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화 〉episode2. 새로운 동료 (3)
“잘 먹겠습니다.”
멀어지는 듯한 소리에 그런 말이 귀에 들려왔다.
살아있는 채로 먹힌다는 게 무슨 기분인지 알지 못했다. 그냥 동물 다큐멘터리에서 보면 아직 의식이 있는 것 같은데 바로 몸을 뜯어먹히는 초식동물이 있었지만, 그땐 그냥 오. 하고 넘겼을 뿐이었다.
자연의 섭리라고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원래 그런 게 자연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직접 당하는 꼴이 되니 너무 고통스러웠다.
“가만히 있어.”
그리고, 얼마 가지 않아 그 고통은 사라지듯 눈이 까매졌다. 나는 죽는다.
*
미간을 찌푸리며 눈을 살짝 뜰 땐, 심한 고통은 없었지만, 눈을 감기 전의 고통이 아직도 몸에 잔류하고 있었는지 온몸이 욱씬거렸다. 숨을 몰아쉬는데도, 목이 떨릴 정도로 고통이 남아 있었다.
“오빠. 저놈 마계로 데려가도 되지 않아?”
“글쎄다. 같은 검은 머린데 마족이 아닌 걸 보면 용사인 것 같은데, 데려가도 되는 건가?”
“데려가자! 저놈만 있으면 우리 밥 구하러 인간계로 안 와도 돼!”
저 멀리서 대화 소리가 들려왔다. 아무래도 아까 봤던 그놈의 여동생이랑 같이 있는 것 같았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마족의 주식이 인간인 듯했다.
그러니까 마왕을 물리치자고 용사를 스페어까지 만들지. 괜히 많이 만들어진 게 아니라는 걸까.
그런데 그렇다고 마족이 식인종이라고 혐오할 것까진 없었다. 그저 지구에는 인간을 잡을 포식자가 없었고, 여기에는 있었다. 그뿐이었다.
“하아…,”
그들이 들리지 않게 떨리는 숨을 뱉어내고 피로 물든 침을 바닥에 몰래 뱉었다. 아까 그 마족 놈 말마따나, 내가 얻어맞으면서 날아다니고 비명 지르고 한 번 죽었는데도 리타가 올라오지 않는 걸 보면 이 층 자체에 소리 차단이라도 걸어 놓은 것은 확실해 보였다.
그렇다고 맞은편 방에서 이야기하는 놈들의 시선을 피해 내려갈 수 있을 것 같지도 않았다. 상황만 살피고 리타를 불러올까 했었는데 되는 일이 없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리타를 먼저 깨우고 올 걸 그랬나 라는 후회도 하며 조심스레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놈 어디 갔지?”
“어? 죽였다고 하지 않았어?”
“죽였, 는데.”
맞은편 방에서 보이지 않는 곳으로 이동한 뒤에 숨을 골랐다. 조금은 통증이 나아지는지 온몸이 가벼워지는 것이 느껴졌다.
그렇게 한참 기다리고, 시간을 보내자 수다를 마친 남매가 그 방에서 이쪽 방을 바라보며 얼빠진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몸을 재생하는 건 알았어도, 다시 살아날 거라는 생각은 못 했는지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목소리를 내었다.
“어디 갔지?!”
“오빠?!”
당황한 기색, 당황한 목소리, 당황한 발걸음이 쿵쿵거리며 내가 있는 방으로 넘어왔다.
나는 이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두 손을 모아 깍지끼고서 망치를 휘두르듯이 놈의 후두부를 강하게 내리쳤다. 쾅! 하는 강한 소리에 여동생 쪽이 비명을 지르듯 무언가 만들어내고 있었다.
마족은 지팡이를 쓰지 않아도 마법을 부릴 수 있는 건지, 빈손으로 주문을 외우며 무언가를 만들고 있었다.
“끄윽?!”
이번에는 상황이 반대다. 선공은 내가 가져왔고, 후두부를 강하게 내리쳤으니 지금의 주도권은 내게 있었다. 여동생이 없었다면 더 확실하게 승기를 가져올 수 있었을 텐데.
