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0화 〉episode5. 미카엘 (10)
“전에 시장에서 사뒀던 그거면 될까?”
“응. 역시 리타야!”
그게 뭐지.
*
시간이 흘러 식탁을 둘러보니 완전 장어 모양새였다.
근데 이거 모양이 왜 이래, 장어 젤린가? 보기도 좀 껄끄럽네.
그거라고 한 이유를 알 것 같다. 장어 젤리라고 하면 내가 도망갈까 봐 일부러 숨긴 듯했다.
애초에 아무리 정력이 높아지는 음식이라곤 하지만, 이런 걸 먹을 수는 없지.
게다가 어제는 죽을 만큼 힘들게 짜였는데 또 짜이고 싶지도 않았다.
“성하, 맛있게 먹어요.”
“아니 대체 왜 장어를 이렇게 먹는 거야?”
“그 우리나라 특산물인 점박이 민물 장어예요. 물뱀처럼 물 위를 헤엄치는 게 특기라고 한다네요.”
“그런 알고 싶지 않은 상식은 됐어.”
나이프와 포크를 들고 내가 주저하며 다른 음식에만 손대자 리타는 내게 장어가 담긴 접시를 내밀었다.
이걸 나보고 어쩌라는 건지.
아니, 뭐 먹으라고 주는 거겠지. 그런데 난 이걸 먹고 싶지 않다.
[난 맛있는데, 왜 그러느냐?]
“아니, 그거 내 취향은 아닌 것 같아서 그래.”
“성하 님은 편식해요? 편식은 나쁜 건데.”
“네가 편식 제일 심하잖아!”
큐라는 한 뭉텅이씩 입에 넣어 우물거리고 있었다.
뭔 뼈까지 넣고 씹는 건지 참, 생김새만 봐도 난 적응이 안 되는데 익숙한 사람들은 다 먹는 건가?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장어 젤리를 포크로 하염없이 푹푹 찌르고 있자, 옆에서 구경하던 세라가 날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뭔가 말했다.
애초에 인간 말고는 안 먹는 녀석이 뭐라는 건지.
“성하 씨. 오늘도 제 상대를 해주셔야죠?”
“아니… 난 할 생각이 없어. 우리 그리고 거리 좀 둬야 할 것 같아. 엉덩이 가벼운 것도 죄야.”
“…엉덩이가 가볍다니 그게 무슨 소리예요? 저는 일편단심이거든요?”
엘리샤가 요망하게 미소를 지어 보였지만, 나는 그녀의 미소에 마냥 좋다고 할 수는 없었다.
뭐 여자에게 둘러싸여서 이리저리 치이는 것은 어찌 보면 꿈에 그리던 세상이긴 하지. 하지만 그건 그것대로 문제였다.
‘미카엘’과 봤던 것들을 보고 나니 엘리샤와의 관계는 더욱 주의해야 했다.
그녀가 아무리 들이댄다고 한들 나는 그녀의 마음에 답해서는 안 된다. 답하더라도 거절로 답해야 했다.
내 그릇된 판단으로 어떻게 그녀가 부모에게 버려지는 꼴을 볼 수 있겠는가.
내 잘못된 선택으로 어떻게 그녀가 사람들 앞에서 불길에 내던져지는 꼴을 만들 수 있겠는가.
그렇게 그녀를 내치기 위해 했던 말을 입에 담았다.
내 말을 들은 엘리샤의 나이프가 멈추더니, 그녀는 고개를 팟, 하고 들어 항의하듯이 말했다.
“아니, 아니야. 됐어. 나랑은 붙지 않는 편이 좋아.”
“…뭐에요? 성하 씨?”
그녀가 뭐라 하든 간에, 내가 봤던 참상이 그대로 일어나게 두고 싶지는 않았다.
일단 엘리샤와는 이렇게 거리를 두는 편이 서로 좋지 않을까.
“리타. 성하 씨가 약간 이상해지지 않았어?”
“‘미카엘’에게서 뭔가 본 거 아닐까?”
“흐음, 성하 씨. 뭘 봤어요?”
“그건 말하기가….”
엘리샤와 리타는 속닥이듯이 내 눈치를 보며 이야기했다.
그 후, 뜸을 들이더니 내게 직접 물어왔다.
