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28화 〉episode4. 승급심사 (8) (28/98)



〈 28화 〉episode4. 승급심사 (8)

*


결국, 이렇게 되는구나.
엘리샤가 불러온 거대한 사건에 말린 후, 강제로 삼자대면의 시간을 갖게 되었다.
많은 시간이 흐르고 나서 길드 마스터의 방에는 내 파티, 길드 마스터와  마스터, 그리고 마법사협회장과 교수 둘이 와 있었다.
정말 마법사 같은 펄럭이는 옷을 입은 그들은 멋진 모습으로 지팡이를 짚었다.


“그래서, 저희가 연결해드린 공간이…  드래곤의 거처였다. 이 말입니까?”
[그렇다. 내 둥지에다가 개수작을 부려놓은 것이 네놈들이냐?]
“이건, 저의 실책입니다. 제가 협회원들에게 그리 하도록 지시했습니다. 아무도 없는 바위산이라고만 생각했습니다.”

자리에 앉은 마법사협회장은 처음으로 운을 띄우며  자리의 안건을 입에 담았다.
그러자 큐라는 으르릉대며 협회장이 있는 곳을 바라보면서 붉은 눈을 빛냈다.
 모습을 본 어느 교수는 겁에 질린 듯 몸을 움찔 떨면서 자신의 책임이라고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길거리에 돌아다니는 소녀 같은 모습을 한 큐라는 자신의 존재감을 계속해서 뿜어대고 있었다.

“저, 저희가 어떻게 배상해야 하는 건가요. 공주님의 안전이 위협받은 상황이니 곱게 넘어갈 리는 없겠지요.”

그 모습을 본 협회장은 큐라에게서 무슨 기백이라도 느낀 건지, 초조한 모습으로 수염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당장에 여기서 목숨을 잃을  있다고 판단 한 것이리라.


“마법사협회에서 소유하고 있는 마검을 넘겨 주세요.”
“아무리 공주님이라지만, 그건 좀 도가 지나치십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모두 죽는 것으로 하고 이야기를 마치도록 할까요? 지금 이 일에 관련된 모든 사람은 물론  가족까지 모두 죽겠죠. 제가 그리 할 겁니다.”

협회장이 무엇을 원하나 물어도 나는 그가 뭘 가지고 있고 내가 뭘 원해야 하는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애초에 나는 세라랑 큐라가 S급 모험가 카드만 얻을 수 있으면 좋았는데, 일을 키운 것은 엘리샤였다.
뭐, 그녀가 원하는 바가 있으니 이만큼 판을 키운 거겠지.
입을 다문 채 옆에 앉아 있는 엘리샤에게 시선을 주자, 엘리샤는 기다렸다는 듯이 나를 보고 눈웃음을 지었다.
내가 허락해주길 기다린 건지, 계속 쳐다보고 있었나 보다.
그렇게 발언권을 받은 엘리샤는 아까 살갑게 웃은 것과는 다르게 단호한 목소리로 마검을 요구했다. 대체 마검이 뭔가 싶어 물으려 했지만, 그럴 새도 없이 협회장 뒤에 서 있던 교수가 발끈하며 언성을 높였다.
나 같으면 어디서 목소리를 높이냐.고 했을 상황에도 엘리샤는 덤덤히 말을 이어갔다.  말에는 명백한 독기가 품어져 있었다.

“공주님도 아시잖습니까. 세계에  안 되는 마검이라는 것을. 저희, 마법사협회에서는 연구하기 위해 그것이 꼭 필요합니다. 그것을 내주면 적어도 부서 세 개는 날아가야 합니다.”
“상관있나요? 당신들의 목숨과 세 부서의 일자리. 무엇을 잃고, 구해야 하는지 감이 오질 않으신가 보네요.”
“그것은….”

