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5화 〉episode5. 미카엘 (5)
*
나는 ‘미카엘’의 검을 잡았고, 그 뒤로 이 꼴이다.
어두워진 시야가 점점 원상태로 돌아오나 싶었는데, 갑자기 푸른 하늘이 붉게 물들었다.
쿵. 하는 순간에 일변한 분위기와 시야에 혼란스러움만 가중됐다.
“여긴 어디야.”
처음으로 뱉은 말과 함께 뭔가가 발에 걸렸다.
붉은 하늘에 뜬 새빨간 달에 시선이 빼앗겨 못 봤나, 싶어 어두워진 시야를 애써 보려고 눈살을 찌푸렸다.
“허억.”
내 발에 걸렸던 것이 시체였음을 알게 되자 순간적으로 숨이 멎는 것 같았다.
숨이 쉬어지질 않는 기분이었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이세계에 소환당했던 것처럼 나는 또 새로운 세계로 소환된 걸까?
지금의 상황에 지레짐작만 한 채 앞으로 걸어나갔다.
당장 이 순간에 대해 알고 있는 게 하나도 없어서 불안하기만 했다.
[끄으윽?!]
붉은 하늘을 날아다니던 붉은 드래곤이 비명을 지르며 내 앞에 쿵 하고 떨어졌다.
나는 그 드래곤의 이름을 알고 있었다.
여긴 다른 세계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성하… 도망치라고 말 하고 싶어도, 도망칠 수 없구나… 너를 만나 즐거웠다.]
큐라는 그런 말을 하고 나서는 거친 숨을 내뱉었다.
그리고 이내, 그 숨은 조용해지더니 큐라는 숨을 거두었다.
뭐지, 이건 현실인가? 현실이 아닌가?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대체 뭘 보고 있는 걸까.
큐라의 날개는 갈가리 찢어져 흩어져 있었다.
치명상을 당한 건지 이곳저곳 붉은 피를 토해내던 상처들이 점점 피를 토해내지 않게 되었다.
[너는, 무엇이냐?]
인지할 수 없는 존재가 눈앞에 서 있었다.
검은 모자이크로 가려진 존재는, 마치 자신을 알아보지 말라는 듯이 자신의 존재를 감추고 있었다.
베일을 몇 겹이나 사이에 두고 이야기하는 기분까지 들었다.
그리고 큐라처럼 울리는 이 목소리는, 분명 다른 존재의 것이 분명했다.
그 강대한 큐라가 졌다. 분위기나, 상황을 보면 내 눈앞의 존재는 단 하나였다.
“마왕.”
[나를 아는가? 아니, 알 수밖에 없는 건가.]
“어째서….”
[나를 깨운 건 너희들이잖느냐.]
“내가 널 깨울 리가 없는데….”
그 분위기만은 그 무엇보다도 압도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피부로 느껴지는 살기에, 지금 당장이라도 도망치고 싶었다.
포식자 앞에 몸이 얼어붙는 것처럼 그녀의 눈을 본 그대로 몸이 굳어버려 움직일 수 없었다.
그녀는 태연하게 자신의 주먹을 쥐었다 펴면서 나를 응시했다.
내가 마왕을 깨워? 그럴 리가 없는데.
아니, 설마 마왕을 물리치기 위해선 마왕을 깨워야 하는 건가?
“여긴 마계가 아니잖아…?”
[그래, 여긴 인계다. 지금 남은 용사는 너 하나뿐이다.]
“뭐?”
주변을 돌아보았지만, 아무리 둘러봐도 내가 아는 곳 같았다.
마계가 아닌 것 같았다.
이 상황을 확인받고 싶어서 떨리는 목소리로 질문을 던지자, 그녀는 뭘 그런 당연한 것을 묻냐는 듯이 대답을 돌려주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충격적인 사실을 알려주었다.
남은 용사가 나 하나뿐이라고?
원래 세계로 먼저 도망가지 못한 용사는 다 죽어버렸다는 뜻인가?
