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화 〉episode2. 새로운 동료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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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뭘 했더라. 고블린 토벌 의뢰 때는 리타가 거의 다 해줘서 나는 그냥 숟가락 얹은 정도인데, 오크도 비슷하게 끝났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리타 없이는 거의 무능하게 끝낸 것 같았다.
좀 싸웠다고 생각 나는 때가 리타랑 목숨 걸고 한밤중에 붙은 것뿐이라니 뭔가 기분이 묘하기도 했다.
이제 조금 실력이 올랐으니 다음 의뢰부터는 조금 능력을 뽐낼 수 있지 않을까.
작게나마 희망을 품으며 식당에서 나와 어제의 평원으로 돌아갔다.
“뭐하려고요?”
“까먹고 놓고 온 무기 찾으러.”
평원을 둘러보며 어제 오크 사냥 때 떨어뜨리고 온 봉을 찾기 위해 계속해서 근처를 걸었다.
지형을 살피고, 경치를 바라보며 이 근처인가 싶어 계속해서 두리번거리고 있는데, 풀이 무릎 좀 안 되게 자라있는 탓에 봉 하나 찾기가 힘들었다.
쓴지 얼마 되지 않아서 손에 익었다느니 그런 거창한 이야기를 할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마법젬병인 내게 그나마 맞는 첫 무기라 생각하니 꼭 찾고 싶었다.
아무리 돈에 여유가 된다고 해도 갖고 있던 무기를 함부로 할 이유는 되지 못했으니까.
“찾았다.”
리타도 도운다길래 구역을 나누고, 풀밭을 헤집어 안쪽을 살폈다.
그렇게 한참을 찾기를 몇 시간이 지나서야 겨우 한쪽에서 내 무기를 찾을 수 있었다.
이럴 거면 차라리 여기서 찾기 시작할 걸 그랬나 싶으면서도, 막상 찾고 나니 뿌듯함이 느껴졌다.
그리고 이 정도 움직이니 음식을 먹은 것도 어느 정도 소화되는 것 같았고, 시간도 이만큼 흘려보냈으니 정류장에 줄 선 사람들도 많이 빠져나갔을 거라 생각이 들었다.
“찾았어요?”
“어, 이제 왕도로 돌아가자.”
내가 봉을 치켜들자 옆에서 같이 찾던 리타가 허리를 펴고 내 쪽을 바라보았다.
해냈다는 듯이 봉을 들어 보이자 가까이 다가온 리타는 기지개를 피면서 옆에 있던 자신의 짐을 어깨에 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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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차를 타고 오기를 하루를 보내고, 경유지에 머물렀다.
이전에 고블린을 잡겠답시고 왔던 루데니라는 이름의 마을이었다. 전에 와본 적 있어서 그런지 익숙함과 동시에 그리운 기분도 들었다.
서늘하게 져 버린 밤하늘을 멍하니 바라보니 하늘이 조금씩 움직이는 기분도 드는 것 같았다.
이세계라고 새삼 깨달은 탓인지는 몰라도 이 순간이 또 묘하게 느껴졌다.
“성하.”
조심스레 들려오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고개를 돌렸다.
리타가 성녀 옷을 입은 채 가지런히 서 있는 것을 보자니 새삼 성녀였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또 무슨 이야기를 할는지 내심 궁금하기도 하고 뭔가 예상가기도 해서 그냥 시큰둥하게 바라보고 다시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냥 또 내 능력에 관한 이야기일까 싶기도 하고, 용사니 신이니 헛소리나 할 것 같기도 했다.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려고 그냥 하늘에 있는 별을 세고 있었다. 원래 있던 세계에서는 별도 하나 보기 힘들었으니까 지금이라도 저기 자수처럼 놓인 별들을 즐기는 수밖에 없었다.
“성하랑 있으면 어딘가 새로운 기분이 들어요.”
예상치 못한 말에 숫자를 세는 것을 멈추었다.