보다 못한 협회장은 교수들에게 가만히 있으라는 듯 팔을 살짝 들어 제지한 후에 입을 열었다.
마검을 연구하기 위해 마법사협회의 세 부서가 달려들 정도라니 얼마나 대단한 검이길래 그러는 걸까.
그 와중에도 엘리샤는 뜻을 굽히지 않은 채 강경하게 밀고 나갔다.
자신뿐 아니라, 관계자, 그리고 가족의 목숨까지 저울질하게 되니 그런 것은 의미가 없어지는지 협회장의 목소리는 나이에 맞지 않게 쭈그러졌다.

“다시 한번 말하겠습니다. 마법사협회가 소유하고 있는 ‘미카엘’을 내주세요. 이것은 어명이 아닙니다. 제 안위를 위협한 그대들의 책임을 묻는 것입니다. 이 안건이 폐하의 귀에 들어간다면  마검 정도는 지킬 수 있겠지요. 그러나 당신들과 직장 동료, 가족들의 목숨은 지킬  없게 됩니다. 어느 쪽이 좋은지 알아서 판단하고 말씀해주세요. 이 이상 협상할 생각은 없습니다. 되냐. 안 되냐. 그것만 결정해서 말해주세요.”


엘리샤는 쐐기를 박듯이 목소리를 키웠다.
강단 있는 엘리샤의 목소리에 마법사협회장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 채 앓는 듯이 신음할 뿐이었다.
뭔가 엘리샤는 멋있는 모습을 자주 보여주는  같다.
공주님으로 지낸 시간이 많아서 그런가?

[저기, 성하. ‘미카엘’이 무엇이냐?]
“나도 몰라….”
“성하 님. 마검이 뭐에요?”
“몰라….”

내 엘리샤 옆에 앉은 큐라와 세라가 마검 ‘미카엘’에 대해서 내게 묻고 있었다.
원래 내 세계에서 기독교나 천주교에서 써먹는 천사의 이름이라는 것 외엔 아무것도 모르는데, 여기서는 마검의 이름일 줄이야.
애초에 마검 ‘미카엘’에 대해 이야기를 꺼낸 것은 엘리샤 쪽이었다.
나는 방금 마검의 존재도 방금 알았는데, 큐라와 세라의 대답에 어떻게 대답해줄  있을까.


“마검 ‘미카엘’… 알겠습니다. 그 검을 넘긴다면 이번 사건은 말없이 넘어가 주시는 겁니까?”
“제 이름을 걸고 약속하죠. 그대들이 약속을 지키면,  일에 대해서 아무런 해가 가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그렇게 하겠습니다….”

몇 분간 고민하던 협회장은 그새 늙은 것인지 메마른 목소리로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엘리샤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그들에게 목숨의 안전을 약속했다.


“공주님. 그러고 보니, 성하의 요구는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그래도 고위급 성직자랍시고 직업 정신이 있는 건지, 엘리샤 뒤에 서 있던 리타가 고개를 숙여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냥 같이 앉으면 좋은데 왜 그러는 걸까.
게다가 이미 이 일은 마검을 받아 오는 것으로 종결되는 분위기인데, 아무리 목숨이 담보라지만 약탈자처럼  챙기려는  너무한 것 아닐까.


“그렇네요. 길드 마스터 님?”
“네. 네!”
“길드 마스터 님도 책임은 있으니 큐라 씨와 세라. 이 둘의 S급 모험가 카드 발급을 부탁드려요.”
“네… 알겠습니다. 그, 낙오, 아니 용사분은 필요하지 않으십니까?”

리타의 말을 들은 엘리샤는 살벌한 미소를 지으며 시선을 길드 마스터에게로 옮겼다.
사이에 끼어서 쭈뼛거리던 길드 마스터는 허리를 빳빳이 세우며 떠는 목소리로 우렁차게 대답했다.
엘리샤는  웃으면서 큐라와 세라를 힐끔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큐라는 관심 없다는 반응이었고, 세라는 자신이 치른 시험보다  좋은 금색 테두리를 얻을  있어서 좋아했다.
그런데 그 와중에 길드 마스터란 놈이 낙오자라고 하려 했다. 여기서 이렇게 먹일 줄은 상상도 못했는데, 상당한 실력자인 것 같았다.

