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37화 〉episode5. 미카엘 (7) (37/98)



〈 37화 〉episode5. 미카엘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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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일어나질 않는 거죠?”
“그건 저도 잘….”

성하가 쓰러진 지 많은 시간이 흘렀는데도, 성하는 일어날 기미 없이 미카엘을 잡고 있었다.
강한 마나의 흐름이 느껴지는 와중에도 뭔가 일어날 낌새가 보이지 않으니 엘리샤의 마음은 갑갑해졌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 수 없어 답답해지니 옆에 있던 마법사협회장에게 불었다.
마법사협회장이 다른 시험자들보다 오래 걸리는 성하의 모습에 뭐라 말하지 못한 채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성하 님 돌아올 수 있는 거예요?”
“아마, 성하는 돌아올 거야.”

세라는 엘리샤 뒤에서 고개를 힐끔 내밀더니 걱정하는 투로 말을 뱉었다.
그러자 리타는 그런 세라를 안심시키기 위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날이 지나도록 깨지 않는다면 이 자리의 모두를 죽여버리겠다.]
“힉?!”
“큐라 씨. 그런 협박은 아직 하지 말아 주세요. 불안해지잖아요.”
[흥.  성하가  일어나는지 설명도 못 하는 놈들 상대로  더 물을 수 있겠나?]


그런 모습을 유심히 보던 큐라는 뾰족한 송곳니를 드러내며 마법사협회장이 있는 쪽을 노려보았다.
그러자 마법사협회장은 긴장했는지 침을 꿀꺽 삼켰고, 협회장의 뒤에 진을 이루던 교수들은 모두 새된 소리를 내며 공포에 질려했다.
큐라가 너무 겁을 주자, 엘리샤는 아직 때가 아니라는 듯이 성하에게서 눈을 떼지 않은 채 큐라를 제지했다.
큐라는 엘리샤의 모습을 보며 콧방귀를 뀌더니 이내 성큼성큼 걸어가 성하의 옆에 자리잡고 앉았다.

“해가 지는군요.”

길드 앞에서 쓰러진 성하를 둘러싼 채 벌써 저녁이 되어갔다.
낮이 되기 전부터 모여있었는데, 어느새 해는 저물어갔다.
조용히 성하를 보며 자신의 미래를 걱정하는 마법사협회 사람이 늘어나는 가운데, 조용히 리타의 목소리가 그들의 불안을 고조시켜갔다.


“읏.”


그리고, 어느 목소리가 다시 길드 앞에 정적을 만들어냈다.




*


“…….”

‘미카엘’에게서 아까 봤던 것이 과거라 들었을 때, 내가 여기서 볼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을 줄 알았다.
내가 기절한 사이에 모두가 죽어버려서  이상 보지 못했을 거라고 떠올렸는데, 당장 눈앞에 보이는 동료들이 있었다.
옆에는 큐라가 있고, 엘리샤 뒤에는 세라와 리타가 있었다.
안심되는 순간에, 긴장이 풀리자마자 구역질이 올라왔다.


“우에에에엑!”
“성하?!”
[왜,  이러는 것이냐?!]
“성하 씨?!”
“성하 님!”

오늘 내내 먹은 게 없는데도 강제로 올라오는 구토감에  번이고 바닥에 뭔가를 필사적으로 게워냈다.
눈앞에 큐라의 시체가 떨어지고, 리타의 몸이 세로로 갈라져서 내장이 뚜둑뚜둑 흘러내리는 것이 아직도 두 눈에 선히 남아있었다.
두 손에는 차갑게 식은 세라의 몸이 만져지는 것 같았고, 당장에라도 화상을 입은 것처럼 온몸이 따끔거렸다.
그때는 몰랐는데, 당장에 현실로 돌아와  당사자들을 눈에 담고 있노라니 몸이 버티질 못하는  같았다.
어느 정도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런 것은  오만이었는지 파도처럼 후유증이 몰려왔다.


