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화 〉episode1. 열등감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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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타는 금방 잠든 성하와 다르게 잠들 수 없었다.
그녀는 그의 첫 만남을 떠올리며 성하가 잠든 모습을 힐끔 바라보았다.
낙오자라고, 휩쓸린 일반인이라고 하면서 떠넘겨진 성하를 교회에서 처음 마주했었다. 왕성에서 일어난 실수를 대충 교회에서 잘 커버해달라고 하는 것은 있던 일이었기에 그러려니 했었다.
성녀로서, 교회의 S급 인재 중 하나로서 자긍심을 가졌던 그녀에게 주어진 하찮은 잡일 중 하나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셋째 공주님이 그를 불쌍히 여긴 탓에, 어여삐 보살피란 뜻에 거스를 수는 없었기에 그를 도왔다.
모험가 카드 하나 만들 수 없어서 쩔쩔매는 모습에 정말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지천에 깔린 F급 모험가보다 더 못한 사람이 용사들 사이에서 어떻게 끌려온 건지 알 수도 없었다.
“하아.”
그녀는 그렇게 생각해왔던 자신의 그릇됨을 뉘우쳤다.
특이할 정도로 평범해서 마력이 아예 없다고 생각했던 그가, 가장 특이할 정도로 기이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용사와는 비견되지 못한 이상한 힘이 그를 감싸고 있었다.
어느 수준에 이르면 상대를 꿰뚫어 볼 힘 정도는, S급 성직자, 모험가를 겸하는 그녀에게는 당연하게 있는 능력이었다.
하지만 그녀가 그를 아무리 바라본다 한들, 그에게는 아무런 이변이 보이지 않았다.
“이상하네, 다른 용사님들은 보이는데.”
다른 용사들에게는 통하는 것들이, 왜 이 사람에게만 통하지 않는 건지 의문을 품은 그녀는 성하에게 다가가 더 가까이서 쳐다보았다.
마법사협회장조차 다다르지 못하는 경지라 마법의 마를 아는 사람이라면 거의 포기하듯 연구하는데, 눈앞에 그 성공의 존재가 있다는 사실에 그녀는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눈을 감으면 머리가 으깨진 사람의 모습이 복구되어가는 것이 보였다.
마법이란 본디 사용하고자 하는 사용자의 마력에 마나가 응하는 법이고,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를 벗어나 완전히 다른 곳에서 발동하는 것을 눈으로 마주했다.
성하가 쓴 것은 의식적으로 사용한 것도 아니고, 무의식적으로 발동시킨 것도 아니었다. 그렇기에 기이했다.
마치 세계가 그를 살리려는 것처럼 마나가 움직였고, 몸을 수복시켰다. 그녀의 뇌리에는 아직도 으깨진 그의 머리가 수복되는 모습이 생생하게 남아 있었다.
“이래서는 S급 명함도 내밀지 못하겠네.”
성하는 자신이 부활한 이후로 그나마 리타와 같은 선에 올라섰다고 생각하는 반면에, 리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회복마법을 쓰기 위해 의술을 터득하고, 마법을 배워나갔다. 선천적인 마력은 충분했기에 그녀에게 문제 될 것은 없었다. 그렇게 회복마법을 배우는 와중에 체술을 배우고, 다른 공격 마법도 배우면서 많은 분야에 손을 뻗었다.
그리고 성하는 그런 그녀의 노력을 부수듯이 보란 듯이 되살아났다.
완전히 격이 다른 마법이었기에 그녀에겐 시기할 틈도, 질투할 틈도 주지 않고 그대로 허탈한 웃음만 짓게 했다.
“성하.”
나지막이 그의 이름을 읊은 리타는 성하를 응시했다.
“이건 당신이 자초한 일이야.”
그녀가 모든 분야에 손을 뻗고, S급 모험가가 되고, 고위급 성직자가 되고, 공주와 연락을 주고받을 정도로 강해지려 한 이유는 하나였다.
우월감.
오로지 그것만이 그녀의 원동력이었다.
선천적인 재능이 있던 그녀는, 절대로 나태하지 않았다. 노력으로 재능을 뛰어넘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머저리들을 제대로 짓누르기 위해 재능을 가진 그대로 노력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그런데 성하가 그녀의 재능과 노력을 비웃는 듯이, 보란 듯이 되살아난 이후로 그녀의 자존심에는 스크래치 났다. 가릴 수 없을 만큼 커다란 상처가 났다.
“그래도, 성하를 이기는 분야는 남아 있어서 다행이야. 이것도 졌으면… 미쳐버렸을지도 몰라.”
성하가 덮고 있던 이불을 걷어낸 그녀는 입꼬리를 올리고 그의 배 위에 올라탄 채로 손을 목에 가져다 댔다.
체술에 관련해선 그가 아직 배우는 중인 데다가 마력으로 몸을 강화하는 마법 또한 배울 수 없어서 자신이 이길 수 있는 유일한 분야라고 생각한 리타는 숨을 몰아쉬며 손에 힘을 쥐었다.
