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화 〉episode2. 새로운 동료 (7)
내가 잘못 들었나 싶어 귀를 후비적거리자 세라는 붉어진 얼굴로 아랫입술을 깨물고 있었다.
설마 나 먹으려고 남아 있겠다는 건가 생각이 들었다.
“사람을 사냥하고 먹는 것은 싫어서?”
“…제멋대로라 죄송합니다.”
이렇게 솔직게 말하니까 내가 할 말이 사라진다.
그냥 어떻게 해야 하나 싶기도 하고 고민만 많아졌다.
“일단 들어온 김에 씻으려면 씻어. 등은 돌리고 있어 줄게.”
욕조 앞에 세워두고 이야기하는 것도 뭣하니 몸을 돌렸다. 세라를 등진 채 욕조 벽에 기대자, 세라는 옷을 벗는지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사박거리는 소리가 줄어들고 발걸음 소리가 가까이 들려왔다.
물로 적신 바닥을 밟아 찰박거리는 소리가 가까워지더니 데워진 물을 바구니로 퍼서 몸에 붓는 소리가 들려왔다. 소리만 들으니까 왜인지 더 묘해지는 기분이었다.
“성하 님.”
“왜.”
“그래서, 해주시는 건가요?”
“그러게, 솔직히 좀 아파서 고민하고 있어.”
몇 번, 물을 쏟는 소리가 들리다가 갑자기 조용해졌다.
정적을 깬 세라의 목소리가 욕실 내부를 울리고 있었다. 욕조 벽에 기대 눈을 감자, 세라가 질문의 대답을 재촉했다.
물론 마계를 찾고도 파티에서 나가지 않는다면 나야 고맙지만, 애초에 자기 마계 하나 말하지 못하는 거 보면 제약이 있는 거 아닌가. 감시하고 있다던가.
“너, 네 마계 하나 말도 못 하잖아. 다른 마계나 마왕은 괜찮아?”
“소속된 마계만 배신하지 않으면 되니까요… 괜찮아요.”
세라는 그렇게 말하고는 다시 바구니에 물을 퍼서 몸에 들이부었다.
촤악. 하고 쏟는 소리에 약간 불안함이 느껴지는 듯했다.
아마 다른 마왕에게 맞서본 적이 없을 테니 불안하기도 할 테지.
“불안하면 관둬. 중간에 탐색꾼 하나 구하면 돼.”
죽는 게 무서워 같이 다니게 된 애가 죽음까지 무릅쓰고 끝까지 따라올 필요는 없었다.
하품을 내쉬며 손짓을 하니까 세라가 물을 들이붓던 소리가 멈추었다.
“아, 아니에요. 물론 제가 지금 강제로 따라다닌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지금 제일 좋은걸요. 식사 때문에 인간들을 잡지 않아도 되는 데다가, 성하 님의 마나가….”
“애초에 죽을지도 모르는데 괜찮아?”
“괘, 괜찮아요.”
마나 섭취 하나 때문에 목숨 걸고 따라온다니, 이쯤 하면 흑심을 품고 있는 게 아닌가 싶었다. 뭐 나중에 자신이 속한 마계의 마왕에게 제물로 바친다거나.
아니면 의외로 마족은 먹고살기 힘든 걸까.
“마족은 다 인간 먹어?”
“글쎄요. 일단 1번 마계 사람은 다 그래요.”
“흐음.”
1번 마족의 인구수는 모르는데, 많은 수가 식사하겠다고 설치면 많은 인구가 줄어버릴 것 같았다.
그런데도 인구가 남는 걸 보면 양식장이라도 차린 걸까.
개발 도상국이라던가, 옛날 시대에는 자식이 재산이라던가 여러 가지 이유로 인구가 넘치는데 마족이 조절하고 있다던가. 여러 생각이 들기도 했다.
“혹시 제가 마음에 들지 않으신 건가요?”
멍하니 앉아있는데, 갑자기 어깨에 따뜻한 감촉이 닿았다.
