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6화 〉episode3. 소동 (3) (16/98)



〈 16화 〉episode3. 소동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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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럴 때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몸을 일으켰다. 가죽 갑옷에 그나마 코팅을 해놔서 망정이지 안쪽에 입은 옷이 물에 젖어 몸을 무겁게 만들고 있었다.

“세라, 나  번만 위로 태워줘.”
“저 마나 다 떨어졌는데요?”
“…빨리 먹어.”

지금 정황을 가장 빠르게 파악할 수 있는 것은 하늘이었다.
 감옥에 잡혀 얼마나 오래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아직 주변이 혼란스러운 것을 보니 몬스터들이 아직도 날뛰고 있다는 것은 분명했다.
허겁지겁 리타의 옆에서 멀뚱멀뚱 서 있던 세라에게 다가가니 참새 크기의 새를 꺼내고는 혀로 윗입술을 훑었다. 그새 하늘을 가로지르고서 마나를 다 쓴 거겠지.


“성하. 같이 올라가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착지할 때 새를 낮추는 것보다, 저와 함께 떨어지는 게 빨라요.”
“감당은 돼?”
“그 정도는 교회에서 알려줘요.”


교회에선 대체 뭘 가르치는 걸까. 아무리 국정이랑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지만 그 정도로 훈련할 이유가 있을까.
싱숭생숭한 기분을 잠시 덮어두고 눈을 질끈 감았다.
어차피 내가 전투에 대해서 아는 것도 없으니까, 지휘는 리타에게 맡겨도 좋을 것이다. 훈련도 받았을 테고, S급에 맞는 기술이나 전술을 알고 있을 테니 그녀의 실력을 믿는 수밖에 없었다.
콰직.
시야가 어지러워진다.

“이 피는 깨끗하게  둘게요.”


세라가 깨문 상처들에서 흘러내리는 피를 치우기 위해 주문을 읊고 있었다. 그에 아랑곳하지 않는 세라는 입꼬리를 올리며 이빨을 세웠다.
으득거리며 근육이 뜯겨나가는 소리가 너무 현실적으로 들려온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이런 것뿐이라는 사실에 나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진다. 나도 옆에 있는 다른 모험가들처럼 어느 정도의 마력만 있었더라면 뭔가를 해봤을 텐데.
이렇게 불평 말곤 할 수 없는 자신도 한심하게 느껴졌다.

“다 됐어요. 세라도 다 됐어?”


어느샌가 막내가 된 세라는 리타의 물음에 조심스레 고개를 끄덕이고는 거대한 새를 불러왔다.
퍼덕이는 날갯짓에 주변에 강풍이 몰아쳤다. 오랫동안 먹나 싶었는데,  강한 새를 불러온 것 같았다.
아끼라니까 말도 안 듣고 계속해서 낭비하는 기분이 들었지만, 지금은 그런 걸 탓할 때가 아니다. 다른 모험가들이 죽지 않도록 통솔하는 것이 나의 책임이었다.
내 피와 살에 가득 찬 마나에 몬스터가 생겨난 것이니, 그들이 죽지 않고 짭짤한 보수를 챙겨간다면 나는 조금 죄책감을 덜 수 있을까.
아무도 다치지 않게 할 수는 없지만, 그런 약속은 할 수 없지만, 죽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주겠노라고 다짐하며 세라의 뒤에 탔다.

“날아라!”

세라의 외침에 붕 하고 뜨는 감각에 눈이 휘둥그레 떠졌다. 비행기를 탔을 때랑은 다른 기분. 중력이 한 번에 몸을 짓누르는 감각에 잠시 버거웠다.
몇 초 되지 않아 하늘에 도착한 나는 새의 신체 사이로 전황을 살폈다.

“리타, 뭐 보여?”
“이거, D급이 아니라 C급 이상으로 구했어야 했네요. 몬스터들 상태가 조금 포악해요.”
“미안하네.”
“성하 님의 마나는 농도가 짙고, 밀도가 높아서 그런 걸 거에요.”
“마력은 없는데, 왜 신체에 그런 구조인 건지 모르겠네.”

