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화 〉episode4. 승급심사 (5)
*
내 말을 마지막으로, 나와 그녀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바닥에 누워있었다.
그녀가 둥지라고 말했던 곳은 바위 곳곳이 녹아내려 더 이상 잘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기에, 그대로 숲 속에 누워있었다.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했던가. 예전에는 도시 한복판에도 앉는 것을 주저했던 내가, 이곳에서는 아무런 거리낌 없이 바닥에 드러누울 수 있었다.
울창하게 핀 나무들을 한번 거하게 헤집은 탓에 하늘이 훤히 보였다.
[나는 반푼이라고 하는 것 같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그녀는 역린의 고통이 어느 정도 가셨는지, 조용하게 침묵을 깼다.
나는 라디오를 듣는 것처럼 조용히 숨을 죽인 채 그녀의 말을 들었다.
[인간과 드래곤 사이의 아이가 되어, 나는 그 뒤로 아무에게도 섞일 수 없었다.]
자신이 버려진 이유를 떠올리는지 눈물을 흘렸다.
그녀의 목소리는 잔잔하면서도, 어딘가 서글프게 들려왔다.
나 같아도 예전 내가 고통받았을 때를 떠올리면 울컥해진다. 그녀도 그런 거겠지.
[전의 용사는, 그런 나를 이해한다고 하면서 자신의 파티로 들어오라고 권유했었다. 사실 기뻤다. 누군가가 나를 필요로 한다는 사실에.]
“그런데 어째서.”
[내 힘을, 내 몸을 원하던 그 남자의 눈빛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었다.]
“…….”
[여자를 컬렉션처럼 옹기종기 모아 자신의 성욕을 채우려고 하는 그 남자의 추악한 모습을 아직도….]
고개를 살짝 돌려 그녀의 모습을 바라보자, 그녀는 이를 까득 깨물면서 그때를 떠올렸다.
아무래도, 그리 좋은 놈은 아니었던 것 같았다.
그녀가 떠올리던 놈은 아마 용사의 힘과 지위로 여자들을 끌어모은 놈이었다는 듯했다.
나도 동료들이 모두 여자였으니, 내게서 그 용사의 모습을 본 것 같았다.
“그래서, 날 그렇게 죽인 거였어?”
[환멸이 났다. 미안… 하다. 이런 말로 용서받을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그렇게 듣고보니 어느 정도 그녀의 말은 이해가 갔다.
트라우마라도 새겨진 거겠지. 그 용사가 뭔 짓을 해서 그렇게 된진 모르겠지만, 뭐 일반적인 사람한테도 트리거는 건들지 않는 게 좋다고 하니까 더 이상은 추궁하지 않았다.
대신에 나도 궁금한 것은 물어봐야겠지.
그렇게 던진 내 질문에 그녀는 내 모습을 힐끔 바라보더니, 어쩔 줄 모르는 죄인처럼 눈을 내리깔면서 시선을 피했다.
”됐어. 어차피 난 죽지 않는 몸이고.“
[…대체 그 몸은 무엇인 건지, 물어봐도 될까?]
”나도 몰라. 그냥 이 세계에 오니까 이랬어.“
[계약에 의한 마법은 아니군. 용사는 모두 그런가?]
”몰라. 용사들끼리 친하지는 않으니까. 그리고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난 용사가 아니거든.“
그녀의 사과는 의미가 없다.
집을 쳐들어간 것도 이쪽이고, 괜한 트라우마를 자극한 것도 이쪽이다.
뭐 혼자 자랐다고 하니, 상식이네 마네 할 것도 없었다. 그러니까, 내가 딱히 용서할 것도 없었다.
그녀는 신기한 건지 내 몸에 대해서 질문했지만, 언제나처럼 나도 내 몸에 대해서 모른다.
애초에 바라는 대로 능력을 받을 수 있는 거라면 이런 거 선택하지도 않았다.
나도 강한 능력을 받아서 주도적으로 파티를 이끌어나가고 싶었다.
[낙오자라 했던가. 그런데 어찌 동료가 있는 것이냐.]
