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22화 〉episode4. 승급심사 (2) (22/98)



〈 22화 〉episode4. 승급심사 (2)

*

세라가 주문을 읊은  불러낸 사역마는 엄청나게 컸다.
 사역마의 울부짖음에 공기가 흔들리고, 땅이 울릴 정도였으니 어마어마한 광경임에는 틀림 없었다.

“대체, 어떻게 저런 마법을….”

엘리샤도 왕성에서 생활하면서 저런 마법은 처음 보는 것 같았다.
왕성에서, 그리고 공주로 살면서 당연히 더 대단한 것을 보고 자랄 법도 했는데 마냥 그런 것만은 아니었는지 세라를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몸을 일으켜서 좀 제대로 보고 싶었는데, 긴장한 엘리샤가 내 머리를 잡고 놔주질 않아 일어날  없었다.


“성하의 마력 때문인가요…?”

리타는 오늘 아침에 나와 세라가 관계를 맺는 모습을 봤었다.
그리고 그것이 마족의 식사라는 점은 알고 있었고, 세라가 폭식하는 장면까지 봤었다.
그것이 뇌리에 스쳤는지, 세라의 모습과 내 모습을 번갈아 보면서 믿을 수 없다는 말을 꺼냈다.
세라가 꺼낼 수 있다고 단언했던 마법보다, 월등히 수준이 높고 강력한 마법이었기에 놀라지 않는 것이 이상한 걸지도 모르겠다.

“성하는 혹시… 마나를 그만큼 가지고 있어서 되살아나는 건가요?”
“아니, 그럴 리가 없잖아. 마력도 없는데 그걸 운용할 힘이 어디 있다고 그래?”

리타는 세라가 끌어다 쓴 힘이 내 마나를 섭취했기 때문이라고 판단했는지 질문을 던졌다.
물론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었다.
마력이 없는 내가 수만, 수억이나 되는 마나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쓸 수 있을 리 없었다.
리타가 하는 생각을 안 해본 것은 아니지만, 내가 쓰고 싶다고 생각한 마법도 아니었으니 나랑은 관계가 멀었다.
 능력은 내 마나로 돌아가는 능력이 아니라, 누군가에게서 강제로 부여받은 힘이나 마찬가지였다.

“알고 있으니까 제 눈치는 안 보셔도 돼요.”
“리타가 있으니까 말이지.”
“하하하….”

그런데 내가 되살아난다는 말을 막 해도 되는 건가 싶어 엘리샤를 힐끔 바라보았다.
 걱정을 눈치챘는지, 엘리샤는 손가락으로  이마를 톡 짚으며 안심시켜주었다.
슬쩍 리타를 바라보니, 리타는 어딘가 찔리는 구석이 많은지 조금 떨어져서 건조한 웃음을 뱉었다.

“어?”


그렇게 하찮은 이야기를 떨면서 세라가 하이오크를 간단하게 처리하는 모습을 보았다.
대견한 마음이 있었다. 아무리 내 마나를 빌려다 쓴 것이라 해도, 세라가 나와 함께 있는 동안에는  정도 실력을 유지해줄 수 있을 것 같았다. 물론 그 대가가 크겠지만.
그렇게 가볍게 하이오크를 씹어먹은 사역마는 안개처럼 공중으로 흩어졌고, 세라는 이쪽으로 성큼성큼 다가왔다.
그렇게 몇 발자국 걸어왔을까, 세라는 코피를 흘리더니 바닥에 풀썩 엎어졌다.

“세라!”
“아.”

무릎을 베고 있던 머리를 떼고, 엘리샤를 뒤로한 채 몸을 일으켰다.
엘리샤는 뭔가 아쉬워하는 목소리를 내고 있었지만, 지금은 그러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역시 오늘 빨아 먹은 마나를 다 써버린 거였구나. 어쩐지 사역마가 말도 안 되게 크더라.
좀 아끼라니까 뭘 그리 신나서는 펑펑 써대는 건지. 하긴, 나 같아도 뭔가  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면 멈추지 않았을 것 같다.
그것이 일전에 내가 도달할 수 없었던 영역이라면 더더욱.


