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화 〉episode4. 승급심사 (3)
죽는다. 나는 또 죽는다. 그리고 또 죽는다.
이 세상에 내던져지기 전까지 몇 번이고 생각했던 죽음이었다.
몇 번이고 생각하고, 몇 번이고 마음먹고, 몇 번이고 포기한 끝에 죽음은 내 안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다.
죽으면 편해지겠지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한편으론 죽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겠지.
정말 마지막의, 마지막의 도피처인 거야.
그런 생각으로 한강에 갔다가 발길을 되돌린 적이 수없이 많았다.
[초재생 같은 건 쓰지 말라 했다!]
“끄아아아아아아아아악!”
그렇게 몇 번이고 고심하고, 고심한 끝에, 발길을 되돌리는 게 얼마나 착잡했는데.
지금에 와서는 한 번으로는 부족하다는 듯이 몇 번이고 죽어가고 있는 내가 있었다.
죽음은 인생을 장식하는 단 한 번뿐인 마지막이라는데, 왜 난 그러지 못하는 걸까.
세상은 왜 날 놔주지 않는 거야. 어째서, 날 이렇게 붙잡고 놔주질 않는 걸까.
새로운 인생 겉은 건 바란 적 없다. 내가 살던 인생을 조금 더 잘 살고 싶었을 뿐이다.
[질긴 녀석.]
“으윽! 커헉!”
입안에 피비린내가 가득하다. 안면을 차여서 코가 찡해져서 눈물이 핑 돌았다.
마법도 못 써서 서러워 죽겠는데, 힘은 인간이랑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강한 드래곤이랑 데이트라니 죽을 맛이다.
가볍게 휘두르는데도, 엄청난 위력을 뽐내고 있었다.
[이제 그만 좀 포기하란 말이다! 그 용사보다도 질기구나 너는!]
그래, 나는 질기다.
나는 마지막까지, 자살한 적 없이 살아왔다.
누구나 그렇다.
‘죽고 싶은 나’를 안쪽에 숨겨놓고 내일을 살기 위해 살아간다.
보다 나은 내일이 있겠지, 라는 생각으로 살아간다.
그렇게 만들기 위해, 살아간다.
“제길.”
팡. 하고 폭발음이 들리는 것과 동시에 시야가 빠르게 변해간다.
하반신이 터진 채로 저 멀리 날아가고 있었구나.
계속해서 전해지는 고통에 조금씩 감각이 마비되는 기분이었다.
한팔로 상반신을 지탱하고 고개를 들어 정면을 바라보자, 그곳에는 그녀가 있었다.
드래곤이 있었다.
지금 내 눈빛을 보고서 그녀도 각오한 듯했다.
[대체, 심장까지 멈췄는데 어떻게 다시 살아나는 건지 모르겠구나. 계약한 자가 아닌 건가?]
기가 찬 드래곤은 헛웃음을 토해내며 나를 응시했다.
나도 모른다. 혹여 죽고 싶지 않다는 나의 마음을 능력으로 담은 걸지도 모르지.
그렇게 생각하면 은근히 말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살면서 무슨 능력 하나 갖고 싶다는 생각 하나 정도는 하니까.
“이 정도 죽였으면, 슬슬 보내주지 그래?”
[그럴 수는 없다. 주변을 봐라. 내 둥지가 벌써 피비린내로 진동하게 되었으니.]
“그러니까, 처음부터 곱게 보내줬으면 이럴 일 없었잖아.”
[드디어 미쳐버린 거냐? 도발까지 하다니 여유가 넘치는군.]
다시 하반신이 만들어진다. 튼튼한 뼈대를 기준으로 근육과 혈관이 뼈를 감싸는 게 느껴진다.
솔직히 이런 기분, 나만이 알겠지. 천천히 감각이 살아난다는 감각이 이런 걸까.
사람의 피부나 근육을 벗기면 이런 모습인 걸까.
나체로 몸을 일으켜 입안에 남은 피를 뱉어냈다. 드래곤은 흉악한 목소리로 양주먹을 꽉 쥐었다.
드래곤의 말대로 그녀가 둥지라고 말하는 곳이 피범벅이 되어있었다.