하지만 엘리샤가 물어봤자 대답해줄 수는 없었다.
어떻게 둘이 사랑하다가 왕한테 걸려서 버림받아 죽었다는 이야기를 할 수 있겠냐.
게다가 끔찍하게 불에 타 죽었다.
자신의 아비에게서 버림받아 죽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할 수 있을 리 없지.
“아무튼, 오늘은 난 이걸로 됐어. 다들 내일 나갈 채비 제대로 해 둬. 아침 일찍 나갈 거니까.”
“으음. 알았어요.”
나는 식기를 탁 소리 나게 내려놓고 더 이상은 말해줄 수 없다는 듯이 단호하게 할말을 전했다.
엘리샤는 내게서 원하는 대답을 듣지 못한 게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볼을 부풀렸다.
하지만 이내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한쪽으로 기울이고는 받아들였다.
“성하. 안녕히 주무세요.”
“성하 님, 벌써 주무세요?”
[오늘은 빠르구나. 나랑 밤을 보낼 생각은 없느냐?]
“다들 잘자. 큐라도 어서 자. 내일 이동해야 하니까.”
[알았다.]
엘리샤의 뒤를 따라서, 리타, 세라, 큐라가 반응했다.
큐라는 장난스럽게 새하얀 이를 드러내고는 꼬리를 꺼냈다.
두껍고 반짝이는 붉은 비늘로 둘러싸인 꼬리가 살랑살랑 거리며 나를 유혹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당장에 엘리샤를 거절해놓고 큐라랑 놀면 그건 그것대로 좋은 꼴을 보기 힘들 것 같았다.
*
잠에서 깼다. 벌써 아침이라 그런가.
전과는 다르게 그래도 아침에 일어나는 것이 편해진 기분이었다.
이게 바로 패턴화라는 걸까.
“…?”
눈을 천천히 떠 천장을 바라보는데, 방이 어두웠다.
아침이 아니라 밤이었네. 악몽을 꾼 것 같지는 않은데, 왜 잠에서 깬 거지?
“일어나셨나요?”
뭐야 시발. 내 방에 누군가 있다.
“악몽이라도 꾸셨나 봐요? 심하게 괴로워하시던데요. 성하 씨.”
“에, 엘리샤?”
누군가 하반신을 깔고 앉은 기분이었다.
그렇게 몸을 뒤척이면서 누군가 싶어 나를 깔고 앉은 사람의 다리를 더듬었다.
그러자 어둠 속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정신이 깨고 나니, 목소리의 주인이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근데 엘리샤가 왜 여기 있는 거지?
“왜 제가 여기 있냐는 표정이시네요. 집주인은 저니까 문은 당연히 제가 딸 수 있죠.”
난 엘리샤의 얼굴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데, 엘리샤는 내 표정을 읽은 듯했다.
내가 야맹증이 있는 건가, 아니면 그녀가 야간 투시 능력이 있는 걸까.
내가 표정이 그렇게 잘 드러나는 성격이었나 싶을 정도로, 내 미세한 표정의 변화를 읽은 엘리샤는 뭔가 꼼지락꼼지락 몸을 움직였다.
그림자가 작아졌다. 커지길 반복하더니 이내 그녀의 몸의 윤곽이 보이기 시작했다.
눈이 어둠에 익숙해지면서 그녀의 몸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성하 씨가 저를 대놓고 피하셔서 제가 들이대기로 했어요.”
“아니, 왜…? 넌 왕녀고, 나 같은 것보다 더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있잖아? 왜 나야?”
이불을 치워낸 엘리샤는 내 하반신에 걸터앉은 채 내 두 손을 제압했다.
아니, 엘리샤는 나 하나 강제로 덮치는 거에 맛이라도 들렸나?
엘리샤랑은 전부터 거의 강제로 당하는 수준이었다.
바지를 벗겨낸 엘리샤는 자신의 하반신을 내 하반신에 비벼댔다.
나는 그녀의 이성을 어떻게든 돌려놓기 위해서 필사적으로 그녀에게 물었다.
“성하 씨를 본 순간 느꼈어요. 성하 씨가 제 운명의 상대라는 걸.”
“운명의… 뭐?”