창문 너머로 비치는 달빛이 그녀의 아름다운 머리카락을 빛냈다.
“끅.”
새근새근 자고 있던 성하는 갑자기 숨이 막히자 괴로운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어떻게든 숨을 쉬려고 코와 입으로 괴상한 소리를 내면서 몸을 움찔거렸다.
버둥거리는 상반신과 팔을 한 번에 깔아뭉갠 그녀 탓에 성하는 다리만 버둥거릴 뿐이었다.
“끄으으.”
괴로워하는 성하의 모습을 본 리타의 입꼬리는 점점 올라가고 있었다.
자신이 이런 대단한 사람을 이길 수 있다는 감정에 흥분한 나머지 그의 목을 붙잡은 손에 힘을 가했다.
“켁. 끗.”
성하는 그렇게 괴로워하며 눈을 떴다.
*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목이 졸리는 것 같은 감각에 목을 조르는 무언가를 떼어내려고 몸부림쳐봤지만, 무언가에 짓눌린 것 같은 감각에 팔이 움직여지지 않았다.
설마하니 능력에 따른 패널티인가 싶어 눈을 질끈 감고 괴로움을 버티려 이를 까득 깨물었다.
부활하는 게 무제한인지, 아니면 횟수가 제한이 있는 건지, 그게 아니라면 특정 조건을 만족해야 하는 건지 모르는 상태라 섣불리 죽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는데 패널티로 죽는 건가.
설마 죽음에서 벗어나는 게 아니라 그냥 죽는 시간을 미루는 거였나. 생각하며 질끈 감은 눈을 겨우 뜨자 눈앞에는 미소짓고 있는 리타의 얼굴이 보였다.
“켁.”
패널티로 죽어가는 게 아니라, 그녀가 내 목을 조르고 있어서 숨이 안 쉬어지는 거였구나.
하지만 그녀가 왜 나를 죽이는 건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이대로 몇 번 죽여서 아예 사람이 부활했다는 전례를 없애려는 건가. 라는 생각도 들었다.
어째서. 라고 묻고 싶었지만, 그녀의 손이 워낙 세서 무언가를 말할 틈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성하.”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꽤 오랫동안 숨이 막힌 탓에 뇌에 산소가 부족해져서 멍해지는 기분에, 그녀의 목소리 또한 멀리서 들리는 것 같았다.
바들바들 떠는 그녀의 손이 목에 그대로 전해져왔다.
손이 상체와 함께 깔린 탓에 뭘 해보지도 못하고 이렇게 죽는 건가 싶어 눈을 감았다.
“죽음을 받아들이는 건가요?”
그녀의 목소리가 섬뜩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 말에 태클걸고 싶었다.
그럴 리가 없었으니까. 받아들일 리 없었다. 필사적으로 살아서, 원래 세계로 돌아가고 싶을 뿐이었다.
이번에도 죽으면 또 살아날 거라는 보장이 없어서 두려웠다. 하지만 지금이 너무 괴로워서, 조금이라도 고통을 덜기 위해 눈을 감았을 뿐이었다.
내가 부활한 모습에, 시기했을 수도 있고, 질투했을지도 모르는 그녀에게 뭘 더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 사실 말할 수 있을 것 같지도 않았다.
내가 하는 위로는 기만이 될 것이고, 내가 하는 응원도 기만이 될 것이며, 내가 하는 격려조차 기만이 될 것이다.
나로선 알 수 없는 마법의 세계에서, 내가 섣불리 말을 해줄 수 있는 것이 없으니 참 답답했다.
그리고 숨이 쉬어지지 않는 것 또한 답답했다.
“그건 아닌가 보네요.”
1초가 영겁의 시간처럼 느껴졌다. 눈을 감아도 괴로움이, 고통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서 몸부림을 치게 되고, 발버둥을 치게 된다. 하지만 리타의 힘이 원체 센지라 그녀를 뿌리치고 나올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당장에 내 목을 붙잡은 그녀의 두 손이 돌처럼 단단하게 느껴질 정도니까.
“하반신이 딱딱해졌어요.”
“끅.”
그녀의 말에 발버둥을 쳐서 부정했다고 생각했는데, 그녀의 의식은 다른 곳을 향하고 있었다.
너무 가볍게 입은 그녀의 모습에 그녀의 바디라인이 달빛에 그림자 져서 곡선을 그리는 것이 보였다.
애초에 발기한 것은 그녀의 몸을 봐서가 아니라 계속 목이 졸리는 바람에 생존 본능이랍시고 혼자 서버린 건데 많이 억울했다.
그녀의 과감하게 드러난 몸 보면 당연히 흥분하고 발기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건 일반적인 상황에서, 아니 약간 분위기가 있는 상황에서나 그런거고 지금은 그냥 생존 본능 때문에 발기하고 있는 거였다.
“폐가 좋으신가 봐요. 오래 버티시네요. 일반인은 40초 정도가 평균이랬는데.”
