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6화 〉episode6. 45번째 마계 (3)
‘미카엘’을 들고 빛의 창들을 향해 겨눈 것과 동시에 몇 개의 창들이 내 배를 관통했다.
그래도 내 몸을 한 번 관통하느라 기세가 약해진 창들은 엘리샤가 펼친 배리어를 뚫지 못한 채 막혔다.
그리고.
[뭐냐… 이건…!]
“성하…?”
‘미카엘’에서 엄청난 빛이 일더니 커다란 빛의 기둥을 만들었다.
콰아앙. 하는 굉음과 동시에 전방을 향해 기둥을 만들어낸 ‘미카엘’은 그 뒤로 날아오는 빛의 창들을 모두 휩쓸어버렸다.
아무래도 첫 공명이다 보니, 내 몸에 있던 마나를 있는 대로 다 가져다 쓴 것 같았다.
힘 조절 좀 하라니까 그런 것도 없이 있는 대로 다 짜내 쓰네.
“한숨 돌렸다.”
이쪽으로 날아오는 빛의 창들을 다 없앴는데, 저쪽은 어떻게 잘 마무리 했을라나.
고개를 힐끔 돌아보자, 한규상네도 어떻게 잘 마무리한 것 같았다.
하지만 빛의 창을 막은 이후에 몰려오는 검은 그림자 군단이 쉴 새 없이 몰려왔다.
[이건 내가 하겠다.]
내 몸에 있는 마나를 있는 대로 먹어치운 ‘미카엘’ 탓에 나는 그대로 누워버렸다.
엘리샤는 배리어의 강도를 풀어 내가 들어올 수 있게 해주고는 바닥에 눕게 해주었다.
배리어가 둥글게 쳐져 있다 보니 허리가 좀 아팠는데, 바닥에 누우니까 훨 나았다.
호저를 있는 힘껏 안은 것처럼 배에 열 개는 족히 넘어 보이는 빛의 창이 꽂혀 있었다.
하지만 그냥 지금은 쉬고 싶었다.
그렇게 흐린 시야를 두고 천천히 눈을 감자, 큐라가 멋진 대사를 치며 배리어를 나섰다.
“그러면 저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죠.”
그렇게 리타도 큐라의 뒤를 따라 걸었다.
“성하 씨. 괜찮아요?”
“성하 님. 방금 건 뭐였어요…?”
“나도 잘 몰라. 그냥 반사적으로 썼어.”
배리어 안에 남은 엘리샤와 세라가 내게 조심스레 다가왔다.
아무래도 엘리샤는 나 때문에 배리어 안에 남아있는 것 같았다.
나 버리고 가도 큰일 나는 건 없는데.
[세상의 이치는 내 부름에 답하라.]
큐라는 입에 불을 머금으며 주문을 읊었다.
일종의 자기암시를 시작한 큐라는 붉은 눈을 붉힌 채 로브를 흩날렸다.
틈틈이 로브와 원피스로도 가려지지 않는 그녀의 붉은 꼬리가 보이는 게 왠지 귀여워 보였다.
[모든 것을 불사르고, 재로 만들어라.]
하지만 그녀의 마법은 귀엽지 않다.
살벌하고 끔찍한 참상을 만들어 내는 데 특화된 광역기 뿐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눈동자 색과 같은 붉은 빛을 입에 머금었다.
쿠륵.
[인페르노.]
큐라의 목소리와 함께 그녀의 손에 쥐어진 빛에서 커다란 마법진이 빛을 발했다.
촤르륵 펼쳐지는 광경에 눈을 뗄 수 없었다.
내가 당할 때는 시야가 자꾸 깜빡여서 볼 틈이 없었는데, 이렇게 뒤에서 보게 되니 참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모든 것을 불사르고, 재로 만들어라.
그 주문에 맞게 그녀의 전방에 있는 모든 그림자는 불길에 버티지 못한 채 공중으로 흩어져버렸다.
뜨거운 열기가 여기까지 전해져왔다.
“역시, 드래곤은 드래곤이네요.”
엘리샤는 감탄하듯이 큐라의 마법을 보고 순수하게 자신의 감상을 입에 담았다.
