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화 〉episode1. 열등감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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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타는 재능이 있었고, 노력을 해왔다.
다른 사람이랑은 출발선이 다르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고, 그렇게 노력하는 자들에게 따라잡히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써왔다.
수가 적은 신성술을 쓸 수 있었으며, 그뿐 아니라 다양한 마법들을 알고,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똑똑했다. 그리고 그에 그치지 않고 그녀는 체술까지 몸에 익혀 문무양도, 그 자체를 뽐낼 수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처음으로 열등감을 느꼈다.
신성술의 최상위 마법. 금단이라고 불리며, 때론 신의 영역이라고 표현될 정도로 미지의 경지였다. 그것은 아직도 연구 중이며, 확립되지 않은 마법. 사지에서 돌아오는 마법이었다.
‘말도 안 돼.’
리타는 그렇게 생각할 수밖엔 없었다.
평생을 내려다보는 위치에 서 있던 그녀가 마법에 대해서 하찮은 존재로 전락하는 그 순간이 불쾌하게 여겨졌기 때문에 그녀는 성하의 목을 졸랐던 것인데, 그녀는 또 한 번 놀랄 수밖에 없었다.
S급 모험가인 자신을 상대로 현란한 움직임을 보이는 성하에게 어딘가 두려움을 느꼈다. 오늘까지, 아니 방금까지만 해도 평범하고 하찮고 지천에 널린 흔하디흔한 F급 모험가, 아니 그 이하. 아무런 힘도 없어 모험가도 되지 못한 일반인.
그런 그가 갑자기 눈빛이 달라지고, 분위기가 달라지더니 이내는 몸놀림까지 달라져 있었다.
이 세계로 넘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이 세상에 대해선 하나도 모르는 햇병아리라 생각했는데, 이 나라에 있던 합일권을 구사하질 않나. 봉술을 배운지 얼마나 됐다고 봉술의 기초인 균형을 터득하지 않나.
그녀는 그에게 경이로움을 표했다.
처음으로 열등감도 느끼지 못할 만큼의 차이를 인지했다.
‘이게, 내 발밑을 기던 사람들의 심정인가.’
손을 아무리 뻗어도 닿지 않을 경지라는 게 있을까. 라는 생각이 있었다.
4원소술에 어둠 마법까지 터득한 엘리멘탈 마스터라는 작자가 만든 자가수복 마법 탓에 교회가 부활에 대한 헛소리를 늘어놓는다 생각했는데, 그 결과가 눈앞에 있었고.
체술로는 이길 수 있다. 생각하고 힘으로 굴복시키려 한 결과가 이 꼴이니 그녀는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숙소로 돌아는 가야 하니까 놔주긴 하는데 허튼짓은 하지 마.”
“허튼짓 안 해.”
어깨를 들썩거리며 숨을 몰아쉬는 성하는 경계심 어린 목소리와 함께 몸을 조심스레 일으키고 있었다.
리타는 쓴웃음을 지으며 허탈한 목소리로 모든 걸 내려놓은 듯이 말했다.
이 사람은 이길 수 없다. 격이 다르다는 것을 인지한 순간 그녀의 패배는 번복될 리 없었다.
성하가 몸을 일으킨 뒤에도 리타는 조심스레 몸을 일으킬 뿐이었다. 물어보고 싶은 것은 산더미만큼 있었다. 마법도 무도도 통달한 그녀에게는 궁금한 것이 산더미만큼 있었다.
조심스레 앞장서서 숙소로 돌아가던 성하에게 손을 뻗었다.
“성하.”
“…왜.”
“이 세계에 언젠가 온 적이 있었어?”
너무나도 궁금했던 질문 중 하나를 던졌다.
소환되고 나서 무술이나 무도에 관해 아무것도 모르던 그가 갑자기 움직임이 달라졌다는 건, 그가 원래 있었던 세계에서 배웠던 것이 아니라는 뜻이었다.
그렇다면 그가 구사했던 몸놀림은 이 세계의 무술임이 틀림없었다.
“아니.”
성하는 그녀에게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그녀가 언제 달려들지 모른다는 생각에 한껏 경계하는 모습이었다.
그 짧은 대답에 리타는 궁금증이 더해져만 갔다. 계속해서 궁금증에 궁금증이 달라붙었다. 비대해지는 의문에 그녀는 참지 못하고 다음 질문을 내던졌다.
“왜 날 살려준 거야?”
그녀는 가장 궁금했던 질문을 던졌다.
그녀는 그가 죽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고 해도 가차없게 목을 졸라 죽였었는데, 그는 그러지 않았다.
사실 그가 자신을 죽인다 하더라도 그에게 뭐라 할 생각은 없었다. 당연한 결과였으니까.
그런데 그는 그러지 않았다.
교회에서 배우는 신학에서 줄곧 이런 이야기를 한다. 분노를 죽이고 자비를 심으라고. 분노와 자비는 작물이며, 심으면 그만큼의 열매를 맺는다고. 분노는 분노를 맺고, 자비는 자비를 맺는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자신은 그러지 못했기에, 그리고 다른 사람도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을 보았기에 성인군자들의 허튼소리라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그는 그리했다. 신학을 배운 적 없는 자가, 성인군자들이 하는 허튼소리를 몸으로 보여주었다.