원을 그리며 하늘을 날아 주변을 확인할 때마다 리타는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아마도 난전 상황에서 좋은 꼴을 보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이리라. 불안감에 그녀의 말을 재촉하자 리타는 상황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세라는 가장 앞에서 신난다는 듯이 새의 깃털을  쥐면서 운전하듯이 움직이고 있었다.
저 깃털이 운전대 역할을 하는 건가.

“성하. 내려가요.”
“어?!”


얼마나 심각한 사태였으면 얼마 있지도 않았는데 내려가잔 소리를 하는 걸까.
뻣뻣이 몸을 굳히고 있었는데 리타의 힘이 얼마나 센지 강제로 몸이 들어올려졌다.

“세라는 지원 마법 좀 쓰다가 마나가 떨어지면 내려와.”
“네엡.”


리타가  양쪽 겨드랑이를 잡고 들어 올리고서는 덤덤하게 세라에게 지시를 내렸다.
그리고 붕 하고 날면서 새의 신체가 45도로 기울어진 순간 리타에 의해 몸이 공중을 날았다.
가끔 TV에서 스카이다이빙 하는 걸 보고 로망을 가진 적이 있었다. 그리고 버킷리스트에 추가해본 적도 있었다. 할 수 있을까. 라고 자조적으로 웃으면서 적은 내가 기억이 났다.
낙하산 대신 리타를 등에 두고 하늘에 몸을 맡긴 나는 빠른 속도로 지면으로 향했다.


“자,자자잠, 잠깐?!”
“가만히 있어요! 낙법 해야 하니까요!”

하늘에서 땅으로 빠르게 횡단하는 것은 처음 해보는 일이었다.
누구나 지릴  같은 이 상황에 누가 진정하고 가만히 있을 수 있을까.
버둥대며 몸을 움찔거리자 리타가 내 몸을 꽉 잡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오, 이번에는 낙사인가?!”
“재수없는 소리 하지 말아주시겠어요?”
“끄악?!”


땅이 가까워지고, 몬스터들과의 거리가 순식간에 가까워졌다.
나는  죽는 건가 싶어 살려달라는 듯이 소리쳤지만 리타는 내 몸을 앞세운 채로 소리쳤다.
그리고 동시에  몬스터의 몸을 짓밟은 뒤 공중에서  바퀴 돌았다.
격하게 몸을 어딘가에 부딪히니까 몸이 한 군데 부러진 것 같았다. 심한 통증을 호소하고 싶은데, 설마 리타가 말한 낙법이 나를 쿠션으로 쓴다는 소리였나.
금이 간 건지, 통증은 얼마  가서 사라졌지만 찜찜한 기분은 어찌할 수 없었다.

“저기 리타….”
“성하! 뒤에 조심해요!”

이런 젠장. 전장 한가운데로 날아왔었구나!
몸을 숙이자 순간적으로 거대한 바람이 위를 지나갔다. 바람 마법인가 싶어 위를 슬쩍 바라보니, 그냥 거대한 몬스터가 팔을 휘둘렀었다는 것을  수 있었다.
오크처럼 생겼는데, 오크보다 몸집이 더 크고, 행동이 재빨랐다. 색도 어딘가 모르게 붉은 색이었다.

“하이오크는 B급 몬스터에요!”


그것  고마운 정보였다. 그런데 어쩌지, 이놈은 날 보고 입맛을 다시고 있는데.
한순간이라도  자리를 뜨고 싶었지만 내 몸은 뜻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스탯으로 올리는 게 아니라 훈련으로 올려야 하니까, 마법이 아니라면 쉽게 빨라질 리가 없었다.


“성하!”

쾅. 하고 시야가 순간적으로 바뀌었다.


