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42화 〉episode5. 미카엘 (12) (42/98)



〈 42화 〉episode5. 미카엘 (12)

“다 모였어?”
[뭐 먹느냐?]
“성하 님~ 이거  왔어요.”


오랜만에 우유를 먹으니 뭔가 신기한 기분이 들었다.
이곳에 온 뒤로 우유  번 입에 댄 적이 없어서 그런진 몰라도 더 달게 느껴졌다.
그렇게 빵이랑 같이 우유를 만끽하며 합류 지점으로 걸어가니, 큐라와 세라는 심부름 받았던 물품들을 다리 맡에 두고서 나를 보고 있었다.


“자. 너네는 이거 먹고 있어.”
[이건 뭔가? 이건 뭔가?]
“맛있어 보이지? 빵이란 거야.”
[인간은 이런 것도 만드는구나? 근데 내가 전에 먹었던  딱딱한 것도 빵이라 하지 않았느냐?]
“그건 조금 싸구려라 그런  거야….”
[앞으로 먹을 빵은 이런 것이 좋다!]


아직 한참 남은 빵을 큐라에게 넘겨주자, 큐라는 처음 맡아보는 고소한 냄새에 흥분하며 눈을 빛냈다.
아무래도 평소에 보던 빵들은 전부 모험가들이 허기를 달래기 위해 먹는 딱딱하고 향이 없는 곡물 덩어리나 마찬가지였으니까.
그 빵이나 이 빵이나 다 똑같은 빵이란 이름을 가지고 있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뚱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는 빵을 한  크게 베어 물더니 맛은 있는지 꼬리를 빙빙 흔들며 몸을 들썩였다.

“서, 성하 님. 저도 배고픈데요….”
“마법도  썼는데 벌써 배고파?”
“네에.”


그러고 보니, 마족은 저런 빵 같은 거에 영양분 섭취 같은 건 하나도 못했던가.
한숨을 내쉬며 큐라와 세라에게 맡겨뒀던 물건을 확인했다.
마계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라 확실하게 준비해둬야 했다.
천으로 된 보따리를 풀자, 그 안에는 커다란 로브가 여럿 있었다.
색깔별로 있는 것을 보아 뭐 파워레인저마냥 팀복을 맞춘 기분이었다.
큐라는 빨간색, 세라는 검은색, 리타는 노란색, 엘리샤는 연보라색.
마지막 남은  흰색…?


“으음. 이거 발주 누가 넣었대.”
“색이 마음에 들지 않나요?”
“네가 골랐어?”
“네. 성하 씨는 하얀색이 잘 어울리잖아요.”

보따리를 파헤쳐 로브들을 잠시 보고 있는데 뒤에서 엘리샤가 고개를 숙여 내 눈높이를 맞췄다.
혼잣말로 태클을 걸었던 것을 들었는지, 그녀는 쿡쿡 웃으면서 자신의 연보라색 로브를 둘렀다.
나는 그런 엘리샤를 보면서 검은 로브를 들었다.

“성하 님? 뭐해요?”
“자, 이거 네 거야.”
“우와!”

로브를 받아든 세라는 선물을 받은 어린아이처럼 로브를 두르고는 총총 뛰어다녔다.


[내  없느냐?]
“큐라 것도 있는데, 큐라는 어차피  날아야 하잖아?”
[그럼 난 도착해서 받겠다.]

그 옆에 있던 큐라는 다람쥐처럼 볼에 빵을 채운 채로 다가와 소심하게 물었다.
자신의 것이 설마 없으면 어떡하지.란 마음에 물어본 듯했다.
전에 세라에게서 물려받은 느낌으로 생긴 로브가 있었기에 새로 사주지 않을 거란 생각을 한 건가?
그런 큐라에게 보여주듯이 보따리에서 붉은 로브를 들어 보였다.
자신의 것이 있다는 것을 본 큐라는 미소를 머금고서 다시 자신의 빵에 집중했다.


“벌써 다 모였나요?
”어어, 왔네. 뭐 오래 걸린 거라도 있어?“
”새로운 무기의 손질이라. 조금 걸렸네요.“

그렇게 로브를 가지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리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커다란 상자를 등에 이고, 새로운 무기를 한 손에 쥐고 있는 리타가 보였다.
아무리 힘이 세다지만 너무 짐이 많은 것 아닌가.
걱정하는 모습으로 물어보자, 리타는 괜찮다는 듯이 주먹을 쥐었다.


