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7화[19] >
자신만만하게 씨익 웃는 사냥개의 화신.
그 웃음이 난처한 웃음으로 바뀌는 건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곤란한 것처럼 작게 중얼거리는 모습에도 화가 나지 않는 이유는
추방당한 뱀의 심장의 행동이 너무 어처구니가 없기 때문이겠지.
"정, 말 죄송하지만… 제 능력이 조금 부족한 것 같습니다."
송구하다는 듯 고개를 꾸벅 숙여 보이는 그녀.
꼬리를 무는 사냥개의 화신들, 그중에서도 대표로 뽑힌 여자.
치료의 사례로 곤란한 일을 해결해 주겠다며 성좌가 직접 보낸 인재다.
당연하지만 성좌가 직접 고른 화신의 능력이 정말 부족한 건 아니었다.
'뱀심 이 새끼는 뭐 하는 새끼지…?'
다만 추방당한 뱀의 심장이 상상 이상의 병신이었을 뿐.
아무리 그래도 자기가 가진 최고의 패가 저 암살범 아니었나?
어떻게 자기 최고 화신에게 아무것도 주지 않고 보낼 수 있지?
몽마의 화신이자 아카데미 결계도 뚫은 놈이 왜 도시에서 잡혔나 했더니
추방당한 뱀의 심장에게 지원으로 받은 게 없어서 잡혀 버린 건가?
장비 하나 안 주고 맨몸으로 덜렁 보낸 다음
추격당하는 와중에도 도와주질 않는다니 무슨 생각이지.
"괜찮다, 네 잘못은 아니니까."
"정말 죄송합니다. 다른 방법이 있긴 한데…."
사이코메트리 비슷하게 마력의 잔향을 추적하는 능력.
하지만 받은 게 아무것도 없으니 마력의 잔향조차 없다.
있는 거라곤 기본 적인 성좌-화신간의 계약 뿐.
왜, 창작물에서 사냥개한테 사람 잡아 오게 시킬 땐
손수건 같은 소지품 냄새를 맡게 하지 않던가.
아카데미에 침입을 할 정도니 성좌에게 받은 장비가 있다고 생각했지만
아무런 장비조차 없이 맨몸으로 왔으니 추적이 불가능한 건 당연하다.
"그, 무례하게 들릴지는 모르겠지만."
"다른 방법이 있다면 말해 보렴."
그 어처구니없는 상황에서 머뭇거리며 말을 이어나가는 그녀.
몇 분 전에 보여줬던 그자신만만한 얼굴은 찾아볼 수 없다.
그래, 내 상식 말고 이쪽 세상 상식으로도 이해할 수 없겠지.
그렇다고 해서 성좌 앞에서 큰 소리 떵떵 친 상황은 변하지 않는다.
꼬리를 무는 사냥개의 명령을 받아 무기력한 악몽에게 장담을 했는데
이제 와서 못하겠다고 말하면 화신 주제에 성좌 두 명을 엿먹이는 게 되니까.
나야 그러려니 넘어갈 수 있다지만
꼬리를 무는 사냥개가 어떻게 반응할지 모른다.
그러니 저렇게 머리를 쥐어짜는 거 아니겠는가.
"장비가 하나도 없다면 다른 쪽에서 실마리를 잡을 수 있습니다. 이래 봬도 '꼬리'를 무는 사냥개니까요."
중의적인 뜻을 번역해 주는 건지 '꼬리'에 악센트가 들어간 말.
긴장감으로 꿀꺽 침을 삼키며 그녀가 내게 눈을 딱 감고 말을 잇는다.
"같은 몽마이신 성좌님의 도움만 있다면-"
※
알몸으로 봉사가 아닌 조사를 받는다는 건 생각보다 신기한 기분이었다.
무서운 아저씨가 설렁탕과 고춧가루를 말아 주는 그런 조사는 아니지만 말이지.
그런 상황과는 정반대라고 말할 수 있는 상황.
눈앞에 있는 건 아저씨가 아니라 갈색 피부 아가씨니까.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키가 작아진 엘프의 육체 때문인지
그녀와 나는 더욱 선명하게 대비되는 것 같았다.
