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화 〉episode3. 소동 (2)
뭔가 하고 귀 기울여 들어보니 D급 이상 모험가의 호출이었다.
여기에 모험가라곤 리타밖에 없었고, 나와 세라는 F급은커녕 모험가도 아니었으니까 호출에 응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이게 내 탓인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가만히 앉아있을 수가 없었다.
“어쩌실래요? 모험가는 저뿐이지만, 그래도 같이 가실래요?”
“…그래. 가야지 뭐.”
내가 뿌린 씨라면 내가 처리하러 가는 게 맞는 일이다.
이렇게 대규모 사건이라면 눈 돌리고 싶었지만, 마냥 모르쇠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여관 구석에 놓아두었던 봉을 들고서 보호구를 착용했다. 사슬 조끼 위에 가죽 갑옷을 두르고 봉을 가볍게 휘둘러 컨디션을 체크 했는데 몸 상태는 그리 나쁘지 않았다.
“세라는 몸 괜찮아?”
“저는 지금 최고조에요.”
리타는 여관을 나서면서 세라에게 물었다. 그러자 세라는 팔을 쭉 벌리고서 자신있게 말하고 있었다.
그래. 최고조가 아니면 안 되지. 오늘 얼마나 먹었는데.
세라를 보면 몸이 욱신거리는 기분이 든다. 기분 탓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길드로 향했다.
“왕도 남부 외곽에 다수의 몬스터가 나타났습니다! 몬스터 개체 등급은 C! 괴물들을 처치하고 오른쪽 귀를 전리품으로 들고 오시면 합당한 보수를 해드리겠습니다!”
길드에 채 들어가기도 전에 직원들이 소리치며 말하고 있었다.
들어와서 일일이 게시판을 확인하는 것보다 이렇게 말하는 편이 나을지도 모른다.
설명을 들은 모험가들은 우르르 몰려와서는 다시 우르르 빠져나갔다. 보수가 짭짤할 거라는 말에 의욕을 불태우고 달려드는 모습들이 보였다.
“어디서 그렇게 사람이 죽었길래 근처에 소굴이 생긴다냐.”
“내말이 말이야.”
“웬만한 시체로는 소굴이 생기진 않을 텐데.”
조용해진 길드 앞. 리타와 세라랑 같이 서서 멍하니 있었는데, 길드 직원들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몇 마디 나누면서 길드 내부로 들어가기는 했지만, 그 몇 마디만 들어도 알 수 있었다.
아무리 다르게 해석하려고 해봐도 내 탓인 것 같았다. 빼도 박도 못하게 그냥 전적으로 내 잘못이었다.
남부라니, 세라에게 밥 주려고 잠시 빠져나갔던 위치였다. 절로 한숨이 터져 나왔다.
“성하. 가만히 있을 건가요?”
“아니, 가야지. 어 가야지.”
“지금이라면 커다란 마법을 쓸 수 있을 것 같아요.”
축 늘어져서 신세 한탄을 하고 있는데, 옆에서 리타가 조심스레 재촉했다.
그리고 뒤에서는 흥에 겨운 세라가 무언가 주문을 읊고 있었다.
“내 부름에 응하라.”
나와 리타가 동시에 뒤를 돌아보자, 주변에 엄청난 양의 탁기가 흘러나왔다.
마왕이라도 나왔나 싶어 허둥대는데, 그 사이에 세라가 잔잔하게 한 마디를 읊었다.
이내, 전에 봤던 것처럼 탁기는 형체를 이루고 커다란 새가 되었다. 사람보다 큰 거대한 새가 눈앞에서 퍼덕이고 있었다.
낮까지만 해도 이게 한계라고 조그만 사역마를 부를 때는 언제고, 이제와서 커다란 놈을 부르고 있었다.
“헷.”
“야! 너 코피 나잖아!”
