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1화 〉episode5. 미카엘 (1)
멍하니 그 의미를 곱씹었다.
대체 어디에 내가 고백받을만한 일이 있었을까.
나는 그녀를 처음 본 게 어제였고, 심지어 큐라한테 얻어맞느라 바빠서 같이 있던 시간도 적었다.
같이 있었다고 한다면 오늘 길드에서 한바탕 한 것뿐인데, 대체 무슨 심경의 변화를 준 건지 감도 오지 않았다.
리타한테 들은 건가 생각해봐도, 내가 능력이 있던 것도 아니라 무용담처럼 들릴만한 이야기는 없었다.
끽해야 리타에게서 판정 승리 한 번 따낸 정도려나. 아니면 세라와 그 오빠를 스스로 쓰러뜨린 것일까.
역시, 아무리 생각해도 어디에도 그녀가 내게 고백까지 올 만한 대목은 보이지 않았다.
“아니, 잠깐만 역시 모르겠어. 고백도 왜 하는지 모르겠어.”
벌써 머리가 지끈거린다.
설마 이런 이야기를 하려고 매력 어쩌고 이야기가 나온 건가?
음, 내가 눈치가 없는 건가.
아니야. 일단 진짜 고백받을 이유가 하나도 떠오르지 않아.
“성하 씨는 제가 싫은가요?”
어느새 표정도 바뀌어서는 내게 몸을 들이대고 있었다.
그녀가 한 발짝 다가오면, 나는 자연스레 한 발짝 뒤로 물러섰다.
그렇게 등이 벽에 닿을 때쯤, 그녀는 벽에 손을 턱, 얹고서 고개를 들었다.
이게 바로 벽쿵이란 걸까. 이런 거 당하면 설렌다던데, 왜 나는 지금 심란할까.
“나는, 성하 씨가 좋은데… 왜 성하 씨는 제 마음도 몰라주는 걸까요….”
“우리 진짜 만난 시간도 별로 안 되거든?”
엘리샤의 분위기가 바뀌었다.
표정만 바뀐 줄 알았는데, 방금까지의 모습은 다 가짜였다는 듯이 변해 있었다.
내가 원인인 건가 싶지만, 나는 진짜 억울했다.
구해주려고 애썼다고 반하는 건 절대 아닐 텐데, 왜 이러는 걸까.
아까 그녀도 인정했다. 연심이 생길만한 시간도 아니라고. 그런데 진짜 왜 이러는 걸까.
“그, 뭐냐. 다른 용사들은 몰라도, 나는 일단 처음 보는 사람한테 고백하는 사람은 아니야.”
소설이나 만화에서 보던 이세계 소환 용사가 되었다고 설치는 놈들을 보면 볼수록 나는 내 주제를 빠르게 파악해야 했다.
아니, 누구보다 이 세상이 내게 눈치를 주고 있었고, 나는 그 눈치를 채야 했다.
몇 번이고 내 상황이 나를 낙오자라고 이야기하고 있었다.
인터페이스, 스테이터스 창 하나 띄우는 용사의 특성이 없어 낙오자라고 낙인이 찍힌 채 교회로 쫓겨났었다.
마력이 없어서 나만의 모험가 카드 하나 만들지 못해 비웃음을 샀을 때도, 나는 낙오자라고 불렸다.
이미 세상은 나를 낙오자로 보고 있었다.
그러니 다른 용사들이 당연하게 하는 일들을 나는 할 수 없었다.
“그러니까, 네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확실히 말해주면 좋겠어. 장난으로라도, 혹여 잠시나마의 관심을 요구하는 거라도 이래서는 안 된다는 걸 알았으면 해.”
없는 만큼, 자존심은 떨어져 간다.
설령 내가 그러지 않기를 바란다 해도, 내 의도와는 다르게 어디선가 무의식적으로 내 주제랍시고 내 자리를 찾는다.
누구나 그렇고, 나라고 예외가 될 수는 없었다.
남자 용사는 공주에게, 여자 용사는 왕자에게 구혼할 기회가 있다 한들 어떤가. 나랑은 관계없는 이야긴데.