”메이스야?“
”네. 메이스에요. 원래  주 무기니까요.“
”그렇다 했지.“


커다란  몽둥이처럼 보이는 무기는 벌써 존재만으로 위압감을 풍기고 있었다.
무거워 보이는데, 어떻게 휘두르는지 참 기이했다.
그러고 보니, 리타가 몸에 두른 갑옷들이 전과는 조금 다른 모습이었다.


”리타는 갑옷을 가문에서 받고 왔어?“
”어어. 집에 빠르게 들러서 하나 챙겨왔어.“

그걸 엘리샤도 눈치챈 건지, 나보다 한 박자 빠르게 나서서 리타에게 질문을 던졌다.
리타는 자신의 흉갑에 새겨진 문양을 가리키며  웃어 보였다.
자신의 가문의 자부심이라도 있는 거겠지.
그런데 주 무기만 바꿨지, 주먹에는 여전히 새로운 너클이 박혀 있었다.
장갑에 저렇게 철에 굴곡을 주는 일을 하다니 참 신기했다.
저러니까 주먹 한 방에 몬스터의 몸 한 짝이 뜯겨나가는  아닐까.

”그럼 갈까.“

뭐, 각자 준비도 끝난  같으니 슬슬 갈 때가 된  같았다.
‘미카엘’을 등에 진  몸에 두른 갑옷을 한 번 더 정비했다.
안에 껴입은 사슬갑옷도 어디 구멍 난 곳 없나 확인하고, 혹시 모를 일에 대비해 허리 뒤에 쟁여둔 여분의 나이프가 잘 있는지 체크했다.
주 무기도, 부 무기도 모두 확인한 뒤 주변을 둘러보았다.
재정비 시간을 가지고 나니, 어느새 리타도 자신의 노란 로브를 챙겨 입은 뒤였다.

”나만 로브 색이 마음에 안 드는 건가?“

갑자기 출발하려니까, 나만 색이 마음에 들지 않는 건지 의문을 품게 되었다.




*



”평소에 가던 남쪽이 아니니까 조금 기분이 묘하네.“
”왕도의 동쪽으로 가야 하니까요. 저도 사실 남쪽에 있는 정류장에 들르지 않았다는 게 기분이 묘하긴 해요.“


왕도에서 길드나 정류장이 남쪽에 치우쳐져 있다보니, 동쪽으로는 길이 제대로 발달되어 있지 않았다.
그래도 왕족이나 귀족이 자주 이동하는 길목이었기에 길 하나는 넓었다.
잘 오지 않았던 길목이라 그런지 어색함마저 느껴지는 것 같았다.
애초에 동쪽에는 작은 길드가 몇 개 있다고 하니 이쪽으로 갈만한 의뢰가 별로 없었지만.
감상을 입에 담자, 그 기분을 잘 안다는 듯이 리타가 옆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우리는 원래 이렇게 고급 인력 파티까진 아니었다고.
걷거나 마차에 올라타는 게 전부였는데 어느새 마력을 먹은 만큼 사람까지 태우는 사역마를 소환하는 세라가 있었고, 드래곤으로 변해 날아다니는 큐라가 생겼다.


”대체 뭔 파티인지.“


내가 파티의 리더인데 왜 내가 제일 약한 건지 의문이었다.
강한 순으로 줄을 서면 일단 큐라가 맨 앞인 건 분명하고, 내가 맨 뒤인 것도 확실했다.
이런 씁쓸한 파티가 다 있나.
솔직히 당장에 여기서 내가 빠진다고 해도  돌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내가 오히려 짐이 되는  아닌가?

