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화 〉episode1. 열등감 (3)
어떻게 해야 할까. 계속해서 갈등만 되어간다. 지금도 겨우 숨어있는지라 그녀가 마음먹고 찾기 시작하면 난 멀리 가지 못하고 잡힐 거라는 걸 알고 있다.
그러니 여기서 협상을 봐야 할 것 같았다.
“…….”
하지만 그녀의 속내를 모른다. 그녀가 지금 이렇게 말하고 있다 해도 내가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태도가 바뀔지 모른다. 아까도 날 그렇게 한 번 죽였으니까.
이런 세계에 사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다 이상해지는 걸까. 아니면 법의 울타리가 엉성하게 되어있는 나라여서 그런 걸까.
모험가들은 각자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사기를 치고, 무언갈 훔치고, 사람을 죽이는 것까지 거리끼지 않는 걸 두 눈으로 본 적이 있었다. 그렇기에 잘 알지는 못하더라고 조금은 알고 있었다.
“성하? 여기 있지?”
마법으로 찾으려면 금방 찾을 텐데도 왜 저렇게 일부러 말을 걸어오는지 모르겠다. 패널티가 있는 건가?
모험가 중에서 탐색꾼의 비중이 적은 이유가 탐색 마법의 패널티라 하면 지금 이 순간이 그렇게 나쁜 상황은 아닌 것 같았다.
아직 더 고민해야 했고, 신중해야 했다. 손톱을 아득 깨물고 시간을 더 끌었다. 저벅거리는 그녀의 발걸음에 내 심장 소리가 너무 크게 들려왔다.
“성하.”
급하게 나오느라 간단한 무기 하나 없이 맨 손인 채로 그녀를 상대할 수 있을까.
아니,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녀가 너클을 끼면 고블린의 머리 정도는 거의 터뜨리듯 주먹을 휘두르니, 그녀가 맨손이라 하더라도 승산은 없었다.
심지어 지금 그녀가 여관에서 나올 때 무기를 챙겼는지 알지 못하는 상황이라 더 위험했다. 아마 내가 죽지 않을 거라는 걸 안 순간에 제대로 된 무장을 하고 나왔을 수 있으니 더 조심해야 했다.
“하아. 알았어. 내가 졌어. 기어스를 걸도록 할 테니 나와주겠어?”
그렇게 몇 번이고 그녀가 나를 찾을 때도, 나는 숨을 죽인 채 나가지 않았다.
지금도 심장이 뛰는 소리가 너무 크게 들려서 다른 소리가 제대로 들리지 않아 위험할 수도 있었지만, 다행히 상대 쪽에서 먼저 포기선언이 들려왔다.
근데 마력이 하나 없어서 마법 자체에 젬병인 나는 그녀가 말하는 기어스가 뭔지 알 수 없었다.
“기어스는 주박이야. 행동에 제약을 거는 계약이고. 어때. 이거면 조금 안심할 수 있지 않아? 지금 내가 솔직하게 말할 게. 그러니까 나와서 같이 이야기해보는 건 어떨까?”
계속해서 침묵을 지키자 그녀가 먼저 입을 열었다.
마법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는 나를 위해 친절히 설명해주는 것 같았다.
“일단 멀리 못 갔을 테니 들린다고 생각하고 말할게. 사실 지금 나오는 것도 무서울 거란 걸 알아. 내가 벌써 한 번 성하를 죽였으니까.”
그녀 역시 자신의 신체 능력에 관해 자신이 있는 건지 내가 멀리 가지 못했을 거란 것을 확신하고 말을 꺼냈다.
정답입니다. 지금도 당장 지릴 것 같아요. 아무리 부활한다지만 사람 하나 가볍게 죽이는 사람이랑 같이 있고 싶지도 않습니다.
“격이 다른 마법이 눈앞에 있던 사람에게서 발현된다는 게 너무 신기했고, 한편으로는 질투가 나서 그랬어. 네가 한낱 F급 용사라고 생각했어. 심지어 마력이 없어 모험가 카드 발급도 하지 못해서 F급 모험가도 되지 못한 너였기에 이 마음을 도저히 어떻게 할 수가 없었어. 정말로 미안해.”
