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화 〉episode1. 열등감 (4)
콰직. 하고 주먹이 몸에 내리 찍혔다.
괴로워서, 아파서, 눈물이 흘러나왔다. 대체 왜 이러는 건지 알지 못했다.
“죽이는 것에서 희열을 느끼는 게 아니야.”
그런 그녀는 내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계속해서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내뱉을 뿐이었다.
대체 뭘 원하는 건지, 이 이상 알고 싶지도 않았다.
“잘난 사람이 내 앞에서 기는 걸 보는 게 주체못할 정도로 기쁜 거야.”
나는 잘못한 것 하나 없는데 왜 이런 고통을 받아야 하는 건지 알지 못한 채로 신음을 흘리며 그녀를 올려다봐야 했다. 바닥에서 나뒹구는 탓에 쭈그려 앉아있는 그녀의 모습을 보는데도 시선을 위로 향해야 했다.
극심하게 전해져오는 통증이 조금은 나아진 것 같았다.
아무래도 어디 하나 부러졌던 뼈가 다시 제멋대로 붙어버린 거겠지.
이 순간, 그녀를 어떻게 이길 수 있을지 궁리해야 했다. 힘으로는 절대 불가능하기에. 정말 제대로 된 방법을 떠올려야 했다.
고통을 극복할 수는 없었다. 아픈 건 아픈 것 그대로 남아 있었기 때문에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몸을 비틀거리며 일으켜 가만히 앉아있던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
그녀가 방금 했던 말을 부정하듯 보란 듯이 일어서서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고통에 무슨 말도 하지 못하고 숨만 몰아쉬었지만, 그냥 그대로 일어선 것 자체로 무언가 성과를 낸 거나 다름없었다.
그 증거로 그녀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일어선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으니까. 아까와는 다르게 내려다보는 사람이 바뀌었다. 그 사실에 그녀는 불쾌함을 느끼고 있는 것은 아닐까.
“꼭 그래야만 했어? 엎드려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마력은 없다. 그렇기에 마법은 쓸 수 없었다.
그래도 하나 능력이 있다고 한다면, 죽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기어스에는 그녀가 날 죽일 수 없도록 설정해놨으니 불리한 싸움은 아니었다.
언제나, 나는 주어진 상황에서 기회를 찾으려 했다.
마법도 체술도 싸움에 관해선 내가 밀린다. 그러니 조금은 반칙을 써도 될 것이다. 어차피 엎드려 있던, 지던 똑같았기에 나는 이 도박에 모든 것을 걸었다.
이 순간. 나는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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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한 풍경이 펼쳐지고, 익숙한 공기가 불어왔다.
한 합에 공격과 방어를 모두 담는 가장 기초적인 무도가 있었다.
방어와 동시에 공격하며, 공격과 동시에 방어했다. 그렇기에 무적이었다.
상대의 공격은 불허하며, 자신의 공격은 치명타로 꽂아 넣는 기술이 있었다.
궁극의 기술은 아니었지만, 사용자의 숙련도에 따라서 치명적인 일격을 넣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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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선가 봤었던 장면들이 필름처럼 지나간다.
영상 사이트에서 봤던 장면이었던 걸까, 아니면 영화나 드라마였을까. 그것은 잘 알 수는 없었지만 생생하게 지나가는 것이 꼭 데자뷔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모든 것이 천천히 보이기 시작했다.
“…!”
리타가 놀라는 표정을 짓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무도에 조예가 깊은 그녀의 주먹을 흘려냈기 때문에 당연한 반응이었다.
순간적으로 느낀 데자뷔 같은 감각에 내 감각이 모두 이상해진 것 같았다. 모든 것이 천천히 흐르는 것처럼 보이는 상황에서 물 흐르는 듯한 동작으로 그녀의 주먹을 밀어냈다.
그녀의 주먹을 맞받아치는 정신 나간 짓을 하면 안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팔을 작게 휘두름과 동시에 부드러운 선을 그리듯 몸을 움직였다.