햇빛 한 번 못 받은 것같이 새하얀 피부와
보자마자 다크 엘프를 떠올릴 정도로 그를린 갈색 피부.
나보다 머리 두 개는 커 보이는 길쭉한 신장에
우리 애들보다 좀 더 근육질인 몸매까지.
그런데도 불구하고 잘록한 허리 라인 때문에
남자 같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는 부드러운 곡선이 살아 있다.
"다행히 잔향이 많이 남아 있네요."
내 손끝을 어루만지며 중얼거리는 그녀.
지난번 추방당한 뱀의 심장의 눈을 찔렀던 손가락이다.
아니, 생각해 보니까 그 새낀 150 언저리의 엘프 몸한테 처맞고 진 거네.
사람 패는 건 익숙하다 보니 여자를 이긴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지만
최면에 반쯤 걸렸을 땐 엘프의 육체를 유지하고 있었다는 게 떠올랐다.
"눈치 보지 말고 하고 싶은 대로 하렴."
"네, 알겠습니다."
눈치를 살살 살피던 그녀가 내 손가락을 입으로 문다.
츄읍, 하고 끈적한 타액이 흐르는 소리와 함께 느껴지는 뜨끈함.
이렇게 음탕한 분위기가 된 것은 꼬리를 무는 사냥개의 능력 때문이 아니다.
정확히는 나와 추방당한 뱀의 심장의 종족, 몽마의 마력 때문이지.
꼬리를 무는 사냥개의 추적 방식은 간단하다.
판타지 세상의 사냥꾼 답게, 마력을 '향'으로 인식한 뒤
그 마력의 잔향을 쫓아서 상대를 추적하는 거다.
이쪽 세상에서는 무림인부터 마법사는 물론 미래 SF 기갑병까지
전부 마력을 사용하니 그 누구라도 추적할 수 있는 유능한 화신.
그녀가 맡아야 하는 마력이 몽마의 마력만 아니었다면 참 좋았을 텐데.
내가 악몽을 다루는 몽마를 생각해 권능을 그쪽으로 향했다 하지만
몽마라는 종족 자체가 가진 특성을 어찌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게임식으로 비유하자면 직업은 골랐지만 종족 패시브는 고정되어 있다고 보면 좋겠지.
그래, 사람을 매료하고 발정시키는 몽마 특유의 마력이다.
그걸 향기로 맡아서 듬뿍 들이키게 되는데 멀쩡할 리 있나.
"흐, 후아, 흐아아-"
그 결과가 눈앞의 여인이다.
자신감 넘치던 그 늠름한 모습은 없다.
대신 발정이 나서 남자를 깔아 뭉개고 싶은 암컷만 있지.
물론 내가 기분 나쁠 일은 없다.
화신인 그녀로서는 무례하기 짝이 없어
목숨을 건 도박수로 던진 말이겠지만 말이야.
갈색 피부의 건강미 넘치는 여자가 알몸으로 달려드는데
이런 걸 싫어하는 남자는 매우 특수한 취향 아닐까.
"마력의 내, 냄새를."
벌써 머리가 맛이 갔는지 멍해진 눈동자.
피부 접촉만 해도 야한 기분이 드는 몽마의 마력을
향기로 전환해서 폐 깊숙이 처박으니까 어쩔 수 없나.
마음대로 하라는 말이 기폭제가 되었을까.
정신을 차려 보니 침대 위에 곱게 뉘여져 있었다.
'뭐지, 시발.'
의자에 앉아서 사냥개의 화신을 내려다보고 있었을 텐데.
핥아지고 있던 손의 팔목이 붙잡혔다고 느꼈더니
시야가 휘리리릭 돌아가고 천장이 눈앞에 보인다.
'의자에서 침대까지 업어친 건가?'
기술보다 마법에 가까운 것 같은 유술.
시야가 빙글 돌아버린 걸 생각하면
분명 머리가 바닥을 향하도록 한 바퀴 뒤집혀 던져졌지만
붙잡힌 손목에 고통따위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여리여리한 엘프 껍데기 안에 든 것은 사내인지라
당하고도 눈치 못 채는 이런 무술을 보면 가슴이 조금 뛰고 만다.