나도 엘리샤와 같은 감상이었다.
“저도 갈게요…!”
“넌 어디가?”
“저도 도와주면 어느 정도 공이 있지 않을까요?”
“그럼 위에 위험해 보이는 놈 구할 수 있게 사역마 하나 보내줘. 굳이 네가 탈 필요는 없고.”
“알았어요!”
뒤에서 큐라의 활약을 칭찬하자 세라는 불이 붙었는지 갑자기 벌떡 일어났다.
그러고는 뭔가 선언하듯이 주먹을 꽉 쥐고 큐라가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자신의 친구만 대단한 일을 하는 게 샘이 나는 걸까.
겨우 지켜줬는데 나가서 죽어버리게 둘 수는 없었기에 안전한 일을 맡겨두기로 했다.
어차피 포지션도 탐색꾼으로 정해놨는데 굳이 전열이 있는 곳으로 가서 다칠 필요는 없지.
세라에게 부탁하듯이 이르자 세라는 부탁받은 것이 기쁜지 해맑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리타도 대단하네요. 요샌 싸우는 모습을 보기 힘들어서 잘 몰랐는데, 이렇게 보니까 메이스 휘두르는 솜씨도 대단하고요.”
“그러네.”
창을 겨우 하나씩 빼내며 상체를 일으키자, 엘리샤는 리타가 있는 방향을 멍하니 바라보며 입에 칭찬을 담았다.
뭐, 자신의 소꿉친구인 리타가 싸우는 모습을 오랜만에 본다니 그런 감상을 품을 수도 있겠지 싶으며 리타를 바라보았다.
리타는 틈틈이 여러 마법을 쓰면서 메이스를 휘둘러댔다.
효율적으로 그림자 잔당을 물리치며 전진해 나가는 모습이 확실히 능력 있는 전사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그녀는 기본적으로 너클을 선호하는데, 역시 호전적인 성격임에 틀림없었다.
“안돼! 안돼! 카밀라! 눈을 떠!”
아무래도 저쪽은 자신의 동료를 지키지 못한 것 같았다.
비통한 그의 목소리가 여기까지 들려왔다.
“이 자식… 찢어발겨 주겠어.”
[큭. 크하하하! 단순히 동료가 하나 죽었을 뿐인데 그렇게까지 예민하게 반응하다니… 하긴, 소환된 지 얼마 안 된 용사가 이곳까지 짧은 시간에 온 걸 보면 동료 같은 걸 잃을 새도 없이 떵떵거리며 달려왔겠지.]
큐라가 불태워서 흩어진 길 너머로 그들의 모습이 선명하게 보였다.
아무래도 벌써 둘만의 세계를 만들었는지, 서로 분노하고 웃으며 떠들어대고 있었다.
각성 이벤트를 맞이한 용사니, 이제 금방 승패가 갈리겠네.
나는 좀 쉴 수 있겠지.
[그리고선, 내 주민들을 모조리 학살해? 내 이름을 걸고 널 저주해주마.]
비네는 쩔그럭거리는 사슬갑옷을 두드리며 한규상에게 담담히 말했다.
아무래도 한 마계의 왕이었는데, 자신이 다스리던 마계를 조져놨으니 화날 만도 하지.
애초에 왜 여기 사는 마족을 모조리 죽인 건지는 나도 이해하지 못하겠다.
집에 시체가 늘어져 있는 걸 보면 자신에게 적대한 놈을 조진 게 아니라, 그냥 일일이 집 들어가서 죽였거나, 광역 기술을 써서 학살한 것 같은데.
[네가 무슨 신념을 가지고 이곳까지 달려왔는지는 모르지만, 네 여정은 여기까지다.]
비네는 겨누었다.
마왕이 쥔 활시위엔 화살이 없었다.
하지만 아까 봤던 대로 다른 무언가를 발동시키는 스위치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된 우리는 긴장할 수 밖에 없었다.
“끄아아악!”
비네가 활시위를 튕기자 엄청난 크기의 천둥소리가 들렸다.
귀를 찢는듯한 뇌성이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귀를 막고 몸을 낮추는 것과 동시에 어느 남성의 비명이 들려왔다.