그리고 귀 쪽에 세라의 숨결이 느껴졌다. 여자랑 거의 접점 없이 살아왔는데, 갑자기 이렇게 스킨십을 해오면 몸이 경직된다.
“잠깐만, 손 떼줄래?”
“왜요? 혹시 74살이라 할머니 같아 보여요?”
“아니, 스킨십을 자제해줄래? 내가 면역이 없어.”
“흐응. 성하 님은 여자가 어려우신가 봐요?”
내가 약한 모습을 보이니까 세라가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어제만 해도 나한테 벌벌 기던데, 내가 되살아나는 것 말고 별것 없다고 판단한 걸지도 모른다. 솔직히 그런 사람이 있으면 나라도 얕볼 것 같았다.
그래도 내가 위인데 상하관계를 제대로 해야 하나. 아니, 앞으로 동료로 쓸 텐데 사이좋게 지내야 하나. 여러모로 고민이 앞섰다.
“자리 좀 비켜주시겠어요? 저 들어가고 싶은데.”
“…들어 와.”
몸에서 손을 뗀 세라는 머리를 위로 땋고서 조심스레 욕조에 손을 올렸다.
그렇게 욕조 너머로 얼굴을 들이밀면 등 돌린 이유가 없어지잖아.
슬쩍 돌아보니 눈이 마주쳤다. 한 명이 들어오면 넓은데, 두 명이면 좀 좁다. 그래도 체형이 체형이다 보니 들어와도 괜찮을 것 같았다.
“그럼 실례합니다.”
세라의 검은 머리카락을 볼 때마다 원래 세계 사람을 보는 것 같았다.
“아무렇지도 않아?”
“뭘 물어보시는… 아, 오빠 일이랑 저 죽일 뻔한 거요?”
왜 이리 태도가 가벼운 건지, 왜 껄끄러움 없이 대하는 건지 궁금했다.
일부러 생략하고 물어봤는데, 세라는 굳이 언급했다. 정말 아무렇지 않은 건가 싶다.
잔인하게 찔러 죽인 시체 앞에서 펑펑 우는 것도 봤는데, 아무렇지 않을 리가 없다.
“물론 슬프죠. 근데 리타 님이랑 이야기해봤는데 그게 당연한 거였어요. 제가 어려서 잘 몰랐나 봐요.”
욕조 안에서 나란히 앉아 조용히 이야기를 꺼냈는데, 그게 솔직한 심정을 토로하는 자리가 될 줄은 몰랐다.
그래도 마냥 우울해진 채로 따라다니거나, 내가 강제로 끌고 다니는 것보단 이런 게 낫다고 생각한다.
슬픈 눈빛을 하면서도, 피식 웃으며 이야기하는 세라가 있었다.
“죽이려고 한 만큼, 죽는 것도 감당해야 한다고 하니까요. 그러니까, 섭리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목이 막히는 듯이 띄엄띄엄 말하는 세라의 목소리가 슬프게 들려왔다.
리타가 말한 것을 받아들이려고 하는 것과 혈육이 눈앞에서 잔인하게 죽는 걸 본 것과는 다르다. 섭리라 하더라도 잃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은 힘든 법이니까.
“그러냐.”
내가 딱히 해줄 말은 없었다. 그냥 얌전히 앉아서 천장을 바라보며 짤막하게 답해주는 것이 내가 해줄 수 있는 전부였다.
*
“오랜만에 씻어서 그런가 개운하네.”
“그러게요.”
수건으로 머리를 털며 빌렸던 방으로 돌아왔는데, 아직 리타가 돌아오지 않아서 세라도 내 방으로 따라 들어왔다.
씻고 나서 로브로 세라의 머리카락을 가리고 재빠르게 들어오느라 힘이 빠질 지경이었다. 안 그래도 따뜻한 물에 몸을 오래 담그는 바람에 몸이 쳐지고 있어서 더 힘들었다.
리타는 교회에 대체 무슨 볼일이 있길래 이렇게 늦게 오나 싶다가도, 나랑 모험 떠난 이후로 교회에 한 번 들른 적이 없는 걸 생각하면 무리도 아닌 것 같았다.
