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8화 〉episode5. 미카엘 (8)
“자네. 그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길래 ‘미카엘’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냐?”
[뭐? 내가 모습을 드러낼 리가 없잖아? 강제로 드러난 거라니까?]
연로한 마법사협회장은 자신의 수염을 쓸어내리고는 조심스레 다가와 내게 물었다.
아무래도 ‘미카엘’이 인간으로 변한 모습에 호기심이 생긴 모양이었다.
근데 얜 내가 뭐 하기도 전에 인간 모습으로 나타났는데 내가 뭐라고 해야 할 만한 것이 없었다.
뭐라 해야 할까, 하고 고민하던 중에 ‘미카엘’이 까칠하게 대답했다.
“좀 얌전히 있어.”
[헤읏.]
“자네, 혹시 마법에 흥미 없나?”
아무에게나 으르릉대는 ‘미카엘’의 머리를 가볍게 쳤다.
이상한 소리를 내는 ‘미카엘’을 내버려 둔 채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미카엘’ 하나 붙잡고 소란스럽게 하니 구경꾼이 몰려든 거겠지.
공포에 잠식되어 있던 감각이 조금씩 돌아오는 것 같았다.
그렇게 조금 안정되는 기분이 들자, 마법사협회장이 조심스럽게 손을 내밀며 내게 물었다.
‘미카엘’을 굴복시킨 방법이 궁금한 거겠지.
“전 마력이 없어요.”
“…마력이 아예 없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네.”
“그는 정말로 마력이 없어요. 마법은커녕 모험가 카드 하나 만들지 못하고 있거든요.”
한숨을 쉬면서 협회장의 손을 밀어냈다.
내 말을 신용할 수 없다는 강렬한 눈빛으로 내 몸을 훑어보았다.
이대로는 내 말을 믿을 것 같지 않아서 엘리샤를 힐끔 바라보자, 엘리샤가 한 발짝 나서서 나를 대변해주었다.
그래 이런 자리는 엘리샤의 목소리가 믿음직하고, 힘이 실린다.
[주인님?]
“검으로 돌아가. 인간 모습이면 귀찮아.”
[읏, 너무해요.]
여기서 ‘미카엘’이 괜히 인간 모습으로 설치고 있으면 귀찮아질 것 같아 원래대로 돌아가라고 명령했다.
‘미카엘’은 그래도 나를 주인이랍시고 대우는 해주려는지 내 명령에는 째깍째깍 잘 따른다.
근데 난 얠 데리고 가고 싶지는 않은데.
“마력이 없는 사람도 환영이네, 어떻게든 쓸 수 있게 해주겠네.”
“괜찮습니다. 성하의 마나가 어느 정도인지는 여기 큐라 씨도 잘 알고 있거든요.”
[네놈들이 평생 연마해도 가지지 못할 만큼의 양과 질을 가지고 있지. 함부로 대하려고 하지 마라.]
마법사협회장의 제안에 엘리샤가 먼저 거절하고, 옆에서는 큐라가 거들었다.
분명 나보다 제대로 거절해줄 것 같아서 맡긴 건데, 왜 일을 키우는 기분이 들까.
저 할아버지의 표정이 더 심상치 않아졌다.
드래곤이 인증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마나 소유자가 되어버렸다.
보는 눈도 많은데 이제 나는 귀찮은 일에 휘말리겠구나.
“제발, 우리 왕국을 위해 기여 해주게! 용사지 않은가?!”
“전 용사가 아닌데요?”
“검은 머리카락. 이국적인 외모, 그 모습은 필시 용사일 터. 마법사협회장인 이 내가 자네에게 합당한 대가를 치르고 도움을 청하겠네.”
그렇게 지끈거리는 머리를 잡고 있을 무렵 내 시선을 싸늘하게 만드는 대사가 들려왔다.
용사? 내게 그런 이름이 붙은 적이 있던가.
내가 내 머리카락 색에 귀찮은 설명을 피하려고 용사를 자칭한 적은 있어도, 타인에게서 용사라고 불린 적은 없었다.