“협회장.”
“이, 이건 원래 그런 겁니다…! ‘미카엘’의 시험 내용은 원래 인간이 정신적으로 버티기 힘든 것을 보여주기 때문에 원래는 폐인이 되기도 합니다!”
“그런 위험한 사항이 있었는데도 입을  다물고 있었군요?”


위액을 게워내느라 힘들어하자, 뒤에서는 리타가 조심스레 다가와 내 등을 쓸어내려주고 있었다.
숨을 헐떡이며 잠시 쉬고 있는데, 엘리샤가 마법사협회장을 나지막이, 차가운 목소리로 불렀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걸 느낀 마법사협회장은 다른 교수들과 함께 필사적으로 자신을 변호했지만, 마지막으로 자신을 변호하지 못할 큰 실수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미카엘’은… 어떻게  거죠? 어. 성하?”


리타가 조심스레 다가와 ‘미카엘’에 관해 물어봤지만, 내게 중요한 것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리타의 손을 만지고, 팔뚝을 만지고, 그녀의 얼굴을 만졌다.


“리, 리타 잘 붙어있는 거지?”

이것마저 허상일까 두려웠다.


[성하. 뭘 하는 거냐?]
“성하 씨…?”


많은 사람이 있든 말든 리타의 몸을 끌어안고, 그녀의 심장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그리고 그렇게 두근거리는 소리를 듣고 나서야, 나는 안심할 수 있었다.
안도감에 깊은숨을 내쉬자 옆에서는 큐라와 엘리샤가 나를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뭐냐?!]

큐라를 끌어안아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고,


“서, 성하 씨? 보, 보는 눈도 많은데요? 괜찮으신 건가요?”


엘리샤를 보고 있는 힘껏 끌어안아 온기를 느꼈다.
내 돌발행동에 주변이 술렁이는 것 같았지만 그런건 지금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성, 하… 님?”

마지막으로 세라가 뒤에서 주춤거리는 것이 보였다.
마법으로 바뀌어 있는 흰 머리카락과 까무잡잡한 그녀의 피부.
세라가  있는 걸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두근거렸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그녀가 맞아 죽은 채 사람들에게 외면받은 장면이 겹쳐 보였다.
그 장면이 겹쳐 보이는 순간, 지금 당장이라도 구토감이 속을 울렁이게 했다.

“성하 님! 괜찮으세요?!”

아아, 너무 괴롭다. 너무 심란하다.
‘미카엘’에게 그런 능력이 있는 줄도 모르고  번이고 끔찍한 광경을 보았다.
미카엘을 때린 직후에, 나는  번이고 동료들이 어떻게 죽는지 봐야 했다.
 방식은 볼 때마다 달랐고, 나는 점점 무너져가고 있었다.
괜찮아.

“살아있어서 다행이야.”


세라의 작은 몸을, 내 품에 끌어안았다.
이 온기가, 그녀가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 주었다.

“서, 성하 님. 아파요.”
“미안해.”

눈물이 제멋대로 흘러나왔다.
주체할 수 없는 표정에, 감정. 모든 것이 제멋대로였다.
차갑게 식었던 세라의 몸의 감촉을 아직도 잊지 못해서 더욱 심란했다.
내가 봤던 것들이 모두 거짓이었다 하더라도, 너무 생생하게 겪은 탓인지 마음이 심란해졌다.
과거라는 소릴 들어서 반쯤 포기하고 정신을 차린 것도 있었다.
동료들이 죽어가는 모습과 내가 죽는 것을 반복했다.

[대체 성하가 왜 저러는 것이냐. 인간. 말해봐라.]
“저, 저것은 인간이 버티기 가장 힘든 과거의 모습을 봐서 그런 걸 겁니다. 버티지 못할 때까지  번이고 반복해서 보여주는  ‘미카엘’이기에….”
“그럼 지금 성하 씨의 모습은 우리의 죽음을 봐서 그런 거겠군요.”
“그럴지도 모르죠.”


저기서 뭔가 대화를 나누는 것 같았다.
나는 세라의 손을  잡고 각오를 다졌다.

“괜찮아. 나는 괜찮아. 내가 저 망할 무기를 부러뜨려줄게.”
“성하 님… 뭔가 있었던 건가요?”
“괜찮아.”