그녀의 목소리는 어딘가 불안정한 듯이 들렸다. 떨리는 그녀의 목소리가 지금 진실을 말하고 있는지는 모른다. 사람의 목소리로 사실 여부를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이나 눈치 따위는 애초에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러니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녀의 말을 듣고 어디까지 타당한지, 진실 같은지, 아니면 거짓을 말하는 것 같은지 파악해야 했다.
모험가 카드 하나 발급받지 못해 그마저도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머저리가 갑자기 격이 다른 마법을 쓴다면 당연한 반응인 걸까.
자신보다 낮다고 생각했는데, 어느샌가 저만치 올라가 있다면 당연한 반응인 걸까.
도저히 알 수는 없었던지라 이야기를 더 들어보기로 하며, 침묵으로 다음 말을 재촉했다.
“그게 다야. 내 더럽고 하찮은 질투심이 널 죽였어. 그러니까 나랑 계약하자. 내가 당연히 을이야. 대신 하나만 부탁이 있어.”
그녀는 울부짖듯이 크게 소리치며 말했다. 그녀가 진심으로 속죄하는지는 알 도리가 없지만 그래도 진심으로 말하는 것 같았다.
시기와 질투를 이유로 대면 웬만해서는 거의 본심을 털어놓은 수준이니까.
그렇게 바로 그녀의 말을 받아들이기로 마음먹고서 손을 움찔 떨었을 때쯤, 그녀의 다음 말이 들려왔다.
“한 번씩 널 죽이게 해줘.”
습, 분명 교회에 있던 고위 성녀였던 걸로 아는데 상당히 또라이였다.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이 세계로 내던져져서 저런 사이코패스에게 찍힌 걸까.
벌써부터 그녀에게 한 번씩 죽을 생각을 하니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무조건 죽어달라는 건 아냐… 내가 도와주는 건 당연한 거고. 뭘, 뭘 원해? 나와서 이야기해봐. 성녀긴 해도, 돈? 지위? 몸? 뭐든 하나씩 들어줄 게.”
정말 사람을 죽이는 것에 필사적이었다.
그녀가 대체 무슨 삶을 살아왔는지 나는 모르지만, 살인에 쾌락을 느끼게 된 건지 말도 안 되는 조건까지 내걸고 있었다. 사실 좀 꼴리긴 한 데, 이거 내 좆 한 번 써보겠다고 모가지를 내놔야 하나 싶기도 했다.
돈도 좀 필요한데 생명수당으로 받아야 하나 싶기도 했고, 매관매직이라도 가능한 건지 지위까지 말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울퉁불퉁한 지면에서 나와 몸을 일으켜 세워 그녀를 응시했다. 그녀는 진심으로 말한 것이었는지 손에 빛나는 두루마리를 펼치고 있었다.
“말을 들을 기분이 생겼구나. 이게 기어스야.”
리타는 내게 다가오지 않은 채 빛나는 두루마리를 던졌다. 살포시 내 손으로 날아온 두루마리에는 내가 알지 못하는 언어들이 마구잡이로 쓰여 있었다.
하지만 마법의 효과 때문인지 모르는 문자들이 무슨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지 단박에 알 수 있었다. 아무래도 주박이라고 한 만큼 상대방에게 불리한 조건이 없도록, 서로가 공평하다고 생각하고 계약하기를 바라는 마법인 것 같았다.
누가 설계한 건진 몰라도 참 상냥한 사람이겠지.
“대가는 공정히 치르도록 할 게. 죽이게 해 주면 돼.”
계약은 어차피 내게 유리했다. 내가 아무것도 바라지 않으면 나를 죽일 수 없는 계약인 거니까.
가볍게 손가락을 움직여 사인하니 두루마리에서 빛이 발하고는 가루가 되어 흩어졌다. 더 이상 수정은 불가능하게 만들어버린다 이건가.
우우웅. 하고 무언가가 울리는 소리가 나고, 흩어진 두루마리 너머로 리타가 있었다.