불쾌하다. 나를 낙오자로 보는 놈들과 같은 용사라는 놈들과 같은 호칭으로 불리는 것이.
이를 까득 깨물고 ‘미카엘’을 쥐었다.
영롱한 빛을 발산하는 ‘미카엘’은 다행히도 사람의 마나를 먹고 힘을 축적한다고 한다.
내가 칼자루를 쥐는 순간 ‘미카엘’의 날에서는 평소보다 더 강렬한 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성하 님! 참아요!”
“마법사협회장님. 그는 용사가 아닙니다. 낙오자라고 불린 소환자일 뿐이니까요.”
세라는 황급히 내가 일어서려는 것을 막았고, 리타는 옆에서 내 설명을 해주고 있었다.
제길. 이러면 나만 속 좁은 놈 같잖아.
나는 세라의 손을 살포시 잡아주고 그대로 몸을 일으켜 주변을 둘러보았다.
‘미카엘’은 내 감정에 감응하는 듯 내 손에서 우웅. 하고 거세게 울렸다.
천천히 떨려오는 이 감각에 감정이 고양되는 것 같았다.
[성하…?]
큐라의 떨리는 목소리가 들렸다.
시야가 밝아지는 것과 동시에 주변 사람의 표정이 한눈에 들어왔다.
진정해야 하는데,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모두가 나를 멸시하고, 낙오자라고 깔보는 사람들의 모습이 겹쳤다.
세라를 때려죽이고 나 몰라라 고개를 돌리던 사람들과 모습이 겹쳤다.
겹치고, 겹치고, 겹치고, 겹쳐서 당장이라도 구역질이 날 것 같았다.
그들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아직도 내 눈에는 그 모습들이 선했다.
[무섭다. 지금 네 모습이 너무 무섭다.]
검을 쥔 손에 무언가가 매달렸다.
눈을 굴려 시선을 옮기니, 그곳에는 떨리는 손을 움직여 겨우 입을 여는 큐라가 있었다.
큐라가 왜 날 무서워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그렇게 어리둥절하며 주변을 둘러보자, 큐라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성하…?”
“성하 씨… 조금만 진정해주세요.”
“서, 성하 님. 무서워요.”
리타는 새파래진 안색으로 나를 부르고 있었고, 엘리샤는 침착하게 나를 진정시키려 했다.
세라는 자신의 머리를 감싼 채 겁에 질린 목소리로 나를 부르고 있었다.
그렇게 마법 하나 부리지 못해서 무능이라고 욕하고 낙오자라고 깔보던 사람들이 나를 겁에 질린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미카엘’ 때문인가?
적을 많이 만들지 말라 했던가.
당장에 빠른 속도로 뛰고 있는 가슴에 손을 얹고 심호흡을 시작했다.
“무능한 내가 뭐 그리 무서워서 벌벌 떠는 건지, 알 수가 없네. 이런 게 내 손에 있어도 그냥 날이 무뎌지지 않는다. 정도의 능력일 뿐이잖아.”
[네가 지금 뿜어내고 있는 마나를 모르는 거냐?]
“성하… 지금 성하가 뿜어대고 있는 마나 좀 줄여주세요. 아이들은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할 거에요.”
내가 뭘 뿜어내고 있다고? 이거 때문인가?
옆에서 큐라와 리타가 하는 알 수 없는 소리에 나는 쥐고 있던 ‘미카엘’을 떨어뜨렸다.
경쾌한 소리를 내며 바닥에 몇 번 부딪힌 ‘미카엘’은 갑자기 팟, 하고 인간으로 변하더니 엉덩이를 감싸 쥐고 있었다.
[주인님이 가차 없는 건 알지만 이렇게까지 막 다룰 줄은… 휘둘러주는 거 아니었어요?]
“네가 마나를 너무 뿜어대서 애들이 무섭대.”
[그야, 주인님이 가지고 있는 마나를 그대로 제가 뿜어내니까 그러죠.]
“조절 못 해?”
