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67화 > (167/169)

< 167화 >

추방당한 뱀의 심장의 곁에 쓰윽 달라 붙는다.

당연히 이뻐서, 좋아서 붙는 게 아니라 마력 갈취를 위해.

이 멍청한 여자는 제 마력이 실시간으로 빨려 나가도

최면술이나 분신 유지에 사용되는 줄 아나보다.

남자를 꼬시지 못한 패배자들의 시기 어린 시선이나

나를 질투하는 다른 남자들의 시선에 헤벌쭉 웃고 있을 뿐이니까.

쉽게 말해서, 이 새끼는 위기 감각이 없는 것 같았다.

"머리카락이 되게 예쁘네, 혼혈? 아니면 유학생?"

"유학생이요…. 궁금해서 놀러 왔어요."

그러니까 이런 어색한 거짓말도 믿고 넘기는 거지.

쫓기는 처지에서 뜬금없이 흑발 미남이 앞에 나타났는데

미인계나 함정 수사는 의심조차 하지 않는 것 봐라.

하기야 마력을 조금씩 조금씩 훔치다 보면

얼빠진 년 처럼 행동하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태어날 때부터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난 추방당한 뱀의 심장.

위기라고는 시험 망친 것 말고 겪어본 적 없는 부잣집 아가씨다.

온종일 공부만 하다 안드로이드로 성욕을 푸는 일탈을 즐기다가

그렇게 대학에 가고 회사에 들어가 부모 인맥으로 이사가 되고-

"유학생인가… 서 대륙까지 왔는데 음, 금발도 하나 데려갈까?"

자신이 전쟁으로 세계를 멸망시켰다는 걸 모른 채

수면가스에 취해 우주 밖으로 쫓겨났으니까.

그녀가 겪은 가장 위험한 상황이라곤

고장 난 자동 운전 시스템으로 교통사고가 날 뻔했던 위기와

회사에서 다른 라인 이사랑 정치적으로 대립했던 회의가 끝.

그러니 위기감이란 걸 느끼지도 못하는 거다.

등 뒤에서 누가 다가오는 인기척을 느껴도 무시하고

제 옆구리에 낀 남자가 수상해도 인중만 헤벌쭉 늘리고

원한 살 짓을 잔뜩 했지만 보복당할걸 상상하지도 못하는 머저리.

"너도 이리로 와 볼래?"

"네…."

마력이 내게 쪽쪽 빨리는 것도 모르고

길 가던 금발 미남 하나 더 데려오는 꼬라지 봐.

그래, 금발의 잘생긴 미, 남?

'미친 새끼 아냐, 이거?'

화들짝 놀라 눈동자가 크게 뜨였지만

이 위기 감각 없는 머저리는 지 손놀림에 느낀 줄 아는지

흐헤헤, 민감하구만~ 같은 소리나 하고 있었다.

자기가 오른쪽에 낀 남자가 얼마 전 눈깔을 후벼 판 몽마고

왼쪽에 끼고 있는 남자는 복수하려고 이를 가는 남자인 것도 모른 상태로.

여기까지 와서 최면에 당한 건가, 싶었지만

추방당한 뱀의 심장이 다른 곳을 볼 때

내 쪽을 보며 음산하게 씨익 웃는 걸 보니

친위대 장비 같은 걸로 최면을 막고 있나 보다.

"자자, 저쪽으로 가자."

"네, 알겠어요."

"그러죠."

품 안에 있는 남자 두 명이

최면에 걸리지 않은 것도 모르다니.

얘는 오늘을 넘기기 힘들겠구나.

그런 생각을 하며 이끄는 대로 움직였다.

늘씬한 여자 한 명을 사이에 둔 남자 둘.

하나는 흑발의 호리호리한 아이돌 상이고

하나는 금발 머리의 다비드상 같은 미남이다.

술에 취한 사람들의 시선이 따가울 정도로 쏟아진다.

우리가 대놓고 러브 호텔 같이 생긴 건물로 들어갈 때까지.

'클럽과 러브호텔의 성좌라니.'

성좌의 관할이라는 엄포를 놓는 키오스크 화면.

생각해 보니 돈 하나는 참 잘벌겠다는 생각이 든다.

