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화 〉episode2. 새로운 동료 (4)
붉게 물든 이마에, 그녀는 고통을 참을 수 없었는지 눈물을 흘리며 손이 발이 되도록 싹싹 빌고 있었다.
마계로 가는 법을 미리 알아두면 아무리 약하더라도 다른 용사들보다 정보 면에서 앞설 수 있으니까 이러고 있는 건데, 마계에 관한 정보를 말할 생각은 아닌 것 같았다.
“쓸데없는 소리면 침대 모서리에 박을 거야.”
“힉, 아, 그, 제가 사는 곳의 왕을 배신할 수는 없어서… 히이익! 자, 잘못했어요! 다, 다른 거 어떠세요?!”
한 번 들어볼까 했는데, 자기가 사는 마계의 마왕을 배신할 수 없는 충직한 소리나 하고 있다니 참 용맹한 꼬마였다. 지금 당장 자기가 죽을 줄도 모르는데, 애국심이라고 해야 하나.
시간만 낭비했다 싶어 머리채를 꽉 붙들고 침대로 향하는데 마족이 발버둥을 치면서 뭔가 제안을 해왔다. 솔직히 마계에 관한 정보를 말해주는 게 아니라면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데 왜 자꾸 버티는 건지 알 수 없었다.
“다, 다른 마계 위치는 잘 모르는데, 마기는 제가 감지할 수 있어요… 사, 살려만 주세요.”
“흐응. 다른 마계를 찾을 수 있다고?”
마지막으로 속는 셈 치고 들어봤는데 꽤 유용할 것 같았다. 어차피 마법도 쓸 줄 아는 것 같았고, 데리고 다니면 탐지견처럼 써먹을 수 있으니 나로서는 좋은 협상이었다.
마족은 살아서 좋고, 나는 동료와 정보를 얻어서 좋고.
원래라면 다른 용사들만큼 실력을 키우고 나서 그 뒤에야 찾기 시작하는 건데, 이 정도면 다른 놈들이랑 출발선은 비슷해진 것 같았다.
“그럼 데리고 다녀도 된다는 거지?”
“…그, 으… 네에. 그, 살려만 주세요.”
눈앞에서 오빠가 처참하게 죽는 걸 본데다가, 자신도 벽에 머리를 박다가 죽을 뻔했으니 필사적으로 목숨을 구걸하는 것 같았다. 애초에 고통스럽게 죽을 거라면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편이 편하긴 하니까.
“이름이 뭐야.”
“세, 세라 테리우스요.”
“그렇구나. 기어스 걸게 얌전히 따라와.”
애초에 사람을 먹는 마족을 믿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아무리 그녀를 동료로 삼는다 해도 위험은 존재했다. 저런 마족을 파티로 데리고 있다는 소문만 퍼져도 아마 길드에서 추방당할 가능성이 있으니 그녀에게 제약을 걸어둬야 했다.
몸을 움직여 아까 들고 왔던 봉을 쥐고, 한 손에는 그녀의 머리채를 잡고 복도를 걸었다.
여기저기 피비린내가 나는데, 아마 내 피랑 저기 널브러져 있는 놈의 피 냄새겠지. 역시 피 냄새는 언제 맡아도 불쾌한 것 같았다.
“오, 오빠….”
머리채를 잡힌 채로 고개를 살짝 돌려 제 오빠의 시신을 본 세라는 울먹이면서 걸음을 머뭇거렸다.
그녀가 편히 울도록 머리채를 잡던 손을 놔주었다. 나를 죽였던 건 오빠 쪽이니 딱히 동정심이 드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마지막 만남이니까 기회를 한 번 주는 셈 치고 뒤에서 그녀를 지켜봤다.
세라도 원래 죽이려곤 했는데, 그냥 괘씸했던 것뿐이고 날 죽인 것은 아니니 이 정도 선에서 타협해준 것이다. 그녀도 날 한 번 죽였더라면 아마 더 요구했겠지.
