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6화 〉episode1. 열등감 (6) (6/98)



〈 6화 〉episode1. 열등감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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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고분고분하게 말을 따르는 리타가 조금은 꺼림칙하게 느껴졌지만, 기어스에 맹세하고 계약한 이상은 그녀가 내게 해를 가할 일은 없을 테니 조금은 안심이 되었다.
사실 리타랑 이 이상 같이 다니면 안 된다고 마음이 외치곤 있는데, 막상 눈앞에 메리트가 놓이니 잡지 않을 수가 없었다. 모험가 카드 하나 발급받지 못하는 내게 길드  처리를 공정히 해줄 사람이 있다는 것 자체가 큰 메리트인 데다가 그녀의 재산이나 지위를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은 언젠가 있을 복잡한 일도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다는 뜻이겠지.
아니, 그럴 일이 있긴 할까. 나는 용사가 되지 못한 머저리인데.

“저, 성하 님?”


반말 써도 된다 했는데 계약   하더니 갑을 관계가 되어버렸는지 또다시 존댓말을 쓰는 그녀가 조금 어색하게 느껴졌다. 이래서는 그냥 일방적으로 노예 하나 사들인 기분이었다.
그래도, 아까 그녀가 알몸인 채로 엎드려 빌었을 때 느낀 쾌감이 짜릿하게 느껴졌기에 그냥 이대로 두기로 했다.
어디 가서 이런 S급 모험가를 노예처럼 부릴 수 있을까 생각하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조금은 용서해주시는 건가요?”
“없던 일로 하지 뭐.”
“감사합니다…!”

너무 극진한 태도에 할 말을 잃을 정도였지만, 이 정도 정성이면 용서 못  것도 없다 생각했기에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그러자 그녀는 한 번 더 엎드려 감사를 전하고 있었다.
 중에 이게 뭔 난린진 모르겠지만, 아침이 되면 체크 아웃을 해야 하니 이제 조금 눈을 붙이고 싶었기에 아까 내가 자던 자리에 다시 누웠다.
그런데 그녀는 내가 누웠는데도 그 자리에 엎드려서 나를 힐끔힐끔 바라보고 있었다.

“…안 자게?”
“치, 침대에서 주무세요.”
“거기까진 양보 안 해도 돼. 그냥 자.”
“네에.”


골치 아프다. 왜 저런 반응을 보이는 건진 모르지만 갑자기 미친년에서 성가신 노예로 바뀐 것 같아서  불편했다. 뭐라도 본 걸까 싶지만, 그냥 센 사람한테 약한 모습을 보이는 타입이라 생각하니 조금 편해진 것 같았다.
조심스레 침대에 누운 리타의 모습을 보고 다시 바닥에 누워 눈을 감았다.
그녀를 이길 수 있을 줄은 상상도 못 했는데, 이겼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은근히 기분이 좋았다. 나는 사실 잠재력이 있는 거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든 순간, 조금은 자신감이 붙었다.
팔만 살짝 들어 올려 주먹을 쥐었다 폈다를 반복했다.
난생처음 느껴보는 감각이었다. 영화나 만화에서  것 같은 장면을 떠올리며 그대로 구사한 몸놀림이 나 스스로를 놀라게 했다.
스테이터스 창 하나 못 열 뿐이지 나도 다른 용사들처럼 능력이 있는 건 아닐까. 어디서 보고 들은 걸 실제로 구현한다는 능력이라던가. 그런 능력이라면 힘만 기르면 기술에 관해선 거의 문제 없을 텐데.

“…….”

천천히 몰려오는 피로감에, 눈이 감겨왔다.
능력에 관해선 내일 생각하기로 하자.


# # #





아침이 된 날. 오크 토벌을 했던 사람들이 다시 자신의 거처로 돌아가기 위해 정류장에 줄을 섰다.
성하는 멍하니 줄을 바라보더니 오래 걸릴 거라는 걸 직감하고는 줄에서 빠져나와 다른 곳으로 향했다.