-


봉과 하나가 되어, 균형을 이루면 움직임은 부드러워진다.
힘이 셀 필요는 없다. 상대방의 힘을 역이용하면 되기에.
몸이 빠를 필요는 없다. 상대방의 움직임을 파고들면 되기에.
호신술과도 같다. 나보다 강한 자를 상대할 때에, 이용할 수 있는 기술이다.

-

주마등처럼 빠르게 지나가는 정보들은 누군가의 가르침일까, 아니면 나 자신의 깨달음일까.
그것은 알 수 없었다. 혹시나 하고 드는 생각으로는 이게 내 능력  하나가 아닐까 싶었다.
정신을 차린 순간 봉으로 하이오크의 손을 흘려넘긴 후 물 흐르는 움직임으로 상대의 명치를 찔렀다.

“―!”


명치가  단단한지 작은 몸집의 몬스터와는 다르게 쓰러지지 않았다. 오히려 괴성을 지르며 나를 적으로 인지하고 있었다.
강하게도, 빠르게도 필요 없다. 주변에 있는 몬스터들은 리타가 쉽게 처리할 수 있으니까 나는 이 앞의 하이오크에게만 집중하면 된다.

“성하! 괜찮아요? 이건, 전에 봤던….”

리타를 상대했을 때랑 같은 기분, 같은 느낌. 리타도 알아보는 듯이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는 너클을 고쳐 쥐었다. 그러고선 내 뒤를 잡는 몬스터들을 강하게 후려치기 시작했다.
어마어마한 타격음을 등에 이고 앞의 하이오크를 위협하듯이 봉을 빠르게 휘둘렀다.
쾅!
오크가 발을 구르자 땅이 흔들렸다. 시야가 흔들리는 동시에 내 배를 주먹으로 후려쳤다.
방금 태어난 놈이라 그런지 맨 손이라 다행이었다. 전에 오크토벌 때처럼 몽둥이 같은  들고왔으면 상대도 안됐을 텐데.
휘두르던 봉을 위아래로 길게 잡아 방어는 성공했지만, 손이  하고 울렸다.


“푸하!”


주먹을 맞고 날아간 신체가 땅에 닿는 순간 상대는 퉁. 하고 튕기듯이 나를 향해 달려왔다.
힘도, 속도도 어느 면에서도 저 괴물을 따라갈 수는 없었다. 그야, 마법도, 능력도 없는 나는 내가 살던 지구인일 때와 똑같은 평범한 사람이니까.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 내게도 하나의 능력이 있다면.

“성하?!”


리타의 경악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성하 님!”


세라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뭐야!”


주변의 당황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


그리고 나를 때린 오크마저 당황하는 소리가 들렸다.
펑, 하고 터지듯이 뜯겨나간 팔이 급속도로 재생되어 놓친 봉을 바꿔 잡았다.
분명 팔을 뜯어서 승산이 생겼다고 판단했겠지. 하지만 그것은 내가 아니었을 때의 이야기다.
복부에 충격을 가해서 내장파열에 죽는대도, 어느샌가 눈을 뜰 수 있는 나이기에 할 수 있는 전투 방법이었다.
죽더라도, 어디 하나가 뜯겨나가더라도 나는 일어날  있다.

“저건, 뭐야?”
“저게 그 길드에서의….”
“초재생 수준이 아닌 것 같은데, 아닌가?”

어느샌가 다른 몬스터를 처치하고 한숨 돌리는 모험가들이 이쪽을 집중한다.
하이오크에게 처참하게 죽어가면서도, 다시 일어나 공격을 시도하는 내 모습에 경악한 모습들이었다.
봉을 무기로 삼았을 때, 불안한 마음이 있었다. 이걸 무기로 잘 쓸 수 있을까. 하는 작은 불안감이 아직도 남아 있었다.
하지만 지금에 이르러 주마등처럼 스쳐나가는 기억에, 나는 싸울 수 있었다.
잠깐이지만 폭발적으로 강해질 수 있다. 그저 하나의 기술을 몸에 담을 뿐인데, S급인 리타를 맨손 싸움에서 압도할 정도니까.


