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0화 >
나의 마력은 감정과 관련이 있는 마력이다.
희로애락을 읽고 두려워하는 걸 파악하여
타인의 악몽을 현실로 불러오는 마력.
몽마의 육체가 여자를 홀리는 건 마력이 아니라 몸뚱어리의 기능이고
내가 가진 보라색의 마력은 '꿈속 존재를 현실로 부르는' 능력을 갖추고 있는 거다.
반대로 말하자면 몽마인 추방당한 뱀의 심장도 똑같겠지.
뒷골목에서 남자를 꼬시던 것은 몽마가 된 몸뚱어리의 능력.
그녀가 가진 몽마의 마력은 '흔적을 남기지 않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반대로 말하자면 흔적을 남기지 않을 뿐이지 추적을 막는 능력은 없다는 뜻이죠. 아마 아카데미의 결계를 속인 것도 그 마력의 힘 같습니다."
추방당한 뱀의 심장을 상대하면서 점점 그런 점이 느껴진다.
알면 알 수록 이 새끼는 병신 빡 대가리년이라는 점이 느껴져.
"그렇다는 건?"
"같은 몽마이신 성좌 님께서 직접적인 접촉을 했으니까, 흔적이 생겨 버린 거죠."
꼬리를 무는 사냥개의 화신들이 가져온 무수히 많은 흔적들.
사람을 매혹시키는 최면 계열의 능력을 악용하여
돈 한 푼 내지 않고 술과 음식과 남자를 즐기는 중이란다.
대륙의 화신중 누구도 찾을 수 없는 마력이다 보니
마력을 악용하여 시민들을 속여먹고 멋대로 날뛰어도
그녀가 강림하여 날뛴 사실을 알아낼 수 없었다.
초능력으로 조사를 해도 나오는 흔적이 단 하나도 없으니
술이나 음식이 사라지면 단순한 발주 미스라고 생각하고
강간당한 남자들은 필름이 끊겼다고 생각하며 넘긴 거지.
여자가 강간당했다면 정액이라도 남아 있겠지만
남자가 강간당했으니 남은 흔적이 전혀 없어서 들키질 않는다니.
남녀 역전 세계가 생각하지도 못한 부분에서 찔러 들어오네.
아무리 멋대로 날뛰어도 흔적이 남지 않는다.
흔적이 남지 않으니 화신도 성좌도 자신을 잡지 못한다.
그렇게 생각하며 제 좋을대로 지상에서 놀고먹는 상황.
무슨 tag:mind control도 아니고.
"그래서 문제가 뭐니?"
"흔적을 찾을 수는 있어도 언제 어디로 내려올 지 알 수 없습니다. 하다못해 일정한 패턴이라도 있으면 프로파일러에게 맡기겠지만…. 그, 아까 말했던 대로 남자 버릇이 나빠서요."
"그래서?"
"시간도 장소도 상관없이 그냥 잘 생긴 남자 곁에 아무렇게나 내려와서…, 심지어 대륙도 가리질 않습니다."
좆침반을, 아니 여기선 봊침반이냐 클침반이냐.
아무튼 제 꼴리는 대로 막나간다는 거 아닌가.
이야기를 들을수록 머리가 어지러운데.
오늘은 백마물 내일은 일본물 무슨 야동 고르듯이
그때그때 꼴리는 남자 곁에 내려와서
몽마의 마력을 이용해 놀고먹는다니.
저 남자가 내일 동서양 중 어떤 야동으로 딸칠까요?
같이 병신 같은 예측을 세상 누가 할 수 있을까.
"여기를 보시면, 어제는 북 대륙 소도시의 한 클럽에서 남자를 꼬셨고, 그저께는 남 대륙 수도의 헬스장에서 운동 중이던 남자를-"
"그만, 그만 설명해도 될 것 같아."
심지어 취향도 다양하다.
헬스장에 있던 근육질 헬스남부터
하교 중이던 자그마한 남고생까지.
클럽이나 술집에 국한되는 게 아니라
길거리를 쏘다니다 꼴리는 남자한테 가다니.
tag : mind control물 주인공이랑 다를 게 없다.
그러니까 내게 상담하러 온 것이겠지.