”슬슬 도착하는데, 큐라 씨. 준비해주시겠어요?“
”아니 잠깐만, 나 세라한테 밥 줘야 하는데.“

도심의 경계를 긋는 벽을 지나서 허허벌판으로 나섰다.
이곳에는 드문드문 몬스터들이 풀을 뜯어먹는 모습이 눈에 보였다.
풀을 뜯는 평화적인 몬스터들이 있으니 묘하게 기분이 평온해지는 기분이었다.
마냥 사람만 잡아먹으려고 하는 몬스터들만 있는 게 아니었구나.
그렇게 얼마 걸었을 때쯤, 엘리샤가 주변을 둘러보고는 로브의 후드를 내리고 큐라에게 언질을 줬다.
하지만 나는 큐라가 변신하려던 것을 막고 세라의 검은 로브를 잡아당겼다.

”엣.“
”성하 씨. 이른 아침에 이런 곳에서 하실 생각은 아니죠?“
”어…?“
”안 돼요. 제가 마취 마법을 걸어드릴 테니까요.“
”어어, 알았어.“
”엘리샤 님. 너무해요.  좋은데.“


갑자기 잡아 당겨진 세라는 작은 목소리를 뱉으며 나를 돌아보았다.
내가 심호흡을 하는 와중에, 엘리샤가 커다란 지팡이를 들고서 내게 얼굴을 들이밀었다.
뭐야. 무서워.  그렇게 쳐다보는 거지.
물론 밖에서 하는 취미는 없지만 내가  아플 방법이 이것뿐이라 그런 것이었다.
그러니 엘리샤가 그렇게까지 해준다면야 나는 굳이 그 방법을 쓰지 않아도 되겠지.
그렇게 엘리샤의 마법을 받으려고 하자, 옆에서 세라가 볼을 부풀리면서 엘리샤에게 불만을 표했다.
쟨 벌써 야외섹스에 눈이라도 뜬 건가. 노출증이라고 생각해도 좋을 법했다.
어린놈이 벌써 노출 성벽에 눈을 뜨다니, 앞으로 미래에 있을 세라의 남편이 얼마나 골이 썩을지 기대된다.

”자 걸었어요. 피는 제가 없애 드릴 테니 걱정하지 마세요.“

엘리샤는 그런 세라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는 듯이 지팡이를 내게 휘둘렀다.
테스트 삼아 내가 내 팔을 만졌는데, 아무런 느낌이 들지 않았다.
정말 모든 감각이 마비된 기분이었다.
리타가 했을 때도 약초 없이는 효력이 약할 수밖에 없다고 했는데, 엘리샤는 대체 얼마나 마법에 조예가 깊은 걸까.
포지션이 후방 마법사인 만큼 남들이 쉽게 도달하지 못하는 경지에 이른 걸까.
마법에 대해서 문외한인 내가 뭐라 판단할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굉장한 것은  수 있었다.


”치이.  먹겠습니다.“
”조금만 먹어.“


세라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내가 내밀고 있는 팔을 붙잡았다.
 손과 팔꿈치를 잡고 먹기 편하게 위치를 잡은 세라는 입을 크게 벌렸다.
그리고 콰직 소리와 함께  팔을 힘차게 물어뜯었다.


*






”그럼 갈까요?“
[알았다.]


정신이 혼미해지고, 시야가 흐려진 와중에 눈앞에서 벌써 출발할 준비를 시작했다.
아니 애들아. 나 좀 배려해줘.
드래곤으로 변신해야 하는 큐라는 자신의 헐거운 옷을 바닥에 벗어던졌고, 리타는 그것을 주워들었다.
순식간에 길바닥에서 나체가 된 큐라가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녀의 몸에서는 하나씩 붉은 비늘이 돋아나기 시작했다.
쿠륵.
질량보존의 법칙이고 나발이고 우득거리는 소리를 내며 몸을 움직이던 큐라는 어느새 거대해진 몸집을 자랑하고 있었다.
쿵.
큐라가 발을  번 디딜 때마다 주변에 있던 몬스터들이 겁에 질려 도망가기 바빴다.
인근에 있던 사람들은 갑자기 나타난 거대한 드래곤에 비명을 지르며 도망갔다.
아파트 한 채만  드래곤이니 두려울 법도 하겠지.

[타라.]

큐라가 앞발로 휙. 하고 움직이자 주변에 들고 있던 짐들과 함께 몸이 두둥실 떠올랐다.
바람에 태워지는 기분이 너무 좋았다.
내가 하늘을 나는 것 같았다. 이런게 자유로운 감각인 걸까.
세라에게 밥을 주느라 과다출혈 상태가  내 무거운 몸인데도, 당장 느껴지는 이 감각은 내 마음을 가볍게 했다.

