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8화 〉episode2. 새로운 동료 (2) (8/98)



〈 8화 〉episode2. 새로운 동료 (2)

*



익숙한 경치였지만, 전에 고블린을 잡으러 왔을 때는 거의 죽었다 살아나는 바람에 동굴에서 눈을 붙였던지라, 이곳의 여관은 색다르게 느껴졌다.
작은 마을이라 그런지는 몰라도 조금 아늑한 분위기에 마음이 편해지는 것 같았다.
이런 곳에도 여관이 있다는  모험가의 왕래가 꽤 있다는 뜻일 텐데 왜인지 오늘은 다른 손님이 없는  같았다. 먼저 온 사람들이 있으리라 생각한 예상을 비웃듯이 여관 안은 고요로 가득 메워져 있었다.


“두 분이신가요?”


여관 주인이 데스크에서 몸을 일으키더니 나와 내 뒤를 따라오던 리타를 바라보았다.
원래 모험가는 돈을 아낀답시고 믿을만한 동료라면 방 하나를 빌려서 잠을 청하지만, 나와 리타의 거리는 믿고 믿지 않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냥 내가 꺼려졌다. 기어스를 걸어서 그녀가 절대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같이 잠자리에 드는 것이 불편했다. 트라우마까지 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불편한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네, 방 두 개 주세요. 자리 돼요?”
“어? 아, 네 됩니다.”


둘이 왔으니 방 하나를 빌리겠거니 싶었는지 열쇠 하나를 꺼내던 주인이  목소리에 당황하고는 다시 다른 열쇠를 꺼내 들었다.
아무래도 2인실 하나 집어주려고 했던 거겠지.
리타는 내 선택에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 채 입을 꾹 다문 채 돈을 꺼냈다. 잘그락거리는 소리가 어렴풋이 들려왔다. 기어스에 적힌 대로 금전적인 문제나 지위에 관한 문제는 그녀가 해준다고 생각하니 꽤나 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면목이 없네요.”

돈을 내놓고서 자신의 열쇠를 받아든 그녀는 당연한 결과라고 받아들이면서도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모험가가 아니더라도 사람은 신뢰가 사회의 생명이나 다름없었다. 그녀도 알고 있었고, 그래서 조금이라도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무리하게 기어스를 건 거겠지.
하지만 마법에 의존해 신뢰가 가능한 상대하고, 내 마음이 허용하는 것하고는 이야기가 다르니까 그녀를 배려해줄 이유는 없었다.

“그, 그럼  자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은 채  앞에 서니,  방을 받은 그녀는 머쓱한지 쩔쩔매는 목소리로 인사를 건넸다.
열쇠를 꽂고 돌려서 배정받은 방의 문을 열었지만 들어가지는 않은 채 그녀를 살짝 돌아보았다.
어차피 맨날 같이 다닐 텐데, 잘 때 말고는 굳이 꺼리는 사이가 되고 싶진 않았기에 작게나마 인사를 건네기로 하자.


“잘 자.”
“…네.”

내가 대답해줄 줄 몰랐다는 반응인지 내 말을 들은 리타는 눈을 크게 뜬 채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발그레한 얼굴로 대답하는 것을 보아하니 하는 게 정답이었던 것 같다.
이 정도면 괜찮겠거니 싶어 방으로 들어가 안을 살폈다.
늘 그렇듯 전무 나무로 되어 있어서 걸을 때마다 조금씩 끼익거리는 소리가 났다. 그리고 처음으로 1인실을 받은 덕에 침대에 누워볼 기회가 생겼다.


“…딱딱한데.”


바닥만큼은 아니지만, 침대도 꽤 딱딱했다. 매트리스가 없어서 그런 건지, 아니면 그냥 돈이 없어서 그런 건진 몰라도 침대 자체가 딱딱한 나무로 되어 있었다. 그래도 이불이 조금 두껍게 깔려있으니 어느 정도 매트리스 역할을 해주어서 편안하기도 했다.
마냥 딱딱한 바닥에서 잔 세월이 길어서 그런가, 처음으로 폭신한 곳에 누우니 몸의 피로가 풀리는 기분이 들었다.
시원한 이불의 감촉이 잠을 채촉한다.