별이 너무 많아서 무의미하게 숫자를 읊고 있던 입을 멈추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나도 그녀를 보면 새로운 기분이 들긴 했다. 뜬금없이 죽이려고 하고 이겼더니 갑자기 바닥을 기고 매달리니 새로운 기분이 아닐 수 없었다.
“그래서 당신을 놓치고 싶지 않았어요.”
내 옆에 서서 같은 하늘을 바라보는 리타의 옆모습을 힐끔 바라보았다.
보랏빛 눈이, 보석처럼 별빛을 눈에 담고 있는 것 같았다. 아름답긴 한데 성격이 참 특이해서 뭐라 형용할 수 없는 난감함이 있었다.
차라리 그냥 죽지 말고 사렸다면, 그녀와 평범하게 파티 생활을 즐기다가 내가 독립할 수 있게 되면 헤어졌을 텐데, 아름다운 인연이 묘한 악연이 된 기분이었다.
그녀는 솔직하게 자신의 감상을 말했지만, 나는 내 감상을 말할 생각이 없었다.
마차에서 내려 드넓은 초원을 바라보는 것만으로 벅찼기 때문에 그녀의 목소리만 덤덤히 듣고 있을 뿐이었다.
# # #
말없이 듣고 있는 성하와 달리, 리타의 머릿속은 복잡해져만 갔다.
신도 아니고, 용사도 아닌데 미지의 경지에 다다른 사람이 있었고, 체술로도 자신을 제압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에 성하에게 경외감을 느끼고 있는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런 사람이 있다는 것에 놀라긴 했어도, 그것을 입으로 꺼내면 자만하는 년으로 보일까 두려워 입으로는 차마 꺼내지 못한 채 목까지 차오른 말들을 겨우겨우 삼키고서 성하가 보던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처음으로 서 본 을의 위치. 처음으로 느껴본 굴욕감과 수치심에 흥분을 느끼는 건지 그녀는 새롭게 뛰는 듯한 가슴에 손을 얹은 채 고개를 아래로 살짝 숙였다.
“그게 무슨 기분인지 나는 모르겠어.”
성하는 무심하게 던진 말이었지만, 그 역시 당연한 말이었다.
그녀는 이 기분을 제대로 설명할 수는 없었지만 확실하게 느끼고 있었다.
매일 위에서 내려다보기만 했던 그녀가 처음으로 올려다볼 상대가 생겼다는 사실 하나로 심장이 두근거리고, 설레는 마음을 말로 제대로 설명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처음으로 느끼는 감정에, 기분에, 마음이 계속해서 요동치고 있었으니까 자신의 마음을 정리하는 것만으로도 벅차서 성하에게 단편적인 말만 전할 뿐이었다.
“괜찮아요. 저도 잘 모르겠어요.”
리타는 쓴웃음을 지으며 성하를 내려다보았다. 다시금 이렇게 내려다보니, 그가 자신보다 작았다는 걸 새삼 깨달은 그녀는 아련한 눈빛으로 그의 눈을 마주했다.
성하는 그녀가 무슨 감정으로, 무슨 생각으로 자신에게 그런 말을 했는지는 잘 모르지만 그래도 그냥 그렇구나 싶은 기분으로 들었다.
자신을 죽였던 사람과 같이 있는 기분이 좋지는 않았지만.
계약을 걸었기에 겨우 믿을 수 있는 사람이라 썩 내키지는 않았지만.
홀로 내던져져, 아무도 날 반기지 않는 이 세상에 누군가를 옆에 둘 수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 그는 조금은 편안함을 느꼈다. 그녀를 올려다보며, 새삼 느꼈다.
그녀가 목을 조르지 않았더라면, 그리고 그녀를 계약 내용을 듣고서도 가차 없이 내쳤더라면, 지금의 여유를 가질 수 있었을까. 지금처럼 안심하고 동료를 구할 수 있었을까. 의문을 던지며 심란한 마음으로 그녀와 눈을 마주했다.