갑자기 바뀐 내 몸짓에 리타는 경계심을 올리는 것 같았다.
“…갑자기 움직임이.”
팟, 하고 땅을 걷어차듯 점프하자 몸이 퉁 하고 튀어 올랐다.
신체 능력이 딱히 달라진 것은 없었지만 지금 이 순간 모든 힘을 기술로 커버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기술은 부족한 힘을 보강하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했던가. 지금 이 순간 한 합을 준비하며 몸을 움직였다.
그녀의 주먹을 빗겨나가게 옆으로 밀치며, 내질러진 발차기를 가볍게 밀어 몸의 균형을 무너뜨렸다.
콰직.
내 움직임에 당황한 리타는 비틀거리는 몸을 다른 발로 디디며 지탱했다.
“내가 이기면, 기어스를 하나 더 걸어.”
“내가 이기면?”
“네가 원하는 대로 기어스를 걸어.”
“좋아.”
지금이라면, 그녀에게서 승산이 있다고 판단했다.
누군가가 보면 자만에 빠져 오만한 선택을 했다고 비아냥을 들을 수는 있겠지.
마력이 없어서 오히려 평범하지 않은 자가, 모든 분야의 극에 달한 상대를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오만이고 자만이고 교만이었다.
그래도, 비약적으로 오른 집중력이 모든 세상의 흐름을 천천히 재생시키게 하고 있었다.
내 움직임조차도 느리게 보일 정도로 달아오른 집중력이 그녀의 움직임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았다.
“마법이라도 쓸 수 있었다면.”
그녀가 아쉬운 소리를 하며 주먹을 말아쥐는 게 보였지만, 이미 그녀가 맨손으로 왔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사람이 가진 악의가 가장 무섭다고 하던가. 나는 지금 이 순간이 가장 무서웠다.
내가 지면 무슨 꼴을 당할지 가늠이 가지 않았지만 좋은 꼴을 보지 못할 거라는 것쯤은 예상할 수 있었기에.
스텝을 밟고 오른쪽 발을 휘둘러 그녀의 발차기를 상쇄시키는 것과 동시에 그녀의 다리를 다시 아래로 내렸다.
그리고 땅에 발이 닿음과 동시에 왼손으로 그녀의 명치를 주먹으로 내질렀다.
“큭?!”
마법이 없어 자신의 몸에 방어 하나 치지 못한 그녀의 몸에 처음으로 타격이 들어갔다.
지금까지 봉술 하나 겨우 배워서 써먹었던 것과는 다르게 몸이 더 가볍게 움직이는 것 같았다.
리타가 신음을 흘릴 정도라면 은근 내가 몸 쓰는 것에 재능이 있는 것은 아닐까 자만에 가까운 생각을 하면서 몸을 틀어 다음 발차기를 준비했다.
하지만 상대도 상대인지라 이번에는 이쪽이 파해 당했다. 비틀거리는 몸의 위치를 제대로 잡기 위해 발을 디딜 곳을 살피고 있는 순간, 빈틈을 비집고 들어온 리타의 모습이 천천히 시야로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끄윽!”
역시 영화 같은 것을 제대로 재현할 수는 없었는지 완벽한 합일이고 자시고 공격을 허용해버렸다.
혀를 차며, 쓸모없어진 기억을 내팽개치고 바로 다음 기억을 뒤졌다.
어딘가에 쓸모있는 기억이 있을 거라며 빠르게 기억을 훑었다.
드넓은 도서관에서 내가 원하는 책을 찾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지만, 하지 않으면 또 고통스러운 일격을 허용하게 된다. 그렇게 생각한 순간 무언가가 연결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
봉술의 기초는 균형이다. 몸의 균형은 항상 일정해야 하며, 뭐에 영향을 받는다 하더라도 움직임이 덜해야 한다.
봉울 들어서 몸을 가누기 힘들었다는 불만을 품는 것은 금지였다.