꼬리를 무는 사냥개는 추적 특화의 성좌.
꼬리를 무는 사냥개가 그인지 그녀인지도 모르지만
아무튼 꼬리를 무는 사냥개의 화신들도 마찬가지다.
남 대륙에 머무르는데 북 대륙에 등장해도 문제지만
도시 몇 개만 떨어져 있어도 곧바로 대응할 순 없다.
서울 강남구 언저리에서 잠복 근무 중인 형사가
베이징에 나타난 현상수배범을 체포할 수 없듯이.
'이쪽 대륙, 생각보다 존나 크단 말이지.'
창조주가 영혼을 많이 수집하려고 계획했는지
도시와 도시간의 거리가 생각보다 멀다.
이러면 분신을 붙잡는 건 다른 쪽에게 맡겨야 하나?
마법사들에게 실시간으로 추적을 맡긴 다음
추방당한 뱀의 심장이 내려오면 나도 분신을 보내서 죽여 버릴까.
섹스하기 위해 내려온 분신이라면 통각을 비롯한 감각이 있을 테니까.
마력으로 만든 분신이니 폭군에게 끌고 갈 수는 없지만
정신이 망가질 때까지 죽여 버릴 순 있을 거 같은데.
이러니저러니 해도 결국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하구나.
'진짜 종잡을 수 없는 새끼야.'
객관적으로 보면 참으로 뛰어난 능력이다.
전생에 정치싸움에서 밀려 우주 추방을 당한 건 젖혀두고
몽마의 능력만 따지고 보면 나보다 더 유용할지도 모르지.
권능과 마법을 아무리 부려도 흔적이 남지 않는
추적 불가능과 절대적인 최면 능력이라니.
양판소 떡타지 주인공과 다를 게 뭔가.
최면이나 투명인간이 된 전능감을 느끼며
마구 돌아다니는 것도 이해가 가긴 한다.
아무 남자나 붙잡아서 섹스하고 체액의 교환이 있어도
그조차 추적의 단서가 되지 않으니 얼마나 든든하겠는가.
그래도 같은 몽마한테 눈깔이 찔려서 추적당하는 일은 상상도 못하고 있겠지.
※
처음 의뢰를 받을 때에는
내 선에서 가볍게 끝낼 줄 알았는데.
아니, 생각해 보면 가볍게 시작된 의뢰가 맞다.
원래 의뢰는 불사르는 폭군이 화신을 직접 잡아 오면
내가 연구를 해서 추방당한 뱀의 심장을 추적하기로 했으니까.
불사르는 폭군이 우주 전함을 몰고 북 대륙 소도시에
궤도폭격을 지져 버리는 미래가 없었다면 그렇게 되었을 거다.
처음으로 꾼 예지몽이 아니었다면 지금쯤 도시 하나가 날아갔겠지.
체포를 하다 보니 북 대륙 소도시가 휘말렸고
조사를 하다 보니 아카데미 결계와 엮여서
그 화신을 중심으로 한 아카데미 학술회 비슷한 게 열렸다.
'나비효과도 이 정도는 아니겠다.'
거기에 꼬리를 무는 사냥개와 그 화신들까지 생각해 보면
이번 사건에 엮인 머릿수만 백 단위를 가볍게 넘어가 버린다.
그렇게 커다란 여파를 남긴 살인 사건의 주모자를 잡겠다고-
"이 방법이 확실한 게 맞니?"
"예, 성역에 꽁꽁 숨어버릴 가능성도 있지만… 지금까지 보여 온 행동을 보면 무조건 내려 올 겁니다."
인터넷 사이트에 사진이나 올리고 있으니 어처구니가 없지.
한예지와 이하린, 김하은이 머리를 맞대고 내놓은 아이디어.
[싱글벙글 헌팅 성좌]
[짤녀한테 따먹히고 싶으면 추천]
[불사르는 폭군에게 선전포고 날린 성좌 근황]
인터넷에 추방당한 뱀의 심장 얼굴 사진을 올리자는 것이었다.