“괜찮아?”
“성, 하… 님. 저는 괜찮았나요? 통과, 하겠죠?”
“너 정도면 S급 시험도 봐도 돼.”
“다행이다.”

세라를 슬쩍 들어 안아 얼굴을 살펴보니 아니나 다를까, 엄청나게 창백했다.
마나를 양식으로 삼는 주제에 마나를 그렇게 들이부으니까 이 꼴이 나는 거다.
세라의 상태를 살피니, 세라는 아직 의식을 잃은 정도는 아니었다. 다행이었다.


“…!”

세라의 안부를 묻고 있는 가운데, 돌담 쪽에 있던 리타가 뭔가 외치고 있었다.
엘리샤는 어쩔 줄 몰라 안절부절 몸을 가만히 두지 못하고 있었다. 대체 무슨 상황이지.
일단 세라를 안고 돌아가야 할 것 같아서 공주님 안기로 세라를 안았다.
그 순간, 내가 있던 자리에 그림자가 졌다. 구름이 꼈나, 하고 고개를 들어 고개를 드는 순간 무언가가 하늘을 가리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성하 씨! 피해요!”
“성하! 도망쳐요!”

리타와 엘리샤가 뭔가를 외치고 있나 했는데, 저런 말을 하려던 것이었구나.
눈치가 없어도 너무 없었다. 지금 도망가면 늦으려나.

―!

붉은 갑옷을 두른 듯한 거대한 괴수의 포효가 귀를 찢는 것 같았다.
판타지 세계라면 가끔 보이기 쉬운 커다란 짐승, 드래곤이 하늘을 가리고 공중을 날았다.
퍼덕이는 날갯짓에 바람이 일고, 그 괴수가 내뿜는 입김에 열기가 감돌았다.
동굴에 금화를 모아두고 탐하는 모험가를 죽이거나, 공주를 납치해 인질로 삼는 건  번쯤 들어본  있는 이야기였다.
그런데  드래곤은 그럴 것 같진 않고, 일단 여기 있는 모두를 죽일 것 같았다.
가차 없는 세계관이었으니 말이지.

“리타!”


발걸음을 재촉해 빠른 속도로 지면을 밟았다. 어느 정도 리타와 가까워졌을 무렵 세라를 냅다 던졌다.
받으라는 신호로 리타의 이름을 부르자, 드래곤을 경계하던 리타는 순간적으로 자세를 잡아 세라를 받아들었다.
갑자기 이렇게 세라를 던지는 것도 미안하지만, 그녀라면 확실히 받을 수 있겠지.
던져진 세라를 넘겨받은 리타는 순간적으로 받은 무게감에 중심을 잠깐 잃는 듯하더니, 이내 균형을 잡고서 반대편으로 냅다 달렸다.
아, 다행이라 해야 하나.
리타와 엘리샤가 등을 돌려 도망가는 순간,  주변은 붉은빛으로 휩싸였다.




*



[인간?]

 정신을 잃었던 건가. 아니, 죽었던  같다. 브레스 맞고  방에 가버린 것 같은데.
묘하게 울리는 목소리에 귀가 아프다. 제길, 내 무기는 엘리샤가 잘 챙겨준 것 같다.
문제는, 내가 가지고 있는 무기가 하나도 없다는 점이다. 아니 애초에 옷 하나 남지 않은 나체였다.
이세계로 넘어와서 별별 경험을 다 해본다고 중얼거린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벌써 야외노출까지 경험하게  줄은 몰랐다.


[어째서 살아있는 거지?]
“미친 세계야 진짜. 여기서 난 몇 번을 죽는 건지 원.”

땅을 짚고 몸을 일으키려는데, 팔이 후들거려서 제대로 일어날 수가 없었다.
얼마 죽지 않은 것 같긴 한데, 원래 사람은 생명이 한 개다. 한  이상 죽은 경험이 있다는 점에서 일반적으로 아웃이다.
내가 이런 능력이 없었더라면 진작에 오크 발밑에 깔려 짐승의 밥이 되어 있었겠지.
리타에게 죽어 여관에서 시체로 발견됐을 수도 있고, 마족에게 죽어 맛있는 한 끼 식사가 됐을 수도 있었다.
살아나는 횟수가 정해져 있는 건지, 아니면 무제한인지 알 턱은 없었다. 그러니까 이번에도 다시 살아났다는 것에 감사하기로 하며 몸을 일으켰다.