“다 울었으면 가자.”
오빠의 시체의 앞에서 무릎 꿇고 펑펑 우는 그녀의 모습이 딱하긴 했지만, 나도 지금 못 자고 올라온 거라 상당히 피곤했기에 발걸음을 재촉했다.
싸운 시간이 너무 길게 느껴진다, 정말 몇 시간 못 자고 나와야 하는 것 아닌가 생각이 들 정도로 시간이 흐른 것 같았다. 빨리 리타를 꺠워서 기어스나 걸고 잠이나 자야겠다.
“리타.”
“…성하?”
“어, 나와 봐.”
주변에 모든 방이 빈방이기도 했고, 너무 피곤해서 일을 빨리 끝내고 싶었기에 문을 세게 두드렸다.
안에서는 뭔 일이 일어났던 건지도 모른 채 잠에 빠져있던 리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죽은 놈이 뭐 방해 공작인가 은폐 마법인가 펼쳐놨다고 했는데 진짜였나 싶었다. 올라오지 못하게 막은 게 아니라 그냥 꿀잠을 자고 있던 걸 보니 확실하다.
“…마족?!”
검은 머리카락에 태닝한 것처럼 태운듯한 어두운 피부색을 본 리타는 놀란 표정을 짓더니, 이내 놀란 눈으로 세라와 나를 번갈아 보더니 입을 다물지 못했다.
마족이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놀라운데, 내게 머리채까지 잡혀 있었으니까 그럴 법도 했다.
“어디서 마족을 데려, 오신 거예요? 성하는 볼 때마다 신기한 일만 해 오네요.”
“위층에서 손님 뜯어먹고 있길래 한 놈 죽이고, 동생 데려왔어.”
혹여나 도망가는 마법이라도 있을까 봐 주문을 읊지 못하게 머리채를 잡고는 있는데, 어딘가 내가 나쁜 놈처럼 보여서 빠르게 처리하고 싶었다.
“기어스 마법 한 번만 걸어줄 수 있어? 얘 계속 이렇게 잡고 있을 수는 없어서.”
“그, 알았어요.”
리타를 불러내 기어스를 만들어 계약 조항을 읊었다.
애초에 이건 일방적인 통보에 가까운 주박이었으니까 그녀에게 유리한 조항은 없었다.
허락 없이 인간에 대한 살상을 금지하며, 도망은 금지하는 조항을 만들고 기어스에 싸인하게 했다.
너무 한쪽으로만 치우친 조항 탓에 기어스는 붉은빛을 강하게 내뿜고 있었지만, 그녀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자신의 생존권이었기에 싸인을 하는 수밖에 없었다.
싸인을 거부하면 자신의 생존 또한 보장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는 거겠지.
“얘 이름은 세라.”
“아,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전 리타라고 해요.”
어느 정도 일단락됐다고 생각하니 몸의 피로가 몰려오는 기분이었다. 한바탕 벌어진 소동에 나만 고생한 기분이었지만, 그래도 다른 용사들과 비교하면 최고의 정보원을 얻은 셈이라 어느 정도 만족이었다.
조금, 쉴 수 있을 것 같았다.
“성하. 근데 대체 위에서 무슨 일이. 이마가 찢어졌는데 치료를 해야 하는 건가요?”
“어… 뭐 기어스도 걸었으니까 상관없겠지.”
벽에 기대앉아 한숨 돌리고 있을 때쯤, 리타가 세라의 상태를 보고서 그녀의 이마를 어루만지고 있었다. 아무리 마족이라도 작은 꼬마가 그 꼴이니 걱정해주는 것 같았다.
저렇게 보니까 머리채 붙잡고 온 내가 개새끼처럼 보이는 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마나는 내 부름에 응하라….”
주문을 읊던 리타의 지팡이에서 빛이 나기 시작했다. 온화하고도 따뜻한 빛이 방 안을 잠깐 감싸는 듯 했더니 세라의 이마를 치료했다.