“성하 님?”


마차를 타기 위해  줄에서 갑자기 성하가 빠져나가자 당황한 리타는 그의 뒤를 따랐다.
하루 한시가 급한 모험가 생활에 갑자기 줄을 빠져나오다니 무슨 생각인지 알지는 못했지만 그를 얌전히 따라갔다.


“어디, 가세요?”

그래도 궁금한 건 어쩔 수 없는지 결국 물어본 그녀는 그의 눈치를 살피며 걸었다.
그러자 성하는 그녀의 말에 멈춰 서서는 불쾌한 듯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존댓말까진 알겠는데  자꾸 그런 태도인 거야. 잘못해서 그런 건 알겠는데, 태도가 그렇게 급변하면 듣는 쪽으로썬 기분 진짜 묘하거든?”
“죄송해요.”
“뭐 노예 산 것도 아니고. 대체  하는 태돈지 원.”

성하는 그녀의 심경변화를  턱이 없었으니 화낼 만도 했지만, 그녀에 있어선 이게 당연한 반응이었다.
신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맴도는 탓에 계속해서 자신을 낮추는 바람에 나오는 말투와 행동이었으니 성하의 입장으로썬 부담스러울 만도 했다.

“죄송합니다. 계속 신님이라고 생각이 들어서….”
“엥?”

결국, 그녀는 자신의 본심을 내놓았다.
이대로 계속 그를 불편하게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해서 꺼낸 말이었고,  말을 들은 성하는 얼빠진 목소리를  채 짜증을 내던 표정을 풀었다.
갑작스레 신이라고 하니 당황한 성하는 눈을 커다랗게 뜨고 그녀의 모습을 보고 있었다.

“이런 말도 하긴 뭣하지만, 당신 같은 사람은 본 적이 없어서요.”


그녀는 우물쭈물하면서 그의 눈치를 살피며 말을 골랐다.
기어스 때문에 자신이 버려지진 않을 거라는 걸 알면서도, 자신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면서 그냥 데리고 다닐 뿐이라면 의미가 없어진다는 걸 알기에 조심스레 분위기를 재며 입을 열었다.
몇 번이고 머릿속에서 필터링하고, 단어를 고르고, 기분이 나쁘지 않도록 신경 썼다.

“되살아나는 마법도 마법인데, 마법 없이 갑자기 체술에도 능해지시는 데다가 제 잘못까지 용서해주시는
너그러운 마음 까지, 신님이 아니실까 해서.”
“이상한 소리 말고 그냥 평소처럼 대해. 어차피 기어스 했으니까 상관없잖아.”
“…네.”

그녀가 조심스레 꺼낸 말에 그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넘기려 했다.
 모습에 더욱 매료되었는지 그녀는 멍한 눈으로 그의 모습을 내려다보았다.
그녀는 조금 더, 빨리 그를 알았더라면 나는 자만하는 것을 멈추었을까. 추악한  모습을 뉘우칠 수 있었을까.
아니면, 신앙심에 눈 떠서 정말 깊은 마음으로 사람들을 도왔을까. 그렇게 생각하며 다시 걸어가는 그의 뒤를 따랐다.

“밥이나 먹고 가자.”

리타가 계약한 내용 덕에 재산에 걱정이 없어진 성하는 다른 모험가들이랑 다르게 조금 여유를 가진 채로 가게를 둘러보고 있었다.
S급 모험가에 고위 성직자면 돈이 많은 것을 알기에 나오는 여유였다. 게다가 며칠간 이 세계에 와서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도 아니기에 그가 들고 있던 돈도 꽤 되었다.
잘그락거리는 동전 주머니를 꺼낸 성하는 리타를 힐끔 보면서 식사를 제안했다.


“사주시는 건가요?”
“뭐, 이제 누구 돈이냐  것도 없잖아.”


