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45화 〉episode6. 45번째 마계 (2) (45/98)



〈 45화 〉episode6. 45번째 마계 (2)

“도망쳐!”


놈들의 일행은 알 바 아니지만 내 일행은 소중하다.
그렇게 소리친 것과 동시에 큐라가 눈을 빛냈다.

[세상의 이치는  부름에 응하라.]
“아니 지금 그거 쓰면 안 돼!”
“제가 배리어를 칠게요!”


또 광역기를 남발하려고 하는 큐라를 막아 세웠다.
그리고 순간적으로 앞장선 엘리샤는 화살을 향해 지팡이를 겨눈 채 주문을 읊었다.
그 전에 날아오는 화살은 세라가 소환한 거대한 매가 대신 맞아주거나, 리타가 휘두르는 메이스로 쳐냈다.


[왜 막느냐!]
“넌 너무 커다란 마법만 쓰잖아!  본체 크기 생각하면 몰라도, 인간한텐 크다고!”

자신의 활약을 막은 내가 미웠는지 소리치는 큐라를 달래려 애썼다.
그리고 동시에 엘리샤가 펼친 배리어에 검은 화살들이 차마 뚫지 못한  곳곳에 박혀 있었다.
배리어 너머에는 검으로 모든 화살을 쳐낸 한규상이 있었다.
기술 하나는 죽여주는 걸 갖고 있을 것 같은 위세였다.


“애들아. 가자!”


한규상이 외치는 것과 동시에 지붕에서 대기하던 그의 동료가 활시위를 당겼다.
동료가 활을 쏘는 것과 동시에 카밀라가 검은 창을 잡았고, 다른 동료들이 한규상의 신호와 함께 달려들었다.
검은 말을 타고 있는 마왕, 비네는 그에 맞서 말을 몰았다.
쿠릉. 거리는 천둥의 울음소리를 가진 말이 상체를 일으키더니 기세 좋게 달렸다.

“우악!”
“규상! 괜찮아?!”
“괜찮아. 먼저 쳐!”
[어리석은 녀석들. 내 주민들을 몰살시킨 놈들을 내가 곱게 돌려보낼 거라 믿는 게냐?]


멋지게 달려나간 한규상은, 비네에 의해 태세가 무너졌다.
마왕의 마나로 만들어진 말은 실존하는 것이 아니라 형태를 이룬 검은 탁기에 불과했기 때문에 모양이 수시로 변했다.
한규상에게로 돌진하는 듯한 말은 자신의 마기를 앞으로 뿜으며 부딪힐 거라는 착각을 심어줌과 동시에 전격을 내뿜었다.
천둥소리와 함께 번개를 직격으로 맞은 듯한 한규상은 신음을 흘리며 고통에 젖은 목소리로 자신의 동료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자신이 가장 정신없을 텐데  와중에 지시를 내리다니 집중력 하나는 칭찬해 줄만 했다.
45번째 마왕은 말을 타고, 활을 쏘며, 번개 공격을 쓴다.
이건 뭐 도움이 되지 않겠지. 다른 마왕을 만나면 그들은 그들만의 능력을 쓸 테니까.


“‘미카엘’.”
[네. 주인님.]
“검으로 변해.”
[넵.]

‘미카엘’의 목소리를 담담하게 부르자, 때가 됐다는 것을 깨달은 ‘미카엘’은 전과는 다르게 순순히 검으로 변했다.
손에 착 감기는 미카엘의 칼자루가 손에 쥐어졌다.


[뺏을 거냐?]

큐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뭐, 여기서 뺏는 것은 도리가 아니니까.
아닌가? 내 생존이 걸린 일이니까 그런  상관없는 건가.
어차피 내가 원래 세계로 돌아가면 만날 일 없는 사람이니까 괜찮을까?
나도 참 몹쓸 놈이다. 이런 식으로 계속 생각하게 되다니.
그냥 보기만 하고 돌아가기로 했잖아.
도움만 주면 나도 일부 보상을 받을 수 있는 걸까?

“성하 씨?”
“아니, 안 뺏을 거야.”