그 무거움 마저, 내 몸처럼 균형을 잡을 수 있도록 휘두른다면 분명 아무리 무거운 봉이라 할지라도 자유자재로 원하는 대로 휘두를 수 있음을 기억해야 했다.
-
며칠 전, 봉술을 휘두르며 했던 생각 같은 게 떠올랐다.
가장 필요한 정보를 빠르게 빼 온 순간에 리타의 발차기가 눈앞을 스쳐 지나갔다. 정확히 말하자면 무릎을 가볍게 굽혀 피한 것이었다.
거의 무의식에 가까운 회피에 그녀는 경악한 표정을 지었지만, 지금은 머릿속을 헤집는 기억에 집중해야 할 때였다. 당장에 봉을 들고 있는 게 아니라서 봉술은 아니었지만, 몸의 균형을 맞춰야 한다는 점에서는 쓸만한 정보였다.
사실 용사들처럼 스테이터스를 보는 능력은 없지만 이런 능력을 받은 건 아닐까 생각하며 몸을 움직여 공격을 피했다.
S급 모험가라는 사람을 상대로 내가 이 정도로 싸울 수 있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아까랑은 또 움직임이…!”
그녀는 내 움직임을 계속해서 계산하려는 것처럼 내 움직임을 눈으로 좇고 있었지만, 죄다 헛수고였다.
본능에 맡긴 듯한 물 흐르는 움직임에 그녀가 날 계산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기억해내는 대로 움직임을 바꾸고 있었기 때문에 그에 맞는 움직임을 갖추기는 힘들 것이다.
멋진 무기도 없고, 화려한 마법도 없지만 지금 상태로는 그녀의 손만 피하면 됐다. 모든 의식을 그녀의 손에 뻗고 움직이면 어떻게든 되겠지.
“넌 대체.”
몸 어딘가를 잡으려고 뻗는 리타의 손을 피하고 쳐내기를 반복했다. 발차기가 날아올 때면 그에 맞서 발로 응수했다. 몇 번을 쳐내고, 몇 번을 걷어내고, 몇 번을 맞고서야 겨우 틈이 보였다.
얼떨결에 두 손을 모두 쳐낸 순간, 리타는 어이없다는 목소리로 내 눈을 바라보고 있었다.
사실 나도 잘 모르겠다. 그냥 데자뷔 같은 기분을 받은 이후로 잠깐 몸이 날아다니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그녀의 얼굴에 주먹을 내리쳤다.
쾅.
“허억, 허억.”
얼굴에 제대로 주먹을 맞은 그녀는 몸의 균형이 무너져 넘어지고 나는 그 기세를 놓치지 않고 그녀를 깔고 앉았다.
파운딩 자세로 그녀의 상체를 깔고 앉은 뒤 숨을 거칠게 몰아쉬었다.
너무 숨이 차서 어깨가 들썩거릴 정도로 숨을 들이 내쉬었고, 방금까지 현란하게 움직였던 것 같은 기분과는 다르게 지금은 몸이 엄청 무거웠다.
철근이라도 들고 있는 것처럼 무거워진 몸을 어떻게 움직일 수가 없어서 그녀를 붙잡아둔 채 한숨 돌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그녀도 마찬가지였다.
“그동안 실력을 숨겨온 거야?”
“…그럴, 리가.”
허탈한 표정으로 미소짓는 리타는 포기한 듯 몸에서 힘을 뺀 채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주먹으로 한 대 얻어맞은 탓에 코피가 흐르고 있는데 미소를 짓고 있으니 조금 섬뜩해 보였다.
잠깐의 기행이라 할지라도 나는 이겼고, 마지막까지 이길 기회를 놓쳐선 안 됐다. 그러니까 조금은 욕심을 부리기로 했다.
“복수하는 거야?”
“어.”
그녀가 했던 것처럼 나도 그녀의 목에 손을 가져다 댔다.