계약서를 그렇게 작성한 이상 이 돈은 누구 것이고, 저 돈은 누구 것인지 나누는 의미가 사라졌기에 성하는 시큰둥하게 반응했다.


“그래도 감사하게 잘 받겠습니다.”

리타는 미소지으며 그의 뒤를 따라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괜찮아 보이는 분위기의 가게를 찾아 들어간 둘은 가까운 테이블에 마주 앉고는 눈을 마주쳤다.


“그거 태도 너무 부담스러워.”

성하는 음식을 기다리는 사이에 침묵이 조금 어색했는지, 아니면 그녀의 태도가 거북했는지 먼저 말을 꺼냈다.
한쪽 팔로 턱을 괴고는 도끼눈을 뜬 채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신님이랍시고 극진한 태도로 자신을 대하는  그냥 용사여서 그런 것도 아니고, 한참 싸우다가 갑자기 태도를 바꾼 거라 더 어색했다.
애초에 자신은 그냥 그녀를 이용할  있는  많아서 꺼려지는 것도 뒤로 하고 받아준 건데, 그녀의 태도가 이래서야 불쾌지수만 쌓여갈 뿐이었다.
그녀는 그런 그의 말을 듣고 어쩔 줄 몰라 하는 표정을 지으며 손을 어디에 둘지 몰라 방황하고 있었다.


“난 신도 아니고, 뭐 거기 관계자도 아니니까 태도 좀 어떻게 해 봐. 어차피  신앙심 없다 했잖아.”
“그, 그렇지만, 그런  보면 신을 믿게 되는걸요.”


한숨을 내쉬는 성하와 반대로 리타는 쩔쩔매고 있었다.
리타의 가슴 한쪽에는 그가 미지의 존재라고 느껴져서가 이유인 것도 있었지만  다른 이유가 있었다.
그녀는 자신이 알몸으로 엎드려 비는 와중에 발로 짓밟혔던 것을 계속해서 되새기고 있었다. 누군가에게 철저하게 굴복하고 땅을 기며, 반박 하나 제대로 못 하는 자신의 모습에 수치스러워하면서도 묘한 희열을 느끼고 있었다.
그 기분을 언젠가 다시 한번 느끼게 해줄 거라는 믿음이 있었기에 자신을 계속 낮추고 있었다.


“됐어. 부담스러우니까 극진한 태도는 관둬. 차라리 원하는 게 있으면 말로 해. 어차피 동료로 계속 지내야 하는데 이렇게 어색한 사이로 지내는  사양이야.”
“알겠어요. 고칠게요. 존댓말은 쓰게 해주시는 거죠?”
“너무 과하게 쓰지는 마….”

리타는 마지막으로 존댓말은 꽉 붙잡은 채 성하의 의견을 받아들였다.

“주문하신 오크 스튜랑 스테이크 나왔습니다.”


이야기하며 시간을 보내다 보니, 어느새 주문한 음식이 나오자 성하가 먼저 포크를 들었다.
멍하니 바라보니 어제 잡은 오크가 음식으로 나온다는 걸 알게  성하는 놀라워하면서도 조심스레 고기를 썰었다.

“저, 성하 님.”

숟가락을 들고 스튜를 푸던 그녀가 멍하니 그를 바라보았다.
뭔가 진지하게 말하려는 듯한 그녀의 모습에 성하는 고기를 썰던 것을 멈추고 그녀를 마주 보았다.
리타는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었다. 그가 정말 용사가 아닌 건지.
아무리 보아도, 뭔가 특별한 능력을 받았다고 설치던 용사들보다 눈앞에 있는 성하가 무언가를  품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런 사람이 용사의 힘을 받지 않았다니 말도 안 된다고 판단하고 있었다. 그가 신이 아니라면, 반대로 신에게서 편애를 받고 있다고 생각해도 무방할 정도로 그는 이상하다고 판단했다.


