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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화 〉episode2. 새로운 동료 (6) (12/98)



〈 12화 〉episode2. 새로운 동료 (6)

“얘 거 로브 하나 있으면 좋을 것 같은데, 하나만 사다  수 있어?”
“머리 가릴  있는 정도면 되는 거죠?”
“어어.”

머리카락 색을 바꾸는 방법도 있지만, 아무도 그 마법을 쓸 줄 아는 사람은 없었다.
마법 배우는 게 복잡하다던데, 그걸 머리카락 색 바꾸는 데 투자할 사람이 있는  드물려나.
멀어지는 리타의 뒷모습을 보다가, 옆에 남은 세라가 톡톡 건드려왔다.


“성하 님.”


밥을 줬더니 보다 활기찬 기색으로 이쪽을 바라보던 세라는 나를 부르고 있었다.
대답 대신에 세라의 입가에 묻은 피를 닦아주고는 머리를 토닥였다.
이렇게 고생했는데, 마계  찾겠다는 소리만 안 했으면 좋겠다.
정보전에서라도, 이기고 싶다.
살고 싶다.

“성하… 님?”
“아.”


자꾸 다른 용사들이랑 비교하게 되고, 신경 쓰게 된다.
이게  목숨이 걸린 일이라 자꾸 생각하게 된다. 절박하니까 그런 걸지도.
내 분위기가 이상해졌는지, 다시 한번 조심스레 물어보는 세라를 돌아보았다.

“왜?”
“그, 죄송해요.”
“또 뭐가.”

우물쭈물 말도 제대로 잇지 못한 채 내 눈치를 보는 세라는 아랫입술을 깨물고 있었다.
하지 말랬는데,  사과하고 있네.


“저 때문에 죽었던 거죠?”


아까 뜯어 먹히는 바람에 잠시  감았던 걸 이야기하고 있었다.
먹으라고 한 건 나고, 어차피 안 죽으니까 상관없었다. 그녀가 사과하는 이유는 나를 잡아먹었던 오빠 쪽이 처참하게 죽어서인 걸까. 자신도 혹시 그렇게 당할까  사과하는 걸까.
한  죽기 시작하니까 두 번째 죽음도 쉽게 찾아오고, 그 세 번째도 쉽게 찾아온다.
불사라고 하는 능력이 내 마음속 깊이 박힌 생명의 경중에 내 생명을 가벼이 여기는 기분까지 들었다.

“어. 근데 상관없어. 마계 찾아줄 때까진 먹게 해 줄게.”
“……!”

분위기를 전환하듯 머리를 헤집고 다시 머리를 나무에 기댔다.
계속 우울한 생각 같은 걸 하면 컨디션도 나빠진다. 아직 하루가 다 간 것도 아니니까 조절해야 한다.
그렇게 심호흡을 하면서 다시 앞날을 준비하려  때, 세라가 옆에서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렇게 큰 눈으로 바라보는 건진 모르겠지만, 지금은 다른 생각 하느라 바빠서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야,   번째 마계냐.”
“…….”
“뭐야. 그런 것도 말  해주나.”
“첫 번째요.”


오. 얘 따라 마계 갔으면 큰일  뻔했네.
 번째면 엄청  것 같은데, 그냥 가장 약한 72번째 마왕을 찾는 게 좋을 것 같았다.
가장 약한 놈을 잡더라도 살아남을 수 있다는 사실은 같았다. 특전의 차이는 있더라도, 일단 살고봐야 하지 않겠나. 애초에 살겠다고 마왕을 잡으려 하는 건데, 마왕한테 죽어버리면 그게 더 코미디였다.

“넌 몇 살이냐. 어려 보이는데.”
“74살이요.”
“할머니네.”
“인간이랑 비교하지 말아 주세요. 충분히 어린 나이에요.”


마족 나이 감각을 제대로 알지 못하니까 갑자기 할머니처럼 보였다.

“총 수명이 얼마정돈데?”
“5~600살? 그정도 해요.”