[용사라고 부르기도 아깝지. 일개 소환자 놈들이라고 해야 하나.]
“그런, 그럴 리가 없어.”
[큭, 크큭. 꼴불견이구나. 네 그 일그러진 표정을 보아하니 이번 소환자들은 다 버러지가 틀림없구나?]
나보다 강하고, 빠르고, 똑똑한 놈들이 모두 죽었다는 소릴 들으니 절망감이 싹트는 것 같았다.
주변을 둘러봐도 살아서 나를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은 하나도 없는 것 같았다.
추적추적 내리기 시작한 비는, 왜인지 피비린내가 나는 듯했다.
[이건, 네놈의 동료였지.]
“리타…?”
[아아. 그래, 그런 이름인가. 리타는 네놈을 지키려다가 이렇게 몸이 갈라졌다. 보이나? 사람이 두 갈래로 나뉘는 것이?]
멍하니 피비린내 나는 땅을 내려다보고 있을 때, 마왕이 말을 걸어왔다.
동료? 남아있는 동료가 있는 건가?
고개를 든 순간 나는 내 눈을 믿지 못했다.
동공이 풀린 채 마왕의 손에 머리채를 잡힌 리타는 이미 죽어있는 시체였다.
리타의 몸은 목을 기준으로 두 갈래로 갈려져 이미 내장이란 내장은 다 쏟아내고 있었다.
참혹한 광경이었다.
대체 이런 걸 보여줘서 어쩌려는 걸까.
대체 이런.
“윽. 엘리샤는…? 세라는?”
[…글쎄다. 남은 둘은 본 적이 없구나? 어디로 도망갔지?]
리타의 시체를 보고 패닉이 오는 것을 겨우 버티고, 주변을 황급히 둘러보며 발을 옮겼다.
당장이라도 미쳐버릴 것 같은 시체의 산 위에서 엘리샤와 세라를 찾기 위해 움직였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당장이라도 나를 도울 수 있는 동료가 필요해.
나는 아무런 무기가 없단 말이야.
내 손은 지금 빈손이야. 나를 도와줄 동료가 필요해.
“…유, 성하….”
“어?”
어디선가 내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에 발이 멈추었다.
“낙오자.”
“낙오자.”
“낙오자.”
“낙오자.”
당장 시체의 산에서 많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를 향한 증오의 목소리, 나만이 살아남았다는 원망의 목소리일까.
“나도 안다고.”
당장이라도 무너질 것만 같았다.
나는 내가 원하는 대로 원하는 만큼 가서 새로운 세상을 보는 모험이 즐거웠다.
하지만 그런 것들이 모두 순전히 내 힘만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나는 안다.
리타가 있었기에 나는 모험가 생활을 간접적으로나마 즐길 수 있었다.
세라가 있었기에 나는 마계를 쉽게 찾을 수 있다는 안도감을 받았다.
엘리샤가 있었기에 나는 다른 정치에 엮인 일들이나 돈, 권력에 굴하지 않을 수 있었다.
큐라가 있었기에 나는 어디든 쉽게 마음을 놓고 다닐 수 있었다.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 하는 나는 결국에 정말 낙오자가 되었다.
“나도 안다고!”
미쳐버릴 것 같았다.
나도 도움만 받고 살아왔다는 사실을.
어느 세계에서나 그렇다.
부모님의 돈을 빨아먹고서 취업준비랍시고 발길을 돌리던 그때도, 나는 부모님에게 도움을 받고 있었다.
나는 어딜 가든 똑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이렇게 깨닫게 될 줄은 몰랐다.
이렇게 깨닫고 싶지는 않았다.
“너만, 너만 살아서.”
“너만 살아남아서.”
내가 밉다며 나를 원망하는 목소리들이 허공에서 들려온다.
그 목소리들은 이내 내 발목을 잡기 시작했다.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너는 무력하다고, 나를 붙잡았다.
나만 살아남아서.
나만?