아카데미에서 각 대륙의 경찰청과 길드에게 협력을 요청하고
그 협력 요청이 받아들여지며 말단 경찰들과 소도시까지
추방당한 뱀의 심장에 대한 정보가 퍼져나가는 건 느리다.
그러니까 경찰과 길드보다 훨씬 빠른 인터넷을 이용하자.
물론 성좌와 화신 갤러리에만 글을 쓰는 게 아니다.
[긴급뱅송] 타락 성좌 신상까기 프로젝트
[생] 아카데미발 긴급 속보
[앜화신 Live] 남자를 따먹는 성좌가 있다?
'머리가 어질어질하네, 진짜.'
성좌와 화신 갤러리, 줄여서 성화갤.
이걸 한예지와 이하린이 할 때부터 알아차려야 했나.
아니, 한예지와 이하린만 하는 것도 아니었다.
한예지가 동 대륙 길드에 속해 있을 때
거기 길드원들도 내가 커피 나르는 모습 인증하고 다녔잖아.
익명의 인터넷 사이트가 존재하는 세상이다.
당연히 인터넷 방송 사이트도 존재할 수밖에.
화신이 되고 싶어서 전용 헬스장은 물론 군 입대까지 하는 사람들이다.
그런 광기에 가까운 열의를 가진 사람들이 인터넷 방송이라고 꺼려할까.
"방송 하는 애들이 이렇게 많니?"
"이게 다 인지도니까요. 좀 개방적인 성좌 님을 모시는 화신들은 전부 할 걸요?"
"인지도…, 그렇구나."
불사르는 폭군이 갓 태어난 성좌의 1~3년차 초보 화신들을 데리고
우주 전함 태워주기 이벤트로 대륙 순회 공연을 도는 이유가 뭐였던가.
동서남북 모든 대륙에 자기 인지도를 널리 알리기 위해서 아니었던가.
"그리고 아카데미는 원래 방송 송출 금지 구역이예요. 이번이 이례적인 거지."
하기야, 나름 화신들이 훈련을 받는
종합 군사 시설에 가까운 아카데미다.
방송은 원래 금지된게 당연하겠지.
실제로 내가 돌아다니면서 셀카 찍는 생도는 한 번도 보지 못했는 걸.
기숙사 규칙을 어기고 숨어서 섹스하는 커플은 잔뜩 보긴 했지만.
성좌들은 평소보다 인지도가 몇 배로 쌓여서 좋고
화신들은 개인 방송으로 추가 수입에 포인트도 짭짤하게 벌고.
아카데미는-
"그런데 아카데미측 허가는 어떻게 바로 받았니?"
"성좌 님 이름으로 아카데미에 기부된 물품이 생각보다 많아서요. 협상테이블에서 나온 이야기인데, 좀 부담 될 정도로 받아서 가슴을 졸인다는데요. 나중에 목록이라도 한 번 읽어 보시겠어요? 전부 기부하시지 말고 귀한 물건은 좀 챙겨달라고 따로 빼 놓았다던데."
성좌인 내게 받아먹은 게 너무 많아서 찍소리 못하고.
생각해 보니 지금까지 치료 명목으로 받은 물건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전부 아카데미쪽에 넘기고 있었구나.
마법적인 전문 지식은 하나도 없는데
자꾸 귀중품이 선물로 오니까 귀찮아서 통째로 위임한 상황.
그러나 다른 성좌로부터 아카데미가 하는 것도 없이
감히 성좌의 선물을 날름 처먹는다는 눈총을 받고 있었나보다.
"와, 개인 방송만이 아니라 언론사 소속 기자들도 기사를 쓰기 시작했는데요? 내일 조간 신문에도 뜨겠네."
이하린에게서 협상의 내용을 듣고 있으니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던 한예지가 인터넷 뉴스 기사를 보여준다.
[성좌투데이] '아카데미가 직접 발표한 타락 성좌' … 그녀는 무슨 짓을 저질렀을까
[포토뉴스] 아카데미 불법 침입 화신, 어떤 성좌 소속인가
합법적으로 성좌를 욕해도 된다는 기괴한 어그로 때문일까.
아카데미가 마련해 준 스마트폰으로 본 인터넷은
전생에 봤던 그 어떠한 사건보다 난리가 난 상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