“근데 넌 밥 하루에 한 번 먹으면 되는 거냐?”
“마계에 있을 때는 거의 안 먹어도 되는데, 먹으려고 인간계로 넘어오면 허기가 빨리 져서 하루에 한 번은 먹어야 해요.”
“마계에서는 얼마에 한 번 먹어?”
“5년에 한 번이요.”
너무 차이 나는데, 이 정도면 식사가 아니라 그냥 별식 느낌으로 먹는 거 아닐까?
곰곰이 생각하며 세라의 눈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마계랑 인간계랑 마나의 농도가 다른 것 때문에 식사량이 달라요.”
“그래도 5년 차이는 좀 그렇지 않아? 너 그냥 먹고 싶어서 그런 거지?”
“…그런 것도 없진 않죠. 그런데 마법 쓰면 그 날은 무조건 충전해야 해요.”
“하아. 그래.”
원래 저런 성격이었던 걸까, 전보다 꽤나 당돌해졌다.
기어스가 세라에게 그리 큰 영향을 주진 못하는 듯했다. 살상에 제한을 두고, 마계를 탐색하는 것까지만 걸었더니 누군가를 해할 이유가 사라진 그녀는 그냥 동료가 된 것처럼 굴었다.
살려달라고 빌던 애가 맞나 싶을 정도로 성격이 바뀌어 있었다.
그 나이에 맞는 당돌함일지도 모르겠다.
“…리타도 교회에 가서 볼일 본다 했으니까, 우리도 길드에 가서 동료나 한번 구해보자.”
세라가 계속 말하게 두면 그냥 내 머리만 지끈거리는 것 같아서 화제를 전환했다.
마력이 없어서 모험가가 되지 못하더라도, 나 스스로 어느 정도 능력이 있다면 다른 모험가가 내 파티에 들어와 주지 않을까 싶은 마음이 있었다.
세라를 혼자 둘 순 없기에 얼룩진 로브를 건네며 여관을 나섰다.
“다음 모험가분? 여기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역시 용사님! 이번 B급 의뢰도 혼자 처리하셨다면서요?”
“여기 맥주 하나만 더!”
시끌벅적한 길드 안쪽에 보니, 모험가들이 몰린 곳에는 당연하게도 용사들이 있었다.
여긴 검은 머리카락을 한 사람이 별로 없기에 더 눈에 띄기도 했다.
파티가 없는 꽤 강한 마법사를 구하기 위해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런데 그런 것처럼 보이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꽤 강하게 생긴 애들은 다 용사가 동료인 것 같다. 좋겠다.
“저기 지팡이 든 사람, 마법사 아닌가요?”
“뭐? 어디?”
옆에서 로브를 펄럭거리던 세라가 구석 창고를 가리켰다. 지팡이 든 사람을 찾아 시선을 쫓았다.
엄청 많은 책을 낑낑대며 들고 있는 붉은 머리카락의 여성이 있었다.
세 보이는 것 같진 않아서 고민이 된다. 창구에서 있던 걸 보면 모험가인 것 같긴 한데.
“혹시, 마법사신가요?”
“그, 그런데요?”
“제가 동료를 구하고 있는데, 생각 있나 해서요.”
“저는 마법사협회 소속이라 모험가가 아닌데요….”
그냥 마법사협회 소속이었다. 모험가였으면 좋았을 텐데 그냥 마법사여서 아쉬웠다.
마법사협회라니 나랑 가장 먼 곳이기도 했다. 괜히 마법사협회 소속인 사람을 모험가가 되라고 할 수는 없으니 다른 사람을 찾아보기로 했다.
그렇게 고개를 돌려 다른 대상을 탐색하려던 찰나 옆에서 소매를 꽉 붙들어 잡고 있었다.
뭔가 싶어 내려다보니 세라가 내 눈치를 보듯 힐끔거리고 있었다.
“왜 그러는데?”
“마족이 있는데요?”
“엥.”
눈치를 보는 방향을 응시하자, 용사 파티가 몰려있는 곳이 있었다.