유명세는 물론이고 직접적인 수익도 꽤 클테니까.

"으음, 침대 사이즈 분류가-"

터치 스크린을 삑삑 누르던 추방당한 뱀의 심장이

자연스럽게 친위대 금발남의 품 안에 손을 쓰윽 넣는다.

그러더니 가슴 쪽을 몇 번 주물거리고 지갑을 꺼내 카드를 긁는다.

남의 품속에서 지갑을 꺼내 카드를 긁는 폼이

하루 이틀 해본 게 아닌 것처럼 능숙하기 그지없다.

키오스크를 두드리는 뒤통수를 친위대 금발남이 매섭게 노려 본다.

순간적으로 나도 등골이 오싹해 질 정도의 살기.

물론 그 살기조차 눈치채지 못했으니 상관없나.

하기야 나도 핵전쟁 이전에는 살기니 위기감이니 느낀 적 없긴 해.

"자, 따라와."

살기를 뿜으며 뒤통수를 노려보던 것도 잠시,

결제를 마친 추방당한 뱀의 심장이 앞장서 걷는다.

마력을 꽤 빨아 마신 것 같은데 계속 따라가야 하나?

이러다 남자끼리 아랫도리로 펜싱하게 생겼다.

다른 남자의 알몸을 보고 싶은 마음은 없는데.

그나저나 저 친위대 금발남은 뭘 하러 온 거지?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엘리베이터에 올라탄다.

띵- 하는 소리를 들으니 머리에 온갖 생각이 다 든다.

"오늘은 운이 좀 좋네. 별로 돌아다니지 않았는데 두 명이나 건졌으니까."

우주 추방의 여파인가?

자꾸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녀석이

우리들의 엉덩이를 조물딱거린다.

이쯤 되면 슬슬 짜증이 나는데.

속 시원하게 좆질이라도 하면 몰라.

얼굴이야 이쁘장하다 쳐도 계속 엉덩이만 만지니까

반쯤 발기되는 게 짜증 나기도 하고 불편하기도 하다.

애초에 옆 사람에게 엉덩이를 잡힌 상태로

셋이서 나란히 걷는 게   편한 자세라고 말할 수 있겠나.

만지는 년이아 좋다고 쭈물럭 대지만

걷는 사람 처지에서는 방해만 될 뿐.

'이걸 지금 죽여, 말어?'

마법에 대해 아는 게 없다 보니 머리가 복잡해진다.

연구하기에는 부족한 양이 아닐까?

여기서 분신을 죽이면 다음번에 100% 잡을 수 있나?

섹스까지 가면 확실히 마력을 빨아먹을 수 있을 텐데.

근데 이 새끼가 변태라 남자끼리 물고 빨게 하면?

다시 한번 띵- 하는 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추방당한 뱀의 심장이 결제한 방문 앞으로 걸어가며 온갖 고민했다.

하지만 철컥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자 마자 내 고민은 헛된 것이 되어 버렸다.

"아, 윽!?"

"드디어…!"

푸욱, 하고 정교하게 박혀 들어가는 단검.

정확하게 등허리를 노려 폐부를 쑤시면

비명조차 지를 수 없는 위치에 박혀 들어갔다.

'…뭔 상황이여, 이게?'

"너, 너어억!"

하지만 분신체여서 그런 걸까?

폐를 뚫였음에도 꺽꺽거리며 입을 연다.

그런데 왜 분신을 흩어 버리지 않는 거지?

친위대 금발남이 등허리에 찌른 칼을 손잡이 처럼 눌러

추방당한 뱀의 심장을 방 안으로 밀어 넣는다.

팔다리를 인형처럼 허우적대던 추방당한 뱀의 심장이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질질 끌려 들어간다.

"들어오시죠, 성좌님."

등허리에 꽃아 넣은 단검을 비틀며

친위대 금발남이 참으로 해맑게 웃는다.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

오뉴월에 서리가 내리면 옛날에는 농사가 폭삭 망해 버리니

화가 난 여자는 상상도 못할 피해를 입힌다는 뜻이다.

남녀 역전인 이쪽 세상에도 비슷한 속담이 있을까.

영어 문학 쪽에도 비슷한 문구가 있었으니 있지 않으려나.

