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39화 〉episode5. 미카엘 (9) (39/98)



〈 39화 〉episode5. 미카엘 (9)

“성하 씨가 종일 누워 있어서 아무것도  먹었으니, 뭐라도 먹으러 갈까요?”
“에리  먹고 싶어?”
“오늘은 성하 씨가 고생했으니까, 내가 해주도록 할까?”

무기를 얻은 건데, 왜 동료가 늘어난 기분일까.
이래서 의식이 있는 무기 같은 건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그렇게 손에서 우웅. 하고 울리고 있는 ‘미카엘’을 보며 식은땀을 흘리고 있을 무렵, 엘리샤가 자신의 양손의 손가락을 맞대고서 씩 웃었다.
그 모습을  리타는 이번에도 자신이 요리하려는 건지 엘리샤에게 메뉴를 물었다.
엘리샤는 그런 리타의 물음에 고개를 저으며 나를 향해 미소지었다.

[성하. 내가 그리 좋으냐?]


아차, 다른 한 손으로 계속 큐라의 옷소매를 붙잡고 있었다는 걸 까먹고 있었다.
손을 떼고 몸을 떨어뜨려 놓으려 하니, 세라가  틈을 파고들었다.


“큐라! 이제 내 차례야!”
“…저는 집에서 안아주세요.”

그렇게 세라를 데리고 쩔쩔매고 있자니, 옆에서 엘리샤가 귓속말로 미소지으며 속삭였다.
흠칫 놀라 엘리샤를 돌아보니, 그녀는 쿡쿡 웃으며 우아하게 밤길을 걷기 시작했다.
세라는 큐라처럼 ‘미카엘’을 들고 있지 않은 내 손을 붙잡고 자신의 얼굴에 만지도록 움직였다.
애들이 바쁘네. 어쩌다가 이렇게 된 건지.
나는 그냥 자발적이고 자기 일은 알아서 할  하는 동료가 필요했던 건데.


[저 ‘미카엘’이란 검은 흉흉하다. 처음 느껴보는 감각이다. 저런 검은 들고 있지 마라.]
“근데 이거 나 밖에 못 만지는 거 아니야?”
[아까처럼 마나가 새어 나오기 시작하면, 주변의 대기가 이상해진다. 성하의 마나가 짙고 양이 많은 건 알지만 공기 중으로 새어 나오기 시작하니 나조차 감당하기 힘들어진다.]
“너네 맛있다고 먹는  아니었어?”
[살을 먹거나, 체액으로 먹을 때는 성하의 마나가 정제되어 있지만, 뿜어낼 때는 명백히 다르다.]


세라의 찰떡같은 볼따구를 이리저리 조물조물 만지고 있을 때, 큐라가 붉은 눈을 빛내며 내게 말을 걸어왔다.
그리고는 아까 했던 말을 똑같이 반복했다.
자연스레  마나를 먹고 분출하는 ‘미카엘’에게서 어떤 거부감이라도 느꼈는지 내가 쥐고 있는 ‘미카엘’에게 그리 좋은 시선을 보내진 않았다.
이런 거 가지고 이야기하며 뭔가 정보를 더 알아가니 괜찮은 것 같았다.
지금 당장은 그녀의 표정에 변화가 없는 것으로 보아 마나를 뿜어내는 것 같진 않은데, 그리 흉흉한지 경계하고 있었다.


“성하 님. 사람이 인위적으로 내뿜는 마나는 대부분 다른 사람의 몸에 맞지 않으니까요. 해롭게 느낄 수밖에 없어요.”
“그렇구나. 조심할게. 이런 건 그냥 창고에 박아둘까?”
[그것도 좋은 생각인 것 같다만.]


세라는 내게 볼이 잡아 당겨져 “어버버.” 하는 소리를 내더니, 큐라가 했던 말의 보충설명을 해주었다.
으음, 자신에 맞게 정제된 마나라 남에게는 맞지 않는 거구나. 좋은 상식을 알았다.
‘미카엘’을  손을 힐끔 들어 올리면서 치워 버린다는 소릴 하자, ‘미카엘’은 항의하듯이 거센 진동을 일으켰다.
손이 얼얼할 정도로 떨리는 바람에 나도 깜짝 놀라서 떨어뜨릴 뻔했다.