“살아남을 수 있을까.”


하지만 잠이 채 오기도 전에 리타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내일 해가 뜨면 바로 왕도로 돌아가 동료를 영입한다고는 했지만, 마왕과 마음먹고 싸울 사람을 구하기엔 조금 늦은 감이 있었다. 다른 용사들이 영입했을 테니까 지금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벌써 앞이 깜깜해지는 기분이었다.
애초에 자신이 용사가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마왕을 토벌하지 않으면 죽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혀야 하는 이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아.”


모험가 카드 발급에 실패하고 멍하니 다른 용사들을 바라보았을 때, 왜 사이가 좋지 않았는지 알  있는 부분이었다. 그냥  나라에 있는 용사의 수만 듣고서, 왜 같이 뭉치질 않는 거지 싶었는데, 그런 이유가 있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용사들은 99명이나 있고, 거기에 낙오자인 나를 포함하면 총 100명이 72명의 마왕을 두고 싸우는 꼴이 되는 셈이니 아마 내가 포함되어야 한다면  28명의 용사가 실패하거나 토벌에 늦어서 죽어야 한다. 애초에 원래 세계에서 잘 지내다가 여기 와서 생존권을 건 레이스라니 너무 가차 없었다.


“어.”


그렇게 생각하다 보니, 어떻게 여기에 왔는지 기억이 나질 않았다. 그냥 이세계구나 싶어서 의문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는데, 내가 죽어서  건지, 아니면 갑자기 소환된 건지 예상만 해야 할 뿐이었다. 몇 번이고 고민하고 떠올리려고 애써도 생각이 나지 않아 답답한 기분이었다.
왜 가장 떠올려야 하는 부분을 잊어버린 건지 의문이  정도였다.

으득.

그렇게 한참을 천장을 바라보았다. 얼마나 생각에 잠겨 있었을까. 어디선가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역시 이세계. 시대가 시대라 그런지 바퀴벌레가 움직이는 소리가 생생하게 들려온다.
애초에 주변에 바퀴벌레가 있으면 잠이 오질 않는다. 옆에서 자꾸 티칵티칵 소리를 내는 것이 모기만큼 불쾌했다. 존재가 있다는 사실을 인지한 순간부터 잠이 오질 않는 벌레이기에, 잡기 위해 몸을 일으켰다.


으득, 으드득.


창문을 여니까 더 생생하게 들려왔다. 그리고 이거 애초에 벌레 소리가 아니다. 위층에서 들려오는 소리였다.
뭔가를 뜯어먹는 소리가 왜인지 불쾌하게 들려왔다.
어디선가 들어본 소리, TV에서 동물 다큐멘터리에서나 가끔 들을 법한 살점을 뜯는 소리에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대체 위에 뭐가 있는 건진 모르겠지만, 일단 일반적인 사람이 있는  같지는 않았다. 식인종일까, 아니면 다른 몬스터일까. 어느 쪽이든 바퀴벌레보다 무서웠다.
조금 무서웠지만, 후들거리는 손으로 봉을 꽉 잡고 방문을 열었다. 끼이익. 하고 괴상한 소리를 내는 문이 지금 이 순간만큼은 원만스럽게 느껴졌다. 제발 위에 있던 놈이 알아채지 못했기를 바라며 천천히 발소리를 죽이고 걸음을 옮겼다.

으득, 까득.

한 층을 올라오자 그 소리는 더 격해져만 갔다. 아무래도 손님이 별로 없어서 그런지 운 나쁜 손님 하나가 잡아먹힌 듯했다.
사실 뜯어먹은 시체를 두 눈으로 볼 수 있을 만큼 비위가 강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는 정신력이 강하다고 자부할  있었기에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천천히 다가갔다.