수십 명은 죽은 듯한 피의 참상이 오로지 나 하나 때문에 일어난 거라니 새로운 감상이었다.
나는 그만큼 죽은 거겠지.
[죽어!]
순식간에 거리를 좁힌 드래곤은 옆구리를 강하게 내리쳤다.
피지컬 차이가 압도적이었다. 눈으로 겨우 쫓았다 생각할 때면, 이미 내게 타격이 들어온 후였다.
옆구리가 도려낸 듯이 사라졌다.
“쿨럭!”
고통과 함께 앞으로 굴러 다음으로 오는 타격을 피했다.
잘못했으면 거기서 머리를 맞아 죽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한 순간 바람 소리가 났다. 주먹에서 바람 소리가 난다는 건 이런 걸 이야기하는 걸까.
허공에 휘둘렀을 뿐인 주먹에도 위압감이 흘러나온다.
[허. 이걸 피하다니 제법이구나. 하지만 전투에서의 요행은 단 한 번뿐이라는 걸 잊지 말아라.]
“허억, 허억. 요행이라니. 엄연한 예측이라고.”
허공에 손을 내지른 그녀는 놀란 눈을 뜨며 나를 바라보았다.
나도 보고 피한 건 아니다. 그저 그럴 것 같다고 판단한 순간 몸이 먼저 움직였다.
[흥. 그 주둥이에 박힌 이빨도 금방 뽑아주마.]
섬뜩하다. 그렇게 생각한 순간, 그녀의 입에서 붉은 입김이 뿜어져 나왔다.
역시, 처음에 쐈던 브레스를 안 쓸 리가 없었다.
변신이 가능한 드래곤이라면, 아까보다는 위력이 떨어지겠지. 그리고 좁을 것이다.
아까처럼 내 몸 전체를 덮는 일은 없을 것이다.
[무슨!?]
“크헉!”
그녀의 짧은 목소리 이후로 빔 같은 것이 전방으로 쏟아졌다.
몸을 세워 달린 덕에 그나마 배가 뚫린 정도에서 그쳤다.
발돋움해서 크게 한 발짝, 두 발짝, 그리고 닿아라.
[크악!?]
“큿!”
젠장. 몸에 부분부분 덮인 붉은 비늘에 때린 내 주먹도 아프다.
욱신거리는 주먹을 뒤로하고 무릎에 힘을 뺐다.
갑자기 낮아지는 시선, 몸에 힘을 빼니 순식간에 몸은 바닥으로 떨어졌다.
자빠지는 동시에, 하늘을 응시하게 된 내 시선에 그녀의 발차기가 허공을 가르는 것을 보았다.
[어?]
“흡!”
[뭐냐. 아까랑은 다른….]
그녀의 얼빠진 목소리를 듣는 것과 동시에, 손을 짚어 낙법을 했다.
리타에게서 배웠던 것 같은데, 그 하이오크 전에서 봤던가. 아무튼, 보는 것도 좋은 공부가 되는 것 같았다.
빠르게 그녀에게서 거리를 벌리고 경계태세를 갖추자 붉은 눈을 빛내는 상대는 당혹스러운 듯이 나를 응시했다.
요행은 한 번뿐이라고 말했는데, 내가 공격을 두 번이나 피했으니 놀랄 만도 하겠지.
아까 도려낸 듯 나가떨어진 옆구리는 어느샌가 다시 메워져 있었다.
[마왕을 쓰러트렸나? 아니, 지금까지 마왕이 죽었다는 소식은 들은 적 없는데… 능력이 두 개인 용사는 본 적 없다. 초재생이 능력인 건 확실한데… 그럼 순수한 인간의 움직임이라는 건가.]
“허, 그렇게 봐주니 고맙구만.”
[킥. 말발 한 번을 질 생각을 안 하는 인간이로군.]
가만히 서서 가늠하는 눈으로 내 몸을 위아래로 훑더니 뭔가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알몸이라 솔직히 그렇게 보이는 건 조금 부끄럽긴 하지만, 종족도 다른 데다가 지금은 목숨 걸고 싸우는 거니까 그런 걸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그렇게 마음을 다잡고 숨을 몰아 내쉰 순간에 그녀 또한 각오를 다진 듯 자세를 잡았다.
