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화 〉episode4. 승급심사 (1)
*
엘리샤의 의견을 따라 다시 창구로 돌아가 승급 심사를 요구했다.
아니나 다를까, 역시 시간과 노력을 건너뛰려는 심사이기 때문에 다소 힘이 드는 듯했다.
“잠시만요.”
접수가 끝난 뒤, 꽤 거액의 돈을 내고 심사를 기다리게 되었다.
하긴, 심사라고 해봤자 몬스터와 싸우는 게 심사 대신이 아닐까.
파티의 힘을 배제한 채로 혼자서 싸우는 게 되는 걸까, 생각도 들었다.
세라는 탐색꾼이지만, 심사에는 탐색꾼이나 검사 같은 포지션과는 별개로 개인의 역량을 잰다고 하니 걱정이 되었다.
“저도 금색 테두리 받을 수 있는 거에요?!”
“아니, 그건 네가 하기 나름이지.”
아직 심사 신청만 한 것뿐인데 세라는 벌써 S급 모험가 카드를 받은 것처럼 기뻐하고 있었다.
뭐, 아무것도 없이 나무로만 된 카드보단 뭐라도 꾸며져 있는 게 이쁘긴 하지.
특이한 나무 재질로 만들어진 세라의 모험가 카드를 만지작거릴수록 씁쓸함이 입에 남았다.
몸에 마나가 있으면 뭐하나. 마력 하나 없어서 내 모험가 카드 하나 만들지도 못하는 사실에, 헛웃음만 나올 뿐이었다.
“에리, 괜찮아?”
“응, 오늘따라 사람 많은 곳에 있었더니 힘든 것 같네.”
씁쓸한 마음을 뒤로하고 옆을 슬쩍 돌아보자, 리타와 엘리샤는 둘이서 뭔가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대충 괜찮다는 이야기가 귀에 들려오니 조금은 안심이 되었다.
아팠다고 하면 바로 왕성에다가 반품하려고 했는데, 아직은 때가 아닌 듯했다.
코웃음을 치며 다시 세라의 카드를 만지고 있는데, 세라가 내 옆에 서서는 어깨를 들썩이면서 자신의 카드를 가져갔다.
“슬슬 가야 해요!”
“어딜?”
“심사에 필요하대요.”
잠시 리타와 엘리샤 쪽에 한눈 판 사이 세라가 무슨 소리를 들었던 건지 카드를 챙겨 어디론가 향했다.
그새 직원이 왔었구나. 어쩐지 흥얼거리면서 카드를 채가더라니.
“어, 세라 오늘 심사 가는 거예요?”
“이거 원래 하루 만에 되는 건진 모르겠는데, 엘리샤 덕분인가?”
“제가 뭐라고 그렇게까지….”
리타에게 눈길을 주며 손가락으로 세라를 가리키자 리타는 놀란 듯이 나를 쳐다보았다.
말하는 걸 들어보니 원래 신청한 당일에 되는 게 아닌 것 같았다.
설마, 이거 엘리샤가 있어서 힘을 쓴 건가? 싶어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엘리샤를 바라보았다. 엘리샤는 자신은 모른다는 양, 손을 저었다.
아무리 봐도 엘리샤가 있어서 부마스터가 손을 써준 게 분명했다.
S급 모험가인 리타가 저런 반응이라면 원래는 저렇지 않은 거니까.
“세라 테리우스 님. 이쪽입니다. 뒤에 분들은 보호자신가요?”
“아니요, 파티 멤버입니다.”
직원을 뒤따라 걸어 길드 내부로 들어갔다.
이렇게 내부로 들어가면 오히려 시험을 보지 못하는 것 아닐까. 그런 걱정을 하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렇게 안을 걷고, 또 걸어 어느 문에 도착했다.
직원의 물음에 단호하게 대답하고서 눈앞에 있는 문을 바라보았다.
“여기는 마법사협회에서 직접 제작한 심사 시스템입니다. 세라 님, 신청한 모험가 등급은 A, 맞으시죠?”