벽에 머리를 세게 부딪힌 탓에 부어올랐던 혹이 내려앉고, 찢어진 이마가 자연스레 붙었다. 사람이 다치는 장면도 그렇지만, 마법으로 나아가는 장면을 보는 것도 꽤나 그로테스크한 것 같았다.
“난, 자러 갈래.”
그보다, 너무 피곤하다. 눈꺼풀이 무거웠다. 봉도 그냥 여기 뒀다가 내일 가지러 와야지.
“잘 자요.”
“어엉.”
그녀의 인사를 뒤로하고 나는 내 방으로 돌아갔다.
# # #
“세라라고 했던가요.”
“…….”
성하가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고, 리타의 방에는 리타와 세라가 남았다.
리타는 조심스레 세라에게 말을 붙였지만, 세라는 공포에 질린 눈을 한 채로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성하랑 같이 있을 때는 인사도 하더니, 자신에게는 제대로 말을 붙이지 않는 그녀의 모습에 씁쓸함을 느꼈다.
그렇게 멍하니 있다가, 아까 성하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혹시, 사람을 잡아먹었나요?”
“…으. 나, 나는 오, 오늘 아무것도 먹지 않았어.”
오늘. 오늘 밤에는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는 것은, 오늘이 식사하는 날이었고, 성하에 의해 제지당했다는 뜻이었다.
갑자기 발작하듯 귀를 막은 세라는 떨리는 시선으로 허공을 응시한 채 자신을 필사적으로 변호했다.
“괴물, 괴물…. 죽였다고 했는데, 오빠가 죽였다고 했는데, 다시 살아났어.”
그 말을 듣고, 그녀는 무슨 상황인지 단박에 파악할 수 있었다.
더 이상 그녀에게 물어보지 않아도 무슨 상황인지 알 수 있을 만큼 간결하고 강렬한 한 마디였다.
애초에 사람을 제외하고도, 생명체가 죽었다 다시 살아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소문으로 퍼진다 하더라도 헛소문이라고 일축당하고 어느새 잊힐 법한 터무니 없는 일이었다.
죽였던 사람이 다시 눈을 뜨고 찾아와 복수하기 위해 달려든다면, 그리고 그게 실력자라면 정말 무서운 이야기였다.
성하와 싸워본 리타는 알 수 있었다.
“자업자득이군요.”
그녀가 해줄 수 있는 위로는 없었다. 어차피 마족이라 동정할 이유도 없었다.
그들은 사람을 주식으로 삼아 마력을 섭취하니까, 원래 그런 종족이니까.
“그, 그 사람. 그 사람은 마왕인 건가? 가, 감정도 없어. 일순간의 망설임도 없고, 일말의 죄책감도 보이지 않았어!”
세라는 떨리는 목소리로 방금의 기억을 떠올렸다.
성하는 칼을 들고 가차 없이 목을 쑤시고, 등을 후비며, 갈비뼈를 으스러뜨렸다. 아직도 세라의 눈에는 자신의 오빠가 지르던 비명이 귀에 맴돌고 있었다.
자신이 오빠의 시체에 매달려 오열하고 있을 때, 차가운 목소리로 감정도 실리지 않은 목소리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인간을 잡아먹는 자신이 할 생각이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일전에 봤던 인간들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
“요, 용사님이, 용사님인 건가요?”
“지, 진정하세요.”
리타는 갑자기 달려들 듯이 다가오는 세라를 진정시키려 했지만, 그녀는 진정할 수 없었다.
자신이 모르는 미지에 공포를 느끼듯이, 그녀 또한 공포에 질려 있었다. 두려움을 떨치지 못한 채 리타에게 울부짖고 있었다.