대충 사람의 5~6배 차이였다.
사람 비율로 따지면 대충 14~15이라는 걸까. 어쩐지 어려 보이더라니. 그럴 이유가 있었다.
그래도 74년을 살았다면 충분히 인생 선배나 다름없었다. 제일 어려 보이는 애가 파티 내에서 최연장자라니 역시 여러 종족이 있는 판타지 세계라서 그런가 보다.


“무슨 마법 쓸  있어?”
“저는 마기로 사역마를 만들 수 있어요.”
“해 봐.”

어제도 봤지만, 설명을 듣고 나니까 좀  색달라 보였다.
그냥 기술의 생김새가 아니라 사역마라면, 정말 탐색꾼에 쓸만해 보였다. 본체가 굳이 위험을 무릅쓰고 앞장서지 않아도 된다는 것은 탐색꾼에게 있어서 충분한 메리트라 볼  있으니까.
턱 짓을 하며 마법을 시켰다. 그러자 세라는 천천히 몸을 일으키고는 팔을 뻗어 영창을 시작했다.
스멀스멀 몰려드는 탁기가 응축되더니 이내 하나의 형상을 띄고 있었다.

“너 혹시 매 좋아하니?”


어제 봤던 매가 날개를 푸드덕거리며 날고 있었다.

“…빠르잖아요.”
“응. 좋아하는구나.”

아무리 봐도 일단 매를 소환하는 걸 보니 매를 선호하는 것 같았다.
하긴, 사역마를 부릴  웬만해서는 최대한 제약이 없는 사역마를 뽑아야 하니까.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다른 테이머들과 비교하면 그녀는 충분히 가능성이 있었다.
계약한 사역마가 아니라 자신이 스스로 만드는 거니까, 적재적소에다 사용할 수 있는 것 아닐까.


“저, 근데 이 정도 크기가 한계에요.”

적재적소에 쓸 수는 있는데 역시 술자의 영향을 크게 받나 보다.
계약만 하면 되는 일반 테이머와는 달리 직접 만들어야 한다. 그러다 보니 세라는 바로 사역마를 흩뜨려 놓았다. 흩어진 탁기가 원래 아무것도 없었다는 듯이 공중으로 사라져버렸다.


“마나 소모도 커요.”
“…아픈데. 다른 방법은 없나…. 먹어라.”
“잘 먹겠습니다.”

괜히 마법을 시킨 건지, 마나가 다 떨어졌다고 벌써 땀 흘리고 있는 모습이 아주 인상적이었다.
이러고 싶진 않았지만 시킨 내 잘못이기도 했으니 또 팔뚝을 꺼내 들었다. 주변에 굳어버린 핏자국이 보이는 게 좀 흉측하긴 했지만, 어차피 배로 들어가면  똑같다.
팔을 내밀자, 세라는 미소를 지으면서 입을 크게 벌렸다.
콰직.


*


“다녀왔습니다. 로브 가져왔어요. 세라한테 잘 맞을 거예요… 그새  먹은 거예요?”

리타가 옷을 사  건지 로브를 한쪽 팔에 걸친 채 다가왔다.
몽롱한 눈빛으로 바라보자, 그녀는  오른팔에  흥건해진 핏자국을 보더니 놀라는 표정을 지으며 세라를 바라보았다.


“그, 마법 쓰느라 마나가 떨어져서… 먹었어요.”


두 검지손가락을 콕콕 찌르면서 변명하듯 말하던 세라는 나보고 도와달라는 듯이 힐끔 쳐다보았다.
그런 태도를 지으니까 진짜  잘못한 것처럼 느껴진다.
애초에 마족이 인간 앞에 붙잡혀 있으니까 당연한 반응이 되는 걸지도 모른다. 저런 애도 마계에서 자기 친구들을 만나면 활기찰 것 같은데.

“마법 한 번 써보라 했는데, 그게 좀 힘들었나 봐.”
“마나 보충도 좋지만, 몸 좀 아끼세요. 마취도 풀렸을 텐데 안 아팠어요?”
“너무 아파. 한 번 더 죽은 것 같은데. 쇼크사한 건가.”