공주가 누구랑 짝을 맺든, 그것은 용사들의 이야기지, 나의 이야기는 아니었다.
그런 엘리샤가 내게 고백을 한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뭔가 이유가 있을 것 같았다.
“…아니에요.”
그녀는 벽에 짚은 손을 꽉 쥐며 입을 열었다.
내가 뭔가 잘못 짚고 있다는 듯이 이를 까득 깨물고 있었다.
그래. 내게 뭐라도 이유를 말해줘. 뭐라도, 내가 납득할만한 이야기를 해줘.
“장난도 아니고, 제게 유일하게 관심을 가지지 않아서 그런 것도 아니에요. 그리고, 무엇보다 죄책감도 아니거니와 저를 한강에서 구해줘서 그런 것도 아니에요.”
내가 예상한 것들이 하나하나 부정당해 간다.
내가 생각한 모든 것들이 모두 아니라는 말 하나로 깨져갔다.
그럼 대체 뭐란 말인가.
정말 나를 진심으로 좋아한다고 말한다기엔 내가 보여준 것이 하나도 없었다.
나와 이야기 한 시간도 한두 마디뿐이고, 같이 있던 시간도 얼마 되지 않았다.
차라리 큐라랑 있던 시간이 길었으면 더 길었지 엘리샤와 같이 있던 시간은 얼마 안 되었다.
“한눈에 반했어요. 사귀어 주실 건가요?”
“음….”
그녀는 벽을 짚지 않은 다른 한 손을 꽉 쥐고서 자신의 가슴에 올려두었다.
그리고 진심을 호소하듯이 떨리는 목소리로 천천히 읊었다.
전처럼 괜히 원래 세계로 돌아갈 건데? 했다간 ‘브레이커’로 배에 칼빵 맞을 것 같았다.
뭐라고 해야 그녀가 적당히 넘어가 줄까. 하던 와중에 좋은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엘리샤랑 사귀는 건 거의 약혼 아니야?”
“그렇죠…?”
“나 같은 놈이랑 약혼하면 왕국의 위엄이 실추될지도 몰라.”
“괜찮아요. 저는 좋아요.”
강적이다.
자신의 왕국에 대한 실추 따위 걱정하지 않는 엘리샤의 모습에 할 말을 잃을 뻔했다.
“게다가 한눈에 반했다고 반려를 정하는 건 조금 섣부른 판단이 아닐지도 몰라. 넌 나에 대해 잘 모르는 것뿐이잖아.”
“아니에요. 전 누구보다 성하 씨를 잘 알아요.”
“리타에게 들은 것 말고는 모르잖아?”
그녀를 조심스럽게 설득해보려 해도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고 미소를 지으며 내게 대답했다.
리타에게 들은 것과 요 이틀 본 내 겉모습밖에는 모른 텐데, 뭘 안다고 저렇게 말하는 걸까.
“정말 잘 알아요.”
“…마음이 끝까지 변하지 않는다고 하면 마왕 잡고 나서 대답해줄게.”
나에 대해 잘 알 리가 있나.
차라리 나랑 옆에 있던 리타나 세라가 훨씬 잘 알 것 같았다.
하지만 뭐 거기서 트집을 잡아봤자 좋은 소리가 나올 것 같진 않아서 대충 둘러댔다.
이런 식으로 고백할 정도라면, 이런 행동은 얼마 안 가서 그만두겠지.
“그때, 원래 세계로 도망가는 건 아니죠?”
“글쎄… 그때 내가 마음이 바뀌면….”
“그러면, 저는 대답도 듣지 못하고 내쳐지는 건가요?”
“미안한데, 이 세계에 좋은 기억이 없어….”
엘리샤가 아니더라도, 리타나 세라, 큐라가 이 말을 들으면 반발할 수도 있지만 솔직하게 말을 이었다.
엘리샤라면 조금은 내 심정을 논리적이게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처음 질문에는 살짝 섬뜩한 기분이 들었는데, 내 말을 들을 생각인지 얌전히 있었다.
천천히 벽을 짚은 손을 내리고 주먹을 말아쥔 채 자신의 앞에 꼭 모으고서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정말, 그렇게 버릴 생각인 건가요?”