“가만히 좀 있어. 네가 괜히 마나 뿜어대서 그런  아냐?”

검을 바닥에 퉁 내리친 후에 ‘미카엘’에게 다그치듯이 말했다.
그러자 ‘미카엘’은 바르르 떨더니 이내 얌전해졌다.
처음부터 가만히 있어야지, 검에 뭔 진동 기능까지 있냐고.
마력이 없으면 사용할 수 없다고 해서 그냥 날이 상하지 않는 검인 줄 알았는데, 그런 능력이 있다니.

[성하는 그런  그렇게 막 다루는구나…?]
“얘? 어차피 죽지도 않고, 다치지도 않으니까. 나한테 맞아도 싸고.”

‘미카엘’을 싫어하는 큐라는 내가 ‘미카엘’을 험하게 다루는 것을 보고 조금 무서워하는 것 같았다.
어차피 다치거나 죽지도 않는데. 라고 말한 순간, 내가  말에 내가 질렸다.
 그렇다고 내가 처맞아도 괜찮다는 의미는 아니니 알아서 듣겠지.


“성하 님은 은근 무섭단 말이에요.”
[그래. 성하는 마력이 있었다면 이미 나라 하나는 집어삼켰을 것 같다. 오히려  주는 편이 균형에 맞았을지도.]
“너네 그렇게 말해도 떨어지는 거 없다.”

세라랑 큐라는 나를 띄워주듯이  소매를 잡고 떠들어댔다.
오랜만에 띄워주는 말을 듣고 기분이 높아진 나는 웃으면서 대답했다.
그러고 나서 그녀들의 목소리는  이어지지 않았다.
진짜 나빴다. 뭐 안 떨어진다고 하니까, 바로 관두네.
이거 오늘도 빨아먹을 작정이었구나.



*





“어우 힘들어라.”


집에 도착하자마자 ‘미카엘’을 1층 무기 옮겨두는 방에 던져두고 딱딱해진 어깨를 두드렸다.
리타를 비롯해 엘리샤도 자신의 가방을  내려놓고는 자신의 장비를 정비하고는 옷을 갈아입기 위해 2층으로 올라갔다.


“성하. 그러고 보니, 오늘 낮에 길드에서 의뢰하나 받았는데 괜찮을까요?”
“어…? 나 의식 없을 때 받아 놓은 게 있어?”
“말없이 골라서 죄송해요. 에리가 꼭 필요한 거라고 해서….”
“괜찮아. 어차피 너희들이 가고 싶은 데로 골라야 수월해질 거 아니야?”

하늘거리는 하얀 실크 잠옷으로 갈아입은 리타는  눈치를 보더니 자신의 가방에서 돌돌 말린 종이를 건넸다.
뭔 이야긴가 했더니 나 없을  길드에서 의뢰 하나 받았다고 미안해하고 있는 것 같았다.
뭐 이런  가지고 미안해하는 건지.
어차피 마지막에 늦지 않게 마왕만 잡으면 나는 뭘 해도 상관없었다.
그보다, 리타는 내가 글 못 읽는다는 걸 까먹었는지 종이를 건네준 채 설명 하나 없었다.
나는 다른 용사들처럼 글자 해석 능력이 없어요. 소환자라서 말이라도 통하니 망정이지.


“아, 맞다. 죄송해요. 이거 읽어드려야 했는데….”

내가 읽지도 않고 시큰둥하게 종이를 휘적거리자, 그제야 눈치챘는지 다시 내게서 종이를 가져갔다.

“흠흠. 일단 제가 지도를 보여드릴게요.”

리타는 헛기침을 하며 자신의 가방에서  다른 종이를 꺼냈다.
의뢰서보다  배는 큰 종이를 펼치더니 다시 말리지 않게 무게가 나가는 것으로 양 끝을 고정했다.
거대한 대륙 하나를 중심으로 끝부분에는 섬들이 옹기종기 모여있었다.
역시나 알 수 없는 문자들로 빼곡하게 적혀있어 뭐라 쓰여 있는지는  수 없었다.


