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화 〉episode4. 승급심사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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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을 겨우 수습하고 나서 방을 배분했다.
1층에는 사람이 잘만한 방이 2개 밖에 없었기 때문에 내가 하나 쓰기로 하고, 나머지는 다 2층을 쓰기로 했다.
어딜 배정하려고 해도 방을 고르는데 싸움이 일어나는 것 같아 결국 이렇게 됐다.
그냥 얌전히 골랐으면 누구는 1층을 썼을 텐데, 참 이상한 애들이었다.
결국, 비어버린 방 하나는 무기나 짐을 두기로 했다.
“뭐해?”
자는 방은 2층에 배정받았어도 노는 것은 1층이 편한지 큐라와 세라는 후다닥 뛰어다니고 있었다.
정신연령은 어린 애들이라 그런지 후다닥 뛰어다니는 걸 좋아하는 것 같았다.
그 와중에 짐을 쌓아둔 방에서 엘리샤가 특이한 모양의 단검을 들고서 이리저리 둘러보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날은 특이한 재질로 만들었는지, 빛을 발광하는 유리 같아서 나도 모르게 멍하니 바라보았다.
“뭐야 그건?”
“이건, 제가 모험가 활동을 하기 위해 챙겨온 단검이에요.”
“호신용? 마검 같은 거야?”
“네. 마검에 속하는 검이죠. 이름은 ‘브레이커’에요.”
보다 보니, 너무 궁금해서 결국 그녀에게 다가가 그 단검에 관해 물었다.
그녀는 내 물음에 미소지으며 단검을 자랑하듯이 내밀었다.
단검의 날은 영롱하게 빛이 나는 것이 사람을 홀리는 것 같았다.
스멀스멀 흘러나오는 특이한 기분에, 나도 모르게 손을 내밀게 됐다.
“날은 만지면 안 돼요. 죽을 수도 있어요.”
“엑. 난 어차피 안 죽는데….”
아름다운 단검의 날에 손을 가까이 대려 하자 엘리샤는 식겁하면서 단검을 내뺐다.
허공에 손을 가른 나는 멍하니 그녀를 바라보았다.
엘리샤는 갑자기 내뺀 것이 미안했는지 변명하는 듯한 모습으로 단검을 칼집에 집어넣고 나에게서 멀리 떨어뜨렸다.
애초에 내가 죽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 뭐가 그리 위험하다고 하는 건지 잘 모르겠다.
이름이 ‘브레이커’라니 참 마음에 들었는데 아쉬웠다.
“이건 생명체라면 뭐든지 죽일 수 있는 명성 높은 단검에요. 왕성 소유였는데, 제가 모험하러 나오면서 하나 챙겨뒀죠.”
“뭐든지 죽인다니?”
“생명체가 품고 있는 마나를 폭주시켜서 안에서부터 무너뜨리는 검이에요. 그래서 이름이 ‘브레이커’ 인 거고요.”
“너무 사기 아이템 아니야?”
그녀는 조심스럽게 단검을 감싼 검집을 쓰다듬으면서 무기에 대한 설명을 시작했다.
뭐든지 죽여서 ‘브레이커’라니 중2병 감성이 스멀스멀 올라오는데, 뭔가 멋졌다.
그나저나, 단상에서 이야기 나누자마자 파티 참가했으면서, 모험 나올 때 챙겨왔다니 이미 다 짜놓고 나온 건가.
참으로 치밀한 사람이었다. 내가 누군지 알고 있던 걸까? 내 얼굴 한 번 본적 없으면서 신기했다.
이름만 들어서는 내가 그런 사람일 줄은 몰랐을 텐데.
“마나 소비가 엄청난 데다가, 사용 제한이 있어요. 앞으로 두 번 쓰면 날이 가루로 변할걸요?”
“두 번이라니.”
“원래 세 번인데, 과거에 연적을 쓰는 데 한번 사용됐다고 해요.”
“연적이라.”
마나를 엄청 소비하면 내가 쓸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역시, 마검은 사용자가 그에 맞는 마나와 마력을 소유하고 있어야 했다.
까다로운 무기였다.
그래도 ‘미카엘’은 패시브 능력이 하나 달려있으니까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네. 그래서 연적을 죽이는 검이라고도 불렸어요. 웃기죠?”
“그러네.”