2대 1은 확실히 불리했다.
아무리 포식자와 피식자의 관계라도 가만히 죽어주고, 넘어가 줄 의향은 없었다. 불리하면 불리한 대로 싸워야 했다. 내가 가진 능력에 의존함과 동시에 주변을 관찰한다.
“내 나이프…!”
마법암기는 내게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 마족이 내 숨통을 끊기 위해 썼던 나이프를 쥐었다. 콰직! 그의 등을 한 번 찌르고 마법으로 매를 만든 그녀에게 시선을 돌렸다.
거리는 방, 복도, 그리고 방. 충분히 거리가 있었다. 이 나이프를 들고서 달려드는 것보다 동생 쪽의 매가 나를 향해 날아오는 게 훨씬 빠를 테니 달리는 것은 포기해야 했다.
“가라!”
당장에 두 놈을 상대해야 한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잘 알고 있다. 그런데 모험가 일을 하다 보면 의식을 한 곳에만 쏟을 수 있는 일이 더 흔치 않다.
고블린을 잡을 때도, 오크를 잡을 때도, 언제나 모험가는 적은 수였고, 모험가는 그 위기를 감내해야 했다. 그리고 지금도 같은 위기였다. 지성이 조금 더 있냐 없냐의 차이가 있을 뿐.
그렇게 찰나의 순간 고민하고 있던 새에 마법으로 만든 매에게 명령하는 동생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슈욱, 바람을 가르는 강렬한 소리에 귀가 찢어질 것 같았다. 아니, 귀가 아니라 나이프를 쥔 오른손이 뜯겨 나갔다.
“크윽!”
그래도 싸움을 시작해서 그런 건지, 아까보다 통증은 덜했다. 아드레날린이 분비되면 통증을 조금 완화 시켜준다 했던가. 참 감사한 신체였다. 하지만 이래서는 동생 쪽에겐 다가가지도 못한 채 내 패배로 끝난다.
그래서는 지금의 노력이 허사로 돌아간다. 끌려가면 지금의 일의 복수랍시고 처참한 꼴을 당할지도 모르니까 한 놈이라도 줄여야 했다.
시선은 다시 아래로 향했다.
“어딜 일어나!”
“윽!?”
발로 놈의 배를 걷어차고 떨어진 오른손을 주워 칼을 빼냈다. 오른손잡이인지라 왼손으로 나이프를 든다 한들 얼마나 잘 쓸 수 있을까 싶지만 안 쓸 수도 없었다.
손잡이를 반대로 잡아 나이프를 베는 것이 아닌, 찍는 용도로 잡아 놈의 등을 또 한 번 찔렀다. 힘이 약하게 들어간다 싶을 때면 체중을 실어 깊게 꽂아 넣었다.
“오빠…! 잠시만, 그만해!”
계속해서 오빠 쪽의 몸을 나이프로 꿰뚫자, 동생 쪽에서 먼저 항복하듯이 비명을 질러왔다.
만전의 상태에서 2대 1이었다면 이기기는커녕 다가가지도 못하고 끝났을 것을, 어찌저찌 상황을 잘 끌어온 것 같았다. 뒤통수를 강하게 맞은 놈은 마법을 쓰지도 못한 채 내게 얻어맞다가 칼로 몇 번을 찔리니 정신을 차리지도 못하고 괴로운 듯 신음만 흘리고 있었다.
어차피 등을 찔러서 죽을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10번은 찔렀으니 고통스러울 법도 했다. 아니, 10번이면 죽을 정도인가.
“우리가 잘못했어. 미안해.”
동생이 그런 말을 하는 이유가 뭘까. 사과한다는 것은 사과를 받아달라는 의미겠지. 그럼 사과를 받아주려면 내가 무슨 행동을 해야 하는 걸까.
설마 살려달라는 이야기를 하려고 저렇게 사과하는 것은 아니겠지.