“흡!”


봉을 칼처럼 쥐고 위에서 아래로 강하게 내리쳤다.
타격감과 함께 오크의 어깨를 내려치자 주춤하고 물러섰다. 전력으로 휘둘러서 그런지 어느 정도 먹히고 있었다.
이대로 한 번 더…!“


”―!“


오크가 잠시 주춤하는 사이에 한 번 더 공격하기 위해 봉을 휘두르는 순간 발로 걷어 차여졌다.
왼팔이 맞은 건지, 격통이 미간을 찌푸리게 했다. 점점 강해지는 고통에 잠시 시선을 내리니 팔이 바깥쪽으로 꺾여 있었다. 팔이 어느샌가 굽히는 부분이 두 개가 되어버려 당황한 순간에 괴물의 2타가 날아온다.

”아.“
”정신 차려요! 제가 도와드릴게요!“


멍하니 오크를 올려다보며, 한 번 더 죽는구나 싶어 눈을 질끈 감았다.
 순간, 아까부터 뒤에서 들려오던 타격음이 들려왔다. 리타는 내 양쪽 어깨를 잡고 몇 번 흔들더니 내가 눈을 뜨니까 안심하는 듯 가슴을 쓸어 내렸다.

”여기서 쉬고 계세요! 세라!“
”넵!“


다리 힘이 풀린 나머지 바닥에 풀썩 주저앉으니 리타의 뒷모습과 하늘을 배회하는 세라가 땅으로 날아오는 게 보였다.
그리고 동시에 꽈르릉. 하고 천둥이 치더니 이내 번개가 오크를 지지고,  후에 리타는 그 오크의 몸을 강하게 후려쳤다.
칠 때마다 쾅, 쾅 거리는 굉음이 울려서 그런지 사람들이 입을 다물지 못한 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그것은 나도 마찬가지였지만.
싸우는 모습을 보아하니 나는 정말,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결국 고기 방패나 마나 수급용, 시간 벌이용인가 싶을 정도로 오늘의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B급 하이오크가 리타와 세라의 손에 죽어가는 와중에, 나는 내 무기를 끌어안고 바닥에 주저앉아 구경할 뿐이었다.
분했다. 나도 무언가 멋진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했다는 사실에.

”성하. 이제 가요.“
”성하 님! 일어나요!“

다른 모험가들은 좋은 구경을 했다는 듯이 자신이 처리한 몬스터의 한쪽 귀를 잘라 증거품으로 들고 갔다. 그리고 다시 한번 재발하지 않게 다른 마법사들은 청소를 했다.
밤 중에 난전이 있었다는 것이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깨끗해진 초원을 바라보며 멍하니 경치를 바라보았다.
나도 무언가를  수 있으면 좋겠다.
리타에게, 세라에게 계속해서 의존하는 것은 나 스스로에게도 좋지 않으니까.

”돌아갈까요?“
”돌아가요!“

걱정에 싸여 서 있던 그때, 우리가 처리한 하이오크의 뒤처리도 끝이 났는지 리타와 세라가 무언가 짐을 챙겨서 왔다.
그러고는 활기차게 논 아이들처럼 나에게 다가왔다.
슬슬 나도 무언가 배우지 않으면 안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강하게 드는 밤이었다.

”우리는 하이오크 한 마리를 잡았으니까 비싼 돈을 받겠네요.“
”상으로 성하  마나 먹게 해주세요!“
”넌 다른 고기는 안 먹니?“


리타가 잘라  하이오크의 귀를 슬쩍 보여주며 말했다. 은근 그로테스크했지만, 못 볼 정도는 아니었기에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옆에서는 세라가 내 소매를 붙잡고 상을 바라는 눈치였다.
차라리 다른 것도 먹으면 고급진 고기라도 사준다고 할 텐데, 이건 너무한 거 아닌가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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