한규상의 파티에서 탱커 역할을 하던 까무잡잡한 피부의 근육질의 남성의 것이었다.
빛줄기처럼 지나간 번개를 직격으로 맞은 그는 자신의 심장을 움켜쥐더니 그대로 힘없이 픽 쓰러졌다.
“심장이라도 멈췄나 보네.”
[마왕이 저런 힘을 가지고 있다니 경이롭군. 드래곤이라 해도 상대하긴 힘들겠어. 까다로운 능력이 너무 많아.]
큐라는 앞에 서서 한규상의 파티가 하나씩 줄어가는 것을 보며 가벼운 감상을 말했다.
다른 사람의 죽음에는 딱히 동요하지 않는지 그냥 그런 일이 있었구나. 하는 표정으로 정면을 응시했다.
그저 마왕이 소환한 그림자 군단만을 처리해준 우리는 그들의 파티가 하나씩 죽어가는 것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쟤네가 포기하면 우리도 마왕을 건드릴 명분이 생기지만, 그렇지 않다면 우리가 굳이 마왕에게 직접적인 타격을 줄 이유는 없었다.
이 정도로 도와줬으면 된 거지.
이 이상 도와줄 거라면 내가 그냥 막타를 노리는 게 낫다.
“으음. 할 게 없어요.”
“애들이 금방 죽어버리니까 구할 애들이 없는 건가 보다.”
뒤에서 매를 날린 세라는 구할 사람이 없어지니 바로 무직 신세가 되었다.
내가 부탁을 받은 대로 뭔갈 하고 싶은 것처럼 보이는데, 할 수가 없으니 울상이 되어 입을 비죽였다.
옆에서 엘리샤는 세라를 보더니 쿡쿡. 하고 웃었다.
대체 저런 여유는 어디서 나오는 걸까.
저 마왕의 활이 언제 우릴 겨눌지도 모르는데.
[자. 동료는 죽어간다. 네게 지킬 힘이 어디 있지? 네게 대의가 있긴 한 건가? 집에 있던 마족마저 모조리 죽인 네게 대체 무슨 대의가 있어서 그들을 죽인 것이냐?]
비네는 승기를 잡았다고 생각한 건지 격앙된 목소리로 외치며 말에서 내렸다.
하지만 말에서 내린 것뿐이지 그에게서 위압감은 전혀 사라지지 않았다.
활을 튕기면 뭐가 날아올지 모르는 순간에, 한규상은 분노에 차오르는 눈빛으로 검을 꽉 쥐고 있을 뿐이었다.
“내 능력은 충돌.”
[호오.]
“부딪힐수록, 나는 빨라지고 강해진다.”
한규상은 자신이 안고 있던 카밀라를 천천히 내려놓았다.
그리고 검을 꽉 쥐며 몸을 일으켰다.
그는 비네를 응시하며 자신의 능력을 천천히 읊어내렸다.
드디어 할 마음이 들었나. 하는 표정을 짓던 비네는 흥미로운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아직 죽지 않은 세 명의 동료를 데리고 무슨 일을 할 건지 구경해야겠다.
탱커와 창지기가 죽은 지금 그가 유일한 전열이었다.
그 뒤에는 활잡이와 마법사가 멀리서 그를 보조하고 있었고, 다른 하나는 무슨 특이한 포지션이라도 가지고 있는 건지 중열을 잡고 있었다.
중열에는 대부분 주술사나 정령술사 같은 잘 보이지도 않는 능력자던데 보기 드문 걸 봐서 신기한 기분이었다.
[그렇다면 나도 말해주지. 나는 비바람과 천둥을 모는 마왕이다. 그리고, 잘 가라.]
비네는 활을 겨눈 채 자신의 능력을 읊고서 활시위를 튕겼다.
화살은 없지만 비네가 가진 활은 엄청난 능력을 사용하는 스위치였다.
그가 활시위를 튕겼을 때는 별들이 창이 되어 날아오고, 번개가 빛줄기가 되어 사람을 꿰뚫었다.
그의 말은 천둥을 품은 먹구름처럼 우르릉. 거리는 뇌성을 내며 위압감을 뿜어댔다.