[으음. 모르겠는데요. 애초에 인간들이 가지고 있는 마나가 너무 적어서 조절해야 했던 적이 없어서 경험이 없어요.]
눈가에 눈물을 머금은 ‘미카엘’은 조심스레 나를 원망하듯이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내가 여기서 홧김에 자신을 휘둘러 줄 거라 기대한 것 같았다.
애초에 아직도 트라우마로 남을 것 같은 광경을 본 직후라 모든 게 적으로 보였던 것뿐이다.
어차피 곱게 보던 사람도 아니었으니 겁을 주든 말든 상관은 없지만, 내 동료들마저 겁먹게 하고 싶진 않았다.
“죄송합니다. 얜 그냥 반납할게요.”
[에? 주인님?! 안 돼요! 저 놓고 가면 발악할 거에요?]
“…성하 님이 그냥 가져가는 편이 좋을 것 같습니다.”
한숨을 내쉰 채 마법사협회장에게 사과했다.
뭐 그 사람이 날 낙오자랍시고 알고 있던 것도 아니니, 용사인 줄 몰랐다 해도 큰 잘못은 없으리라.
‘미카엘’을 떠넘기듯 사람으로 변한 그녀의 등을 살짝 밀쳐 떠넘기자, 미카엘은 당황한 목소리로 내게 항의했다.
그 모습을 본 마법사협회장은 ‘미카엘’에 대한 소유권을 포기하는지 묵묵히 내게 떠넘겼다.
소유욕이라는 게 없는 건가? 아니면 ‘미카엘’의 힘이 너무 강해서 그런 건가.
“‘미카엘’이 사람의 형상을 할 수 있을 줄은 연구하는 몇십 년 동안 어디 문헌에서조차 본 적이 없습니다. 성하 님이라면 가능하다는 거겠죠.”
[주인님. 보세요. 주인님이 인정 안 해도 결국 주인님이 제 주인님이라니까요?]
아까 하얀 세상에서 그녀를 쥐어패고 있던 것이 다른 사람 인상에 크게 남은 것 같았다.
애초에 막 다루면 주인 같지 않다고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잘 모르겠다. 이런 세상의 가치관 같은 거 잘 알리도 없지.
“미안해.”
“아니에요. 성하 씨. 그리고, 세라와 큐라 씨의 모험가 카드를 따로 받아놨어요. 오래 걸릴까 봐 저한테 따로 맡겼거든요.”
“오! 이거 제 거에요?”
[호오. 이 나무는 르미야 거목의 재질인가?]
“잘 아시네요. 역시 드래곤이셔서 그런가?”
겁먹게 한 게 아직도 미안해서 조심스레 애들을 보며 사과했다.
그러자 엘리샤는 괜찮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자신의 가방에서 나무로 된 카드를 두 개 꺼냈다.
자랑하듯이 꺼낸 카드를 세라와 큐라에게 건네자 세라는 들뜬 듯이 받아들었다.
금으로 된 테두리에 집중하는 세라와 달리, 큐라는 카드의 원재료인 나무를 보고 흥미롭다는 듯이 웃었다.
그런 평소 같은 모습을 보니 내 마음도 조금 풀리는 기분이 들었다.
주변을 힐끔 바라보니 주변을 바라보던 사람들이 하나둘 자리를 비우기 시작했다.
“성하 님. 죄송하지만, 나중에 시간이 나시면 마법사협회를 한 번 들러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마법사협회장도 그런 이야기를 하고는 자신이 이끌고 온 교수진들을 데리고 돌아갔다.
하나둘 모두가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는 와중에 나는 이렇게 하루를 버렸다.
아무리 성검 ‘미카엘’을 얻기 위해서라지만 황금 같은 하루를 버리게 된 것이 조금 아까웠다.
마왕 하나 잡으려면 또 얼마나 걸리려나.
[성하. 저런 이상한 검은 쥐지 않는 것이 좋겠다.]
[뭐? 너 끽해야 드래곤이잖아? 내가 너보단 오래 살았어.]