“여기가 우리가 있는 나라. 테베레스에요.”

리타가 손으로 가리킨 곳은 커다란 대륙의 동쪽에 있는 나라였다.
동서남북을 기점으로 나라마다 다른 색이 칠해져 있는 지도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푸른색으로 칠해진 나라를 보니, 대륙의 1/5 정도를 차지하고 있었다.
다른  나라도 고만고만한 크기였지만, 어느 나라는 2배 되는 크기를 가지고 있었다.

“여기는 무슨 나라야?”
“아, 거긴 엘슈펠 제국이에요.”
“으음.”

북쪽에 붉은색으로 칠해져 있는 가장 커다란 나라를 보고 있자니, 리타가 친절하게 설명해주고 있었다.

“남쪽에 있는 나라는 그로니시아 왕국이고요, 서쪽에 있는 나라는 다이센 왕국이에요.”

리타의 설명을 들으며 나라의 이름을 하나하나 기억하기 위해 노력했다.
알아두면 이쪽에서 마계를 못 찾을 때 타국에 가서 마계를 찾기 편할 것 같았다.
언제나 이렇게 준비를 철저하게 해두는 편이 확실하고 안전하다.
네 나라는 엘슈펠, 그로니시아, 테베레스, 다이센 순으로 컸다.
아무래도  만큼 엘슈펠은 제국이라 불렸다.
괜찮은 곳에 소환됐다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작은 나라에서 소환됐었구나.

“그래서, 우리는 완전 동쪽으로 갈 거예요.”
“거긴 바단데. 설마 놀러 가는 건 아니지?”
“아니, 지금 가을이에요. 일단 거기 마을 사람들에게서 피해 속출 사례가 늘고 있어서 진상 규명과 해결이 의뢰 달성 목표에요.”
“마계가 근처에 있을 수도 있겠네?”
“네. 그래서 에리가 미리 받아뒀어요.”

커다란 나라, 엘슈펠 제국을 멍하니 보고 있자니 리타가 이야기를 진행 시키기 위해 손가락을 스윽 옮겼다.
종이에서 사락 하고 움직이는 손가락을 유심히 따라가 도착한 곳은 바다였다.
푸른 파도가 그려져 있는 바다를 멍하니 보다가 뭐지? 싶어 고개를 들어 리타의 얼굴을 바라봤다.
리타는  말에 손을 저어 부정하더니 의뢰 내용과 달성 목표를 이야기했다.
리타의 말을 들어보니 그럴 법한 소리였다.
마족의 피해일 수도 있으니 가보면 마계를 찾을 수 있는 것 아닐까.

“둘 다 뭐해요?”
“이거 엘리샤가 받아줬다며?”
“에리. 왔어?”

그렇게 지도와 의뢰서를 펼쳐보며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뒤에서 엘리샤가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의뢰서를 흔들거리며 엘리샤에게 말을 걸자, 엘리샤는 방안으로 총총 걸어왔다.
테이블과 의자 위에 난잡하게 놓여있는 짐들을 한쪽으로 치운 엘리샤가 자연스럽게 내 옆에 앉았다.

“네. 제가 했어요.”
“마계면 좋겠네요.”
“지금 애들 수준이면 마왕은 금방이겠네.”

엘리샤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자신의 공을 더 칭찬해달라는 듯이 내 손에 손을 얹었다.
리타는 지도를 멍하니 보면서 일이  풀리기를 기도하는  같았다.
나는 리타와 엘리샤를 보면서 지금의 멤버를 떠올렸다.
지금 이 파티라면 마왕 토벌은 금방인 것 아닐까.

“아 그리고  부근에 마검을 만든다는 대장장이가 있어요.”
“어? 우리가 가는 곳에?”
“네. 그때 성하 씨가 말하던 도신이 잘린 검도 준비했어요.”
“다 내가 의식이 없을 때?”
“뭐, 도신이 망가진 검은 길드에서 구하기 쉬우니까요.”