몇 번이고 그녀를 안심시키려 했다.
나는 아무렇지 않다고 안심시키려 하는데, 잘 안 되는 것 같았다.
다들 내 반응에  혼란스러워하고, 알  없는 표정을 짓는  같았다.

“뭐야!”

누군가의 새된 비명이 뒤로 들려왔다.
콰가가각.
알 수 없는 굉음이 모든 사람의 귀를 닫게 하고, 새하얀 빛이 모든 사람의 눈을 멀게 했다.
우우웅. 하고 울리는 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세라가 있다는 것은 감촉으로 느낄 수 있는데,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미카엘’이 주인을 뵙습니다.]

증오스러운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천천히 고갤 돌리자, 새하얀 경치에서 ‘미카엘’이 서 있었다.
내가 이를 드러내자, 그녀는 검은 드레스를 우아하게 잡고는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뭐야… 또 볼 일이 남았어?”
[아니요. 그저, 당신을 주인으로 인정하고자 인사차 온 것입니다.]
“몇 번을 때려야 정신을 차리는 거야?”
[힉?! 때, 때리지 마세요!]


주먹을 쥐고 성큼성큼 다가가자, ‘미카엘’은 잡고 있던 분위기를 깨며 새된 소리를 냈다.

[워, 원래 제가 하던 일이었단 말이에요. 너무 화내지 말아 주세요….]
“원래 하는 일이 뭔데?”
[저, 저는 인간이 만든 마검이 아니라 신이 만든 성검이라 그런 거예요. 저는 신님의 이야기로 움직여요.]
“취미 지독한 신이네.”
[그야 그만한 힘을 빌려주니까요. 거만하게 구느라 주인님의 상처를 건들게 된 것은 죄송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상처라니, 네 맘대로 허상을 보여준 거잖아.”
[죄송해요!]

‘미카엘’이 금색 눈을 반짝이면서 말하니, 어느 정도 이야기는 듣고 나서 때려도 될  같다고 생각했다.
인간이 만들면 마검이고, 신이 만들면 성검이란 사실은 알았다.
그리고 ‘미카엘’은 신이 만든 성검이라는 것도 알 수 있었다.
그런데 그게 전부였다. 내게 보고 싶지 않은 세상을 보여준 지독한 취미를 가진 놈이란 것도.

“나는 너 같은 검 따위 쓰고 싶지 않은데.”
[웃. 저, 정말 죄송해요. 저는 진짜 주인님 같은 사람은 처음 봐요. 모두가 저를 그렇게 해서라도 가지려고 하는데….]
“…….”

모두가 나를 낙오자라고 부르는 세상에서, 나를 낙오자라 부르지 않은 유일한 사람들이다.
다른 누군가가 어떻게 되든 간에, 그건 내 알 바가 아니었다.
하지만 내 옆에 있는 그녀들이 죽는다면, 나는 지탱할 곳이 없어진다.
그녀들이 죽는 것을 보는 것보다, 내 앞의 ‘미카엘’을 포기하는 것이 훨씬 나았다.
저울질을 어떻게, 몇 번을 해봐도 그것 외엔 달리 떠오르지 않았다.

“됐어. 주인님이라 하지 마. 없던 일로 하고, 그냥 가.”
[읏, 저, 저를 그렇게 쉽게 내팽개치시는 건가요?]
“필요 없어.”
[제, 제발 저를 써 주세요… 건방지게 굴어서 죄송해요! 워, 원래 용사님들이라면 저를 쓰려고 난리란 말이에요!]

‘미카엘’이 신의 작품이라 그런진 몰라도, 자신이 그러려고 하지 않아도 은근히 거만함이 몸에 배어 있었다.
모두가 그녀를 원하고, 바랐기에 그녀는 사용되지 않더라도 자신의 가치를 온몸으로 알고 있었을 것이다.
의식이 있는 검이니 모르기도 힘들겠지.


“다른 용사나 찾아봐.”
[아니에요. 주인님이  알아주시면 돼요!]