마나의 흐름에 민감한 드래곤이라 그런지, 큐라는 아까 마나의 흐름에 공포라도 느꼈는지 창백해진 얼굴로 내게 애원하듯 말했다.
나는 뭐라 말하려던 것도 멈추고, 쓴웃음을 지어 넘기려 했다.
하지만 ‘미카엘’은 못 들어주겠다는 듯이 큐라한테 삿대질하면서 서열정리를 시작하려 했다.
[흥. 신님의 작품인 내가 얼마나 잘났는데. 애초에 마나는 내 것이 아니라 주인님 것…]
“검으로 돌아와.”
[으아앙! 주인님 나한테만 이래! 가혹해! 하지만 좋아!]
“미친 건가?”
‘미카엘’은 처음 만났을 때처럼 거만한 표정과 오만한 자세로 큐라를 깔보고 있었다.
아무래도 신이 만든 성검이라고 하니 어느 정도 기세가 눌린 큐라는 부들부들 대기만 할 뿐 입을 열진 못했다.
이대로 가다간 밤새 밖에서 투닥대기만 할 것 같아서 ‘미카엘’의 머리카락을 꽉 당겼다.
울먹이듯이 말하던 ‘미카엘’은 억울한 듯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흥분한 얼굴을 하며 검으로 돌아왔다.
보는 내가 황당할 정도로 어이없는 광경이었다.
이게 성검이라니 신이라는 놈 정신상태가 이상한 건지, 아니면 그냥 작품이 실패작인 건지 여러모로 생각하게 된다.
[우으. 저런 미친년이랑은 말 섞기 싫다. 어떻게 나보다 연장자인 동료가 있을 수가 있느냐!]
“아니 진정해. 그보다, 엘리샤 르미야 거목은 뭐야?”
“아, 르미야 거목은 지도 한가운데 있는 신성한 나무인데요. 중심에는 아인족이 있고, 그 중심에는 그들을 이끄는 장로회가 있어요.”
“오오. 아인이라.”
울먹이면서 내게 항의하는 큐라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진정시켰다.
조금 잠잠해진 큐라를 안은 채로 엘리샤에게 르미야 거목에 관해 물었다.
엘리샤는 아차. 하면서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며 뭔가를 생각하더니 입을 열었다.
아인이라면 동물 귀를 한 인간들이 있는 거잖아. 엄청 귀엽겠다.
[아인? 동물 귀를 한 인간이 좋은 것이냐? 그런 거라면 나도 그런 귀는 있다.]
“넌 그냥 하프 드래곤이잖아?”
[그것도 아인이라 쳐줄 수 있는 것 아닌가?]
내가 눈을 반짝이자 큐라는 자신도 질 수 없다는 듯이 내 손을 잡고 자신의 귀를 만지게 했다.
드래곤이라는 것을 자랑하듯이 거대한 붉은 비늘이 귀를 감싸고 있었다.
“어… 성하 님! 저도 그런 거 가능해요!”
“넌 그냥 능력 아니야?”
세라는 큐라의 귀를 계속 만져주고 있는 게 샘이 났는지 능력으로 뭔가 뾰족한 귀를 만들고선 내보였다.
그런데 세라 특유의 탁기로 만든 귀라는 게 너무 훤히 보였기에 웃음이 절로 나왔다.
애가 살아온 햇수는 많으면서 하는 짓은 영락없는 아이 같았다.
“그러고 보니, 큐라 님의 옷도 사줘야 할 것 같군요.”
“뭐야. 안 사줬어?”
“그 로브 벗기면 알몸이에요.”
[벗어도 상관없다만.]
“상관 많으니까 안 돼.”
리타는 로브만 걸치고 있는 큐라를 보더니 턱을 어루만졌다.
리타의 말에 절로 눈이 큐라의 로브 안쪽으로 향했다.
사이로 힐끔 보이는 큐라의 유두가 눈에 들어왔다.
리타의 말을 들은 큐라는 신경 쓰지 않는 듯이 로브의 단추를 풀려고 했다.
나는 급하게 큐라의 손을 붙잡고 단추를 풀지 못하게 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