엘리샤는 손바닥에 주먹을 가볍게 톡 내리치면서 뭔가 떠올렸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그러고 보니, ‘미카엘’이 내 손에서는 단순한 검이 될까 봐 검을 하나 더 만든다고 했었지.
당장에 필요 없을  같다고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스페어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달았다.
엘리샤도 자신의 키만 한 지팡이뿐 아니라 가방 안에 집어넣을 수 있는 작은 지팡이나 호신용 단검을 넣고 다니니까.
리타는 팔방미인이라 너무 다양한 무기들을 다뤄서 예외로 치자.
세라는 아무런 무기 없이도 마법을 쓸  있으니 예외고… 큐라는 본체의 발톱이나 마법을 그대로 발현하니 큐라도 예외다.
이렇게 생각해보니 예외 사항이 너무 많은데 우리 팀 괜찮은 걸까… 평범한 파티랑은 동떨어져 있는 기분이 든다.

[또 여기서 작당하고 있는 것이냐?]
“아니, 내일 출발할 곳을 알아보고 있었어.”
“어디 가는데요?”


큐라랑 세라는 둘이  노는지 떠드는 소리가  너머로 들린다.
문이 제대로 닫히지 않아서 방음이 되지 않는 건가 싶어서 고개를 돌리자, 문을 열고 안을 빼꼼 바라보는 큐라가 있었다.
세라도 큐라를 따라 들어와  사이로 얼굴을 내밀었다.
어디 간다는 소릴 하자마자 어디 놀러 가는 아이들 마냥 우다다 뛰어와서 테이블에 놓인 지도를 보는 애들을 보니 자연스레 미소가 지어졌다.

[어디 가기로 했느냐? 여기? 여기?]
“동쪽 해안이요.”
[오랜만에 바다의 향기를 맡게 되겠군. 좋아. 내가 단숨에 가게 해주지.]

큐라는 지도를 가리키면서 이곳저곳을 가리켰다.
오래 살아서 그런지 지도만 보고도 어딘지 어느 정도 꿰고 있는 것 같았다.
흥분한 듯이 엘리샤와 리타를 보고 지도를 손가락으로 짚으며 묻자, 엘리샤는 쓴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그러자 큐라는 팔짱을 끼고 고개를 끄덕이면서 자신감을 표했다.


“아! 큐라! 이번에는 내 사역마를 타고 가는  어때?”
[안 된다. 이번에도   뒤에 타도록 해라.]

이제 눈치챈 건데 집에서 자주 놀아서 그런가, 둘이 말 놓기로 했는지 세라가 말을 편하게 하고 있었다.
뭐 오래 알고 지낼 사인데 편히 이야기하면 좋은 거지.


“그럼 이번엔 세라한테 신세 좀 져 볼까?”
[성하….]
“번갈아 가면서 하면 좋잖아?”

그 모습을 보다가 씩 웃으며 세라를 바라보자, 큐라가 분한 듯이 나를 노려보았다.
전에 돌아올 때도 큐라를 타고 왔으니, 이번에는 세라한테 신세를 져도 문제는 없지 않을까.


“성하 씨는 오늘 밤에 세라를 안고 잘 생각인가 봐요?”
“어?”
“그야 그렇잖아요. 마나를 충당해줘야 나는 건데, 그걸 해안까지 써먹겠다니.”
“그렇게 되면 조금….”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만끽하고 있을 무렵, 갑자기 옆자리에서 싸늘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엘리샤의 말을 듣고 보니, 세라는 내가 주는 마나로 생활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럼 이번 의견은 물려야겠다. 하고 손을 뻗는 순간, 내 손이 누군가의 손에 잡혔다.


“그러니 오늘 밤은 저에요.”
[인기가 많군요. 제 주인님은.]

엘리샤가 눈을 빛내며 내 얼굴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 와중에 ‘미카엘’은 사람으로 변한  내쪽을 바라보며 자신의 감상을 입에 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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