나 말고 마족을 동료로 구한 놈이 있다고?
정보전에서 겨우 앞섰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것도 아닌 듯했다. 돌아버리겠다. 능력이 모자라니까 정보로 어떻게 해보려 했던 것이 물거품이 되었다고 생각하니 머리가 새하얘지는 것 같았다.
“걔는 밥 어떻게 주는지 궁금하네.”
그래도 하나뿐인 것 같으니까 아직 까지는 안심해도 될 것 같았다.
심호흡하고 허탈한 웃음을 토해내며 세라가 보던 무리를 가만히 응시했다.
당장에 모든 용사가 마족을 데리고 있는 것은 아니니까 아직 밀린 것은 아니다. 라고 스스로를 타이르고는 정신을 가다듬었다. 이런 것도 기회로 삼아야 다음에도 방황하지 않을 터.
매일 같이 세라에게 마나를 챙겨준답시고 물어뜯겨야 하는 현실을 피할 방법이 있다고 생각하며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그 방법을 물어보겠다고 결정한 순간, 동료를 구하는 것은 잠시 미뤄두고 앞으로 걸음을 옮겼다.
검은 머리, 어두운 피부.
“혹시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 괜찮으세요?”
“…누구세요? 다른 용사에게 줄 정보는 없는데.”
구석 테이블에서 앉아있는 6인 파티 중에 검은 머리카락이 둘이나 보였다. 세라와 함께 그 테이블로 다가가 살피니 마족이 맞나 한 번 확인하고, 세라를 힐끔 돌아보고 한 번 더 사인을 받았다.
고개를 끄덕이는 세라의 모습을 보니 정답이었다.
리더로 보이는 용사에게 먼저 양해를 구하려 했다. 아니나 다를까, 생존권을 두고 싸우는 용사들끼리는 태도가 좋지 못했다.
“아니, 그 동료분 중에 마족이신 것 같은데, 어떻게 밥을 주나 해서요.”
“…그걸 물어보는 거라면 그쪽도?”
시선으로 세라를 힐끔 바라보며 가리키자 경계하던 용사는 경계를 살짝 풀고서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시선을 돌려 자신이 동료로 삼은 마족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이내, 그 용사의 표정이 험악해졌다.
“너, 뭐 먹이고 다니는 거냐?”
쾅! 하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 그는 옆자리에 있던 자신의 검을 뽑아 이쪽을 향해 겨누었다.
갑자기 일변한 분위기에 나를 포함한 주변의 사람들이 놀라고 있었다.
주변 사람들이 큰 소란에 이쪽의 일을 눈치챘는지 시선이 집중되기 시작했다.
“그쪽이 생각하는 게 아닌데.”
진정시키려 했지만, 상대는 그럴 기미 없이 적의를 드러내고 있었다.
난 무기도 없는데 상대는 싸울 생각인지 엄청난 기세로 노려보고 있었다. 여기서 실수로 죽기라도 하면 나만 곤란한 상황이었다.
아니, 죽이지는 않으려나.
“다시 한번 묻는다. 걔한텐 뭘 먹이는 거냐고.”
아무래도 내가 사람을 가져다 먹인다고 생각했는지 살벌한 표정으로 날 추궁하고 있었다.
애초에 자신의 몸을 먹인다는 미친 선택을 하는 사람은 없으니까 당연한 반응일지도 모른다.
상대는 뭐 다른 방법을 쓰니까 저런 반응을 보이는 것 같은데, 일단 용사라서 그런지 인간을 먹인다는 생각 하나로 이렇게 적대적인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사람들에게 환영받고 다니더니 인류애라도 생겼나.
“잠시 장소를 바꿀 수 있을까요? 해명하고 싶은데.”
“그럴 수는 없지.”
사태는 나아지지 않았다.
어떻게 해야 이 상황을 벗어날 수 있을지 머리를 굴렸지만, 별수도 나오지 않은 채로 시간은 흘러갔다. 잔뜩 초조해지는 이 상황에 입술이 바짝 마르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