“…! 어떻게 여길.”
“너 지구인 아니야?”


검은 머리카락을 보고 순간적으로 원래 세계의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아는 한 이 나라에서 소환한 용사들은 모두 검은 머리카락이었다.
그런데, 처음 왔을 때, 용사들을  사람들은 순간적으로 겁을 먹었었다. 그때 들었던 말을 기억한다.


마족인가?
아니, 이번에 용사님들도 검은 머리카락이라고 했어.

이번에 용사님들도라는 것은 마족은 원래 검은 머리카락이라는 것을 뜻하는 거겠지.
그걸 이제야 떠올린 내가 한심하다 느껴졌다.
너무 늦게 떠올린 후회에 이미 상대방이  덮치고 있었으니까.  세계에서 내 몸집보다 작은 사람 치고 나보다 약한 사람 찾기가 힘든 것 같았다.

“끄아아악!”

어찌나 강한 힘인지, 목덜미가 뜯겨 나갔다.
너무 아프고, 괴로웠다. 당장에 눈앞이  돌 것만 같은 고통에 눈물이 흘러나오려 했다.
태닝한 것처럼 갈색 피부에, 어두운 머리카락, 그리고 작은 체구의 남자애가 서 있었다. 아니, 아이가 아닌 걸까.
애초에 마족이란  처음 봤으니 외관이나 나이 개념 같은 건 알 턱이 없으니 내  바는 아니었다. 당장에 그가 적의를 드러내고 있다는 사실만이 이 자리에 있었다.


“뭐야 이 맛.”

살점을 물어뜯으며 입가에 묻은 피를 닦는 마족은 형형한 눈으로 내 몸을 바라보고 있었다.  몸이 꽤 맛있게 느껴지는지 자신이 하던 식사를 멈추고 나를 보며 입맛을 다시고 있었다.
맛없게 태어날 걸 그랬다고 생각하며 봉을 들고 적의를 드러냈다.
네가 있으면 잠을  수가 없다고.

“…뭐야 너? 그  이상한데, 그 봉 지팡이도 아니잖아?”

신음을 참고 대치하기를 몇십 초, 물어뜯긴 부위가 제멋대로 재생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마족도 경계하듯이 자세를 잡았다.
그 말이 맞다. 나도  몸이 왜 이러는지  수는 없었다.
이 봉은 지팡이도 아니며, 내가 주문을 읊어서 치료한 것도 아니었다. 그냥 제멋대로 살아나기 위해 발악하는 이상한 몸일 뿐이었다.

“킥. 킥킥. 그렇구나. 그래서 맛있는 거구나.”


뭔가 알아챈 듯한 마족은 양팔을 벌려 마법을 구현했다.
어두운 탁기에 심장이 멎을 것만 같았다.

“네가  비명을 질렀는데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지 알아?”
“…….”

그러고 보니 내가 고통에 신음하며 비명까지 질렀는데, 바로 아래층에 있는 리타가 올라오기는커녕 일어난  같은 낌새조차 보이지도 않았다.
점점 눈앞의 탁기는, 불길한 형태를 이루더니 이내 그의 손에 쥐어졌다. 날카로운 암기.
암살자들이 줄곧 쓴다는 검은 색으로 칠한 단도를 양손에 쥔 마족은 새하얀 이를 드러냈다.


“이 층에는 지금 아무도 널 구하러 오지 않아. 그런 마법을 걸어놨었거든.”


말을 마치는 것과 동시에 마족은 무언가를 보여주듯이 빈 오른손으로 이상한 손짓을 하고 있었다.
그보다, 양손에 무기를 쥐고 있는데, 왜 비어있는 거지. 아.
나도 모르는 새에 던졌는지 왼쪽 옆구리에 암기가 꽂혀있었다. 동체 시력이 모자란 건진 몰라도 전혀 보이지 않았다. 반응할 새도 없었다.