몇 번이고 망설이고, 몇 번이고 다짐하기를 반복하며 그녀와 눈을 마주했다. 침을 꿀꺽 삼키고, 그녀의 가냘픈 목에 손을 둘렀다.
덩치는 큰데, 목은 어찌 이리도 얇은지, 체격이 조금만 더 컸으면 나는 아무리 날아다녔어도 체격 차이로 졌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그나마 비슷한 정도라서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녀의 목소리에 덤덤히 대답하고는 그녀가 했던 대로 목을 두른 손에 힘을 주었다.
깍지를 끼고, 엄지손가락으로 기도를 누르듯 그녀의 목을 짓눌렀다. 내 몸에 의해 짓눌린 그녀는 팔을 바들바들 떨고 있었지만 받아들이려는 듯이 발버둥 치지 않고 눈을 감았다.
죽음을 받아들이는 건가요?
아까 그녀에게서 들었던 말이 들린 것 같았다.
정말 이대로 죽음을 받아들이려고 하는 건가. 싶기도 했다.
“뭐 하는, 거죠.”
하찮은 동정일 수도 있다. 아니면 쓸데없는 배려이기도 했다. 이게 그녀에게 기만이 될 거라는 것을 알면서도 손에서 힘을 뺐다.
그녀의 목을 짓누르던 손가락을 떼고서, 그냥 그녀의 목을 붙잡는 모양새만 되었다. 그러자 먼저 태클을 걸어온 것은 리타 쪽이었다.
무슨 말을 해줘야 그녀가 자신의 행동을 뒤돌아 봐줄까. 무슨 행동을 해줘야 그녀가 자신의 과오를 뉘우쳐 줄까. 나로서는 알 수 없었다.
어차피 살아난다는 생각에 저울에서 내 죽음이 가벼운 무게를 가져버린 것이었을까. 아니면, 그냥 하찮은 동정심이 나를 이끈 걸까. 나로서는, 알 수 없었다. 그냥 이 손을 놓고 그녀의 눈을 바라볼 뿐이었다.
“죽음을 받아들이는 건, 가요?”
그녀의 질문에 나는 띄엄띄엄 말해주었다. 내 말을 들은 그녀는 눈을 크게 뜨며 나를 바라보았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그녀가 자신이 했던 짓을 다시금 새기고 깨달으라는 의미에서 꺼낸 말이니 의도대로 생각해주었으면 좋겠다.
“성하….”
“기어스를, 다시 걸어. 내게 상해 하나 일으키지 않겠다고.”
“그럼, 나를 다시 데려가는 거야?”
“그럴 리가 없잖아.”
말을 제대로 잇지 못하고 나를 보고 있는 그녀의 멱살을 잡고 명령하듯 고했다.
동정심으로 그녀를 죽이지 않겠다고 해놓고, 그 동정심에 내게 괴로운 일이 생긴다면 그건 그녀의 문제가 아니라 나의 문제였다.
그렇기에 확실하게 그녀에게 주박을 걸어두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마법 하나 쓰지 못해서 기어스라는 마법도 만들지 못한다. 그녀도 지팡이가 없어 지금 당장은 만들 수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 그녀를 협박하듯이 멱살을 쥐고 말했다. 돌아가면 바로 기어스를 걸라고 조용히 소리쳤다.
그렇게 돌아온 질문은 어금니를 갈게 했다.
“…미안해. 내가 너무 추악해서.”
자기 자신을 상대로 추악하다고 말하는 사람은 드물다.
자신의 본성이 지저분하면 지저분할수록 자신이 추악하다고 말하는 사람은 더더욱 없다. 지금 그녀의 모습은 가장 솔직한 모습이라고 봐도 될 것이다.
물론 전부 믿는 것은 아니지만. 기어스 계약 내용에 상해 관련해서 쏙 빼먹은 거 보면 영악하기 짝이 없다. 그러니 그냥 이 순간 그 발언만 솔직한 것뿐이라 생각하고 넘어가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