이상한데요?”


리타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나도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직 확신은 하지 못했다.

“야. 너 왜 그래. 너희들 파티는 6명이잖아.”

나는 천천히 다가가 그들에게 말했다.


“저기도, 저기도 너희 동료 시체잖아. 기억 안 나?”


하지만, 내 말도 들은 체도 하지 않던 한규상은 나를 이상하다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검을 치켜들었다.

“너도 마족이냐? 넌 누구야?”


그는 이미 그동안의 기억을 잃은 채, 자신이 구한 카밀라만을 기억하고 있었다.
설마 그 여정의 기억을 잊게 하는 것이 페널티인 건가.
끔찍한 광경이다.
그동안의 기억을 모두 앗아가는 것이 페널티일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아니, 아니야. 나는 너와 같은 세계에서 온…”
“뭔 소리야? 난 이곳에서 태어났는데.”


한규상은 믿을 수 없는 소리를 하며 카밀라를 데리고 어디론가 가버렸다.
이곳에 남는다고 한다면, 저렇게 기억을 날조시켜버리는 건가.
그렇다면 엘리샤도 같은 방식으로 날조 당한 걸지도 모른다.
그녀가 혹여 전생자가 아니라 소환자로서 날조 당한 거라면…

“엘리샤!”


나는 멀리 떠나가는 둘의 모습을 멍하니 보다가 이를 까득 깨물었다.
그리고 바득바득 이를 갈았다.
천천히 떨려오는 몸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나는 고개를 돌려 성큼성큼 걸으며 그녀의 이름을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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