“그야 그렇잖아요? 99명이나 있는 용사가 있는데, 소환자는 100명이라니, 그 남은 한 명이 얼마나 특별하겠어요? 다들 낙오자라고 노래를 부르지만, 그만큼 특별한 사람도 없거든요. 그런 대규모 소환 마법에 실수가 일어난 것은 분명 천운인 거예요.”
엘리샤는 뭔가 꿈에 젖은 소녀처럼 운명을 이야기하며 운명론을 지지하는 듯 찬양했다.
뭐 그렇게 말하니까 그럴 수도 있는 건가. 싶다가도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참 애매했다.
이걸 호응해야 하는 건지, 아니면 아니라고 반박해야 하는 건지.
“게다가 마력도 없는 사람인데, 마나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의 양과 질을 가지고 있어요. 심지어 죽지도 않죠. 성하 씨. 성하 씨도 알잖아요? 성하 씨의 체액에는 엄청난 양의 마나가 있다는 걸.”
“그건, 세라 때문에 알지….”
“제가 어제 성하 씨의 정액을 맛보면서 느꼈는데 우리 속궁합도 엄청 좋은 거 있죠? 이런 게 운명 아닐까요?”
“억지로 집어넣은 느낌이었는데 나는?”
엘리샤는 쉴새 없이 자신의 가랑이를 내 성기에 비벼댔다.
그렇게 자극해대면 성기가 세워질 수밖에 없는데, 참 곤란했다.
내가 세우고 싶을 때 서고, 세우고 싶지 않을 땐 안 섰으면 좋겠다.
좀만 흥분하면 혼자 벌떡 서버리니 얼마나 곤란한 놈인가.
“걱정하지 마세요. 오늘은 지팡이 안 들고 왔어요.”
“그게 문제가 아닌데… 네 집이라지만 내 방을 함부로 따고 들어온 것부터 문제야.”
“그야, 성하 씨가 저를 거리 두려고 하니까 그렇죠. 성하 씨 탓이에요.”
엘리샤는 내 윗옷을 천천히 밀어 올리더니 그 사이로 손을 집어넣고 내 가슴을 어루만졌다.
따뜻한지 눈을 감은 채 허리를 흔들었다.
그리고는 내 성기를 잡아 움직이지 못하게 고정하고선, 자신의 음부에 갖다 댔다.
“이번에는 충분히 적셨으니까 전처럼 아프진 않을 거예요.”
“아니, 근데 우리 이래도 되는 거야?”
“돼요. 걱정하지 말아요. 성하 씨는 분명 마왕을 물리치고 명예를 얻을 수 있을 테니까요. 그때는 제가 신랑으로 받아들여 줄게요.”
“그, 아니 좋은 사람 많을 텐데….”
엘리샤가 매혹적인 목소리로 나를 꼬드겼다.
그녀랑 너무 가까이하면 좋은 꼴을 못 볼 것 같다고 느끼면서도, 그녀의 목소리에 조금씩 내 의사표현이 누그러진다.
강경하게 말해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어느새 목소리를 줄이고 있었다.
“어때요? 성하 씨? 마법을 써서 강제로 세운 게 아니라 평범하게 하는 기분은?”
“피곤해… 나 방금까지 자고 있었는데 이게 뭐야.”
“오늘은 한 번으로 봐 줄게요. 다른 애들과 할 때면 그만큼 받아낼 거지만요.”
“왜 그렇게까지 하는 거야?”
“바람피우면 안 돼요. 성하 씨는 제 남편이 될 사람이잖아요? 물론 대단한 용사라면 첩을 두기도 한다지만, 처를 소홀히 하면 안 되죠.”
그녀는 벌써 헐떡이기 시작했다.
나는 팔꿈치로 몸을 고정한 채 이를 꽉 깨물며 그녀가 허리를 흔드는 모습을 바라만 봐야 했다.
그래도 전처럼 마법으로 강제로 연발하게 하는 건 아니라서 다행이었다.
그건 그렇고, 그녀는 약간 집착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면서 내 몸 이곳저곳을 어루만졌다.
내가 쓴웃음을 지으면서 어이없다는 듯이 묻자, 엘리샤는 자신이 처고 나머지가 첩이라는 이상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난 그런 거 생각해본 적이 없는데 너무 비약이 심했다.