“저희 일족을 죄다 벌하러 오신 건가요? 사람을 잡아먹는 우리가 잘못됐다고?! 그렇게 태어난 우리가 잘못된 건가요?! 인간들이 우리에게 마족이라는 멸칭을 붙여놨으면서 그러고도 모자라서 용사님을 부른 거죠?! 그런 거죠?!”
비통한 그녀의 목소리에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한 리타는 침을 꿀꺽 삼킨 채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에게 이미 자신의 종족에 대한 자긍심은 남아 있지 않았다. 그저 지금 자신의 처지를 떠올리며 울부짖을 뿐이었다.
세라는 자신의 오빠가 눈앞에서 죽어가고, 자신마저 잔혹한 방법으로 죽을 뻔했다는 사실에 손발의 떨림을 멈추지 못했다.
“당신은 살인자고, 그 사실은 변치 않아요. 인간에게 있어서 당신은 눈엣가시죠. 그러니까 겸허히 받아들이세요. 어차피 당신도 한 사람의 일원을 죽인 거잖아요.”
“…그렇게 하지 않으면, 저는 살아갈 수 없는걸요. 당신들이 동물을 잡아먹고 영양을 보충하듯이, 저희도 그렇게 만들어졌을 뿐인걸요.”
리타가 그녀의 울부짖음을 제지하고 차갑게 말했다. 세라가 살인자임에는 변함이 없었다. 그러니 고운 소리를 할 필요도 없었기에 일부러 강하게 말했다.
리타가 하는 말은 자신에게도 하는 말과도 같았다.
다른 누군가도 아닌, 성하를 한 번 죽였던 자신의 과오를 뉘우치고 있는 자신에게 구태여 한 번 더 채찍질하듯이 말했다.
“계속 그렇게 불평하실 거면, 그냥 성하한테 보내드릴게요.”
“죄송합니다. 잘못했어요. 살려주세요.”
리타는 자신이 잠자는 새에 대체 뭘 했길래 그녀가 이렇게 피폐해진 건지 궁금했다.
리타는 성하는 단순히 죽지 않는 마법을 가지고 있고, 현란한 몸놀림을 구사한다는 걸 알고 있다. 하지만 그런 거로 한 사람을 이렇게까지 궁지에 몰 수 있으리라고 생각되진 않았다.
세라가 성하의 본질을 엿보았다. 그의 어느 일면을 보았다.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단순히 자신의 오빠를 눈앞에서 죽였다고 나오는 반응은 아니니까. 그렇게 생각하는 게 맞다고 생각하며 세라를 바라보았다.
“할 줄 아는 게 뭐 있나요?”
“읏. 네?”
긴장한 나머지 숨을 삼키고 있는 세라를 보던 리타는 그녀를 조사하기 시작했다.
갑자기 이런 질문을 할 줄 몰랐던 건지 세라는 딸꾹질을 하며 리타를 바라보았다.
“마계 찾는 겸 온 거 아닌가요. 그때까진 동료로 있을 거잖아요.”
“어, 네. 맞아요…. 잘 아시네요.”
아까 리타가 했던 협박이 통한 건지, 얌전해진 세라는 순순히 대답하기 시작했다.
리타는 마족을 동료로 둔다는 게 얼마나 큰 리스크를 지는 건지 알고 있다.
인간을 먹는 마족이 파티에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는 것만으로 파티의 신뢰를 잃을 수 있다. 그래서는 모험가 의뢰는커녕 길드에 발도 못 붙이게 될 거고, 아마 그러다가 파티 자체가 이단으로 몰릴 수도 있으니까 위험한 것이었다.
그런데도 세라를 데려온 이유라면 단 한 가지였다.
“저는… 마나로 사역마를 만들어요.”
“흐음.”
“타, 탐색꾼 일은 제 사역마가 할 수 있어요. 지원은 할 수 있으니까….”
세라는 필사적으로 자신의 쓸모를 어필하듯이 리타에게 설명했다.
리타는 내내 그녀의 이야기를 듣다가, 시간이 흘러 세라와 함께 잠을 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