그 긴 시간 동안 나는 ‘미카엘’에 대해 증오심을 쌓아갔다.
그리고 ‘미카엘’을 만날 때마다 그녀를 때렸다.
그녀의 형상이라 하니 마음 놓고 코뼈나 광대뼈를 내려앉게 하고, 갈비뼈나 팔다리를 으스러뜨렸다.
 번이고 반복되니 은근히 흥분하는 것 같길래 중간에 관뒀지만.

“왜 그러는데?”
[저보다 강한 사람이 제 주인님인 건 당연한 사실이잖아요…?]
“난 약한데, 마법 하나 못 쓰고.”
[아니에요! 주인님이 지닌 마나가 제 영역까지 지배하는 거 모르세요?]


뭐야 그게.
나는 내가 마법 한 번 쓴 적이 없는데 자기 영역이 나한테 지배당했다고 말하는 ‘미카엘’이 볼품없어 보였다.
얼마나 약하길래 나한테 뺏기는지 모르겠다.


[아악! 제발 저 좀 데려가요!]
“아 떼쓰지 마! 좀 놔! 아직도 세상이 하얗게 보이잖아!”
[악! 아파! 그, 근데 그거 아세요? 주인님은 저 가져갈 수밖에 없어요.]
“왜, 뭔데 또?”
[이거, 주변 사람들이 모두 우릴 보고 있거든요.]
“뭐?”


내가 코웃음을 치며 무시하려고 하니 ‘미카엘’이 갑자기 내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늘어졌다.
아무리 소녀 모습을 하고 있더라도 그녀와 지낸 그 긴 시간 동안 그녀를 때리는 데 죄책감을 가진 적은 없었다.
‘미카엘’을 떨어뜨려 놓기 위해 그녀의 머리를 다른 발로 꾹꾹 짓밟고 있는데, 그녀는 아프다고 비명을 지르면서도 은근히 황홀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뭐야. 시발. 성검이  마조히스트인 거지? 사디스트여야 하는  아닌가?
그렇게 생각하면서 그녀를 짓밟아 떨어뜨리려고 할 무렵, 그녀는 자신이 이겼다는 얼굴을 하면서 입꼬리를 올렸다.
그녀의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던 나는 아차. 하며 고개를 들었다.


[성하. 제법… 이구나?]

서서히 하얀 배경이 일그러지더니 처음으로 큐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성하 씨. 박력 있는 남자였네요?”
“성하는 원래 강한 남자니까요.”
“성하 님이 어린애를 쥐어패고 있어요….”

그 뒤로 엘리샤, 리타, 세라가 말을 거들었다.
뭐야, 이걸 보고 있었다고?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 새에 ‘미카엘’은 [헤헤.]하고 웃었다.

“검이 사람으로 바뀐다고?”
“‘미카엘’이 사람으로 바뀐다?!”
“성검이라 했단 말이다!”
“대체 이게 어떻게  겁니까 성하 공!”

어느새 현실로 돌아와 있었다. 그런데 현실에서도 ‘미카엘’은 사람의 모습을 띄고 있었다.
아이고 머리야. 대체 왜 사람의 모양이냐고.

“아 좀! 사람으로 변하는 검은 필요 없다니까?!”


순간적으로 보는 눈이 많아져서 대놓고 짓밟는 건  하겠지만, 그래도 밀어내는 것은 할 수 있었다.
어떻게든 매달리려고 하는 ‘미카엘’을 떨어뜨려 놓으려 하지만, ‘미카엘’도 성검이라 그런가 엄청난 힘으로 내 다리를 꽉 잡고 있었다.
이 세계에 와서 나보다 완력이 약한 사람을 찾은 적이 없는  같다. 죄다 나 보다 세네.


[주인님~]
[뭐, 뭐냐! 이건 네 동생이냐?!]
“아니 머리 색이 같다고 가족일 리가 없잖아?”

주변이 사람으로 변한 ‘미카엘’의 모습에 집중하는 사이에 큐라가 경계하듯이 몸을 주춤거렸다.
‘미카엘’을 보던 마법사협회장은 신기한 것을 보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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