한 나라의 보석 같은 왕녀를 처로 삼는다니 다른 용사들에게 질투 받을 것이 분명한 일을 내가 이룰 수 있을 리가.
아니, 이렇게 몸도 섞는데 불가능한 일은 아닌가?
“성하 씨.”
“어?”
“성하 씨 쪽에서 리드해 주세요. 그럼 얌전히 돌아갈게요.”
“리드라니, 난 내가 먼저 해보려고 한 적도 없이 덮쳐지기만 했는데?”
“그니까요. 이번에 그런 것도 배우면 좋잖아요?”
그걸 왜 네 몸으로 배우냐 이 말이야.
조금 껄끄러웠다. 이래도 되는가 싶어서 조금 머뭇거려지기도 했다.
엘리샤는 쿡쿡 웃으며 내 반응을 즐기는 것 같지만, 나는 도저히 이 상황을 즐길 수가 없었다.
안 그래도 낮에 ‘미카엘’에게서 좋지 못한 풍경을 보고 온 것 때문에 그런 걸까.
나는 멍하니 손을 들어 엘리샤의 손을 잡았다.
그러자 엘리샤는 허리 흔드는 것을 멈추더니 천천히 자신의 몸을 일으켜 성기와 음부를 떨어뜨렸다.
“해주시려구요?”
“…이번만이야.”
“글쎄요…? 성하 씨도 저 싫어하는 건 아닌 것 같은데, 제 착각인가요?”
“싫어하진 않지. 그런데 너무 똑똑하고 예뻐서 나랑 안 맞는 거 아닌가 싶어.”
“너무 자신을 과소평가하는 것 아니에요?”
손을 잡은 채 그녀의 몸을 밀어 넘기고서, 나는 상체를 일으켰다.
그러자 엘리샤가 놀란 목소리로 내게 기대하는 듯 말을 걸어왔다.
나는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그녀를 눕힌 채 그녀를 내려다봤다.
구름에 가려진 달빛이 그녀를 비추기 시작하니, 그녀의 얼굴이 눈에 선명하게 들어왔다.
그녀는 요망한 미소를 지으며 나를 부추기는 것 같은데, 그럴수록 나는 그녀에 대해 잘 알지 못하겠다.
그녀는 외모부터 시작해서, 능력이나 지위, 재산이나 인맥 등 뭐 하나 모자란 것 없는 사람이다.
그런데 굳이 나를 선택할 필요가 있었을까?
정말 그렇게 생각하고 나면 자신감이 사라진다.
“성하 씨. 저는 성하 씨랑 평생 가고 싶으니까요.”
“우리 본지도 얼마 안 됐는데 그런 이야기까지 하는 거야?”
“네. 저는 성하 씨 하나만 보고 살아갈 수 있어요.”
그녀의 연보랏빛 눈이 빛나는 것 같았다.
“저는 성하 씨만 있으면 뭐든 버리고 따라갈 수 있어요.”
그녀의 팔이 내 목을 둘렀다.
입술이 당장에라도 맞닿을 것 같은 가까운 거리에서, 서로를 마주보았다.
“저는 당신을 위해 몇 번이고, 세상을 저버릴 수 있으니까요.”
그녀의 얼굴엔, 섬뜩한 미소가 번지고 있었다.
나는 엘리샤의 얼굴을 보고 순간적으로 몸이 얼어붙는 것 같았다.
광적인 집착에 가까운 목소리였다.
그녀의 말을 들으면 들을수록 뭔가 무서워지는 기분이었다.
“우리가 그렇게 진한 사이였나?”
나는 그런 그녀를 보고 두려움을 떨치려 쓴웃음을 지으며 능청스레 말했다.
설마 전에 있던 세계에서 만났던 사람인가?
전에 있던 세계에서도 그녀 같은 얼굴을 본 적은 없는 것 같은데.
“그러게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우리가 진한 사이가 아닌 건가요?”
반대로 그녀는 내 질문을 질문으로 대답했다.
서로 발가벗고 몸을 섞고 있으니 진한 사이가 아니라고 하긴 또 그렇긴 하네.
“그러게.”
나는 그녀의 목소리에 몸을 맡기고, 천천히 허리를 흔들었다.
내가 주도적으로 하게 해주니 그나마 편한 것 같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