그녀는 검집을 찬 검을 휙휙 휘두르면서 말했다.
왜 그런 무시무시한 검을 들고 있는 걸까.
“이걸로 마왕 한 번 찌르면 끝!”
“너무 사긴데.”
“대신 이거 한 번 쓰면 일반인은 제 몸 하나 가누지도 못할걸요? 게다가 단검이잖아요. 마왕 상대로 엄청 다가가야 하는 문제도 있고요.”
엘리샤는 단검을 허공에 가르며 말했다.
뭔가를 찌르는 시늉을 하면서 새하얀 이를 보이고 미소지었다.
턱을 어루만지면서 조용히 검을 보고 있자니, 엘리샤는 내 말에 동의하는 듯 고개를 끄덕이면서 검 끝을 살포시 만졌다.
고급 가죽으로 만들어진 검집이라 그걸 씌우고 있는 단검은 참 비싼 단검이겠구나 하는 생각까지 들게 했다.
3회 사용 후면 끝이라니, 어디 설명서가 있는 걸까. 아니면 제작자가 있는 걸까.
“그거 아세요? 마검 제작하는 사람이 따로 있는 거.”
“뭐야. 제작자가 있는 거였어?”
“네. 우리도 하나 만들까요?”
“그런데 왜 다른 사람은 안 만들어?”
“그야, 마검에 들어가는 마나는 주문자가 넣어야 하거든요.”
멍하니 단검을 바라보고 있자니, 그녀는 단검을 까딱거리면서 내 생각을 읽은 듯 자연스레 주제를 이어나갔다.
마검 제작자가 있다면 마검에 대한 설명서가 있는 것도 당연했다.
그녀는 쉽게 만들 수 있다고 하니 참 허탈하게 느껴졌지만, 이내 그 뒤를 잇는 설명이 입을 다물게 했다.
왜 마검이 적은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지만, 그렇게 생각하니 ‘브레이커’를 주문한 사람은 대체 얼마나 화가 났던 걸까.라고 새삼 깨닫게 된다.
“난 마력이 없으니까….”
모험가가 자신의 무기를 하나만 들고 다닐 일은 없었다.
그것은 마법사라도 예외는 아니었다.
자신의 무기를 빼앗기거나 부러질 때, 혹은 잃어버릴 때를 대비해 하나 정도는 대비해 둔다.
그것이 보조용이든, 호신용이든 간에.
아무리 ‘미카엘’이 내 손에 들어온다고 해도, 하나 정도는 예비로 챙겨두면 좋지 않을까. 하고 생각한 순간에 세라와 눈이 마주쳤다.
나는 마력이 없어서 마검 같은 건 만들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내 마나를 먹고 발산해주는 애가 하나 있었다.
“아니, 나도 단검으로 하나 만들래.”
“무슨 생각이라도 있나요?”
“세라가 있으면 나도 만들 수 있어.”
“아.”
나와 눈이 마주친 세라는 큐라와 뛰놀던 것도 멈추고 서서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다.
세라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로 엘리샤에게 말하자, 엘리샤는 조심스럽게 내가 보는 곳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러고는 내 의도를 알아차렸는지 작은 탄식을 내뱉었다.
“뭘 만드시려고요?”
“부러진 검으로 하나만 준비해줄래?”
“부러진 검으로 마검을 만드는 건 너무 낭비 같은데요… 일단 알겠어요. 도신이 끊어진 거면 되는 거죠?”
“응.”
엘리샤는 못 말리겠다는 듯이 손으로 이마를 짚더니 단검을 가방에 집어넣었다.
단검을 만들러 가는 날에는 세라한테 마나를 엄청 주긴 하겠지만, 나 스스로도 사용할 수 있는 마검을 만들 수만 있다면 한 번 정도는 참을 수 있었다.
그녀는 내 요구에 걱정하는 태도를 보였지만, 내 다짐한 듯한 목소리에 졌다는 듯 한숨을 내뱉었다.
“성하 님? 무슨 이야기 하고 있었어요?”
“나도 마법 쓸 수 있게 마검 만들어달라는 이야기 하고 있었어.”
[뭐야. 왜 갑자기 성하한테로 가는 거냐?]
세라는 자신이랑 눈 마주쳐놓고도 엘리샤랑만 대화하고 있는 게 심술이 났는지 불을 힘껏 부풀리고는 내 배를 톡 쳤다.