”다 탔어요. 출발해주세요.“
[천천히 가야 하나?]
”네. 성하 씨가 지금 많이 힘들어하니까요.“
[알았다.]


엘리샤가 큐라의 등을 톡톡 두드리자, 큐라는 울리는 목소리로 물어왔다.
자신의 최고 속도를 내면 안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거겠지.
엘리샤는 내 상태를 봐가며 어떻게 큐라에게  부탁하고 있었다.
큐라는 그래도  편의를 봐주려는 건지 순순히 그녀의 말을 들으며 날개를 퍼덕였다.
헬리콥터를 타도 바닥이 이렇게 울리지는 않을  같은 풍압을 자랑하며 땅을 박찼다.
콰릉.
하늘이 우는 거 아닌가 싶을 정도로 강대한 소리와 함께 하늘로 날았다.
전에도 타본 적은 있었지만, 정말 이렇게 새로운 모험을 위해 출발한다고 생각하니 색다른 감상을 품게 되었다.
붉은 드래곤 등에 타고, 이제 막 뜬 강렬한 태양을 바라보며 하늘을 날았다.
돌아올 때는 분명 아름다운 석양을 보고 돌아올 수 있겠지.

[주인님. 괜찮으세요?]


힘들어 죽겠는데, ‘미카엘’은 왜 또 인간으로 변해선 말을 거는 건지.
 그래도 피를 뿜어대서 머리가 아픈데, 두통이  심해지는 기분이었다.

”야.“
[또 돌아가라고 하시려고요…?]
”…아니. 너 흰색 로브  써라.“
”엑, 성하 씨. 흰색이 그렇게 마음에 안 들었어요?“
[오. 주인님이 제게 주는  선물인가요?!]


눈살을 찌푸리며 ‘미카엘’을 바라보자, ‘미카엘’은 불쌍한 표정을 지으며 몸을 움츠렸다.
뭐 솔직히 돌아가라고 하고는 싶지만, 생각해보니 처리할 것도 있었지.
각자 로브를 챙겨가는 바람에 작아진 보따리에서 흰 로브를 꺼내 ‘미카엘’에게 건네주자, 미카엘은 놀란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이내 기쁜 듯이 해맑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자신이 고른 색이 거절당했다는 사실에 축 늘어진 엘리샤는 비죽였다.


”미안해. 애초에 로브는 내가 쓸만한 그게 아니어서.“
”그렇다면 어쩔 수 없죠. 대신 이거 드릴게요.“
”뭔데?“
”반지에요.“
”웬 반지…?“

엘리샤가 마음 상하지 않게 몸을 이끌고 엘리샤의 옆에 슬금슬금 다가가 조용하게 말했다.
 손을 잡던 엘리샤는 시간이 흘러 마음이 조금 풀렸는지, 쓴웃음을 지으며 내 손을 꽉 잡았다.
그러고는  펼쳐진 손에 뭔가를 얹었다. 뭔가 하고 보니 반짝이는 금반지였다.
그 반지 안쪽에는 특이한 문양이 박혀 있었다.

”뭐야 이건?“
”여차하면 그 반지가 도움이 될 거에요.“
”난 원래 장신구 안 끼는데….“

내가  번을 본다 한들 뭐라 써진 건지  턱이 없으니, 그냥 간단하게 물었다.
엘리샤는 자신도 그런 반지가 있다면서  보여줬다.
저렇게 여러 개 들고 있는  보니까 확실히 도움이 되는가 보다.
근데 문제는 난 장신구 같은 건 불편해하는 타입이란 거다.
목걸이나 귀걸이는 물론, 그 흔한 손목시계 하나 불편해하는 나다.
이런 반지 같은 걸 갑자기 끼게 되면 얼마나 불편할까.

”자아. 왼쪽 약지에 껴야만 능력이 제대로 발동해요.“
”아니 잠깐만, 왼손 약지 뭔데. 이거 그런 능력 없는  아니야?“


나는 순간적으로 그녀에게서 손을 빼고는 몸을 뒤로 젖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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