“마왕을 죽이면 특전을 준다는 이야기. 아세요?”
“조금은.”
그렇게 한참을 서로 마주 보며 서 있을 무렵, 리타가 먼저 침묵을 깨고 들어왔다.
그는 교회에 넘겨지기 전, 소환된 스물다섯 명의 용사들의 목소리로 얼핏 깨달은 내용이지만, 자세히는 알지 못했기에 그녀의 말에 기울였다.
바람이 다른 사람에게는 들려주기 싫은 듯 고요한 듯, 소란스럽게 불어왔다. 바람을 커튼 삼아 이야기를 이어갔다.
“용사가 아니라지만, 소환자에게 통하는 이야기라면 듣는 것도 좋을 것 같아서요.”
“…….”
그녀의 말에 성하는 침묵을 지켰다.
그녀의 말대로 소환자에 통하는 이야기라면 들어도 좋겠지만, 용사에게만 통하는 이야기라면 그가 들을 이유는 없었다. 그래도 그게 어느 쪽이라고 말해주는 사람은 없으니 일단은 듣기로 하며 가만히 있었다.
입을 다문 채 자신을 쳐다보는 그의 모습에 그녀는 그가 눈빛으로 재촉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입을 열었다.
“어느 용사님이 왕에게 말씀드렸대요. 마왕을 잡으면 원래 세계로 갈 수 있거나, 이 세계에 남을 수 있다고, 그리고 덤으로 원하는 특전을 하나 얻을 수 있다고.”
“잠깐.”
“네?”
기억을 더듬듯, 시선을 한쪽으로 돌린 리타는 중얼거리는 듯 말하면서도 그가 들을 수 있게 명확하게 말을 이었다.
그녀의 말을 들은 성하는 문장에 위화감을 느끼며 멍하니 듣다가 그녀의 말을 끊었다.
그리고는 몇 번이고 중얼거렸다.
계속해서 위화감의 정체를 찾기 위해 그녀가 했던 말을 몇 번이고 곱씹기를 반복했다.
“특전이 이 세계에 남는 것까지 포함된다고?”
돌아가고 싶은 성하에게는 당연히 좋은 소식이었지만, 반대로 이 세계에 남는 것까지 특전이라고 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마왕을 잡는 데 시간이 걸린다는 뜻이고, 특전이라 하면 잡은 용사만 해당한다는 뜻이었다.
이제야 위화감을 눈치챈 성하는 무언가를 깨달은 듯 눈을 크게 뜨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모험가 카드를 발급받으려다 실패한 뒤, 다른 용사들이 몰려왔던 때, 그들은 충분히 강한 자신들끼리 파티를 짜기는커녕 서로를 경계하고 다른 동료를 구하는데 열정적이었다.
용사들이 왜 자신들끼리 파티를 맺지 않았는지 눈치챈 성하는 그들이 단순히 리더질 하려고 그런 것이 아니었음을 깨닫고선 혀를 찼다.
“용사의 수나 마왕의 수는…? 기간은?”
성하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잡으며 조심스레 리타에게 물었다.
자신이 이 나라에서 본 것만 해도 용사가 스물다섯인데, 다른 나라에서도 소환하지 않을 이유는 없기에 더더욱 불안했다.
“네 나라 합쳐서 총 아흔아홉의 용사가 있고, 마계에 있는 마왕은 일흔둘 있어요. 기간은 몰라요.”
리타는 자신의 기억을 더듬으며 성하의 질문에 대답해주었다.
성하는 몇 번이고 입을 떼고 닫기를 반복했다. 기간을 모른다고 말하는 그녀의 문장에선 이미 그녀의 말에서 기간이 나온 거나 다름없었다. 마왕을 처치하지 못한 스물일곱의 용사는 어딘가에서 죽어버린다는 뜻이나 다름없었으니까.