“진짜, 용사가 아닌 건가요?”
“아니라던데.”


그럴 리가 없다. 이런 사람이 용사가 아닐 리가 없다;
 나라는 무슨 생각이길래 이런 사람을 용사가 아니라고 교회로 내친 것일까. 라고 한탄하던 그녀는 눈을 크게 뜨고  사실을 자각했다.
자신도 그를 어제까지만 해도 일반인이라 평가했다는 것을.
지금이라도 당장 왕성에 돌아가 해명하면 용사에게 걸맞은 지원을 받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다른 용사들이 그리했던 것처럼, 국고를 열어 재화를 받고, 무기를 받고, 또 다른 동료를 영입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누구 부럽지 않은 지원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 생각한 리타는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저, 혹시 다시 가서 확인해 보시겠어요?”
“…아니.”

하지만 성하는 리타의 제안을 거절한  고기를 썰어 입에 넣었다.
부드럽게 씹히는 고기의 육질을 느끼며 시큰둥하게 리타를 바라보았다.
어째서 왕국의 지원을 받을 기회를 버리는 건지 리타로서는 성하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야, 나는 매몰차게 쫓겨났으니까. 애초에 다른 용사처럼 특이한 능력이 없다니까? 걔넨 막 눈에서 빔 쏘는 애도 있다던데, 어휴. 게다가 스테이터스 창 열고 다니고 남 정보도 열람하고 다닌다 하더라고. 그놈들이랑 비비기도 힘들어.”

성하는 리타의 말을 들은 뒤 고기를 씹으며 뭔가 고민하는 듯하더니 고기를 꿀꺽 삼키고는 입을 열었다.
자신이 왕성에서 교회로 넘어갔을 때, 그 사람들의 대우를 떠올리면서, 별로 좋은 기억이 아니었다는 것을 다시 한번 상기시키며 다른 용사들을 언급했다.
물론 리타는 그런 용사들을 알고 있다.
자신을 영입하기 위해  번 찾아온 용사들이 자신의 능력을 뽐냈던 것을 본 적이 있었기 때문에.
그런데, 다 하찮았다. 하찮다 못해 흔해 빠졌다. 사람의 신체 능력을 수치화해서 볼 수 있다는 능력은 실로 탐났다. 자신의 성장이 눈에 수치로 보인다는 것이 얼마나 귀한 능력인지 알고는 있었다.
그와 동시에 용사들만의 특별한 능력이 있음을 알고 있었다.
그래도, 그것들은 눈앞의 성하가 가진 능력에 비하면 흔하디흔한 마법으로 가능할 법한 능력이었으니까.


“그런. 국가의 지원을 받을  있는 데도요?”
“네가 있잖아.”

다시 한번 성하를 설득하기 위해 입을 열었다.
메리트가 조금이라도 있는 것을 좋아하는 성하에게 그가 얻을 수 있는 메리트를 이야기하면 어느 정도는 들어줄 의향이 있지 않을까 싶어 꺼낸 말이었지만, 이내 빠르게 돌아온 그의 말에 그녀는 입을 꾹 다물었다.
성하가 고민할 새도 없이 자신에게 의지해준다는 말을 꺼낸 사실에 그녀는 희열을 느꼈다.
그와 함께 있으면 자꾸만 새로운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몇 번이고 바뀌는 관계에, 몇 번이고 새로운 기분을 느끼는 게 얼마나 짜릿한지.
온몸이 오싹해지는 기분이 너무 기분이 좋았다. 늘 따분하게 위에만 서 있으면 느낄 수 없는 감각.


“…….”


성하의 말에 은근히 기분 좋아진 그녀는 조용히 스튜를 입에 넣었다.
자신에게 의지한 그의 모습을 본 이상, 이제 이 이야기는 다시 꺼내지 않기로 다짐한 그녀는 살며시 입꼬리를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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