“이걸로 안심할 수 있지?”
“아니, 그건 아니야.”
그녀가 내 목을 조를 때의 모습이 떠오른다. 어딘가 미소를 짓고 있었지.
그런 그녀에게 같은 잠자리를 허락할 수는 없었다.
“이번엔 어쩔 수 없지만, 다음에는 내게 다른 방을 줘.”
“…안 돼. 그럴 거면 돈을 따로 내. 돈이 필요한 거라면 나한테서 죽고 돈을 받아 가.”
말이 통하지 않았다.
애초에 나를 죽인 사람이랑 한 방에 있는 게 얼마나 껄끄러운데.
그런데도 그녀는 당당하게 안 된다고 단칼에 잘라 말했다.
이 불안감을 만들어 준 게 누군데 이런 것도 하나 해주지 않고 계약에 이행하도록 하라는 걸까.
당장에 목이 졸렸던 그 고통이, 얼마나 나를 괴롭게 하는지 그녀는 알기나 할까.
지금은 도저히 그녀가 짓는 표정에서 선의를 찾을 수 없게 되었다.
성녀라고 마음이 다 고운 게 아니라는 걸 앞에서 직접 보여주고 있었다.
“…됐어. 그냥 나 혼자 알아서 할게.”
“뭘 혼자 알아서 하게?”
모든 걸 포기하기로 하자.
모험이고 뭐고, 의뢰고 뭐고 간에 그냥 혼자서 다른 방법을 찾는 수밖에 없었다.
솔직히 모험가가 되어서 나를 도와줄 사람은 없겠지만, 리타가 그동안에 말했던 셋째 공주라면 그런 모험가 하나 정도는 붙여줄 수는 있지 않을까.
아니, 내가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거지.
남에게 손을 벌리지 않기로 했으면서 바로 다른 생각으로 새다니 쪽팔린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이대로 리타를 대신할 사람을 구하던가 그러지 못하면 처음에 생각했던 대로 다른 시설에서 일자리를 구하거나 아무 가게에 들어가서 종업원으로 일하는 방법도 있으니 마냥 나쁜 일은 아닐 것이다.
다른 용사들처럼 마왕을 잡을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이런 정도라면 괜찮을지도 모른다.
“어차피 2인 파티였으니까 간단하게 말할게. 따로 행동하자.”
“…그럴 수는 없어.”
“왜?”
“널 놓칠 수는 없으니까.”
그녀가 애써 모른 척을 하기에 입으로 지금의 본심을 말했다.
어차피 계약에서 파티를 지속해야 한다는 조항은 없었으니까 이대로 헤어지면 내 알 바는 아니었다.
나는 위협을 덜고, 상대는 귀찮음을 던다. 그뿐이었다. 그런데, 그녀는 쉽게 날 놔주지 않았다.
왜 이러는 거지. 라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는 그녀는 나지막이 내게 고했다.
뭐, 부활하는 게 최상위 마법이라 그런 건진 몰라도 날 곱게 놓아줄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잘 생각해. 기어스에는 죽이는 것만 적었어. 상해는 포함되지 않아.”
“협박하는 거야?”
“도망갈 수 없다는 걸 말하는 거야. 나 모르게 도망가도 멀리는 못 가. 내 이름을 걸고 널 수배할 테니까.”
대놓고 협박하는 그녀의 모습이 대담해 보였다.
어떻게 저렇게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지, 배경을 보자면 이딴 세계라서 그런 건가. 라고밖에 생각이 들지 않는다.
대부분 중세 시대면 치안부터 시작해서 법은 고위직 사람들 위주로 돌아가니까. 눈이 조금 닿지 않는 곳에서는 살인, 절도, 강간, 방화, 사기 등이 판을 치는 것 아닐까.
당장에 욕심에 눈이 멀어 의뢰 보상금이나 전리품 배분 때 살인이 일어나기도 하는 세상이니, 세간에 지위를 가지고 있는 그녀가 당당한 것도 이해가 갔다.
“파티를 나랑 계속하는 대신, 네가 내게 뭔갈 요구하지 않는 한은 죽이지 않을 게.”