코웃음 치듯 웃은 그녀는 양팔을 작게 벌린 후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세상의 이치는 내 부름에 응하라.]
그녀의 한 구절에 대지가 울렸다.
그리고 돌 말고는 없던 주변의 경치에 붉은 오라가 뒤덮였다.
숨을 막는 듯한 뜨거운 오라는 점점 하늘을 먹어치우려는 듯이 붉은색으로 물들여갔다.
제길, 드래곤의 영창 마법이라는 건가.
숨을 쉴 때마다 폐가 타들어 가는 기분이었다. 아프다. 아프다.
숨을 쉬는 것조차 고통스럽다. 시야는 아지랑이 때문에 모든 것이 흐려 보인다.
[모든 것을 불사르고, 재로 만들어라.]
두 번째 구절에 숨 쉬는 것이 멈추었다.
아니, 쉬고 있는데 감각이 이상해진 기분이다.
여름 아스팔트 위에 있는 것과는 또 다른 감각이다. 열기에 미쳐버릴 것 같았다.
열사병이 걸리는 이유도 알 것 같지만, 금방 재생을 시작하는 내 몸을 죽음에 이르게 할 수는 없었다.
[인페르노.]
훅.
촛불의 불을 끄듯이.
시야를 잃었다.
*
“끄아아악!?”
조금은 승산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오산이었다.
몸을 겨우 일으키자, 안구가 타버렸던 건지 눈에서 아직도 타닥거리는 소리가 일었다.
주변은 아직 불타오른 흔적이 사라지지 않았는지, 일대의 바위가 녹아 흘러내리고 있었다.
순식간에 일으킨 열기에 바위가 녹을 정도라니 얼마나 강한 마법인 걸까.
인페르노라니 얼핏 봐도 강해 보이는 이름이니 그럴 만도 한가.
[질긴 녀석이로군. 전신을 태워버렸는데도, 돌아오다니. 진저리가 나. 살갗이 타는 냄새는 불쾌하군.]
나지막이 들려오는 그녀의 목소리에는 원한이 담겨 있었다.
벌레 하나 잡자고 자신의 집까지 태워 먹었으니 그럴 법도 했다.
다른 용사였다면 진즉에 브레스 맞고 죽었을 텐데 그러지도 않았으니 얼마나 불쾌할까.
“흥. 죽여놓고 하는 말이 그런 거냐?”
[결국, 내 둥지는 바꿔야 하는 건가. 그렇다면 결국 원래대로 상대해주는 게 낫겠군. 힘 조절은 필요 없어졌으니까.]
뜨거운 바닥을 짚고 몸을 일으키자, 그녀는 쓸쓸한 눈빛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리고는 자포자기한 듯이 한숨을 내쉬고는 입을 다물었다.
그렇게 몇 초. 순식간에 꾸득 거리는 소리와 함께 그녀의 몸은 거대해졌다.
아아. 인간의 모습일 때 시도했어야 했는데, 이렇게 되면 승산이 너무 없잖아.
[나는 인간이 싫어. 내 집에서 설친 네놈은 더욱이.]
순식간에 벌어진 일에 나는 무력하게 주먹을 쥘 뿐이었다.
몇 합 가지 못한 채 결국 그녀가 드래곤으로 변신하도록 만들었다.
그래서는 안 됐는데, 나는 멍청이였다.
-
생명체는 모두 급소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것을 잘 아는 생명체는 급소를 감춘다.
싸울 때, 어디를 막는지, 어디를 때리려 하는지 잘 보렴.
알겠느냐. 때리는 곳을 모를 땐, 상대가 막는 곳을 보아라.
그곳이 약점이다.
-
순식간에 지나간 이 감각. 온몸에 소름이 질주하는 듯한, 짜릿한 감각이 기억을 스쳤다.
이전 세계에서 태권도나 유도, 권투 같은 스포츠에 일절 관심 한 번 가져본 적이 없던 나다.
전투 센스라는 게 있을 리도 없고, 더욱이 나아가 전투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있을 리는 더더욱 없었다.