”동료랄까. 그냥 계약으로 맺은 거지. 그거 아니었으면 내 옆에 붙어있지도 않을걸.“
[안타까운 위치로군. 계약에 의존해야 동료가 생긴다니. 마치….]
그녀와 시선이 다시 맞춰졌다.
솔직히 같이 다니는 파티는 맞는데, 동료라고 하기엔 조금 미묘한 관계였다.
기어스 없이 등을 맡길 정도로 신뢰가 두터운 사이는 아니었기에 그녀의 대답에는 긍정할 수 없었다.
용사 같은 강력한 힘을 가졌다면, 등을 맡길 수 있는 동료를 얻을 수 있었을까.
”뭐, 그렇지. 진심으로 동료가 될 수는 없겠지.“
자신의 사리사욕으로 나를 언제 죽일지 모르는 리타가 있었다.
나를 음식으로 생각하는 듯한 세라가 있었고, 마지막으로 내가 구해주려다가 실패한 엘리샤가 있었다.
아무래도 괜찮다. 생존권만 얻을 수 있다면 진실 된 동료가 아니어도 된다.
나의 생존권만 제대로 확보할 수 있다면….
[그러고 보니… 이름을 듣지 못했군. 아니, 들을 시간 따위 주지 않았던 건가.]
그녀는 자조적인 표정을 지으며 헛웃음을 토해냈다.
방금까지 나를 죽여왔던 일을 떠올리는 듯이 내게 말하는 것을 주저했다.
”그러네. 나는 성하라고 해. 유성하. 너는?“
[성하… 성하구나. 나는 큐라. 내가, 지었어. 다들 가지고 있는 것 같길래 스스로 지어봤다.]
”큐라. 어울리네.“
[…읏.]
”괜찮아?“
[아니, 괜찮다. 이름을 지었어도, 내 이름을 들어본 적은 처음이었기에….]
그녀가 그 뒤로 머뭇거리기만 하고,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내가 먼저 말을 하는 수밖에 없나.
내 이름을 먼저 말하고, 그녀의 이름을 물었다. 그렇게 이름을 알 수 있었던 것과 동시에, 그녀가 얼마나 혼자였는지 알 수 있었다.
부모조차 그녀를 버렸었다 했으니 이름이 있을 턱이 없었고, 그 뒤로도 누군가와 같이 있던 적이 없으니 자신이 지은 이름조차 불린 적이 없던 것이다.
그래, 안타까운 아이였다. 아니, 아이가 맞나? 몇 살이지. 드래곤이면 세라보다 나이가 더 많은 것 아닌가.
[…이렇게 이야기를 하는 것도 정말 오랜만이다.]
”두 번째겠네?“
[뭐, 그렇지.]
큐라의 나이가 얼마인지 고민하고 있을 무렵, 그녀는 자신의 감상을 말하면서 별들을 바라보았다.
나는 그런 그녀의 옆에 나란히 누워 같이 별을 보았다.
나체로 숲에 누워있는 것은 처음 해보는 것이지만, 그래도 나만 나체인 것도 아니니 어느 정도 마음이 풀렸다.
엄청난 개방감을 느끼며 숨을 몰아쉬며 잠에 빠져들었다.
너무 지친 걸지도 모르겠다.
*
[일어났느냐.]
”큐라.“
새가 지저귀는 소리에 눈을 살짝 뜨자, 큐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먼저 일어나 무릎을 꿇은 채, 내 옆에서 얼굴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어제는 죽느라 바빴는데, 여유를 가지고 그녀의 전라를 보고 있으니 조금 민망한 기분이 들었다.
대체 나는 여기서 무엇을 하는 건지 새삼 자괴감이 들었다.
”너는 몇 살이냐.“
[나 어려. 527살이다.]
”나랑 500살 넘게 차이 나는데.“
[그럴 리가 없어. 나도 반은 인간이란 말이다.]
그녀의 가슴을 힐끔 바라보다, 너무 민망한 나머지 얼버무리려 그녀의 나이를 물었다.
그런데 그렇게 나이를 먹었을 줄은 몰랐다.
어쩐지 말투가 그 모양이더라.