그래도 마취가 없어서 그런지 바로 죽었던  같았다. 남은 통증이 아까보다 아프긴 했지만, 그래도 씹어 먹힐 때랑은 다르게 금방 눈을 감아서 다행이었다.
차라리  한번  감고 마취 없이 먹으라 하는 편이 훨씬 나을지도.
그보다, 정신 차리고 주변을 둘러보니 피가 곳곳으로 튀었는지 세라는 피를 아예 뒤집어 쓰고 있었고,  몸은 팔을 중심으로 옷이 피로 물들었다.

“이거, 이대로 마을에  들어 갈라나…?”

이 정도면 내가 살인마로 몰릴 지경이었다.
누구 하나 조지고 온 듯한 행색에 갑자기 걱정된다. 다시  심부름을 시켜야 하나 싶을 정도였다.

“그 정도는 모험가라고 대충 넘어 가주긴 할 텐데, 오랫동안 그 꼴이면 경비대한테 붙잡힐 거에요.”
“그럼 일단 돌아가자… 넌 이거 쓰고, 피 묻으면 가서 세탁하면 되니까 가려.”
“감사합니다.”

세라는 리타에게서 받은 로브를 헷. 하면서 받아들었다.
아예 팔을 물어뜯느라 피를 머리에 뒤집어쓴 세라를 보니 꼴이 말이 아니었다.
마을로 돌아가면 일단 여관 하나 빌려서 씻고, 빨래도 하고, 쟤 염색도 시켜줘야 할 것 같은데…. 누구에게 부탁해야 하는 건지 참 고민이다.
리타가 할 줄 알면 좋았을 텐데 아쉬웠다. 믿고 맡길 곳을 찾지 못한다면 염색약이라도 찾아봐야겠지.


“역시, 성하가 피범벅이라 그런지 시선이 많이 쏠리네요.”
“아이돌이 된 기분이네. 공황장애 올 것 같아.”
“아이돌이 뭐예요?”


아 맞다. 여기 이세계였지. 이 세계에 없는 직업을 말해봐야 알아들을 턱이 없구나.
그렇게 다른 대체어를 고민한 끝에 겨우 입을  수 있었다.


“광대…?”

아무리 생각해도  단어 말고는 생각나는  없었다. 그래도 분명 차이는 있겠지만, 여기서 쉽게 납득시킬 방법이 이것뿐이었다.
뭐, 뿌리는 비슷한  아닐까. 잘 모르겠다.
아이돌을 막 좋아하던 것도 아니고, 알아본 것도 아니니 제대로  리가 있나.

“몬스터의 피인지 사람의 피인지 분간하려는 듯한 눈빛들이네요.”
“죄송해요. 너무 지저분하게 해서.”

이게 제 피입니다. 라고 말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골치 아팠다. 이러다가 경비대라도 찾아와서 끌려가면 세라를 어떻게 할 수 없게 된다.
빨리 여관으로 돌아가서  좀 돌리고 싶었다.

“빨리 옷 사서 여관으로 돌아가자.”
“여관에 갔다가 옷을 사야  것 같아요.”


세라는 자신이 몸을 숨겨야 한다는 것쯤은 알지만, 호기심을 주체할 수 없는 건지 꼬물꼬물 로브의 후드 사이로 눈을 빛내고 있었다.
힐끔힐끔 사이로 보이는 어두운 피부가 다른 사람들의 의심을 불러왔다. 그나마 다크 엘프랑 피부가 비슷한 건지 의심에서 그친 것은 다행이었다.
이제 쨔쟌 검은 머리카락입니다. 해버리면 나는 모험가 신용도 잃고 박탈당하는 건가. 아 나 모험가 아니었지. 생각해 보니까 파티 중에 모험가인  리타뿐이었다.


“그럼 그렇게 하자.”

리타의 의견을 수용하고 가까운 여관으로 향했다.
여관 주인이 처음에는 의심하는 눈으로 나와 세라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리타가 옆에서 자신의 모험가 카드를 내밀고 돈을 한 푼  얹어줬더니 사연이 있겠지. 라는 느낌으로 눈감아주었다.
역시 권력과 돈은 최고인 듯했다. 고위급 성직자라는 사실로 신뢰를 얻고, 돈 한 푼 얹어서 입막음까지 시킬 줄은 상상도 하지 못 했다.
신분증 하나도 없는 나로서는 할 수 없는 일이라 그런지 더 대단해 보였다.