큐라의 질문에 멍하니 내가 ‘미카엘’을 쥐고 있자, 엘리샤가  대답을 재촉했다.
내 대답은 ‘아니.’였다.
만약에 한규상이 마왕을 처치하는  실패한다면 내가 다음 타자로 나서서 잡을 수는 있겠지.
하지만 그런 것도 아닌데 나서서 뺏고 싶지는 않았다.

“뭐야.”
[뭐냐.]

‘미카엘’. 그것을 잡고 심호흡을 하자, ‘미카엘’은 찬란한 빛을 내뿜기 시작했다.
그리고 동시에 한규상을 비롯한 그의 파티와 그를 상대하던 마왕의 안색이 새파랗게 바뀌었다.


“드디어 뺏으려고 작정한 거냐?”
“아니. 도와주는 거야.”
“그런데 그만한 마나를 내뿜는다고?”

한규상은 표정에서부터 경계를 내비치며 검을 내게 겨누었다.
비네는 그들을 상대하는 것도 잊은 채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나를 응시했다.
아무래도 내가 성검 ‘미카엘’을 들고 전력으로 마나를 내뿜고 있어서 그런 것 같았다.
그 큐라마저 무섭다고 한 힘이다.
정제되지 않은 타인의 마나는 거부반응을 일으킬 수밖에 없다고 하니 당연한 반응인 걸까.
뒤를 힐끔 바라보니, 내가 뿜는 마나를 피하려고 엘리샤가 펼친 배리어 안에 리타, 세라, 큐라가 몸을 숨겼다.

“용사님은 바쁘겠어? 마왕을 잡는데 이런 낙오자까지 신경도 쓰고?”
[큭. 대체 그 마나는 뭐냐. 이 마계보다 짙은 농도라고? 일개 인간이 그런 힘을 가질 리가…  검의 힘인 것이냐?]
“설마 그건 마검이냐?”
“마검이 아니야. 성검이라고 불리는 검이다.”


내가 비아냥대듯이 한쪽 입꼬리를 씩 올리며 도발했다.
솔직히 검이 좀 무거워서 자유롭게 휘두를 수 있을 것 같진 않았다.
그냥 내 마나 분출기로 쓰는 기분도 들지만, 이렇게 가만히 대치할 때는 내가 우위를 점할 수 있다.
그 와중에 비네가 먼저 반응하듯이 찡그린 표정으로 활을 겨누었다.
마왕으로 사는 와중에도, 이만한 마나의 농도는 느껴본 적은 없었는지 숨이 가빠지고 있었다.
한규상은 내 특이한 날을 가진 검을 유심히 보더니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물었다.
나는 그에게 친절하게 가르쳐 주었다.
어차피 마왕을 건드린 그에겐 성공 아니면 죽음이라는 결과를 봐야 하기에  정도는 알려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괴물 같은 검이군. 성검이라면 신의 작품일 터인데. 결국 우리를 벌하러 오셨구나.]


자조적인 웃음을 짓던 비네는 활을 쥔 채로 하늘을 겨누었다.
한규상은 비네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려 경계심을 끌어올렸다.
아무래도 지금 당장은 내 말을 믿기로 한  같았다.
솔직히 ‘미카엘’의 힘이라면, 아니 ‘미카엘’이 아니라 내 동료들이라면 분명 뺏을 수 있겠지.
하지만 지금 내 안의 감정이 뻇으면 안 된다고 경고하는 것 같았다.
그러니까 이렇게 기여하는 걸로 만족하기로 했다.
마왕을 처치한 용사는 어떻게 되는 걸까.

[저주받은 사람들이여. 저주받은 생명체들이여. 우리를 몰아낸 인간들을 저주하라.]

마왕이 조용히 주문을 읊자, 땅에서 검은 탁기들이 인간의 형태를 띄었다.
이내 군단처럼 많은 수의 형태가 몸집을 만들고 앞으로 움직였다.


“날 도와주려 한다면  군대 좀 어떻게  봐! 내가 사례는 두둑이 할게!”