지금 당장 20대인 나와 500 넘게 차이가 난다.
”반이나 드래곤이잖아.“
[이런… 성하는 몇 살이냐?]
”23.“
[아니, 대체…! 인간의 수명은 몇이냐?]
그녀는 충격을 받은 표정을 지은 채,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었다.
큐라는 하프드래곤인 것 치곤, 드래곤의 피를 너무 짙게 이어받아서 드래곤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그러니까 500이나 먹지. 평범한 인간이면 5분의 1도 먹기 힘들 것이다.
”100살 먹는 것도 겨우 일걸.“
[나는 드래곤의 피를 더 짙게 이어받은 것인가.]
”뭐, 그런 거겠지.“
내가 시큰둥하게 말하자, 큐라는 뭔가 중얼거리듯이 말했다.
생각해보니까, 나 애들한테 지원군 좀 불러달라고 했던 것 같은데 이대로 괜찮은 걸까.
대화할 기회를 얻고 나니 말이 통하는 상대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내가 그녀들을 보내면서 말했던 것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지원군이 오게 되면 이 상황을 어떻게 해야 할지 참으로 난감했다.
”어휴.“
[네 놈의 동료들은, 너를 구하러 오지 않는 것이냐.]
”아마, 시간은 걸릴걸. 너한테 죽는 모습만 보여줬으니까. 지원군까지 이끌고.“
”저. 죄송해요. 지원군 같은 건 없어요.“
생각을 읽혔나 싶을 정도로 절묘한 타이밍에 날아온 질문에 순간 숨이 멎는 듯했다.
부정할 수도 없는지라, 쓴웃음을 지으며 말을 내뱉었다.
그렇게 큐라를 보고 씁쓸한 미소를 짓고 있을 무렵, 뒤에서 기묘한 기척이 느껴졌다.
익숙한 목소리를 듣는 것과 동시에, 어디선가 살의 같은 것을 느낀 것 같았다.
살의를 느낄 수 있는 건 만화 같은 데서나 느낄 수 있던 게 아니었던가. 라는 생각을 하며 뒤를 돌아보자, 그곳에는 엘리샤가 지팡이를 쥐고 서 있었다.
”엑?!“
[동료가 왔구나.]
”엑?! 이라니. 그 드래곤 분이랑 있던 시간이 꽤 즐거우셨나요?“
”아니, 지원군은?!“
당황하고 있는 내 뒤에서는 큐라가 낮은 목소리로 엘리샤를 반겼다.
아무리 그래도, 내가 실컷 죽는 와중에 지원군을 불러와달라고 요청한 건데, 엘리샤는 그러지 않았다.
지원군을 불러왔다면 당연히 난감한 상황에 빠졌을지도 몰랐겠지만, 이 기분은 뭐라고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런 거 필요 없잖아요. 전 다 알거든요. 자, 옷이에요. 근처에서 마을에서 사 오느라 늦었어요.“
”성하. 괜찮나요?“
”성하 님. 최대한 빨리 오려곤 했어요. 늦어서 죄송해요.“
엘리샤의 뒤로 리타와 세라가 걸어왔다.
어떻게 딱 필요한 행동만 하는 건지 신기할 지경이었다.
엘리샤가 건넨 옷을 받고 나서 주섬주섬 입었다. 그렇게 옆에 있던 큐라는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어서 가라는 듯 손짓했다.
”괜찮으면, 나랑 같이 가든가.“
[…무슨.]
”죽였던 것 정도는 신경 안 쓰니까. 같이 가도 될 거야.“
”성하! 상대는 당신을 몇 번이고 죽인 드래곤이라고요?!“
”성하 님! 그러면 위험할 것 같은데요.“
”…….“
왜인지, 큐라가 또 혼자가 되어 고독해질 거란 생각을 하게 된 마음이 미어지는 것 같았다.
내가 혼자였던 때가 떠올라서 그런가.
뭐, 나도 나름의 목표가 있으니, 강한 동료가 많을수록 좋았다. 그렇게 생각한 끝에 그녀에게 동행을 권유하자 리타와 세라가 반발했다.