“마력만 있으면 되는데, 마나만 넘쳐서 문제네.”

씻는 곳이 깔끔하게 정리된 여관을 알고 있는 리타를 보니 역시 현지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돈은 좀 나가는 것 같았지만,  내 돈도 아니었고 편히 즐기자 싶어 욕조에 몸을 맡겼다.
그렇게 따뜻하게 몸을 데우고 있자니, 리타가 생각났다. 역시 모험가 카드가 있어야 뭐가 될 것 같은데. 리타 없이는 아무것도 못 하는 내가 한심했다.
의존하기만 해서는 안 되는데.
여러 생각이 드는 하루였다. 그래도 오랜만에 목욕하니까 남은 통증도  가시고, 마음이 편해지는 것 같다.

“성하 님?”
“세라?”

혼자 목욕실을 쓰고 있었는데 문 너머로 세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용 중이라 목욕실 손잡이에 호실이 적힌 판자도 걸어놨는데 그냥 내가 있는 것 같으니 말 한번 걸은 건가.


“들어가도 될까요?”
“…왜?”

불안한데, 또 배고프다는 건 아니겠지.
마족이 인간계에 오면 마나를 얼마나 자주 섭취해야 하는 거더라. 욕실에서만큼은 아프지 않고 싶은데.

“등 밀어드리려….”
“어,  돼. 저기 리타나 밀어줘.”
“리타 님이 성하 님이랑 씻고 있으라 하고 어디 가셨어요.”
“…하아, 들어 와.”

갑자기 뭔 등을 밀어주나 싶어 거절했는데, 리타가 자리를 비워버렸다.
이러면 세라를 혼자 둘 수가 없다. 혼자 씻는데 다른 몰상식한 모험가가 들어왔다가 마족인 걸 보면 골치 아파지기에 결국 들여보냈다.


“죄송해요. 리타 님이 잠시 교회에 가셔야 한다고 하셔서.”
“뭐 보고하러 갔나 보다.”

후드를 깊게 눌러쓴 세라가 그 사이로 눈을 빛내며 이쪽을 바라보았다.
아까 한숨 내쉰 소리를 들었는지 쭈뼛거리던 모습으로 내 눈치를 보고 있었다. 욕조에서 나가고 싶어도 지금 입은  하나도 없어서 그럴  없었다.

“성하 님. 저, 드릴 말씀이 있어요.”
“배고픈 건 아니지?”
“아니, 그게 아니라. 얼마든지 먹을 수 있긴 한데, 그 이야기가 아니라….”


배고프다곤 안 했는데, 얼마든지 먹을 수 있다는 소리를 들으니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내가 만약 부활하고, 멋대로 치료하는 몸이 아니었다면 저런 마족한테 맛집이 됐을 거라 생각하니,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고 있는데도 추워지는 기분이었다.
계속 말을 빙빙 돌리는 게 답답했지만, 그래도 뭐 중요한 이야기라던가, 비밀 이야기 같은 거라서 머뭇거리는 거겠지 싶어 욕조에 기대고 세라를 쳐다보았다.


“기어스를 다시 써 주시겠어요?”
“무슨 항목 때문에 그러는데?”

겨우 입을 연 세라의 입에서는 기어스를 수정해달라는 말이 담겨져 있었다.
뭐 때문에, 라고 한다면 자신의 족쇄를 풀어달라는 걸까. 아니면 자신에게 유리한 조건을 넣어 달라는 걸까. 어차피 그 중 하나일 테니 들어보고 결정해도 될  같았다.
어차피 주도권은 이쪽에 있으니까.

“마, 마계를 찾더라도 파티에서 제외하지 말아 주세요.”


말과 동시에 로브에 있던 후드를 뒤로 넘긴 세라가 비장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 소리를 들은 나는 멍하니 후드를 벗은 세라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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