세라와 뛰놀던 큐라는 세라가 갑자기 내게로 우다다 달려오는 걸 보고는 뒤늦게 따라오는 것이 보였다.
“우와! 성하 님도 이제 마법 쓸 수 있는 거예요?”
[성하도 마법 쓸 수 있는 거냐? 나와 대등한 힘을 가지게 되겠구나.]
“아니, 그 정돈 아니지.”
[무슨 소릴 하는 게냐. 성하는 아직도 자신의 몸에 있는 마나의 가치를 모른다.]
“맞아요. 성하 님은 자신의 가치를 모르고 있어요.”
세라가 들뜬 듯이 목소리를 높이자, 큐라는 그 한 마디에 뭔가를 알아차린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마법을 쓸 수 있도록 만들면 좋다는 거지, 쓸 수 있게 된다는 확증도 없었다.
그런데 벌써 마법을 쓴다는 게 확정인 것처럼 큐라는 나를 비행기 태워주고 있었다.
그러더니 세라는 큐라의 말에 동의하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둘 다 내 몸을 뜯어먹은 애들이라 그런지 서로 통하는 게 있나?
“저, 큐라 씨. 세라. 잠깐 나가주시겠어요?”
[뭐냐. 왜냐?]
“왜요?”
“잠시 성하 씨랑 할 중요한 이야기가 있어서요.”
[…알겠다.]
“네에~”
큐라랑 세라랑 이야기를 하면서 그런가? 하고 고민하고 있을 때쯤, 갑자기 엘리샤가 웃으면서 큐라와 세라를 내보냈다.
처음에는 경계하는 듯한 모습이었지만, 엘리샤가 부드럽게 넘기자, 그제야 알아들었는지 다시 밖으로 나가 뛰놀기 시작했다.
밖에는 리타도 뭔가를 하는지 뭔가 지직거리는 소리가 났다. 요리라도 하는지 맛있는 냄새가 코를 찔러왔다.
“성하 씨. 문 좀 닫아주시겠어요?”
“어? 아. 어.”
애들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절로 웃음이 나왔다.
너무 멍하게 있었는지, 엘리샤의 말에 반응이 느렸다.
그녀의 말을 듣고 문을 바로 닫을 때, 어느샌가 그녀가 등 뒤로 다가와 있었다.
“저, 엘리샤?”
“성하 씨.”
“왜 그래…?”
엘리샤는 가슴이 닿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뒤에서 꼭 끌어안은 채 놔주질 않았다.
당황하는 목소리로 불렀지만, 그녀는 나를 놔주지 않은 채 대답할 뿐이었다.
나긋나긋이 들려오는 포근한 목소리가, 편안하게 들려왔다.
“성하 씨는 왜 다 여자만 데리고 있는 건가요?”
“아니… 리타가 말해줘서 아는 거 아니었어? 교회로 쫓겨났는데, 거기서 마침 리타가 도와주게 된 거였고, 세라는 어쩔 수 없이…”
“저는 매력이 없나요?”
“난 엘리샤 본 날이 별로 안 되는데…? 게다가 며칠 지난다고 연심같은 게 생길 리 없잖아.”
그녀는 뭔가 꾸짖는 것 같은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그녀가 하는 질문에 뭐라 대답할 말이 없었다.
왕성에서 쫓겨나 교회로 강제 위탁 당했을 때 리타한테 떠넘겨진 것뿐이고, 마계를 찾기 위해서 마족이 필요했었는데 마침 세라만 남아 데리고 있는 것뿐이었다.
오히려 엘리샤는 리타가 데리고 온 것이고, 큐라는 안 데리고 가면 좆될 것 같아서 데리고 온 것이었다.
거창하게 이해한다고 해 놓고서, 떼 놓고 오면 내가 나쁜 놈 같아 보이니까.
“그렇죠. 하루 이틀로는 연심 같은 게 생길 리 없죠.”
“그러고 보니, 마왕 잡으면 공주랑 결혼할 기회가 주어지는 거라도 있어?”
“있어요. 그것도 결정권은 저희한테 있지만, 용사님들한테는 다 말해주는걸요? 물론 여자 용사님들은 왕자님이고요.”
“그럼 내가 알 턱이 없었네.”