애초에 이놈은 날 한 번 죽이기까지 했던 놈이니 곱게 보내줄 생각은 없었다. 날 정말로 죽여서 자신들의 허기를 달래기 위해 마계로 끌고 갈 생각까지 했던 놈들이니 저 동생 또한 곱게 보내줄 생각이 없었다.
둘 다 내가 여기서 죽일 것이다.
복구되어가는 오른손에 나이프를 옮겨 쥐었다. 잘린 손이 재생되어가는 것을 본 그녀의 목이 침을 삼킨 듯 위아래로 한 번 움직였다.
“미안하면 죽어줘.”
“…그건, 봐주면 안 될까?”
“그럴 순 없어. 지금 당장 주문 읊는 순간, 네 모가지도 따버릴 거니까.”
“용사가 인질극 하는 거야?”
나이프를 들고 놈의 목에 칼을 들이댄 채 시선은 동생 쪽으로 고정했다. 어느 쪽이든 마법을 발동하기 위해 주문을 읊으려고 하는 순간 이놈의 숨통을 끊고, 바로 건너편의 방으로 달려가 동생도 죽여버릴 작정이었다.
용사도 아니었기에 그녀의 비아냥 같은 것은 내게 통하지 않았다.
“마계는 어디야.”
그렇게 다 죽여버리겠다고 마음먹은 한 편, 이 둘이 마계에 사는 주민이라는 사실을 깨닫고는 질문을 입에 담았다.
마계를 찾는 것부터 문제라고 하는데, 나는 지금 상당히 운이 좋은 편이 아닐까?
“그, 그럼 살려줄 거야?”
“아니, 이놈은 죽일 거야.”
“그럼 난 못 알려줘.”
나랑 거래라도 하려는 건지 제 오빠를 살려줄 거냐고 묻는 그녀의 말에 순간적으로 어이가 없어 웃음이 터질 것 같았다. 나를 산 채로 물어뜯고, 뼈를 부수고, 먹어치웠던 녀석의 목숨을 놔줄 리가 없었다.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내놓지 않으면 나는 놔줄 수 없고, 애초에 이놈의 목숨으로 거래할 생각은 없었다.
“어?”
팔을 들어 올리고, 강하게 내려찍듯이 그의 몸을 찍었다. 난도질이라고 해도 될 만큼 몇 번이고 놈의 등을 꿰뚫었다.
“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끝없는 고통에 잠겨 괴로움에 몸부림치는 놈의 모습이 꼴사나웠고, 가차 없이 칼질하는 내 모습에 동생 쪽은 얼빠진 소리를 내며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한 손으로는 날이 깊게 들어가지 않아 그가 더 고통스러워하지 못하는 것 같아 왼손으로 오른손을 보조하듯 부여잡고 강하게 내리찍었다. 심폐소생술을 할 때도 갈비뼈가 으스러진다던데, 그게 정말 가능하다는 걸 보여주는 건지, 주먹질하듯 칼로 내려찍을 때마다 그의 신체가 무너져 갔다.
“뭐, 뭐야. 어, 어째서.”
“네가 협상을 안 해서.”
“이, 이런 건, 협, 협상이 아니, 잖아.”
벌벌 떠는 동생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놈의 피로 범벅이 된 몸을 털며 몸을 일으켰다. 너무 많이 찔렀나 싶을 정도로, 놈의 몸은 걸레짝이 되어 있었다. 갈비뼈는 으스러지는 바람에 몸의 형태는 허물어져 있었고, 살을 칼집을 너무 내는 바람에 피를 뿜는 다진 고기처럼 되어버렸다.
잔인한 광경이었는데도, 내가 직접 해서 그런지 쿵쿵대는 심장 소리가 더 거슬리게 느껴졌다.
“오지 마.”
조심스레 건너편의 방으로 발길을 옮겼다. 뒷걸음질 치는 그녀의 모습이 꼴사나워 보였다.
아까까지 자신의 허기를 달래기 위해 마계로 끌고 가자고 하던 활기찬 목소리는 온데간데없이 천적 앞에 선 피식자 마냥, 몸을 굳히고 있었다.