[무시하는 건가? 어째서 살아있냐고 물었을 텐데.]
“사람…  아니네.”


상처 하나 없이 맨들맨들한 피부를 드러낸 채로 바닥에 주저앉자, 붉은 머리카락의 소녀가 내 앞에 착지했다.
아까부터 울리는 목소리의 주인공인 양, 그녀가 입을 뻐끔거릴 때마다 귀가 울려댔다.
빳빳한 붉은 머리카락을 따라 시선을 얼굴에서 천천히 내려가니,  쪽에 붉은 날개가 있었고, 다리 사이로 감춰지지 않은 붉은 꼬리가 살랑거리고 있었다.
아까 그 드래곤이 인간으로 변한 건가. 별 재주도 많다.

[몇 번을 물어도 무시한다 이거지?]
“잠깐만.”
[여긴 내 터전이란 말이다!]


그러고 보니, 그녀가 자꾸 뭔가를 물어보고 있었다.
정신이 팔린 나머지 그녀의 질문에 대답할 생각을  못했다.
한계에 다다른 그녀가 붉게 물든 주먹을 치켜들자, 주먹만 부분적으로 비늘로 덮였다.
갑옷을 두른 듯한 비늘의 자태를 보아하니 맞으면 꽤 아플 것 같았다. 그녀를 진정시키려 두 손을 뻗어 봤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는 듯이 그녀의 외침과 함께 주먹이 날아왔다.


“크헉!”

리타와 엘리샤는 세라를 데리고 안전한 곳으로 갔겠지?
주먹을 맞으니 너무 아프다. 다행이다. 다른 애들도 여기 있었으면 뼈도  추렸을 것이다.
장담한다. 지금 주먹을 맞은 부분을 중심으로 복부에 구멍이 나 있으니까. 사람이라면 아무리 강해도 사람 배에 구멍을 내는 기행은 벌이지 못한다.
심지어 마법도 아니라 그냥 주먹질이다.
역시 드래곤은 드래곤이라는 걸 보여주는 대목이었다.

[왜 안 죽는 것이지? 왜  죽는 것이냐! 어째서 숨이 붙어 있는 것이냐!]

의식이 잠깐 멀어진 새에 몸이 다시 복구되어 간다.
가출했던 장기들이 다시 하나씩 몸을 메워가며, 뼈가 장기를 덮었다. 혈관과 근육이 뼈를 덮고 마지막에는 피부가 새로 돋아났다.
그 광경을 본 드래곤은 제대로 죽지 않는 내 모습에 화를 내면서 애꿎은 땅을 몇 번이고 짓밟았다.
마법사협회 놈들, 이런 포악한 드래곤이 사는 터전에다가 심사장이랍시고 만든 건가? 빈집으로 착각하고 만들어도  정도 책임이면 중죄다.
시발놈들. 돌아가면 길드부터 엎어버릴 테다.


[말이 안 통하는 건가? 검은 머리카락… 그래 너 마족이구나? 그렇지? 내 둥지까지 잡아먹으러 온 거구나? 그렇지?]
“아니야. 난 그, 소환자야. 용사랑 같은 고향에서 온.”
[용사? 같은 고향?]


일단 이건 내가 잘못한 것 같으니 날 죽인 것 가지고 뭐라 할 말은 없었다.
그냥 놔주면 참 좋을 텐데, 놔주긴 할까. 주거침입에다가,  심사랍시고 남의 집에서 난동까지 부렸으니 죽이고 싶을 수도 있겠지.
드래곤은 인간을 낮잡아 보는 개체였으니, 지금 이 순간에 짜증이 치밀어 오를 법도 했다.
일단 해명을 하기 위해 배에서 느껴지는 고통을 참으며 입을 열었다.