자랑스럽게 새 위로 올라탄 세라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런데 그녀가 무리했다는 걸 몸이 알려주듯이, 미소짓고 있던 그녀의 인중에는 코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리타는 허둥지둥 세라에게 달려가 힐을 걸어주고, 세라는 소매로 코피를 슥슥 닦았다.
“근데 이렇게 급격하게 성장하나?”
“아무래도, 성하의 마나를 섭취한 탓 아닐까요? 오늘도 과다섭취였던 것 같은데.”
“그런 것 같기도 하고.”
길드 앞에서 어두우면서도 거대한 새를 꺼내니 길드 직원과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뛰쳐나와 경악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눈을 반쯤 뜬 채로 새를 올려다보는데, 저게 또 나는 것 아닌가. 세라는 푸드덕거리는 새의 등 위에 올라탄 채로 훌쩍 날아버렸다. 그 광경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고르다가 중얼거리듯 말했다.
그러자 옆에서 리타가 오늘 점심의 일을 떠올리면서 하늘로 날아오른 세라를 올려다보았다.
그건 그렇고, 버릇을 잘못 들였다. 아무리 자기가 만든 사역마라지만, 자기 혼자 타고 날아가 버리는 꼴을 보니 꼭 혼내줘야겠다고 생각이 들었다.
“먼저 갈게요!”
“아니, 같이 가!”
아무리 어리다지만, 흥에 취해 가지곤 혼자 날아가 버리는 꼴이 맘에 들지 않는다.
남쪽으로 휙 날아가 버린 세라를 보며 혀를 차고 있자 리타가 갑자기 내 몸을 들어 올렸다.
“어? 왜, 왜 그래?”
“우리도 빨리 가야죠.”
“그, 그런 알겠는데, 혹시 이거 내가 너보다 느리다고 돌려 까는 거야?”
“평소 같았으면 천천히 갔겠는데, 지금은 그럴 여유가 없잖아요?”
공주님 안기 자세로 들어 올려지는 바람에 말이 제대로 튀어나오지 않았다.
아무리 나보다 힘이 세다지만 내 체중을 이렇게 가볍게 들고 달리기 시작할 줄은 몰랐다.
나도 뛸 줄 알고, 이 품에서 내려가고 싶은데 리타의 힘이 얼마나 강한지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제발 놔 줘. 주변에서 사람들이 날 보고 웅성거리잖아.
“아아악! 놔 줘!”
“어리광부리지 마세요! 세라는 먼저 갔다니까요?!”
“사람들이 나 보고 있잖아?! 지금 나 보고 웅성거리잖아!”
놔 달라고 애원해도 리타는 놓아줄 생각이 없는지 내 허벅지와 팔뚝을 꽉 붙들고는 엄청난 속도로 달렸다.
미치겠다. 발을 움직이지도 않았는데 이렇게 풍경이 빠르게 바뀌는 것도 처음이었다. 그리고 이렇게 안기는 바람에 리타의 가슴이 내 가슴에 얹히듯 닿았다.
여러모로 부끄럽다. 놔줬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도 얼마나 지났을까. 어느새 벌써 남부 외곽으로 나와버렸다.
“쟨 뭔데 여자 품에 안겨서….”
“나약한 놈.”
“보는 내가 다 부끄럽네.”
나도 압니다. 제발 그러지 말아 주세요.
리타의 품에서 힘없이 벗어나 봉을 쥐는데, 쪽팔려서 뭘 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도착하는 순간 자리에서 싸우는 놈들의 시선이 내 쪽으로 쏠려 가지곤 이런저런 소리를 하고 있었기에 내 멘탈은 벌써 찢겨나가고 있었다.
그렇게 수치심에 어디 숨을 구멍 없나 하고 주변을 둘러보는 순간 위에서 굉음이 들려왔다.
아니 울음소리가.
“뭐야 저건!?”
콰르릉.
아까의 그 새가 특이한 형태를 한 채로 하늘을 질주했다.
어두운 구름을 몰고, 천둥을 모는 하나의 커다란 새가 커다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세라가 한 걸까요.”