“다시 한번 물을 게. 마계는 어디야.”
“이미 오빠를 죽였잖아! 뭘 또 물어! 이제 네게 말해줄 건 없다고!”
그녀는 지원형인 건지 오빠처럼 나이프 같은 걸 가지고 있지는 않았다. 그래서 그런 건지, 손에는 아무것도 없었고, 천천히 다가오는 내게 아무런 반항도 하지 못한 채 뒷걸음질만 쳤다.
주문을 읊지 않으면 그냥 나와 같은 무능력자라는 건가. 그럼 더욱 잘 됐다. 이렇게 궁지로 몰아넣을수록 대답을 더 잘 하지 않을까 싶어 다시 한번 질문했다.
“네 오빠는 애초에 살려줄 생각이 없었어. 네가 마계 가는 법만 알려주면 널 놓아줄 뿐이야.”
“대체…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용사도 갈 데까지 갔구나? 악!”
놈의 몸을 찌른 나이프를 들이밀며 협박하듯 으르렁댔지만, 그녀는 말할 생각이 없는지 코웃음을 치며 이상한 소리를 내뱉을 뿐이었다.
나는 용사가 아니니까 나랑 상관없는 이야기다. 하지만 계속 비아냥대듯이 용사, 용사 거리는 게 짜증이 났다. 용사면 적에게도 대등해야 하고, 적에게도 정의를 설파해야 하고 뭐 그런 건가 싶기도 했다.
설령 내가 용사였다 할지라도, 내 적에게도 정의를 설파할 생각 따윈 추호도 없으니까 그냥 이대로 입 다물어 주면 좋겠다 싶어 동생 쪽의 머리카락을 붙잡았다.
“어휴. 내 팔자야.”
다행히도 동생은 오빠보다 힘이 강한 것 같진 않았다. 애초에 너무 얕본 탓에 제대로 싸우지도 못하고 나한테 잡힌 것 같지만, 그것도 다 실력이니 어쩔 수 없다.
내가 졌으면 난 평생 이 둘의 허기를 달래는 무한한 식재료가 됐을 것이었으니까, 이 정도면 공정한 싸움이었다고 생각한다.
뻣뻣한 어깨를 두드린 후에 양손으로 마족 동생의 머리채를 잡고 벽에 쿵 박았다.
“자. 말할 기분이 들면 불러.”
“자, 잠깐만, 잠깐만요.”
어떻게 딱 잡기 좋게 트윈테일로 머리를 묶어놨는지 양손으로 잡기 편했다.
그녀를 붙잡고 벽을 마주 본 채로 무릎을 꿇게 한 뒤, 손은 뒷짐을 지도록 했다.
나는 뒤에서 오토바이를 타듯 그녀의 머리카락을 잡고 벽에 한 번 들이박았다.
쿵.
“아악!”
쿵.
“으으윽!”
쿵.
“흐에엑!”
쿵.
“웃, 으읏!”
쿵.
“그, 그만.”
쿵
“살려, 살려주세요. 제발!”
몇 번을 부딪쳤을까. 이마에 상처까지 난 그녀는 울먹이면서 필사적으로 빌고 있었다. 손바닥이 닳을 정도로 싹싹 비는 그녀의 얼굴은 눈물과 콧물, 그리고 이마에서 흘러내리는 피로 엉망이 되어 있었다.
정보를 얻기 위해서는 한 번에 죽이는 것으로 협박하는 것보다 이쪽이 더 효과적인 것 같았다.
“말할 생각이 들었어?”
“아, 아니. 그건 말할 수 없,”
“손 치워. 손으로 막으면 더 세게 할 거다.”
“자, 잠깐만요! 제, 제발. 제 말 좀 들어보세요.”
말할 생각이 들지도 않았는데 살려달라고 빌다니 아직 덜 필사적인 것 같았다. 다시 머리채를 잡고 벽에 들이박으려는데, 그녀는 계속 성가시게 애원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