“미안해.”
그들을 뒤로하고 나는 정면을 바라보았다.
슬픈 눈으로 리타를 바라보았다.
당장에 미쳐버릴 것 같은 순간에도, 나는 그녀를 곧게 응시했다.
사람이 저렇게 잘려나갈 수도 있구나.
잔혹하고, 잔악하다.
나를 원망하는 목소리는 묻어버린 채 리타에게 사과하는 말을 입에 담았다.
그녀를 지키지 못했다. 내가 무능해서.
그녀를 죽도록 내버렸다. 내가 무능해서.
빈손이 내게 아무런 무기가 없다고 윽박지르는 것만 같았다.
그 손을 꽉 쥐어 가슴팍에 갖다대었다.
“무기라면 있어.”
나 자신이, 하나의 무기가 되면 된다.
큐라와 싸웠을 때처럼, 나는 나만의 무기를 사용하면 된다.
[할 마음이 들었는가.]
“그래.”
[동료도 죽고, 널 도와줄 주변 사람 하나 남지 않았는데도?]
“그래.”
[네 주변이 모두 적으로 둘러싸였다 하더라도?]
“그래.”
간단한 질문이었다.
모두가 죽어버렸다고, 내가 포기할 수는 없었다.
다들 노력하다 죽었을 것이다.
내가 리타처럼 되더라도 포기할 수는….
[그 각오가, 얼마나 갈까?]
그렇게 내 시야는 또 바뀌었다.
*
순간적으로 바뀐 시야는, 여느 때와 같은 왕도였다.
테베레스에서 볼 수 있는 시장, 그리고 엘리샤와 어제까지만 해도 같이 있던 집.
엘리샤가 갖고 있던 집 앞에 멍하니 서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 집에 들어갈 수 없었다.
“…세라?”
주변에는 엄청나게 많은 사람이 나와 내 파티를 에워싸고 비난하는 목소리를 던졌지만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왜인지 그녀의 머리카락에 걸렸던 마법이 풀려, 검은 머리카락을 빛내는 세라가 내 앞에 싸늘하게 늘어져 있었다.
어째서? 왜 죽은 거지?
집 문 앞에 늘어진 세라를 조심스레 끌어안았다.
너무 차갑고, 너무 차갑고… 너무…
생물이 이렇게까지 차가울 수가 있던 건가? 세라가 원래 이렇게 차가웠던 걸까?
제대로 사실을 인지하고 싶지 않았다.
“세라….”
내가 품에 안은 그녀의 이름을 불러보아도, 그녀에게 대답이 돌아오는 일은 없었다.
온몸에 멍이 들어있고, 머리카락은 뜯겨 있었고, 얼굴은 어딘가가 음푹 파여있었다.
광대뼈는 함몰되고, 갈비뼈는 부러졌는지 가슴도 푹 들어가 있었다.
어떻게 이렇게 잔악한 짓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어떻게 이런 짓들을 저지를 수 있단 말인가.
여기서 세라만 몬스터들에게 당했을 거란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그렇게 생각하며 고개를 들어, 주변을 둘러보았다.
“왜 내 눈을 피해?”
품에 안은 세라를 더 세게 끌어안은 채 주변을 바라보자, 주변 사람들이 내게서 눈을 피했다.
고개를 돌리면, 돌릴수록, 내게서 눈을 돌리는 사람이 늘어났다.
그렇게 모두가 고개를 돌리고 있을 무렵 나는 확신할 수 있었다.
마왕이 문제가 아니야. 이 사람들, 모두가 내게서 적이다.
모두가 내게 악의를 품고 있는 걸 거야. 모두가 내게서 빼앗지 않으면 속이 시원치 않은 걸 거야.
이런 세상에서 내가 살자고 마왕을 잡아 평화를 가져다주는 게 맞는 일일까?
“왜 내 눈을 피하냐고!”
“진정하세요. 성하.”
“성하 씨….”
왜. 라는 질문에는 누구도 대답해주지 않는다.