그런데, 어째서 나는 이런 걸 알고 있는 것일까.
그런 것은 잘 알지 못한 채로 몸을 움직였다.
“흡!”
더 이상 말을 섞을 틈은 없었다.
제대로 끝내기 위해서 드래곤으로 변신한 상대가 가차없이 날아들었기 때문에, 피하는 것에 급급해야 했다.
피하기만 해서는 안 된다.
제기랄. 좋은 생각이 떠오르면 뭐 하냐고. 공격이 통해야 막든 말든 할 거 아니냐.
드래곤의 약점은 역린이라고 한 적 있다.
그러니 역린을 건드리면 돼.
그런데… 이 거구의 몸에서 언제 역린을 찾을지, 찾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다.
하늘을 나는 놈을 상대로 배는 볼 수 있어도, 등을 볼 수는 없으니 난감했다.
아니, 그보다 무기가 없으니 놈이 땅으로 날아들어도 공격할 수단이 없다.
“시발. 무기 하나 정돈 쥐어달라고. 난 맨몸이잖아.”
불평을 입에 담고는 한쪽 손을 들었다.
이런 드래곤을 상대로는 대체 뭐가 통할까. 알 수는 없었다. 알아도 이런 상황에서는 구할 수는 없었다.
뭐든 무기로 쓸 수 있는 거라면 좋으니, 뭐라도.
콰직.
“끄아아아아악!”
드래곤의 발톱은 저렇게 크면서, 어찌 그리 날카로운지 오른팔을 잘라갔다.
그녀가 땅으로 날아들 때마다 엄청난 충격음과 동시에 시야가 흔들린다.
잘려나간 팔을 왼손으로 붙잡고, 발로 고정했다.
그녀가 다시 한번 공격하기 위해 하늘을 날았을 때가 기회다.
내 몸은 뼈부터 재생된다. 스르륵, 하고 뼈가 재생되는 동시에 재생되는 뼈를 나이프 삼아 잘린 팔을 뚫어냈다.
그리고 그 팔에서 내 뼈를 뽑아냈다.
팔에는 얇은 뼈가 두 개 있다. 그 중, 두꺼운 뼈를 나이프 삼아 들었다.
“후우.”
역린을 찾아서, 이걸로 찌르면 된다.
될지는 모른다.
그녀를 물리치지 않으면 나는 돌아갈 수 없게 된다.
평생을 아파하면서 죽어가는 것을 반복하다가, 시간을 빼앗겨 정말로 죽게 되는 것은 사양이었다.
다른 용사들보다 무력한 나는, 누구보다 멈춰 서 있으면 안 되는 존재다.
그런 건 이전 세계에서부터 잘 알고 있었다.
“으아아아아!”
나아가야만 한다.
[가소로운 것.]
“쿨럭!”
목 위로 피가 차오른다.
갈비뼈가 뭉개졌는지 숨이 쉬어지지 않는다.
아아, 그녀의 발길질에 상체가 뭉개졌구나.
*
“하아!”
기세 좋게 눈을 뜬 순간, 나는 부유감을 느끼고 있었다.
배를 두르고 있는 드래곤의 발톱을 보니, 그녀가 날 붙잡고 있는 듯했다.
대체 이게 무슨 상황인가 싶어 그녀의 얼굴 쪽을 힐끔 바라보자, 그녀는 코웃음을 치더니, 발을 풀었다.
“젠장.”
이번에는 추락사인가. 별의별 죽음을 다 겪어본다.
그녀와 함께 둘이서 오붓하게 있는 짧은 시간 동안에, 분사, 압사, 질식사, 폭사, 폭행치사 등 별 걸 다 겪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추락사라니.
지구였다면 유네스코 등재 해도 될 판이다.
[죽어.]
짧고, 단호하게 들리는 그녀의 목소리를 들으며 나는 빠르게 허공을 가로질렀다.
허공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이, 하늘을 멍하니 바라보며 땅을 향해 돌진했다.
콰직.
그리고 머리가 깨지는 것과 동시에 입에서 피 맛이 감도는 것 같았다.
아아. 떨어져 죽는 것도, 금방 죽는 게 아니구나 이거…. 고통스럽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