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68화 > (168/169)

< 168화 >

자승자박이라는 단어가 이보다 더 어울릴 수 있겠는가.

"아악, 그만, 그만해!"

방바닥에 얼굴을 문대며 버둥거리는 추한 모습.

마력으로 만든 분신이라 피가 튀는 일은 없었다.

엄살 부리는 걸 보고 지릴까 봐 걱정했는데 다행이야.

하기야 섹스용 분신에 피, 땀, 오줌 등 배변물을 구현 할 이유는 없지.

그리고 그 안일함 때문에 칼에 찔리는 고통이 신선하게 전달되는 거고.

'까면 깔수록 뭐가 나오는 양파 같은 병신이네, 이거.'

나는 처음 마력으로 분신을 만들 때   간단한 기능을 먼저 넣었다.

일정량의 충격이 전해지면 분신이 망가지게 만든 것이다.

마력을 다루는 능력이 미숙했기 때문이라는 이유도 있지만

초능력과 마법이 있는 세상에 홀로 동떨어진 불안감도 있었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질 줄 알고 안전 장치를 안 만들어 둬.

하다못해 숨어 살던 지하실에도 환풍구로 개구멍을 만들어 놨는데.

그러나 아무 생각 없이 분신으로 놀러 다니던 추방당한 뱀의 심장은

고작해야 흑마법사와 주술사가 합작으로 만든 단검에 의해

분신에서 올라가는 감각을 끊지도 못하고 딱 붙잡혀 버렸다.

"으음, 그러면 어떻게 할까요? 원하시는 게 있나요?"

우웅-

기묘한 소리를 내며 새파란 공간이 열린다.

단검을 구하며 마법사들에게서 구매했는지

겉으로만 봐도 흉흉한 도구가 툭툭 떨어져 나온다.

구불구불하게 휘어진 송곳부터

톱날이 좌우로 삐뚤빼뚤 나 있는 톱

돈가스 망치처럼 면이 울퉁불퉁한 망치까지.

'저게 마법사가 파는 도구 맞아?'

클럽과 유흥의 성좌가 있으니까

고문과 도살의 성좌도 있나 싶을 정도의 물건.

부검을 하는 마법사들이 쓰는 도구여서 그런지

겉 모습만 봐도 피 냄새가 물씬 풍겨 온다.

제 얼굴 옆에 툭툭 나열되는 도구를 보더니

추방당한 뱀의 심장이 펄떡펄떡 몸을 움직인다.

그러더니 그 움직임으로 칼날에 깊게 베여 다시 웅크리는 게 아닌가.

"하아, 알아서 움직여 주니까 더 좋네요. 그래서, 어떻게 할 까요?"

그 어처구니없는 모습에 금발남이 허, 하고 마른 웃음을 짓는다.

이런 병신한테 유일한 가족이 죽었으니 얼마나 어처구니없겠어.

내가 슬럼가에서의 추격전을 상상하고

그 끝에 있을 근원 대결을 걱정했던 것처럼

이 남자도 나와 비슷한 상상하지 않았을까.

일개 화신의 몸으로 진짜 성좌를 죽이기 위한 복수극.

그 끝은 미남계를 통한 칼빵으로 러브호텔 섹스룸에서 끝나다.

끈적한 음료를 먹고 양치를 못하는 것처럼 찝찝하겠지.

"마력을 흡수하는 속도를 일정하게 유지해야 해. 네 마음대로 해도 되지만 분신의 모습은 유지시켜."

"그게 무슨 뜻이죠?"

"피부를 벗기던 내장을 저미던 상관없으니까 분신의 팔다리를 잘라 내거나 목을 뜯어내지 말라고."

"아, 알겠습니다."

해맑게 웃는 금발남이 품 안에서 면도칼을 꺼낼 때

나는 그 장면을 무시하고 마력 흡수에 집중했다.

상황이 조금 이상하게 꼬였지만 원래의 계획은 흡수였으니까.

화신과 분신을 통로 삼아 본체에게 위해를 가하는 것.

그 통로 삼는 행위가 가능한 건 몽마 뿐이라서

불사르는 폭군이 내게 지식을 전해 주지 않았던가.

내 능력이 미숙해서 화신을 사용할 순 없었지만

이렇게 주술적인 단검으로 강제 고정된 분신이 있다면

성역에서 죽은 듯 누워 있을 본체의 마력을 뽑아올 수 있었다.