세상은 원래 그랬다.
그 질문에 대답해주는 사람은 결국 내가 구해야 했다.
“입을 다물어?”
검을 들었다.
그 순간, 무언가가 내 곁에 나타났다.
[그게 맞는 건가?]
큐라인가. 하고 시선을 돌린 순간, 그곳에는 아까 나를 이곳으로 보낸 검은 존재가 있었다.
아까보다는 조금 눈에 보이는 듯 했지만, 어차피 보이지 않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마왕…? 네놈 짓이냐?!”
그 존재가 나타난 순간, 갑작스레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재가 되어 흩어졌다.
원래 아무것도 없던 것처럼 한산해진 내 곁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내 뒤에 슬픈 듯이 서 있던 리타도, 엘리샤도, 큐라도 다른 사람처럼 재가 되어 흩어졌다.
그와 동시에 내가 품에 안고 있던 차가운 세라마저.
“어째서 내게 이런 걸 보여주는 거야. 어째서…?”
[아직도 내게 덤빌 마음이 남아있나?]
“…덤비면, 내게 이런 걸 또 보여주는 거야?”
[그래. 네 마음이 무너질 때까지.]
재가 되어 사라지는 세라를 어떻게든 끌어모으려 했지만, 애석하게도 바람은 내 마음을 몰라주는지 재가 되어버린 세라를 허공으로 날려 보냈다.
눈물이 났다.
차오르는 목소리로 겨우 내 앞의 존재에게 물었다.
그것은 내게 차갑게 대답했다.
마왕은 내 마음이 꺾이기를 바라는 걸까.
[아직도, 정신을 덜 차린 모양이구나.]
“…….”
허상일까, 아니면 진짜일까.
감이 오질 않는다. 세상이 휙휙 바뀌고, 내 정신만 잠시 오락가락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것만은 확실했다.
내 앞의 저것을 가만히 둘 수는 없다는 것.
[그렇다면 다음을 보여주지.]
마왕이 손가락을 튕기자 딱, 하는 소리와 함께 내 시야가 바뀌었다.
*
“안됩니다! 안 된다고요! 아버지…! 아바마마! 폐하! 안 됩니다!”
누군가의 새된 비명이 들려왔다. 나는 그 목소리를 잘 알고 있었다.
나는 멍하니 정면을 바라보았다.
여긴 궁 안인 것 같았다. 맨 처음 소환되고 나서 그 뒤로 한 번도 볼 일이 없었던 그곳.
그 안에서는 많은 병사가 주변을 메우고 있었고, 가장 높은 의자에는 왕이 시큰둥하게 앉아 있었다.
아래 길목에 서 있는 귀족들은 싸늘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엘리샤…?”
내 앞에서 필사적으로 왕을 부르는 그녀의 모습이 눈에 담겼다.
조심스레 목소리를 꺼내는 순간, 왕의 입이 움직였다.
“이건 내 불찰이다. 둘 다 화형에 처하도록 해라.”
“알겠습니다.”
왕이 한숨을 내쉬고는 손을 까딱였다.
그러자 옆에 있던 귀족 하나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함과 동시에 병사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안 돼! 안 됩니다!”
엘리샤는 발악하며 어떻게든 버티려고 했지만, 왕녀였다는 것도 거짓말인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병사들의 태도가 차가웠다.
병사들은 나와 엘리샤에게 단단한 목제 수갑을 걸더니 궁 밖으로 이끌고 나갔다.
엘리샤는 비명을 지르며 왕에게 필사적으로 호소하는가 싶더니, 이내 나와 눈이 마주친 그녀는 슬픈 눈으로 미소짓고 있었다.
“이게 뭐야…?”
갑자기 이런 세상에 내쳐진 나는 이게 무슨 상황인지 알 수 없었지만, 뭔가 저질렀다는 것만은 알 수 있었다.
나는 성에서 끌려나가는 동안, 그녀의 눈물을 멍하니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