“내 마나가 저렇게 세?”
“이럴 땐 마족이 아닌 게 아쉽네요. 마족을 부러워하게 될 줄은 몰랐지만요.”
리타는 철제 장갑을 끼고는 뾰족한 너클을 서로 부딪히며 경쾌한 소리를 냈다. 몸을 달아오르게 하려는 듯 허공에 주먹을 몇 번 내지르더니 스텝을 밟고는 넘치는 몬스터를 향해 달렸다.
세라를 보고 어이가 없어서 얼빠진 채로 있었는데, 리타는 그럴 때가 아니라는 듯 바로 몸을 움직였다.
내 발걸음을 재촉하는 그녀의 뒷모습을 쫓아 봉을 휘둘렀다.
“다들 조심해!”
어느 모험가의 외침과 동시에 내가 고개를 돌려 옆을 바라보았다.
“성하!”
리타는 갑자기 나를 돌아보더니 무언가를 외쳤다.
어? 하는 순간 내 시야는 일그러졌다.
이 소리는, 이 감촉은, 이 시야는 어디선가 느껴본 적 있었다. 물에 온몸이 잠겼을 때.
나는 이 기분을 안다.
“―――!!”
순식간에 변해버린 시야에 당황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하긴, 갑자기 산소가 차단당하고, 환경이 변하면 당황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겠지.
그렇게 침착하게 주변을 바라보다가 흠칫 놀라 하늘을 바라보았다.
아까 세라가 천둥을 몰고 다니던데, 여기다가 번개를 갖다 꽂진 않겠지 싶어 흐린 시야를 애써 바라보았다.
다행히 지금 수중마법에 걸렸다는 걸 알고 있는지 다른 쪽을 보고 있었다.
“―――!”
리타가 무언가를 풀어주려는 듯 밖에서 마법을 쓰고 있었다.
풀어주긴 하겠지. 그런데, 일단 숨이 너무 막힌다. 어디서 들었는데 익사가 세상에서 두 번째로 괴롭게 죽는 방법이라고 했던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정말 괴로웠다. 숨을 들이쉬고 싶어 호흡하는 순간 폐에 물이 들어차는 기분이었다. 더 이상 숨을 참는 것도, 쉬는 것도 불가능했다.
그나마 남아있던 공기마저 빠져나가고, 발버둥을 치는 것만 할 수 있었다.
난 다시 살아날 수 있으니까 옆에 같이 걸린 놈부터 해줘. 고향 놈인지, 현지 사람인지 내가 알 바는 없지만 그래도 앞에서 누가 나 때문에 죽는 꼴 보면 잠자리 사나워지니까.
리타가 영창을 다 외쳤을 때, 나는 옆에서 숨 참으며 버둥거리던 놈의 발을 잡아 리타의 마법을 대신 맞게 움직였다.
“?!”
리타는 나부터 구하려고 했는지 내 행동에 당황하는 눈치였다.
그래도, 이게 맞는 거니까.
나는 물속에서 눈을 감았다.
*
익숙한 소리가 들려왔다. 물에 빠졌던 게 익숙한 감각이라고는 했지만, 이보다 익숙한 소리일 수는 없었다.
부아아아앙!
어두운 밤길, 한적한 도로를 시원하게 달리는 자동차들의 소리.
아까까지의 일들이 모두 허상인 것처럼 익숙한 광경이었다. 바람이 거센 이곳은 한강 근처였다.
나는 밤에 한강을 보러 왔던 건가.
방금까지의 일들은 모두 허상이었던 건가.
“하나, 둘, 셋….”
걱정을 떨쳐내기 위해 숫자를 세던 버릇을 버리지 못해 하늘을 바라보며 몇 번이고 숫자를 세었다.
그 숫자가 몇백이 되었을 때, 누군가가 다리 위에 선 것이 보였다.