“원래, 암기는 뽑기 힘들게 날에 홈을 패어놓는  알아?”
“윽!”

놈이 뭔 말을 하든 칼을 뽑아야 했다. 당장에 뭐가 들어있을지 모르는 마법으로 만든 암기였다.
손잡이를 강하게 붙잡고 쑥 뽑았다. 간단하게 뽑힌다고 생각했지만, 세상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걸 느끼게 해주려는 건지 손잡이만 뽑혀 있었다.

“킥킥. 말은 끝까지 들어.”

시야가 갑자기 무너진다. 또 내가 모르는 사이에 오른쪽 허벅지에 암기가 꽂혀있었다.
이러다 고슴도치가 되는 거 아닌가, 싶기도 했다.
얄밉게 쳐 웃는 저놈의 주둥아리를 비틀어버리고 싶었다.

“마법으로 만든 암기는 날이 사람에게 박히게 되어 있거든. 뽑으려 해도 흡수돼. 탁기를 머금은 인간의 신체는 어떻게 되는지 알아?”

알 턱이 없었다. 진즉에 흡수해버렸는지 어느샌가 날이 몸 안으로 꿈틀대며 들어가는 것을 보고만 있어야 했다.
힘으로 무작정 뽑을 수 있는 것도 아니거니와, 마력도 없어 마법으로 뽑을 수도 없다.
만약에 이것이 내게 시한부라는 거라면, 고슴도치처럼 칼이 꽂힌대도 내가 해야  일은 정해져 있었다.
이를 까득 깨문 채 깊은숨을 내쉬었다. 이빨 사이로 새어나가는 바람 소리에 경계하는지 웃음을 거둔 마족은 다시 탁기를 암기로 바꾸어 손에 쥐었다.


“왜 아무렇지도 않은 거야. 두 방이면 다들 거품 물고 무너지는데!”

소리를 내지르는 마족의 손에서 하나, 둘 암기가 사라지고 쥐어지기를 반복했다. 내가 실력자였다면, 동체 시력으로 피하거나 봉술로 암기를 튕겨낼 수도 있겠지.
하지만 나는 그러지 못했다. 그럴 눈도 갖고 있지 않고, 그럴 실력 또한 갖고 있지 않았다. 그래도 그의 암기는 내게 통하지 않는다는 걸 안 순간 나는 고통만 참으면 되는 일이었다.


“끅!”

봉을 휘두르는 순간, 상대가 암기가 통하지 않는다는 걸 눈치채고는 먼저 달려들었다. 완력 싸움으론 도저히 되지 않는다는 듯이 그의 주먹질에 봉을 잡던 한쪽 팔이 부러지고, 연이은 발차기에 갈비뼈가 부러진 채로 몸이 날았다.
입에서 자꾸 무언가가 올라온다. 구토감을 참을 수 없어 일단 토하고 봤더니 먹었던  올라오는  아니라, 폐에 차오른 피가 올라오고 있었다.
입안에 불쾌한 끈적임과 피비린내가 진하게 남았다.
반대편으로 날아가 벽에 세게 부딪힌 것도 지금 상태에 한몫한 건지 일어나기가 너무 버거웠다.
아니 시발, 마계부터 찾기 힘들다 했는데, 왜 마족을 쳐 만나냐고 좆같게.

“쿨럭! 커흑!”
“내 마법암기에 통하지 않는  보면, 그 몸이랑 관련 있는 거겠지?”


너무 아프다. 목까지 피가 차올라 말을 할 수도 없었다. 벽을 등받이 삼아 붉은 시야를 위로 향하니 마족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몸을 걷어찼다.
내장이 파열되는 기분이었다. 나아가는데도, 나아지는 만큼 뼈를 부러뜨려 갔다.
너무 아파. 아파. 아파. 아파. 아파. 아파..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