“야, 너 너무 높게 잡은 거 아니야?”
“괜찮아요. 전 지금 아주 강하니까요.”
직원이 문고리를 잡은 채, 다시 한번 정보를 확인했다.
그런데 A라니, 갑자기 A급 모험가를 노리다니 배짱도 컸다.
C나 B급이면 몰라도 대체 무슨 생각으로 선택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세라는 자신이 뭔가 생각이 있는 듯했다.
자신 있게 말하는 세라의 표정에는 망설임 같은 건 보이지 않았다.
“성하 씨. 세라는 잘 할거예요.”
엘리샤는 뒤에서 세라를 응원하는 듯이 말을 걸어왔다.
“그럼 무운을.”
세라의 카드를 받아 든 직원은 그 한 마디를 마지막으로 문고리를 잡고 비틀었다.
쏟아지는 빛이 시야를 가렸다.
*
“여긴 어디지.”
“성하 씨?”
정신을 차리니 옆에는 엘리샤와 리타가 있었다.
“성하? 괜찮아요?”
신음을 흘리며 고개를 들자 주변에는 돌담이 붙어 있었다.
제길, 정신을 잃었던 건가.
“어, 괜찮은 것 같은데… 나 얼마나 기절해 있었어?”
“얼마 지나지도 않았어요. 세라는 저기 있고요.”
리타는 빠르게 내 몸 상태를 체크하고는 세라의 위치까지 파악하고서 알려주었다.
엘리샤는 옆에서 뭘 해야 할지 몰라 주변을 빙빙 돌며 내 얼굴을 바라보고 있었다.
쩔쩔매는 엘리샤의 모습을 보니 뭔가 심하게 다친 줄 알았는데, 아니어서 다행이다.
그동안 왕가에서 곱게 키워서 그런가 사소한 것 하나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는 듯했다.
뭐, 문 한 번 열고 들어간 순간 몇 초 동안 의식을 잃었던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성하 씨. 여긴, 뭔가 결투장 같네요.”
엘리샤의 말에 상체까지 들어 올려 주변을 둘러보았다.
돌로 이루어진 일대에, 돌담이 원을 그리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중앙에는, 세라가 서 있었다.
마법사협회에서 만들었다더니 대체 뭘 만든 건지, 마법이 이렇게 경이로운 느낌을 줄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공간 마법인 걸까.
“앗, 힘드시면 제 무릎 쓰셔도 돼요.”
“아니 그럴 수는….”
“부디 사양하지 마시고.”
“에리! 공주님이 되어서 그러는 것은 조금…! 다른 사람들이 보면 어쩌려고 그래!”
“괜찮아.”
몸을 일으키려는데 왜인지 몸이 무거웠다.
전에 느꼈던 감각이었지만, 지금의 난 싸우지도 않았고, 기억을 끌어다 쓴 적도 없는 것 같은데 왜 이러는 걸까.
몸을 휘청이며 기댈 곳을 찾으려 두리번거리자, 엘리샤는 내 모습을 보고 뭔가를 눈치챘는지, 더러워지는 것도 신경 쓰지 않은 채 바닥에 주저앉아 자신의 허벅지를 톡톡 두드렸다.
돌밖에 없는 이곳에서, 무릎베개를 해준다고 하면 감사하게는 생각해도, 냉큼 받아들이진 못했다.
그냥 이대로 있는 게 나을 것 같아 거절하자, 엘리샤는 재촉하듯이 내 소매를 잡아 휙 당겼다. 생각보다 힘이 세다. 리타만큼은 아니지만, 일단 나보다 센 것은 분명했다.
힘에 못 이겨 무릎에 눕자 편안한 감촉이 들었다. 긴 세월 동안 동고동락한 기분이 드는 베개의 감촉이었다.
뭐지 이 편안함. 잠들 것 같아.
내 모습에 리타는 경악을 하고는, 엘리샤를 타이르기 시작했다.
“정말, 주변에서 심사원이 보고 있으면 어쩌려고 그러는지….”