[용사. 용사라. 용사. 용사. 용사. 용사!]


습, 좆됐네. 그, 뭐라 하더라. 이런 상황에서 드래곤한테 가장 어울리는 말이 있었는데…. 아, 역린을 건드렸다.
대체 다른 용사들은 뭘 하길래 브레스로 사람을 벌레처럼 죽이는 드래곤을 저렇게 만들 수 있는 걸까.
이쯤 되면 경이롭다. 라고 밖에 할 수 없었다. 벌써 드래곤한테 원한을  수 있을 정도로 진도가 빠르다는  알 수 있었고, 드래곤한테 화를 나게 할 정도로 좆같게 굴었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마족이라 하는 편이 좀 더 이야기가 통했겠다.


“저, 이번 일은 미안해. 길드에서 심사랍시고 이쪽으로 보내주는 바람에, 의심 없이 여기서 시험을 치러버렸네. 여기가  집일 줄은 꿈에도 몰랐어. 정말, 미안해.”


이렇게 되면 정공법이다. 어차피 상대도 안 되는 데다가, 도망친다 하더라도 리타나 세라, 엘리샤가 어디로 숨었는지 몰라 괜한 곳에서 같이  죽으면 말짱 꽝이었다.
잘못한 것도 이쪽이니 어떻게든 사과를 해서 이 자리를 벗어나는 것이 바람직했다.
물론 놔준다는 것이 전제지만 말이다.
브레스 한 번으로 옷이 다 타버린 탓에 알몸으로 이렇게 비는 것도 조금 꼴사나웠지만, 그래도 살아야 하니까 별수 없었다.

[용서를 구하는 건가? 미안하지만, 용사에게 해줄 용서는 없다. 그에 합당한 책임을 져라.]
“책임이라니?”
[죽음이다. 내게 치근덕대던 용사도, 그렇게 죽였다.]


대체 드래곤한테 들이댄 새끼는 뭐 하는 새끼였을까. 뭘 어떻게 들이대면 죽을 지경까지 멈추지 않았던 걸까.
애초에 드래곤 터전까지 찾아와서 고백질 하는 놈의 심리 상태가 궁금했다.
게다가 벌써 리타이어 당한 용사가 있을 줄은 몰랐다. 생존권에 경쟁자가 하나 줄었다고 좋아해야 하나, 지금 이 순간 저 드래곤을 빡치게 한 것에 대해 화를 내야 하나.
참으로 난감한 상황이었다.


[초재생인가. 뭐, 그런 능력은 다른 드래곤한테도 흔히 보이는 거니 상관없나.]
“어어? 어? 잠시만.”
[잘 가라. 초재생 같은 능력은 쓰지 않는 것이 좋을 거다. 아프지 않게 보내줄 테니 일어나지 마라.]
“끄으으윽!”

붉은 드래곤은 낮은 목소리로 조용히 글을 읊듯이 말했다.
최후 통보라도 하는 것처럼 말을 건넨 드래곤은 붉은 갑옷을 두른 주먹에 마법을 실었다.
아마도, 제대로 끝을 내려는 거겠지. 이렇게 나온다면 더 이상 나와 할 이야기는 없다는 뜻이었다.
집에 들러붙은 벌레라도 처리하는 것처럼 그녀는 주먹을 내리쳤다.
아프지 않을 거라더니 순 거짓말이다. 시야가 흐려지는 와중에도,  가슴에는 분명한 통증이 있었다.

[잘 가라.]

너무 아프다. 아무리 죽어도 죽을 때의 고통에는 전혀 익숙해지지 않는다.
아픔이란 게 몸이 보내는 경고 신호라고는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는 그냥 통각이 조금 누그러졌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그 세 명은 길드로 잘 도망쳤을까, 아니면 돌아가지 못해서 어디 근처로 숨었을까.
있는  풀 한쪽 없는 돌뿐이라, 어디 멀리 도망가는 것은 조금 힘들 것 같았다. 그러니 전자이기를 바랄 수밖에.
그렇게 드래곤의 잔잔한 목소리를 듣는 것과 동시에 의식이 멀어졌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