“하찮은 동정이야. 괜한 소린 집어치워.”
무뚝뚝하게 들려오는 대답 너머로 리타는 알 수 없는 통증을 느꼈다.
자신이 얼마나 추악한지, 더러운 욕망에 잠겨있는 건진 알고 있었는데, 괜히 옆에 빛나는 사람이 있으니 자신이 초라하다 느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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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여관으로 돌아온 리타는 자신의 작은 지팡이를 꺼내었다.
기어스는 하나의 주박, 계약의 내용에 따라 술자를 속박한다. 그리고 자신에게 제약을 걸기 위해 마법을 펼쳤다.
결과엔 승복했으니 그의 말에 따라주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것이 패배한 그녀에게 남은 마지막 자존심이었다.
“성하. 혹시, 혹시라도. 괜찮다면… 나를 한 번 더, 동료로 써줄래?”
하지만 그 마지막 자존심까지 버려가며 그녀는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그의 눈치를 살피며 말했다. 그가 들어주지 않는다 해도 뭐라 할 수는 없었기에 더욱 초조했다.
아랫입술을 깨물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염치없는 부탁인 건 알아. 그래도, 된다면. 기어스에 약속해줘.”
그녀는 처음으로 낮추고, 처음으로 빌었다. 이런 날이 오리라곤 생각지도 못했는데, 자신이 지는 날이 오리라곤 생각지도 못했는데 막상 지고 난 그녀의 마음은 어딘가 뛰고 있었다.
“미안한데, 나한테 메리트가 없어. 난 지금도 네가 무섭거든.”
차갑게 돌아오는 성하의 목소리에 그녀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웃음은 천천히 희미해져 갔다.
당연한 반응인데도, 그녀는 혹시나 하는 기대를 품었기에 씁쓸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내가 돈은 다 지원해줄게. 내가 가진 전 재산 모두 지원해줄 수 있어. 지위도 네 맘대로 사용해. 아니, 사용해주세요. 이렇게 빌게요. 길드에 대한 일 처리는 제가 다 해드릴 수 있어요.”
그녀는 어금니를 아득 깨물고는 엎드렸다. 제단 앞에 서서 기도할 때 말고는 무릎도 꿇지 않던 그녀는 처음으로 사람 앞에서 무릎을 꿇고 엎드려 빌기까지 했다.
그녀는 필사적으로 애원하듯이 빌었다.
그녀에게는 그가 마치 신처럼 보였기 때문에 더욱 필사적이었다. 눈앞에서 뇌까지 뭉개진 사람이 어떻게 마법을 발현하는가. 어떻게 사람을 그렇게 용서하는가. 묻고 싶은 것들은 산더미였고, 모르는 것도 산더미였다.
처음 보는 사람. 처음 보는 미지. 그녀는 알 수 없는 그에게 빌었다.
며칠 동안 다니면서 이 폐급 용사는 내가 잘 안다고 생각했던 자신의 자만을 뉘우치며 머리를 땅에 박았다. 반말을 허용받았음에도 자신이 아래 있다는 것을 자각하는 그녀는 다시 존댓말을 쓰며 자신을 받아달라고 애원했다.
“제발… 기어스는 원하는 대로 제약을 걸게 해드릴게요. 셔틀로 써도 좋아요.”
그녀는 누군가에게 굴복한다는 것 자체가, 이렇게 엎드려서 비는 것 자체가 모욕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고 생각하면서 필사적으로 빌었다.
신 같은 존재라고 믿고 있는 탓에 이 상황이 모욕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마법사협회장조차 이 사람의 벽을 넘지 못할 거라고 자부하며 몇 번이고 빌었다.
“…….”
성하는 그녀의 제안에 흔들리고 있었다. 어차피 기어스란 걸 걸면 자신에게 이후로 해가 되지 않을 텐데, 동료로 데리고만 다녀도 그녀의 돈과 지위, 게다가 그가 못하는 길드의 일 처리를 맡길 수 있으니 충분히 혹할만한 제안이었다.
다른 사람을 구한다 하더라도 등쳐먹을 가능성이 있는 한, 당장 눈앞에 있는 그녀에게 기어스를 걸고 일 처리를 맡기는 게 더 나을 것 같다고 판단했다.
자신의 기분이 우선인지, 미래가 우선인지 저울질하면서 바닥에서 기고 있는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성의가 부족해.”
하지만 죽이려던 걸 놓아준 그에게는 이미 그녀에게 해줄 선심은 다 써줬기에 계속해서 그녀가 원하는 것만 들어주기는 조금 꺼림칙했다.
애초에 그녀가 그렇게까지 낮출 이유를 모르니까 더 불안하고, 그녀의 진심이 어디까지인지를 모르기 때문에 선뜻 동료로 데려가기도 꺼려졌다.
“다 벗고 빌면 생각해볼게.”