간접적으로 마력을 흡수하는 행위는 익숙하지 않다.

때문에 흡수량도 적고 빨아들이는 속도도 매우 느리지만-

"웃어, 쌍년아. 밤은 기니까."

"――!―――!!"

무인 호텔 숙박을 긁어 버린 덕분에 시간은 많았다.

이 또한 자승자박이라고 봐야 하나.

나는 고문을 해 본 적 없다.

물론 고문 경험이 있는 사람이 적은 게 맞지만,

내가 살던 세상은 식량과 식수가 고갈된 아포칼립스.

거기서는 고문조차 일종의 사치가 되었으니까.

죽이기 전에 너덜너덜하게 찢어 발기거나

산 채로 뮤턴트에게 던져 주는 행위를 제외하면

고문이라는 걸 정상적으로 행할 자원조차 없었다.

피부를 벗기고 이빨을 뽑고 팔다리를 저민다?

과다출혈을 막고 오랫동안 살려 둘 의약품이 있겠는가.

물이 없어서 지하에 핀 이끼를 씹어 먹는 게 일상이었는데.

끽해 봐야 피부에 상처를 잔뜩 내서 속살이 드러나게 하고

오염된 돌조각을 노출된 피부에 벅벅 문대는 게 전부.

상처에 뿌릴 소금이나 고춧가루조차 없는 세상이니까.

"아, 근육이 안 보이니까 좀 어렵네요."

"흐, 흐으, 흐-"

비명조차 되지 못할 신음.

축 늘어진 모습에 금발남이 쳇, 하고 혀를 찬다.

등짝에 박아넣은 단검을 손잡이 삼아

등판 부분을 돼지고기 썰듯 열심히 썬 결과였다.

피부를 벗기려 해도 피부가 없고

근육을 가르려 해도 근육이 없으니

결국 얇게 썰던 깊게 찌르던

몸통을 계속 썰 수밖에 없었으니까.

그 모습을 보자 이제야 본능적인 불안감이 사라진다.

계속되는 고통에 정신이 혼미해졌고

마력은 거의 10% 미만 남은 상황.

사람으로 치면 과다출혈로 실혈사 직전인건데

지금 보다 근원에 침입하기 좋은 상황이 있을까.

"마무리를 지어야 할 테니, 지금처럼만 해. 더 과하게 다루지 말고."

"네, 생각보다 할 게 없네요."

미친놈, 저게 사람 등판에 못질을 하고 나서 지껄일 말인가.

망치로 으깨고 불에 달군 못을 박는 꼴을 보니

이 일이 끝나면 이놈과는 만나는 일이 없길 바란다.

그렇게 생각하며 마력을 움직인다.

나를 원망하는 듯 흐리멍덩해진 눈동자를 보며.

세상이 빙글 돈다.

참으로 좋은 징조다.

엘리스의 근원으로 들어갈 땐

꽉 끼는 고무 튜브에 들어간 것처럼

어마어마한 압박감이 느껴지지 않았던가?

"와 지랄났네."

고통이 문제였을까, 아니면 마력 착취 때문일까.

고풍스럽게 꾸며져 있던 집무실이 개판으로 박살이 나 있다.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반으로 쪼개진 책상.

격파 시범이라도 보인 것처럼 똑 잘린 책상이

옆으로 넘어진 책장에 깔려 절반만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70% 이상 찢겨 사라진 양탄자와 구멍 난 바닥.

넘어진 책장과 거기에 깔린 박살 난 책상.

깨진 전등과 금 간 천장과 사라진 창문

거기에 바닥을 어지럽히는 잉크와 만년필, 책들까지.

지진이 났거나 포탄 한 발 처맞은 것 같은 모양새.

그 지저분한 마룻바닥 위에

몸을 웅크린 채 누워 있는 여자.

당연하게도 추방당한 뱀의 심장이었다.

"너, 너어어-"

추위에 떠는 사람처럼 양팔로 자신을 감싸 안은 모습.

지저분한 바닥 위에서 처량하게 널브러진 모습은

모르는 사람이 보면 동정심을 느낄 정도로 초라했다.

그러니까, 모르는 사람이 보면.

"뭘 꼴아, 씨팔년이."