왜 이리 엘리샤가 안기는 건지 모르겠다.
그녀는 내 말에 허탈한 웃음소리를 내고 있었다.
엘리샤가 나를 뒤에서 안은 바람에 나는 그녀의 표정을 읽을 수는 없었다.
뭐, 지금 그녀가 왜 이러고 있는지도 이해할 수는 없었다.
좋아하기엔 너무 빠른 시간이다. 게다가 한 나라의 공주였기에 내가 손댈만한 사람도 아니었다.
“난 용사가 아니니까. 마왕을 잡아도 기회는 없잖아?”
나는 내 주제를 잘 파악하고 있다.
슬픈 현실이란 것을 알기에 애써 웃으며 아픈 말을 입에 담았다.
역시 아픈 말을 입에 담으면 입술이 떨리고 속이 쓰라렸다.
그렇게 말을 꺼내고 나니, 그녀는 그제야 내 말을 듣고 깨달았는지 내 배를 두른 손에 힘을 주었다.
배가 조이니 조금 아프다.
“미안해요. 그랬죠. 다른 용사님들은 몇 번이고 구혼해서 그런가, 제가 주제넘은 소리를 했었나 봐요.”
그녀는 슬픈 목소리로 내게 사과했다.
계속 사랑을 받아오던 엘리샤는, 자신에게 관심 하나 보이지 않는 나를 신기하게 생각했던 걸까.
뭐, 늘 보던 타입에게 질려 처음 보는 타입에게 마음이 갈 때도 있다고는 하니 그럴 수도 있었다.
그래도 용사가 하도 많으니 결혼할 기회가 아니라 구혼할 기회를 주는 것 같아 다행이었다.
마음에 들지 않는 용사를 신랑으로 맞으면 공주나 왕자 입장에선 얼마나 마음이 심란할까.
“아무튼, 너무 그러지 마. 전생은 잊어. 너도 네 인생을 살아야지. 괜히 나 때문에 이번 생을 망치지 않았으면 해.”
나는 그녀의 손을 맞잡아주며 차근차근 이야기했다.
그녀가 왜 내게 이렇게 마음을 주려고 하는 건지, 아무리 생각해봐도 별 이유는 없을 것 같았다.
굳이 말한다면 그것은 사랑보단, 나에 대한 죄책감.
연심을 언급하는 것은 자신의 감정에 대한 변명이었을지도 모른다. 구태여 이런 일들을 꺼내봤자, 스스로 힘들어질 뿐이니까.
괜히 죄책감에 휩쓸리면, 그녀만 망가지고, 그녀만 마음고생이 심해진다.
이미 끝난 인생에 사과를 받아봤자 의미 없었다.
이제 생각하는 거지만, 그때 내가 그녀를 구했더라면 엘리샤라는 삶을 살았을지 의문이었다.
구하지 못한 것이 정답이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나만의 기회를 받았으니, 그녀는 그녀의 기회를 잡길 바랐다.
“아니, 그, 저는, 그런 의미가 아니에요…!”
내 말을 들은 엘리샤는 내 몸을 두른 팔을 떨어뜨리며 목소리를 떨었다.
몸을 세게 끌어안던 손이 떨어지자, 묘한 해방감이 느껴졌다.
“죄책감과 연심은 구분해.”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몸을 천천히 돌려 그녀의 얼굴을 보자, 그녀는 당장이라도 울 것 같은 목소리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그녀의 어깨에 손을 살짝 올리면서 고했다.
그러자, 그녀는 고개를 팍 숙이고는 소리치듯이 외쳤다.
여자의 감정선은 알 수가 없었다.
아니, 그냥 엘리샤가 트라우마라도 있는 걸까.
그렇다면 사과해야 했다. 전생의 기억을 가진 만큼, 트라우마의 트리거가 될만한 기억은 일반인의 두 배는 가지고 있을 테니까.
“저기, 혹시 내가 상처라도 건드렸으면 미안해.”
“아니, 아니에요. 저는, 죄책감 같은 건 갖고 있지 않아요.”
그럼 뭘까.
트라우마를 건드린 것도 아니고, 죄책감도 아니면 왜 이러는지 알 수 없었다.
“당신이 좋아요. 성하.”
엘리샤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눈을 내게 똑바로 마주한 채 입을 열었다.
진짜 여자의 마음은 알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