뭐 당연한 말을 저렇게 양보하듯 말하는지는 모르겠다. 사람 죽이는 데 거리낌이 없어서 그런지 약간 정신도 이상한 것 같았다.
사실 제일 또라이를 붙여준 건 아닐까 싶을 정도로 기분이 좋지 않았다.
계속 죽인다는 소릴 해서 그런지 몰라도 아까 졸려왔던 목을 무심코 손으로 감쌌다.
뇌리에 깊게 박힌 그녀의 미소가 그렇게도 섬뜩해서 나는 어찌해야 할지 고민했다.
대체 어떻게 돼먹은 머리인지 저런 사람 상대하는 게 가장 힘들다.
“근데 왜 그렇게까지 죽이려는 거야?”
궁리하고 궁리하던 끝에 가장 궁금했던 질문을 던졌다.
사실 이게 역린인 것은 아닐까. 하는 마음도 있었다. 처음 죽였던 것은 시기와 질투였다고 해도, 그게 계속 죽이려고 하는 이유는 되지 않으니까 더욱 궁금했다.
차라리 해소해줄 수 있는 문제라면 그냥 해소하고 제 갈 길 가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에, 해소해줄 수 있는 거라면 대충 풀어주고 헤어지는 게 좋다고 판단했다.
이대로 그녀와 같이 다니는 건 사양이었다.
“이유? 내 열등감 해소야.”
“뭐?”
“너보다 내가 잘난 것 하나 정도 있다는 기분을 느끼기 위해서지.”
뭔 개소리야. 라고 대답하고 싶은 순간에, 리타가 가까이 붙었다.
방심했다. 상대가 아무리 나를 죽이지 못하는 주박에 묶여있다곤 해도, 상해에 대해선 아무것도 적혀있지 않았다.
“마법은 네가 최고야. 너 같은 경지에 이른 사람을 본 적이 없어. 아마 네가 이 세계제일일걸? 나라의 고위 귀족이나 왕족이 알면 네 피를 마시겠다고 설칠지도 몰라.”
갑작스러운 칭찬에도 나는 경계를 풀지 않았다.
그녀는 날 마주 본 채로 내 어깨를 두르고 있었기에 더 긴장하고 있었다.
뭔 힘이 이렇게 센지 어깨가 짓눌리는 기분이었다.
“그런데, 그런 네가 내게 기는 꼴을 보면 나는 참을 수가 없어서 말이지.”
얼굴을 들이민 리타가 귀에 속삭이며 말했다.
바람이 섞인듯한 그녀의 목소리에 섬뜩함이 느껴져서 온몸에 오한이 들었다.
도S 라는 건가. 아니, 조금 더 다른 차원의 이야기인가. 가늠하기 어려워 미묘한 표정을 지을 때 복부에 강한 통증이 전해졌다.
의식을 잃을 통증에 뭘 맞았나 싶어 시선을 돌리니 그녀의 한쪽 무릎이 많이 올라와 있었다.
젠장. 안 그래도 체격도 비슷한데, 저걸 그대로 맞으면 당연히 정신이 혼미해지지.
“성하는 내가 성녀 같지 않다고 생각하겠지.”
“끄윽… 끅.”
고통이 너무 심해 배를 끌어안고 콩벌레처럼 몸을 둥글게 말아 지면에 엎드렸다.
몸부림치고 있는 나를 내려다보던 그녀가 다리를 쭈그려 앉았는지 목소리가 가까워졌다.
너무 아파. 괴로워. 왜 나만 이런 미친 여자를 만나는 거야.
아니, 내가 죽지 않는 몸을 가져서 그런 건가? 도저히 알 수 없는 일들로 가득했다.
일반 용사가 되었어도 이딴 능력을 가졌다면 같은 꼴이 되어버리는 걸까.
“나도 그렇게 생각해. 나는 신앙심이 아니라 출세 때문에 이 길을 선택했으니까.”
그녀는 그대로 주먹을 들어 올렸다.
엎드려서 겨우 고개를 든 나는 그 광경을 지켜볼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