남자가 한을 품으면 뭐, 안전지대에도 포탈이 열린다 정도?

사람 몸에 박아 넣은 단검을 빙빙 돌리며 웃는 꼴을 보면

이쪽 세상에도 그런 속담이 반드시 존재할 것 같다.

"그래서, 어떻게 된 건지 설명좀 해 봐."

"다 성좌님 덕분입니다."

"그 단검 덕분이 아니라?"

감각을 공유하는 분신이다.

등허리에 칼이 박힌 채 칼날을 빙빙 돌리며

말 그대로 내장을 후벼 파는 고통을 받는데

눈물 콧물을 질질 흘리면서도 분신을 유지 할 이유가 있겠는가?

칼날에 내장이 썰리는 걸 즐기는 미치광이 마조히스트도 아닌데

당연히 마력을 흩어 버리고 분신과의 연결을 끊어 버린 채

제 성역에서 웅크리고 엉엉 우는 게 정상적인 반응 아닐까.

그러니 의심이 되는 건 저 단검.

푹푹 꺼냈다 빼며 찌르는 게 아니라

빙빙 돌리기만 하는 걸 보면 의심이 간다.

아마 분신을 고정시켜 두는 마법이라도 걸렸나?

"흐, 이걸 사느라 고생 좀 했죠. 아카데미에 방문한 저주술사들이 아니었으면 구하지도 못했을 겁니다."

"저주술사…? 아, 그때."

생각해 보니 추방당한 뱀의 심장의 화신을 잡았을 때

부검이니 해부니 하는 온갖 마법사들이 다 모였었지.

그때 회의실에 같이 참관하고 있길래 왜 저러나 했더니

이 단검을 구하기 위해 발품을 팔고 있었나 보다.

"그래서 내 덕분이라고 말한 거야?"

"정확히는, 성좌님이 마력을 갈취해주셔서 그렇습니다. 저주술사의 단검도 만능은 아니라서 제약이 크거든요. 분신이 본체보다 마력을 많이 가져야 역류를 막을 수 있죠."

"그럼, 이 단검을 박아 둔 상태라면…?"

"네. 이 쌍년, 성역으로 못 돌아갑니다."

그 말을 들은 추방당한 뱀의 심장이 바닥에서 꿈틀대지만

아예 그녀 위에 엉덩이를 대고 앉아버린 친위대가

등에 박은 단검을 자동차 기어처럼 끼릭끼릭 앞뒤로 움직여서 제압한다.

온갖 성좌와 화신과 마법과 초능력이 뒤섞인 세상.

그러다 보니 상상하지도 못한 방법으로 몽마를 엿먹일 수 있구나.

저주술사의 단검은 구하기 힘들지만 능력은 별거 없었다.

그냥 분신이 사라지지 못하게 하는 정도의 능력이 전부.

그마저도 분신이 본체보다 많은 마력을 지니고 있을 때나 쓰이니

부적이나 식신 등으로 대량 생산된 분신에는 사용도 못한다고 한다.

원래는 도플갱어 같이 단일 복제 권능을 봉인하는데 쓰이는 제사용 단검.

'내가 마력을 흡수하는 걸 보고 접근한 거야?'

하지만 추방당한 뱀의 심장은 지금 조건을 만족해 버렸다.

최면술을 쓰느라 별로 없던 마력을 낭비해 버렸고

그 와중에 분신을 빨대 삼아서 내가 남은 마력도 빨아 먹었으니까.

그녀에게는 이하린 같은 화신이 없으니

마력의 최대치가 나보다 훨씬 낮은 상태.

"성역에 있는 본체가 마력을 회복하면 단검이 효력을 잃겠지만…. 성좌님께선 마력을 흡수하실 수 있으시죠? 그러면, 다시는 지상에 눈도 돌리지 않을 정도로 고통을 겪게 만들면 될 거예요."

바닥에 깔린 추방당한 뱀의 심장이 버둥거린다.

그리고 그녀가 버둥거리며 울부짖을수록

친위대의 금발남성은 더욱더 짙게 미소 짓는다.

'씨발, 존나 음습해.'

대충 때려 죽이고 근원이나 먹을까 했는데

어떻게든 고문을 끼워 넣으려 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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