내가 마왕을 막타 칠까 봐 전전긍긍하던 한규상은 갑자기 불어난 군단에 당황했는지 내게 도움을 요청했다.
아무래도 6명밖에 안 되는 파티가 저만한 수를 감당하기엔 무리가 있겠지.
근데 내 파티도 나 포함해서 5명인데.
‘미카엘’까지 세면 6명인가? 아무튼, 당장 놈을 도와주면 어떻게든 되겠지. 사례가 기대된다.
‘미카엘’을 꽉 잡고 몸을 낮췄다. 무거운 검의 무게를 버티며 정면을 응시했다.
내가 안심하고 다른 마왕을 잡을  있게, 제대로 된 성적을 거둬줘.
만약 마왕을 잡고 나서 뭔가 저주를 받는다거나, 페널티를 얻게 된다면 빌 수 있는 소원을 얻었을  그걸 없애달라고 빌어야지.


“성하 씨. 도와드릴게요.”
“에리. 그렇다면 나도 갈게.”
[나도 돕고 싶다만, 그 검을 좀 놓아줬으면 좋겠군.]
“성하 님. 저도  검을 놓아야 도와줄  있어요….”

한규상의 목소리를 들었는지, 배리어에 몸을 피하고 있던 엘리샤가 나를 돕겠다고 나섰다.
그러자 리타는 엘리샤를 혼자   없다는 듯이 등에 지고 있던 상자를 내려놓고 몸에 갑옷을 단단하게 조였다.
마나에 민감한 큐라와 세라는 내가 쥐고 있는 ‘미카엘’을 내려놓아달라며 조심스레 부탁하고 있었다.
‘미카엘’로 마나를 내뿜는 것은 파티가 없을  해야 좋을 것 같았다.


[죽어버린 넋들이여, 이들을 단죄하라.]


19개의 군단을 소환한 비네는 멈추지 않고 주문을 읊었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 끝없이 떨어지는 별들을 보고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그들의 목숨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사람이 죽으면 별똥별이 떨어진다고 했던가.
그것이 이 마계에서는 그 사실 그대로 이루어지는 것 같았다.
그렇다면 그 수많은 별들은 죽어버린 마족들의 넋을 기리는 것들이었나.
수없이 떨어지던 별들이 갑자기 멈추었다.
그리고 이내 밝은 빛들이 지상을 향해 떨어지기 시작했다.


“제길. 저건 뭐야!”

어차피 자신의 군단들은 마나로 이루어졌으니 죽지 않는다는 건가.


“피해! 카밀라!”

한규상의 목소리는 마치 절규처럼 들려왔다.
계를 달리한다지만, 같은 마족이 용사를 돕고 다른 마계를 친다는 것이 원망스러웠던 거겠지.
수많은 별들이 카밀라를 향해 집중적으로 날아왔다.
그리고 그것은  동료인 세라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죽인 마족은 없었는데, 그냥 나와 함께 다닌다는 이유겠지.

“‘미카엘’.”

내 부름에 커다란 진동이 전해져왔다.
나는 동료가 죽고 나서 각성하는 것은 싫다.
그렇게 각성할 바에 죽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움직이겠다.
그녀들이 나를 도울 필욘 없었다.
하나뿐인 목숨을 소중히 하도록 하고 싶었다.
나는 죽지 않으니까 나를 걱정하지 말았으면 했다.

-


[주인님. 저를 사용할 때엔, 제 이름을 불러주세요. 진동이 울린다면, 괜히 울린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주인님과 공명하기 위해서 울리는 거니까요.]


-


천천히 들어 올려지는 고개.
한규상 일행을 도와주기 위해 군단을 처리하는 것보다, 세라를 지키는 게 우선이었다.
떨어지는 별들이 세라를 죽이기 위해 몰려왔다.
물론 내게도 몰려오긴 했지만, 마족을 배신한 마족에게는 집중적으로 별들이 쏟아져 내렸다.
콰직.
별똥별은 커다란 창이 되어 몸을 찔러왔다.
어. 이런 거였나.
내가 과학 시간에 배웠던 별은 이런 이미지가 아니었는데, 그냥 디자인 같은 거였나보다.
빛으로 된 창이 몸을 꿰뚫고 바닥에 고정했다.
이렇게 수없이 떨어지면 세라에게 다가가는 것조차 불가능해진다.
아무리 엘리샤의 배리어가 있다지만, 불안함에 발걸음을 멈출 수 없었다.