밤이라 그 누구도 말릴 사람 없는 다리에서 누군가가 자살을 하기 위해 난간을 넘은 채로 울타리를 붙잡고 있었다.
멍청한 선택인 걸까. 아니면, 몇 번이고 고민한 끝에 마음을 먹은 것일까.
남의 인생에 옳고 그름의 잣대를 들이밀 생각은 없었지만, 내 발은 움직였다.
왜인지 물속이 따뜻하게 느껴졌다.
저 사람이 뛰어들고 나서 구하러 가면 늦기에 먼저 선수 치기 위해 강으로 몸을 내던졌다. 그게 바보 같은 선택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 사람이 떨어질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는 듯이 망설임 없이 앞으로 나아갔다.
“푸하!”
그리고 그 사람이 몸을 내던졌을 때는, 나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떨어지고 있었다.
분명 구할 수 있다.
흩날리는 연보랏빛의 머리카락. 얼굴은 제대로 보지 못했지만, 그냥 안타까운 여성이란 것쯤은 알 수 있었다.
“끗!”
잡았다. 수영을 잘하는 것은 아니지만, 한 사람 정도는 구하고 나갈 수 있다.
그렇게 여성의 팔을 잡아 끌어올린 뒤에 어깨동무한 채로 수영해 나갔다.
내가 있던 자리에 거대한 굉음이 울렸다.
뭐지. 오늘따라 이상한데.
폭주하던 자동차가 아까 그 자리를 거하게 날아와서는 몇 바퀴 구른 건지 풀밭을 다 헤집었다. 전복된 차량은 어느새 불타더니 쾅. 하면서 굉음과 함께 폭발해버렸다.
서울이 어디 무법지라도 되는 건가. 싶을 정도로 눈앞에서 별의별 광경이 펼쳐졌다.
누구는 자살하지 않나. 누구는 과속하다가 어디 들이박고 터지질 않나.
“어?! 풉! 자, 잠!”
위험하다. 물에 빠진 사람은 본능적으로 무언가를 강하게 쥔다는 소린 들었지만, 이렇게 강하게 잡을 줄은 몰랐다.
방금도 물에 빠지는 기분을 느꼈는데, 현실에 와서도 느끼니 더 고통스러웠다.
수영을 방해할 정도로 꽉 붙들어 맨 여성의 힘이 너무나도 셌기에 더 이상 이 사람을 데리고 수영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망했네; 난 이렇게 죽는 건가. 대가를 바라는 선의는 아니었지만, 선의가 언제나 좋은 방향으로 돌아온다는 법은 없었다. 그게 죽음일 줄은 몰랐을 뿐.
역시, 물 속에서 죽는 것은 괴로웠다.
*
“푸하?!”
“성하! 일어났나요?”
숨을 겨우 토해내자, 리타가 눈앞에서 갈비뼈에 손을 대고 있었다.
잠깐, 너무 아픈데.
“죄송해요. 갈비뼈가 부러졌나 봐요!”
“리타 님! 너무 세게 했어요!”
“어어?!”
심폐소생술 같은 거 안해도 되는데, 굳이 갈비뼈까지 부러뜨려가면서 해야 했을까.
너무 고통스럽다. 죽을 것같이 아프다. 내장 한 군데가 찔린 것 같았다. 아파. 아파. 아파.
“히… 힐! 힐 해드릴게요!”
기어스가 걸려있더라도, 살리려고 하는 경우는 또 봐주나 보다. 융통성 없는 계약은 아니라서 다행인가 싶다가도, 지금 너무 아픈 걸 생각하면 좀 고지식했으면 좋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보다, 아까 있던 건… 내가 여기 소환될 때의 기억인 건가.
어쩐지 물에 잠겼을 때 익숙하더라니, 나는 물에 빠져 죽었던 거였구나.
흐려진 눈으로 숨을 헐떡이며 하늘을 바라보았다.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든다.
“그 사람은, 이 세계에 소환되었을까.”
연보랏빛의 머리카락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