그리고 뒤에서는 입을 꾹 다물고 있는 엘리샤가 있었다.
”리타. 세라. 마왕을 타도하기 위해선 강한 동료들이 많이 필요해요. 저만한 힘이 있는 자라면 분명한 힘이 되어 줄 수 있겠죠.“
”에리. 그렇지만….“
”성하 님의 판단이라면, 괜찮을까요.“
아니, 왜 내가 말하면 반발하는데, 왜 엘리샤가 말하면 납득하는 걸까.
리타는 그렇다 쳐도 세라는 하룻밤 새에 서열 정리라도 당했나.
어이가 없어 헛웃음을 짓는 와중에 큐라가 내 손을 잡았다.
[정말. 괜찮은 것이냐.]
큐라는 눈물이 나는 것을 참는 듯이 입술을 바르르 떨면서 입을 열었다.
그 모습을 보고 나니 그녀의 심정을 조금 헤아릴 수 있었다.
아마 동료로 끼워달라는 말을 하고 싶었지만, 자신이 했던 일들 탓에 차마 타이밍은커녕 자신이 그럴 처지가 아니라고 생각했는지 말을 꺼내지 않은 듯했다.
[정말, 이런 나를 용서해주는 것이냐.]
침묵으로 그녀의 말을 긍정해주자, 그녀는 겨우 참던 눈물을 터뜨리며 다시 한번 물었다.
이런 말을 듣고 싶었던 것일 테지.
용서라고 해야 할까. 내가 용서할 것은 딱히 없는 것 같은데, 왜 그런 말을 하는 걸까.
나는 죽지 않으니까, 나를 죽였던 것에 대한 용서를 구하는 거라면 의미 없었다.
그냥 아프기만 했을 뿐 나는 아무것도 뺏기지 않았다. 아니, 옷을 뺏기긴 했다. 타버린 내 옷들은 돌아오지 않으니까.
”괜찮아. 가자.“
리타를 비롯해 세라와 엘리샤는 머뭇거리면서 나를 보고 있었다.
뭐, 괜찮다는 거겠지. 내 손을 잡은 큐라의 손을 꽉 쥐었다.
그러자, 큐라는 결국 아랫입술을 꽉 깨물며 고개를 푹 숙였다.
[정말, 괜찮은, 것이냐….]
”괜찮아. 어차피 집도 잃었잖아.“
일부가 녹아내린 바위산을 보며 입을 열었다.
그녀를 몇 번이고 안심시키며 그녀가 납득할만한 이유를 들어주었다.
”그리고, 언제까지고 혼자일 수는 없잖아.“
[…정말, 내 힘도, 몸도 필요로 하는 게 아닌 거냐?]
”몸은 됐고, 힘은 필요해.“
[어…?]
”아니, 나 마왕 못 잡으면 나 죽어야 해. 죽기 싫어서 마왕 잡으러 다니는 거야.“
그녀는 울먹이는 목소리로 뭐 감동적인 상황이라도 만들려는 것 같았지만, 세상은 뜻대로 되지 않는다.
나는 동료가 필요하다. 그리고 나는 그녀의 힘이 꽤 필요성 있다고 판단했다.
생존권을 위해 싸워야 하는 나에게는 그녀가 필요했다.
[…죽기 싫어서라니. 그게 무슨 말이냐?]
”말 그대로야. 마왕이 모두 처치될 때까지, 아무런 마왕도 잡지 못한 소환자는 죽어.“
[그런 것이었나. 그런, 것이었다면, 돕겠다. 너를, 도울 것이다.]
큐라는 솔직하게 말한 내 목소리에 당혹스러워하더니 이내 평정을 되찾고 쓴웃음을 지었다.
왜 용사가 힘을 가진 동료를 필요로 하는 건지 이제야 알게 된 거겠지.
뭐, 그래도 그녀가 내 말을 이해했다면 다행이었다.
”뭐, 잘됐네요.“
그렇게 겨우 큐라를 파티로 영입하자, 뒤에서는 시큰둥한 엘리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공주라서 그런 건진 몰라도, 가끔 그녀의 목소리가 무섭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