이 이야기가 용사에게만 통하는 이야기라면 마왕을 잡으면 원래 세계로 돌아가고, 실패하면 여기서 사는 것을 선택하면 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반대로 소환자에게 통하는 이야기라면 자신도 포함되는 이야기였기에, 다른 용사들을 제치고 살아남아야만 했다.
여유를 부릴 때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성하는 애꿎은 길바닥의 돌을 걷어차고는 씩씩대기 시작했다.
“성, 성하….”
그녀도 자신이 무슨 말을 했는지 알기 때문에 성하가 씩씩대는 것을 대놓고 말리지는 못하고 쩔쩔맬 뿐이었다. 이제야 이걸 알려준 자신을 책망하진 않을까 두려워했지만,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아니, 이제라도 알려줘서 고마워.”
이미 시작되어버린 레이스를 늦게 알아차린 성하는 한참을 깊은 한숨을 토해내는 데 쓰고는 허탈한 표정으로 리타를 바라보았다.
계속해서 용사가 아니라고 하는 바람에 해당이 안 되나 싶어 말을 꺼내지 않다가, 그냥 꺼낸 말이었는데 성하가 이토록 화를 내니 어쩔 줄 모르는 채 그녀의 손은 허공을 방황하고 있었다.
그런 그녀가 눈에 들어왔는지 성하는 그녀의 탓이 아니라는 듯 손을 살짝 들어올리고는 다시 한번 한숨을 내쉬었다.
“망했네. 스타트가 다르잖아.”
애초에 별 치트 능력과 함께 나라의 지원을 받으며 시작한 놈들이랑 비비기도 힘든데, 이런 사실도 늦게 알아차리는 바람에 출발선 자체가 한참 멀어진 것을 깨달은 성하는 반쯤 포기한 듯 하늘을 보며 허탈하게 웃었다.
“괜찮아요. 마왕은 마계에 있으니까요. 마계는 막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니라서 다른 용사님들도 애먹고 있을 걸요?”
“그건 다행이네.”
그런 그를 위로하듯 그녀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72개의 마계를 찾아 그 마계의 주인을 하나씩 처리해야 하는 일이 간단할 리가 없었다.
며칠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 누가 처치했다는 소릴 들으면 진짜 얼마나 치트 능력을 받은 걸까 싶었을 텐데, 그러지 않아서 안도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상황이 조금 나아진 거지, 완전히 좋아진 것은 아니었다.
그에게 주어진 것은 하나도 없었다. 마력이 없어서 마법을 쓸 수 없었고, 마나를 조율하지 못해서 이 세계 완력 보정을 받지도 못해 신체 능력도 일반인 그 자체였기에 몸을 완성하는 것부터가 그에게 주어진 과제였다.
출발선은 달라지지 않았다.
“하아.”
마계를 찾으러 모험을 떠나는 용사들과 다르게, 먼저 강해져야 하는 자신의 현실에 한탄하는 성하는 몇 번이고 한 숨을 내쉬었다.
푹푹 내쉬는 한숨이 끝없이 나오고 있었다.
“어?!”
그렇게 한숨을 몇 번 내쉬었을 때쯤, 짝! 하고 경쾌하고 살을 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리타는 안타까운 마음에 돌리고 있던 시선을 소리가 나는 곳으로 돌렸다.
성하는 자신의 양 볼을 손바닥으로 후려친 건지 발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내일 왕도 길드로 돌아가서 동료 구해야겠다. 오늘은 더 이상 마차가 안 다니니까 잘 수밖에 없겠네.”
계속해서 지금을 한탄해서는 나아갈 수 없다고 판단한 성하는 정신을 차리기 위해 자신의 뺨을 강하게 후려친 뒤로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눈을 하늘로 향했다.
너무 세게 때렸나. 싶어 조금 후회한다 싶다가도, 이렇게 하지 않으면 자신이 정신 차리지 못할까 봐 이 정도는 해줘야 한다고 독하게 마음먹는 내면이 있었다.
“네, 도와드릴게요.”
그녀는 그런 그를 보며, 입꼬리를 올린 채 응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