목이 졸려서 당장에 죽을 것 같은데 몇 초인지 내가 알 턱이 없지만, 그녀가 친절하게 목을 조른 이후로 40초는 넘겼다고 친절하게 알려주었다.
“잘자요.”
마지막으로 시야가 흐려지고, 자꾸 눈이 위로 올라갈 것 같았다. 그렇게 의식이 멀어질 때쯤, 귓가에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헉.”
눈을 떴을 땐, 목을 조르던 손이 풀려 있었다. 겨우 숨을 내쉴 수 있게 되니 폐가 가쁘게 움직였다.
대체 무슨 일인지, 무슨 상황인지 살피기 위해 몸을 들어 올렸다.
죽는다는 고통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기에 이 이상은 하지 말라고 말을 해야. 아니 내가 미쳤는지 대화할 생각을 하고 있었다.
도망칠 방안을 떠올리며 리타를 찾아 시선을 돌렸다.
얼마나 세게 쥐었는지 아직도 목을 졸리는 것 같은 감각에 목을 보호하듯 손으로 감쌌다.
그렇게 몇 번을 둘러봐도 방 안에 리타는 없었다. 좁은 1인실에 그녀와 내가 누워있던 곳 말고는 나보다 큰 그녀가 있을 곳은 없어 보였다.
애초에 내 키가 174밖에 안 되는데, 176센티는 되어 보이는 그녀가 나를 죽이려고 덮치면 공포나 다름없었다.
도주로는 창문하고, 문. 하지만 문은 위험했다. 잠시 나갔다 돌아오는 거라면 그녀와 마주칠 가능성이 높을 것 같았기 때문에 결국 창문으로 도망쳐야 한다고 판단했다.
두 번째 죽음을 겪으니 3층 높이 정도는 뛰어내릴 수 있다. 생각하고 심호흡을 했다.
“후,”
“어, 도망치는 거야?”
창문에 다리를 넘기고 있을 때쯤, 물을 가져온 그녀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또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빠르게 내려가려고 했다. 하지만 리타는 나를 막을 생각이 없는지 그 자리에 서서 물을 한쪽에 내려놓았다.
“나한테 잡히면, 어떻게 될지 몰라?”
그녀가 왜 가만히 있는지 알 수 있었다.
나는 그녀에게서 도망갈 수 없었다. 당장에 이 방에서 도망갈 수는 있지만, 부러진 다리가 낫기도 전에 쫓아올 수도 있었고, 다리가 부러지지 않더라도 신체 능력이 월등한 그녀에게서 얼마 도망칠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근데 아까 날 이유 없이 한 번 죽였잖아.
그렇다면 두려움에도 과감하게 한 번 내질러 보는 게 낫지 않을까. 하고 눈을 감고 심호흡을 했다.
여관에 들어오기 전까지, 어제까지, 분명히 상냥했던 그녀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살벌한 그녀의 모습만이 눈에 새겨졌다.
“어. 어?”
각오를 다시 한번 다지고, 착지하자마자 도망갈 수 있게 최대한 지면과 가까이 내려간 후에 창문을 붙잡던 손을 놓았다. 리타는 자신이 한 협박에 내가 돌아갈 줄 알았는지 얼빠진 소리를 내면서 가만히 있을 뿐이었다.
“돼, 됐다!”
땅에 발을 디딘 순간. 다리에 저릿저릿한 감각이 전해져 왔다.
리타가 바로 아래를 향했으면 몰라도, 그녀가 얼 타고 있었으니, 지금 이 순간 최대한 멀리 도망쳐서 숨어야 했다.
왜 갑자기 그녀가 이런 짓을 하는 건지 제대로 확인할 방법은 없었지만, 이 이상 그녀와 제대로 된 대화를 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겨우 도움이 될 수 있을까 싶어 조금 설렜더니 금방 이 꼴이 나버렸다.
그러고 보니, 내 무기가 어디 있더라. 여관에 돌아갈 때 깜빡하고 놓고 온 것 같았는데.
마력이 없어 날붙이를 보호하는 마법을 쓰지 못해 결국 단단한 봉을 쓰고 다녔는데, 그걸 놓고 오다니 참 멍청한 짓을 했다.
“성하. 어디 있어? 우리 말로 하자.”
여기 지형이 그나마 울퉁불퉁해서 숨기는 쉬웠는데, 멀리 가지 못한 탓에 벌써 리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제와서 말로 하자고 하면 내가 믿어줄 리가 있나.
“미안해. 솔직하게 다 이야기할 테니까. 왜 졸랐는지 해명할 테니까 숨지 말고 나와봐.”
그녀가 애처로운 목소리로 말하는 데, 솔직히 나가서 그녀의 말을 듣고는 싶었다.
왜 그랬는지 너무 궁금해 미칠 지경이었다. 근데 어렴풋이 알 것 같기도 했다.
알 것 같은데 당사자에게 확실하게 듣는 걸 좋아하는 게 참 중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