그렇게 엉뚱한 생각하고 있으니 크으읍, 하고
깊게 숨 들이마시는 소리가 시야 밖에서 들려온다.
'괜찮은 거 맞겠지…?'
몽마의 마력은 처음이니 추태를 보일 수 있다느니
양해를 구한다면서 미리 넙죽넙죽 사과를 하던데
지금 모습을 보면 그 과해 보이던 태도가 당연해 보인다.
헤 벌린 입술과 입술로 흘러나온 끈적한 침 한 방울.
쉴 새 없이 움찔거는 콧망울과 게슴츠레 반개한 눈.
아무리 봐도 술이나 마약에 취한 것 같은 얼굴이다.
손끝에 고개를 처박고 헤벌레하던 그녀가
냄새를 맡는 개처럼 코를 움직여 조금씩 올라온다.
손가락 끝에서 손등 냄새를 맡다가 그대로 뺨을 부비고
다시 팔목에 코를 대고 코끝이 살에 스치도록 어깨까지 올라온다.
어깨에서 목덜미로, 다시 내려 가서 가슴팍으로, 아래로, 아래로-
그러다 간지러운 숨결에 빳빳히 서버린 내 물건에
뺨이 쿡 찔릴 때까지 아래로 킁킁 냄새를 맡으며 내려간다.
귀나 꼬리만 달아 뒀으면 수인족이라고 의심하지 않았을까.
"흡, 흐아아아-"
고간에 고개를 처박고 숨을 몰아쉬는 모습을 보면
수인족이 아니라 그냥 짐승처럼 보이기도 하고.
탄탄한 뺨으로 꾹꾹 눌러 내 물건을 발기시킨 뒤에도
한참이나 고개를 처박고 있던 그녀가 드디어 고개를 든다.
조금은 정신이 들었는지 또렷해진 눈동자.
"역시, 두 가지 향이 섞여 있네요. 엄청 진한 향과, 미약한 향."
"구분할 수 있겠니?"
"네에, 시간이 조금 필요하지만요."
역시 유능하긴 유능하네.
아카데미에서 본 사람은 전부 유능하다는 생각이 들 무렵
그녀가 숨을 길게 몰아쉬느라 끊었던 말을 이어나간다.
"그러니까 성좌님의 마력에 익숙해 지도록, 실례하겠습니다."
"…?"
무슨 소리인가 이해를 하지 못했더니
쿡쿡 웃던 그녀가 숨을 길게 들이쉬고 내쉬며 설명한다.
"코는, 예민해서 강한 향기에 취하면 못 맡게 되거든요."
그 이야기는 나도 알지.
자기 몸 냄새를 못 맡는 게 저런 이유 아니던가.
악취도 계속 맡으면 코가 마비되어 적응하는 둥의 이야기.
"그러니까 제가 성좌님의 마력에 계속 취하며연, 흐으읍."
설명을 하던 그녀가 그대로 내 발목을 잡는다.
아니 씨발, 남녀 역전 세계라서 짐작은 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발냄새는 왜 맡고 그러는거야.
물론 나도 분위기 좋게 애무를 할 땐 발등을 건드린 적 있긴 한데.
가느다란 발목이 붙잡혀 올라간다.
누운 상태로 들어 올린 다리가 벌어지고
그사이로 여자의 허리가 쏘옥 들어온 다음
쪼그려 앉은 여자에게 그대로 깔아 뭉개지는 자세.
엉덩이로 누군가를 깔아 뭉갠 게 아니라
내 엉덩이 위에 누군가 앉았다는 이질적인 감각.
작은 체구로 커다란 누나에게 깔린 상황인지라
약간 불쾌하기도 하면서 기대도 되는 오묘한 기분.
"흠뻑 취하면 조금이나마 남아 있는 그 성좌의 마력을 걸러낼 수 있을 것 같아요."
짐승처럼 흐- 하고 웃은 그녀가 엉덩이를 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