그녀가 정자세로 계속해서 머리를 박고 있는 모습을 보아하니, 갑자기 떠오른 생각이 뇌리에 스쳤다.
얼마나 필사적인지 던진 거라, 그녀가 진심으로 벗으려는 기색만 보이면 말리고 오케이 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 다짐은 얼마 가지 못했다.
“그, 그런 거라면.”
엎드려 빌던 리타는 성하의 말을 듣자마자 그런 거로 봐주는 거냐며 몸을 일으켜서 가볍게 입고 있던 옷을 하나씩 벗기 시작했다.
부드러운 살결이 드러나고, 곡선을 그리는 나신이 달빛에 비추어졌다.
성하는 말리려던 것도 잊고 침을 꿀꺽 삼킨 채 그녀의 모습을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그녀는 자신이 입던 옷을 자신의 옆에 개어놓고는 다시 성하의 앞으로 가서 엎드렸다.
부드러운 살결 너머로, 근육이 조금씩 보이는 그녀의 등을 내려다보는 그의 시선이 본능적으로 그녀의 엉덩이로 향했다. 너무 야한 몸을 본 나머지 당장이라도 발기할 것 같았지만 그는 그 모습을 얼버무리기 위해 발을 들어 올렸다.
신발을 벗고 그녀의 뒤통수를 콱. 하고 밟았다.
“읏.”
그녀는 그런 행위도 받아들이려는 듯 신음만 흘릴 뿐 다른 소리는 내지 않았다.
정복감이 느껴지는 이 행위에 어딘가 쾌감을 느낀 성하는 단순히 그녀의 머리를 밟는 것만으로 그치지 않고 그녀의 머리를 밟은 발을 살살 비볐다.
땅에 닿은 이마가 아파 보이는데도, 그런 건 안중에도 없다는 듯이 그녀의 머리를 짓밟을 뿐이었다.
“됐어. 진심은 알았으니까 기어스를 걸어.”
“이, 이걸로 봐주는 건가요?”
몇 분간 정복감을 만끽한 그는 헛기침과 동시에 발을 뗐다.
아까까지 옷 벗는 낌새만 보이면 멈추겠다던 다짐이 무색하게 말리기는커녕 그녀의 머리까지 짓밟고 있는 자신을 깨닫고선 부끄러움을 무마하기 위해 고개를 들라고 말했다.
고개를 든 리타는 발개진 이마를 보이며 환한 얼굴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드디어 용서받았다는 생각에 미소 지은 그녀는 옷을 입는 것도 잊은 채 바로 지팡이를 꺼내 주문을 외웠다.
“세상은 내 부름에 답하라. 지금 이 순간, 계약을 바라건대….”
그녀가 조용히 주문을 읊자 마력으로 만들어진 실이 하나하나 종이를 짜더니 이내 두루마리를 만들었다. 아까 성하와 리타가 계약했던 그 두루마리였다.
두루마리는 찬란하게 흩뿌리던 빛을 잠재우고 평범한 두루마리로 돌아와 있었다.
“하나. 을은 갑에게 상해를 입히지 않는다.”
리타는 두루마리를 앞에 두고 말을 걸기 시작했다. 그녀가 한마디를 끝내자 이 세계의 문자가 그 말대로 적혔다.
“둘. 을의 재산과 지위는 갑의 마음대로 할 수 있다.”
두루마리는 지금의 조항이 약간 불공정하다고 판단하고 있는지 경고하듯 잠깐 붉은 빛을 깜빡였다.
“셋. 갑의 심부름을 을은 거절하지 않는다.”
또 한 번 붉은 빛을 깜빡이는 두루마리 위로, 리타는 한 번 더 고했다.
“넷. 갑은 을을 동료로 삼고, 이 계약을 파기하지 아니한다.”
마지막으로 한 줄을 적어낸 리타는 갑에는 성하를, 을에는 자신의 이름을 적었다.
네 줄이 적힌 두루마리를 보던 성하는 리타를 힐끔 바라보고는 바로 시선을 돌렸다.
이미 리타는 사인을 끝낸 뒤라 성하만 사인을 마치면 되는 상황이었다.
“옷이나 입어.”
“아, 넵.”
금새 공손해진 리타는 성하의 말을 듣고는 개어진 자신의 옷으로 향하고는 옷을 입었다.
그리고 사인을 마친 두루마리가 리타에게 돌아왔다.
“감사, 합니다.”
필사적으로 빌어서 겨우 받아들여진 게 조금 기뻤는지 미소지은 그녀는 공중으로 흩어져가는 두루마리를 꼭 끌어안았다.
그녀는 자신의 앞에 있는 그를 바라보면서 생각했다. 자존심을 버리고서라도 따라갈 만한 사람이라고, 내가 알던 신앙의 모습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자신이 몰랐던 미지의 경지를 또 한 번 보여줄지 모른다고 기대하며 눈을 빛냈다.
지금 그녀는 자신이 처음 굴복했다는 사실에 은근히 희열을 느끼고 있었다. 처음으로 당하는 굴욕감이 그녀를 몸을 오싹오싹하게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