말하는 것도 ‘아’ 다르고 ‘어’ 다르다고, 나는 내 세계로 돌아간다는 것뿐인데 엘리샤가 그리 말하니 죄책감이 들었다.
버리는 게 아닌데, 왜 그러는 걸까.
자신의 세계로,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는 것뿐인데 그 말을 들으니 마음이 조금 약해지는 기분이었다.
“성하 씨는, 우리가 그저 살아 돌아갈 수단에 불과한 건가요?”
내가 입을 꾹 다문 채 말을 고르고 있자, 엘리샤는 한술 더 떠서 내 죄책감을 부추겼다.
정말 뭐라고 해야 할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아직 마왕 잡지도 않았는데, 왜 사람이 늘 때마다 이런 트러블이 생기는 건지 모르겠다.
돌아버릴 것 같다. 이러다가 나를 두고 파티를 해산해버리면, 나는 아무것도 못 하는 머저리가 되어버린다.
원망스럽다. 누구의 도움 없이 설 수 없는 나 자신이.
원망스럽다. 나 혼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 자신이.
왜 나는 용사들과 같이 소환됐으면서, 용사는 되지 못한 걸까.
“성하 씨. 괴로우신가요?”
어금니가 갈릴 것 같이 깨물어 현실을 마주한 순간에, 내 손에 따스한 감촉이 전해져왔다.
정신을 차려보니 엘리샤가 내 오른손을 두 손으로 감싸고 있었다.
그녀는 그 와중에 내 모습을 보고서 괴로워하고 있다는 걸 간파했다.
아니, 내가 인상을 쓰고 있어서 그런 건가.
“몰라. 나는, 집에 가고 싶어.”
나는 그녀의 대답에 명료히 대답하지 못하고 내 기분만을 말했다.
집에 가고 싶다. 단순하지만, 어려운 한 마디였다.
솔직하지 못한 나 자신이 겨우 할 수 있는 한 마디였다.
그래. 라고 대답하지 못하는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말이었다.
“그러고 싶다면 그래도 돼요.”
그녀는 내 손을 자신에게 끌어놓고, 손등에 입을 맞추었다.
갑작스러운 행동에 놀랐지만, 다음에 한 그녀의 표정이 내 가슴을 옥죄이게 했다.
“아니, 나는… 네가 싫다는 게 아니야.”
“그럼요?”
엘리샤는 슬픈 눈을 한 채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그녀를 붙잡으면 붙잡는 대로, 붙잡지 않으면 붙잡지 않는 대로 일이 꼬일 것 같았다.
이 세계에 오고 나서 첫날의 다짐을 떠올려라.
이 세계는 모두 나를 미워하고, 나는 그곳에서 감정을 배제한 채 살아나가야만 한다.
목표를 달성하면 나와는 연이 없는 세계이고, 관계다.
몇 번이고 곱씹었던 그 날의 다짐을 떠올려라.
“성하 씨. 제가 처음부터 돕지 못해서 미안해요.”
“어…?”
“저는 첫날부터 당신을 알고 있었어요. 리타도, 제가 보낸 거예요.”
그런 그녀는 내 다짐을 유리를 깨듯이 산산조각내고 있었다.
그런 말을 들어버리면 나는 무슨 표정을 지어야 하는 거지.
리타를 보내 도와주던 사람이 엘리샤였다.
나는.
“성, 켁?!”
그녀의 목을 졸랐다.
바들바들 떠는 손으로 천천히 그녀의 목을 졸랐다.
엘리샤가 리타를 보내는 바람에, 나는 이 세계에서 처음으로 믿은 사람에게 배신을 당하는 기분을 알았다.
도와줬다고 생각할 수는 있어도, 나는 그때의 감촉을 아직도 잊지 못했다.
“시이발….”
그 와중에 나란 놈은 약하고, 약해서 목을 조른 손마저 강제로 풀렸다.
진짜 이렇게 비참한 일이 다 있냐.
“미안, 해요. 성하 씨. 제가 좀 더 단단히 일렀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해서 죄송해요.”