기왕이면 반항을 못 하는 게 더 좋겠지.

그대로 발을 쭉 뻗어 턱주가리에 싸커킥을 꽃는다.

움직이지도 못하는 게 어디서 눈깔을 그따구로 떠.

의식을 잃고 축 늘어진 여체.

그 위에 털썩 주저앉는다.

호리호리 한 편이지만 꽤 키가 큰 성인 남성의 몸이다.

그 무게가 배려 없이 퍽 앉아버리자 호흡이 끊겼는지

케헥 거리는 소리가 아래에서 들려오지만 의식은 돌아오지 않았나 보다.

그대로 머리통에 손을 올리고 마력을 움직인다.

근원의 싸움은 몽마라는 종족만이 가진 특유의 행위다.

아직 나를 원망하며 노려보는 걸 봐선 근원은 멀쩡할지도 모르니까,

무턱대고 근원으로 들어가기 전, 몇 가지를 알아내기 위해서.

그래, 근원을 비롯해 영혼까지 완벽하게 망가트리기 위해서.

어두컴컴한 공장.

사람보다 커다란 톱니바퀴가 빙글 돈다.

치이익- 하고 쉴 새 없이 움직이는 기계들.

그리고 그 컨테이너 벨트 위에서

기괴하게 서 있는 인간형 안드로이드들.

"별걸 다 무서워한다, 그치?"

"그, 만둬어-"

그것이 바로 추방당한 뱀의 심장이 두려워하는 것이었다.

마력이 고갈되고 정신력이 바닥나면

성좌니 몽마니 해도 이리 적나라하게 드러나는구나.

무의식 속에서 그녀가 머리를 감싸 쥐고 웅크린다.

치익 치익- 규칙적인 스팀 소리.

컨테이너 벨트가 움직일 때마다

사람 모양의 뼈대에 살이 붙는다.

엔진이 붙고 인공 장기가 붙고

안구형 카메라가 붙고 인조 피부가 붙는다.

칙칙칙칙- 바삐 움직이는 공장.

그리고 그 안에서 만들어지는 수십, 수 백 개의 안드로이드.

정확히 말하자면, 추방당한 뱀의 심장과 똑같이 생긴 로봇들.

"참, 곱게 자라긴 했다. 영혼 깊숙하게 새겨진 공포가 고작 이런 거라니."

"저리 치워!"

"인형 공포증이랑은 조금 다른 거 같은데… 바꿔치기 당할까 봐 무서웠어?"

그것들이 그녀의 공포였다.

어느 세상에나 존재하던 싸구려 괴담.

인간과 구분할 수 없는 로봇이 등장해서

몇몇 사람들은 정부에게 '처분'당한 다음

똑같이 생긴 로봇이 대체하고 있더라-

도플갱어 괴담의 SF 버전이라 보면 좋으려나.

"나는, 나는 특별해! 나는 성좌라고! 저리 꺼져!"

자기 얼굴을 본딴 수 백체의 로봇을 보자 격렬한 반응이 뒤따른다.

머리를 쥐어뜯으며 울부짖더니 그대로 거북이처럼 고개를 바닥에 처박았다.

그녀는 몽마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두려움에 휘둘리고 있는 거다.

물살에 떠밀리느라 헤엄치지 못하고 익사한 물고기,

바람에 밀려 날지 못해 낙사한 새와 비슷한 꼴이다.

몽마를 단순히 섹스퀸 최면술 마스터라고 생각하니까 저 꼴이지.

그녀는 능력에 비해 거대한 자존감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사실은 자신이 보잘 것 없다는 사실 또한 알고 있다.

그 사실을 외면하기 위해 사용한 것이 성좌와 몽마의 능력.

몽마도 성좌도 자신이 '특별' 하다고 스스로 되뇌이기 위해 사용된 것이다.

특별한 능력이 없으면 자신 또한 로봇으로 대체될지도 모른다는 망상증 때문에.

그러니까 능력의 발전도 없고 마력을 다루는 법도 모르는 거지.

나는 몽마 겸 성좌니까 특별해.

그러니까 내가 명령하면 남들이 명령을 듣는다.

그러니까 나는 로봇으로 바꿔치기 당할 일 없어!

뭐 그런 생각을 했으려나.

그래도 그 덕분에 어떻게 처리할지 알게 되어서 다행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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