“저는 괜찮습니다. 마력이 아예 없거든요.”
“대체 그런 일이….”


쓴웃음을 지으며 사양하자 내 말을 들은 마법사협회 쪽에서 술렁이는 듯이 서로 이야기하고 있었다.
왜 내가 이렇게 맞아야 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마음이 아프다.
그러게 왜 나만 마력이 없냐고요. 마력이 없는 것도 서러워 죽겠는데, 왜 이렇게 다들 나를  갈궈서 난리인 거야.

[잘 된 건가?]
“그, 죄송합니다만. 정말로 드래곤이십니까?”
[그렇다만.]
“죄송합니다. 이야기를 할  있는 드래곤은 처음 보는지라.”
“원래 드래곤은 이렇게 이야기가 통하는 부류인가요?”
“드래곤 쪽으로 부서를 옮겨야 좀 쓰겠네.”

큐라가 몸을 기울여 나를 힐끔 바라보면서 물었다.
사이에 낀 엘리샤는 헛기침하면서 시선을 끌었다. 큐라에게 아마도 그럴 거라고 하려던 찰나 갑자기 마법사협회의 교수가 조심스레 큐라의 모습에서 시선을 떼지 못한 채 질문을 던졌다.
큐라는 나를 보던 시선과 다르게, 날카로운 시선으로 교수를 째려보며 질문에 긍정했다.
주춤거리던 교수는 죄송하다는 듯이 연신 고개를 꾸벅이며 말을 주절주절 늘어놓았다.
그러자 옆에 있던 교수도 그것이 궁금했는지 협회장에게 물었다.
 그래도 마검 연구 부서 담당자들이 전부 실직자가 되어버렸는데 다행이었다. 드래곤 연구 부서로 옮기기만 하면 되니까.


“그럼 저희는 먼저 일어나보겠습니다. 내일 길드로 올 테니 그때, 길드에서는 모험가 카드 발급 절차를 밟아 주시고, 마법사협회에서는 마검을 넘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성하 씨. 가시죠.”
“어, 응.”
[드디어 가는 거냐? 몸이 뻐근해지던 차였다.]
“성하 님. 이제 집에 가는 거예요?”
“공주님 가시죠.”

엘리샤는 테이블을 가볍게 치고 일어나 자신의 지팡이를 들었다.
그리고선 마지막으로 정리하듯 통보를 하더니 옷을 펄럭이며 몸을 움직였다.
뭐, 이렇게 익숙하지 않은 분위기에서는 익숙한 사람이 나서주는 게 나로서는 편하긴 하다.
정치판에는 특히 휘말리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의자에서 엉덩이를 뗐다. 그러자 큐라는 뻐근한 몸을 풀면서 폴짝 뛰었고, 세라는 하품을 하면서 조심스레 의자에서 내려왔다.
원래부터 일어나 있던 리타는 엘리샤가 나가려는 것을 보고는 먼저 앞장서서 문을 열었다.


“공주님에게 반말이라니, 어쩌다 저런 놈이….”

큐라와 세라를 마지막으로 내보내고 마지막으로 방을 나가려던 찰나, 뒤에서는 조용하게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엘리샤 오늘 되게 멋졌어.”
“후훗.  칭찬해줘도 된다고요?”

길드를 빠져나와 웅성거리는 인파를 뚫고 한적한 길로 나섰다.
사람이 조금 드문드문해졌을 때, 길드에 있었던 일을 떠올리며 솔직한 감상을 입에 담았다.
그러자 엘리샤는 뿌듯한지, 만족스럽다는 듯이 씨익 웃으며 내 눈을 마주쳤다.


“성하 씨는 왜 그걸로 만족하려고 했어요?”
“그야, 아무도 죽지 않았으니까….”
“그러면 안 돼요. 제가 죽을 뻔했다는 것도 생각해줘야죠.”
“그러네. 미안해. 내가 이기적이었구나.”
“아뇨. 그런 말이 아니에요.”