리타는 끝내 엘리샤의 고집을 꺾지 못한 채 엘리샤의 옆에 앉았다.
나는 지금 편안하다.
“자, 에리. 성하를 이쪽으로 넘겨. 내가 대신 하도록 할게.”
“아니 됐어. 익숙하기도 하고.”
“익숙하다니?! 또 누굴 해 준 거야? 왕성에서 그럴 사람이 있어?”
“비밀이야.”
리타는 엘리샤처럼 주자 앉은 채 자신의 허벅지를 두드리며 말했다.
엘리샤가 공주이기도 하니 체통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것처럼 보였다.
리타가 저러는데, 내가 계속 여기 누워있을 수만은 없는 노릇이니 일어나도록 할까.
그렇게 몸을 일으키려는 순간, 엘리샤는 리타의 말을 거절하며 일어나려던 내 몸을 붙잡았다.
“돌담이 높지 않아서 세라도 잘 보이고 좋죠?”
“어? 어어. 그러네.”
“에리….”
엘리샤는 세라가 있는 곳을 가리키며 내 머리를 슥 쓰다듬었다.
내 머리를 누가 상냥한 손길로 만지고 있자니 소름이 돋았다.
무릎베개라는 상황도 처음 겪는 것 같은데, 참 기묘하다.
오히려 이 세계에 와서 별걸 다 경험하는 기분이 들었다.
“근데, 쟨 저기서 혼자 뭐해?”
“그, 기다려야 해요. B급 심사부터는 테이밍한 몬스터로는 대체가 안 되어서, 다른 몬스터를 불러와야 하는….”
멀뚱멀뚱 하늘을 보고 서 있는 세라를 보며 리타에게 물었다.
그나마 이쪽 지식에 해박한 리타라면 뭐라도 알고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질문을 던졌다.
역시나 S급 모험가라 모험가에 대한 거라면 어느 정도는 다 알고 있다는 듯이 술술 읊었다.
“아, 왔네요.”
“전에 봤던 하이오크 같은데?”
“B급을 혼자 처리할 수 있으면, A급은 금방이죠. 원래는 B급 파티가 모여 B급 몬스터를 잡을 수 있으니까요.”
전에 봤던 하이오크와 생김새가 똑같았다.
저런 건 대체 어디서 구해오는 건지 모르겠는데, 몽둥이를 질질 끌면서 세라의 앞으로 다가갔다.
“괜찮은 걸까.”
“글쎄요. 오늘 아침에 성하 마나를 다 빨아먹어서 가능하지 않을까요.”
“아니 그럼 도핑 검사 해야 하는 거 아닌가…아아아?!”
“아, 죄송해요. 흰머리가 있길래.”
“적어도 새치라고 해줄래…?”
이렇게 편안하게 누워서 이런 말 하는 것도 좀 우습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조금 걱정이 되었다.
물론 내가 한 방에 나가떨어진 기억 때문에 조금 위축되는 감이 없잖아 있지만 그래도 어린애처럼 보이는 애가 저런 2미터는 훌쩍 넘어 보이는 거구의 몬스터를 상대할 수 있을 것 같진 않았다.
판타지 세계니까 뭐 그런 걸 걱정하는 게 이상한 일일지도 모르지만.
리타랑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엘리샤가 내 머리카락 한 가닥을 뽑았다. 갑자기 느껴지는 통증에 놀라 엘레샤를 올려다보자, 엘리샤는 어쩔 줄 모른다는 표정으로 사과하면서 머리카락을 뒤로 던졌다.
# # #
자신의 두 배는 되어 보이는 높이, 몇 배나 더 큰 덩치에 세라는 긴장하고 있었다.
손을 꽉 쥐며 리타가 하는 것처럼 두 주먹을 맞부딪혔다.
너클 같은 것을 끼고 있는 것도 아니라서 경쾌한 소리는 나지 않았지만, 그녀가 두르고 있는 마기의 마찰음은 확실하게 들려왔다.
끼기기긱.
어딘가 불쾌하게 들려오는 소리에 세라는 눈을 찌푸렸다.