“‘미카엘’!”

크게 ‘미카엘’의 이름을 불렀다.
어디선가 나눴던 이야기를 들었던 것처럼 그녀의 말을 따랐다.
그러자 순간적으로 시야가  트이는 기분이 들었다.
강대한 힘이 흘러들어오는 기분이었다.
이게 바로 전능감이라는 걸까. 뭐든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우웅. 하고 올리는 진동과 함께 폐가 떨려왔다.
내 배를 뚫고 바닥에 고정된 빛의 창을 어떻게든 하기 위해 ‘미카엘’을 움켜쥐었다.
그리고 검으로 내 배를 갈랐다.


“성하 님!”
“안돼! 세라! 가만히 있어! 위험해!”
[내가 이런 것 따위 금방 다 태워버리겠다!]

세라가 내 모습을 보고 순간적으로 배리어를 나가려고 하는 것 같았다.
리타는 그런 세라의 움직임을 막으며 그녀를 달래고 있었고, 큐라는 이를 갈며 위에서 내려오는 창들을 노려보았다.
그래 그녀라면 다 녹여버릴  있을까.

“성하 씨! 배리어로는 부족해요. 이만한 수는…!”


내게 의존하지 마. 라고 외치고 싶었다.
너무 큰 기대에 내가 부응할  없어서 도리어 실망감을 안겨주는 것이 아닐까 싶어서.
하지만, 너무 벅찰 때 나를 찾아주는 것이 너무 기뻤다.
그 능력 있는 사람들이 이런 날 필요로 해준다는 것이.
몸을 갈라 창을 빼내고 다시 몸을 붙였다. 시야가 떨어지는 것과 동시에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다.
빛의 창이 팔에 꽂히면 팔을 잘라내었다.
한 발짝, 한 발짝. 창이 몸에 꽂힐 때마다 족족 고정된 몸을 잘라내 창을 떨어뜨렸다.
죽이는 것뿐이라면 그냥 달려나가면 되는데, 고정시키니 상당히 까다로웠다.
내가 내 몸을 자르는 것에 두려움이 계속 일었지만, ‘미카엘’의 힘 때문에 순식간에 몸을 자를 수 있어 다행이었다.
당장에 내가 달려나갈  있게 해주는 그녀의 힘이 있어 다행이라 생각했다.

“엘리샤 배리어 강화해!”
“하지만 그러면 성하 씨가 못 들어오는데…!”
“됐으니까 빨리!”

그렇게 내게 날아오는 창들을 모두 내던지고, 몸을 날렸다.
젠장. 아무리 45번째 마왕이라고 해도 성가신  어쩔 수 없나 보다.
아까는 그 여유로워 보이던 한규상마저도 쩔쩔매며 자기 동료에게 달려가는 것을 보니 상대하는 것은 쉽지 않아 보였다.
나는 엘리샤에게 목소리 크게 외치며 배리어 위로 날았다.
내가 배리어에 들어가 버리면 오히려 창을 막을 수 없으니까.

[…성, 하?]


큐라의 떨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뭘 하려는  알아챈 건지, 유독 그녀만이 목소리에 떨림이 있었다.
엘리샤가 옆에 있어서 평정심을 유지하려던 리타도 경악한 표정을 지으며 나를 올려다보았다.
나도 가물가물한 기억을 어쩌다 떠올리게 되면 내 신체 능력이 은근 올라갔다.
전에 리타랑 싸웠을 때 느꼈던 것을 이번에도 느끼고 있었다.
2미터는 되는 높이를 가볍게 날아 ‘미카엘’을 휘둘렀다.

[빛이여. 창대하리라.]


조용히.
그리고 고요하게 ‘미카엘’을 들고 외쳤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