그러더니 엘리샤는 갑자기 궁금한  생긴 것처럼 고개를 갸웃거리며 내게 질문을 던졌다.
그에 대한 답은 처음에 말했던 것과 똑같았다.
나는 죽지 않았으니까. 어느새 내 죽음은 다른 사람의 죽음보다 가벼운 것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괜찮다. 목숨은 단 하나 뿐이기에 의미 있고 가치 있는 것이다.
그에 한도가 없어진 나로서는, 나의 죽음에 대해 가치를 논할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그 말을 후려치듯이, 엘리샤는 나를 꾸짖듯이 내 팔을 살짝 잡고서 상냥하게 말해주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정말 아찔하긴 하겠구나. 아니, 정말 아찔했었구나.


[성하는 왜 이리 여자를 달고 다니나 했더니 다 처와 첩인 거냐?]
“아니야… 오해하지 마.”
“제가 처겠네요?”
“에리! 그런 가벼운 말을 길거리에서 하면… 읏.”

엘리샤가 내 팔을 붙잡은 채 걷고 있자니 옆에서 큐라가 도끼눈을 뜬 채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세라는 큐라의 말에 부끄러움이라도 타는지 얼굴을 화악 붉히며 고개를 푹 숙였다.
나는 그 말에 조심스레 부정하려 했지만, 왜인지 다들 분위기가 이상하다.
그 와중에 엘리샤는 이 상황을 즐기는지 갑자기 내 팔을  당겨 팔짱을 끼고는 소리 내어 웃었다
.엘리샤의 돌발 행동에 리타는 엘리샤를 부르며 뭔가를 다그치듯 말하려 했지만, 이내 엘리샤가 검지를 입에 가져다 댄 것을 본 순간 입을 다물게 되었다.
엘리샤는 생각보다 자신의 권력을 이용할 줄 알았다.
이래서 권력에는 친구 사이가 없다  거구나. 소꿉친구라더니, 이럴 때는  완벽한 상하관계가 따로 없었다.

“엘리샤.  놔줄래? 아니, 세라도 좀 놔봐. 얜  이래.”
[흥. 다들 천박하게 남자에게 들러붙는 꼴이 말이 아니구나.]
“큐라는 매달리지 말아봐….”


이 세계엔 처랑 첩의 개념이 있는 걸까. 싶어 고민하던 무렵 엘리샤가 끌어안은 팔이 그녀의 가슴에 푹 안겼다.
불편한 것보다, 갑자기 여성의 가슴이 팔에 닿으니 조금 민망했다. 대체 길거리에서 어떻게 이럴 수 있는 거지.
팔을 슬쩍 빼려고  때, 갑자기 다른 한 손에도 살결이 감겨왔다.
무기랍시고 들고 있던 봉이 들기 불편해졌다. 걸어야 하는데 양쪽에서 내 팔을 붙잡고 있으니 도저히 앞으로 걸어지질 않는다.
뒤에서는 아니꼬운 듯이 퉁명스럽게 말하는 큐라의 목소리가 되게 가까이 들려왔다.
어느새 내 등에 업히듯 매달린 큐라는 떨어지지 않겠다는 듯이 팔로 내 목을 두르고, 발로 내 허리를 감쌌다.

“좀 걷자! 보는 사람도 있는데 이게 대체 뭔 짓이야?!”
[성하. 나도 사람이 고프다….]
“큐라 씨! 너무 붙어있는  아닌가요?!”
“성하 님! 저도 안아주세요!”
“아, 아니… 저는 그럼 안아야 하나요?”

이렇게 되니 좀체 앞으로 걸을 수가 없었다. 안 그래도 주변에서 보는 시선이 하나둘 늘어가는데, 그런 걸 신경 쓰는 것은 나뿐인지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큐라는 나 몰라라 하면서 고개를  등에 묻었고, 엘리샤는 큐라에게 소리쳤다.
그 와중에 세라는 큐라가 부러운지 폴짝거리면서 팔을 끌어당겼다.
엘리샤를 말리던 리타는 갑자기 자신만 소외된 기분을 느꼈는지 머뭇거리면서 눈치를 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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