리타의 돌발행동이란 걸 알면서도, 그녀는 자신의 책임이라고 하면서 쓴웃음을 지었다.
그녀의 모습을 보니 모든 것이 허탈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나는 뭐 하는 거냐. 엘리샤는 내게 악의를 가지고 리타를 보낸 게 아니었는데, 애먼 곳에 화풀이하고 있었다.
“하, 하하. 미안해.”
“성하 씨.”
“미안해.”
나는 벽을 등받이 삼아,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헛웃음만 나올 뿐이었다.
“아니에요. 그래서 제 대답은 언제 돌려주실 생각인가요?”
“…….”
자괴감에 찌들어 고개를 숙여 한숨을 내쉬고 있는데, 그녀는 아무렇지 않게 내 앞에 쭈그려 앉았다.
그러고는 내 얼굴을 잡고 자신과 눈을 마주치게 하고선 질문했다.
대답이라고 한다면, 아까 했던 고백의 대답을 말하는 걸까.
“솔직히 지금 제가 무섭죠?”
“어…?”
그녀는 왕성에 살아서 그런가, 눈치가 빨랐다.
표정이 조금 일그러진다 싶으면 바로 알아차리고, 미묘한 미소를 지었다.
정곡을 찔린 나는 태연한 얼굴도 하지 못한 채 얼 타는 소리를 내버렸다.
“성하 씨. 성하 씨에게 ‘미카엘’을 줄게요. 그리고 호신용으로 성하 씨가 원하던, 도신이 끊긴 검도 하나 구해서 마검으로 만들어 줄게요. 대신에 저를 그만큼 안아주시겠어요?”
“안아달라고?”
“아무리 동료라지만, 제 지위를 쓰고, 제 돈을 쓰는데 저도 그만한 대가를 받고 싶은데 말이에요.”
멍하니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자니 그녀는 내 양손을 맞잡은 채로 나와 시선을 마주했다.
그리고는 소악마 같은 미소를 지으며 혀를 살짝 내밀었다.
공주님이라고 다 고상한 게 아니구나.
연보랏빛 머리카락이 어깨를 겨우 넘어 찰랑거리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그녀의 목덜미가 눈에 들어왔다. 내가 방금 손으로 붙잡은 탓에 붉어진 목덜미가.
그녀의 말을 들은 직후라 그런지 무의식적으로 침을 꿀꺽 삼켰다.
“헤에, 싫진 않으신 거네요?”
“싫다기보단, 하지 않는 게 당연한 거라고 생각해.”
“세라랑은 했다면서요.”
그녀는 장난스럽게 내 표정을 관찰하며 내 반응을 떠보는 것 같았다.
이럴 땐 단호하게 말해서 이런 장난을 멈추게 해야 했다.
단호하게 그녀의 말을 끊는 순간, 그녀의 표정이 굳어졌다. 목소리는 낮아지고, 눈빛은 차가워졌다.
사람의 모습이 일변한다는 게 이런 걸까. 싶을 정도로 아까의 분위기는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사라졌다.
싸늘한 기분에 식은땀이 등줄기를 타고 흐르는 것 같았다.
“장난이에요. 저라도 산 채로 뜯어먹히는 감각보단 그쪽을 선호할 테니까요.”
“…….”
장난이 아닌 것 같았는데.
순간적으로 공포에 질린 나머지, 표정을 푼 그녀의 모습에도 쉽사리 긴장을 풀지 못했다.
왜 고백을 받았는데, 협박도 같이 받는 기분이 드는 걸까.
거절할 수 없게 자꾸 판이 깔리는 것 같았다.
“성하 씨. 당신이 좋아요.”
팟, 하고 내 시선이 흐트러졌다.
정신을 차리니 나는 바닥에 누워있었다.
아무리 힘이 세다지만, 체격 차이로 이렇게 나를 쉽게 넘어뜨릴 줄이야.
엘리샤는 내 배를 깔고 앉은 채 고개를 숙여 말했다.
처음 문을 닫았을 때 했던 말을 입에 담으며 나를 사랑스럽게 쳐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