자신이 섭취한 마나를 모두 뽑아내려 하자, 공중에서 농밀한 탁기가 주변을 메워갔다.
“―?!”
하이오크는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서 경계태세에 들어갔지만 이미 세라의 사정거리 안에 있었다.
덩치는 작음에도, 세라는 마족이었다. 마족이기에, 성하의 마나를 양껏 빨아낼 수 있었다.
세라는 자조적인 웃음을 지으며 두 팔을 벌렸다.
세라는 과거를 회상하는 것과 동시에 마법을 발동시키려 했다. 그녀는 처음 인간계로 나와, 오빠의 뒤를 따라나서 ‘식사’를 하려고 했었다. 말 그대로의 인간 사냥이었다.
그리고 세라는 그곳에서 성하를 만났다.
“모든 걸 집어삼키소서.”
그녀는 자신의 오빠를 죽였던 성하를 원망했었다. 그리고, 마계의 위치를 말하라면서 거리낌 없이 자신을 죽이려 했던 성하를 두려워했었다.
처음에는 분명 목숨 구걸로 시작한 동행이었으나, 이 짧은 시간에 세라는 알 수 있었다.
성하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자신은 죽을 때까지 사람을 잡아먹고 살았을 것이란 사실을.
세라의 주문에 안개처럼 퍼진 탁기가 형태를 이루었다.
“모든 걸 먹어치우소서.”
기도처럼 들리는 주문을 읊은 세라는 눈앞의 적을 응시했다.
성하에게서 받은 마나를, 모조리 들이부어 마법을 펼쳤다.
그 동시에 오른팔을 팟, 하고 하늘을 향해 치켜세우자 세라의 뒤로 거대한 형상이 나타났다.
“재앙이여!”
재앙이라 불린 새는 하이오크보다 거대한 몸집을 뽐내고 있었다.
어두운 탁기를 흩날리는 새는 굉음을 내며 하늘에 드리워져 있었다.
흐린 날씨처럼 하늘을 덮고, 천둥이 치는 것처럼 울부짖었다.
세라는 성하를 힐끔 바라보았다. 자신을 제대로 봐달라는 듯이 미소를 지었다.
“적을 섬멸하소서.”
세라는 성하에게서 받은 마나를 들이부어 마지막 구절을 읊었다.
네 구절 밖에 안 되는 짧은 구절에도 A급 시험을 가볍게 뛰어넘을 수 있을 정도로 성하의 마나는 강력했다.
물론 그녀가 아침부터 성하를 쥐어 짜낸 탓에 많은 비축분을 가지게 된 것도 있었다.
그 덕에 성하의 마나를 받은 세라는 지금 이 순간, 전능감을 느끼고 있었다.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마음에 그녀의 가슴은 두근거렸다.
그녀는 마족으로 태어나, 사람의 몸으로 정제된 마나를 먹어야 하는 자신의 체질을 원망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마족으로 태어나 성하를 만난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
마지막 구절과 함께, 하이오크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비명을 지르며 거대한 새에게 잡아먹혔다.
세라는 가벼운 숨을 내뱉으며 성하를 바라보았다.
엘리샤의 무릎을 베개 삼아 누워있는 것을 보니 조금 질투 나는 그녀였지만, 아직 그녀는 자신이 품은 이 감정이 질투라는 것인지 자각하지 못한 채 볼을 부풀렸다.
“나는 이렇게 열심히 하는데, 왜 저 공주님한테 찰싹 붙어 있는 거야.”
세라는 B급 하이오크를 손쉽게 잡고서 성하에게 성큼성큼 걸어갔다.
“어. 너무 많이 썼나….”
마계를 찾은 이후에도, 자신을 써 달라는 어필을 하기 위해 무리한 세라는 코피를 흘렸다.
그녀는 어질어질한 시야에 발걸음을 멈추고, 손으로 코피를 닦았다.
“안 되는데.”
쓸모 있어야 하는데. 세라는 그런 생각을 하는 것과 동시에 쓰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