비네가 활시위를 튕긴 순간, 한규상은 검을 잡고 검으로 그가 쏜 마법을 튕겨냈다.
[호. 벌써 빨라졌구나?]
“네 속도는 이미 내가 따라잡았다.”
[그렇구나.]
아까 탱커 동료가 맞은 번개의 창을 쳐낸 그는 비장한 표정으로 자세를 잡았다.
진작에 저럴 것이지.
“성하 님. 그냥 매 안 쓸래요.”
“어어. 쓰지 마. 그냥 관둬도 돼. 힘드니까 이거라도 먹을래?”
“네!”
[뭐야. 성하. 나는 빼놓고 먹는 거냐?]
내가 집중해서 그들의 싸움을 보고 있자니, 뒤에서 세라가 토라진 목소리를 냈다.
세라에게 다가가 아이를 달래듯이 말하며 팔을 내밀었다.
그러자 아무것도 못 했다는 기분에 마음이 상한 세라는 금세 분위기가 바뀌어 얼굴을 밝혔다.
단순해서 좋네. 라고 생각하며 시선을 다시 저쪽으로 옮기려던 찰나, 마찬가지로 그림자 군단을 쓸어버리고 나서 할 일이 없어진 큐라가 샘을 내며 다가왔다.
“아니, 얜 마나 쓰면 날 먹어야 하잖아.”
[나도 아까 인페르노 쓰느라 꽤 소모했다만.]
“그래 너도 먹어라.”
에라 모르겠다. 하고 자포자기하듯이 소매를 걷고 양팔을 내밀자 양쪽에서 세라와 큐라가 팔을 물어뜯었다.
배리어를 더 이상 칠 필요가 없어진 엘리샤는 배리어를 거두더니 내게 마취 마법을 써주었다.
정말 눈치 빠른 여자다. 말도 안 했는데 그냥 알아서 써줄 줄은 몰랐는데.
그렇게 잠시 한 눈판 사이 콰직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네놈의 동료들은 내 속도를 따라오지 못한 것 같다만.]
“으윽! 어째서….”
비네가 내린 말이 언제부턴가 사라졌다 생각했는데, 뒤에 있던 그의 동료들을 처리하는 데 쓰고 있던 거였구나.
왜 내렸나 싶었는데, 그가 모르는 새에 동료들을 처리하기 위해서였다니.
역시 왕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노련미가 보였다.
한규상은 자신의 죽어버린 동료들을 보며 이를 갈았다.
[네놈은 아무것도 모르는 내 주민을 무자비하게 죽였으면서, 그것에 가담한 네놈의 동료들을 내가 가만히 둘 거라 생각했나?]
“시동.”
비네가 비아냥거리면서, 한규상을 비웃었다.
이렇게 되는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고 그에게 말했다.
하지만 그는 비네의 목소리를 듣지 않은 채 눈을 빛냈다.
그리고 덤덤히 자신의 마법을 발동시켰다.
“드라이브.”
두 번째 영창에서 그의 검은 기이한 소리를 냈다.
설마 이놈 교통사고 나서 죽은 놈인가. 영창이 왜 이래.
진동 소리도 뭔가 했더니 차에서 흔하게 들을 수 있는 진동음이었다.
[윽!?]
짧은 두 영창에도 급발진하는 그의 능력에, 비네는 반응하지 못했는지 허공을 향해 활시위를 튕겼다.
한규상의 검은 비네의 허리를 그었고, 비네의 번개의 창은 아무것도 없는 곳을 향해 선을 그었다.
그의 날이 꽤 깊게 들어갔는지 비네는 피를 철철 흘리는 허리를 붙잡았다.
“내 동료들이 반응하지 못한 것은 내가 무리하게 그들을 데리고 마계에 온 탓이겠지.”
그는 슬픈 목소리로 자신을 꾸짖으며 비네를 향해 뒤돌았다.
그리고는 다시 아까처럼 같은 자세를 취했다.
비네는 이를 갈며 다시 활시위를 잡았다.
고속으로 움직이는 상대에게 활이 잘 먹힐 리가 없으니 마왕도 지금 속이 탈 것이다.
마왕을 마주한 그는 이를 까득 깨물며 다시 정면을 응시했다.
“시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