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3화[19] >
피부와 피부가 마주 닿아야 느껴지는 게 있다.
적어도 몽마가 된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이렇게 말하니까 무슨 사이비 교주 같기도 하고
인문학 소설 팔아먹는 약쟁이 작가 같기도 하네.
물론 그런 의미로 말하는 게 아니다.
아직도 능숙하지 못 한 몽마의 능력 때문이지.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조금 거리가 있어도 잘 만 되는데
성좌는 급이 다른지 좀 모호하게 느껴지곤 한다.
물론 이렇게 가슴과 가슴이 마주 닿으면 해결되는 문제다.
심장 소리를 피부로 느낄 수 있는 거리에서는
아무리 부족한 몽마라 해도 절절하게 느낄 수 있으니까.
"흐아아, 너, 너어-"
입술만 달싹여도 키스로 막아 버려서 그럴까.
가쁜 숨을 몰아쉬는 그녀가 나를 샐쭉하게 노려본다.
물론 높게 치솟은 눈초리는 점점 내려오는 상황.
뾰족한 귀도 그렇고, 이제는 고양이가 아니라 토끼라고 불러도 되지 않을까.
발갛게 달아오른 뺨한 번 바라본 뒤
다시 목 뒤에 팔을 감고 입술을 쪽쪽 들이민다.
삐줍대면서도 피하지 않는 게 귀여웠으니까.
세계수 지킴이 겸 장녀로서 아이을 돌보던 습관 때문인지
의젓하게 뭐든 도와주려는 모습이 참한 아가씨 그 자체였지만
그래도 당황하면 새어 나오는 어리벙벙한 모습이 더 마음에 든다.
"왜, 필요한 거 있냐면서?"
"?"
다짜고짜 키스하는 데 필요한 거 이야기라니
이게 무슨 소리인지 이해를 못하는 모습.
네가 필요하다던가 하는 닭살 돋는 농짓거리는 마음속에 묻어 두고
아직 이해하지 못해 눈동자만 데굴데굴 굴리는 그녀에게 다시 입을 맞춘다.
독초와 살인덩굴이 가득한 정원이지만 엘프에게는 상관이 없다는 걸까.
어 두침침하고 음산한 것 같던 정원도 어느샌가
불 꺼진 안방처럼 아늑하게 느껴지기 시작한다.
그래도 흙바닥에서 뒹굴 마음은 없는지
그녀가 내 등을 살살 쓰다듬으며 발걸음을 옮긴다.
마력을 사용하는 육체의 강건함과
자그마한 엘프 소년의 육체가 합쳐지니
꽤 작은 편인 엘프 소녀에게 붙들려 옮겨지는 경험도 하네.
정신의 대부분은 아직 190cm 넘는 거한의 기억이 차지하고 있으니
이 자그마한 여자애에게 붙들려 옮겨지는 게 어색하고 생소하다.
내 키가 지금 160cm 언저리라는 건 머리로 알고 있는데
정신줄 놓고 있으면 그녀가 2m는 되는 거인녀처럼 느껴질 때도 있어서.
왜, 어린아이일 때는 어른들이 그렇게 거대하게 보이지 않던가.
그런 기분을 엘프의 몸으로 느낄 줄은 몰랐지.
"히히, 왜 갑자기 얌전해졌어?"
한 손을 등에 두르고, 다른 한 손을 허리춤에 두른다.
사람을 들어올리려고 힘을 주기엔 불편한 자세지만
아이들을 많이 껴안아 옮긴 경험이 있는지
다소 불편한 느낌은 있어도 아프지는 않았다.
갓난애기가 인형 껴안아 옮기듯
등을 붙잡혀 옮겨지는 게 어색할 뿐이지.
"누나 품에 안기니까 부끄러워? 응?"
그걸 조금 다르게 이해했는지 히쭉히쭉 웃으며 나를 놀려 먹는다.
나야 덩치 큰 성인이 되어서 여자애 품에 안겨서 옮겨지는 게 어색한 건데
그녀는 자신이 입맞춤에 부끄러워하듯 내가 포옹에 부끄러워한다고 생각한 걸까.
좋다고 웃는데 그게 아니라고 기를 쓰며 부정해도 무슨 소용이 있을까.
좋은 분위기인데 읽지도 못하고 망쳐버릴 생각은 없었다.
아니, 여기서 백날 부정한다 해도 어유, 그랬어용? 하고 넘겨 버리려나.
집으로 들어가 거실에 포개 앉을 때까지 그녀의 미소는 사라지지 않았다.
토닥토닥, 등을 부드럽게 쓸어 내리는 손길.
그 보드라운 손길이 슬그머니 아래로 내려온다.
날개뼈 근처에서 등허리를 타고 내려와 엉덩이로.
'이 나이 처먹고 여자애한테 엉덩이 토닥토닥이라니.'
아포칼립스 시대에 정확히 나이를 계산한 건 아니지만
복학생이었던 이십 대 후반에서 지금까지 왔으니
적게 잡아도 서른살은 가볍게 넘긴 거 같은데.
그래도 놀려 먹으려는 게 아니라서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내 덩치도 작아진 상태라서 품 안에 꼬옥 안긴 것도 있고.
따듯한 담요에 돌돌 말아진 상태로 꾸벅꾸벅 조는 기분이야.
물론 이런 분위기에서 잠을 잘 정도로 멍청이는 아니지.
그대로 팔을 뻗어 그녀의 등을 휘감았다.
서로가 서로를 팔로 구속한 것 같은 자세.
기다란 천을 몸에 휘감은 엘프의 전통 복장 때문인지
부드러운 천과 가슴이 몸을 꾹꾹 누르는 게 바로 느껴진다.
품 안에서 느껴지는 그 부드러운 감촉.
움직이는 게 귀찮을 정도로 기분이 좋다.
휴일날 이불에 휘감겨 늦장을 부리는 것처럼
이 따스한 품 안에 안겨 게으름을 피우고 싶었다.
물론 그건 내 생각이고 나를 껴안은 그녀는 조금 다른 생각하는 것 같았지만.
등을 토닥이며 등허리까지 내려온 손이 슬그머니 엉덩이에 도착한다.
성좌와 화신의 수직적 관계가 아닌 성좌와 성좌의 관계니까 그런가,
내가 관계를 가진 여자중 가장 적극적인 모습.
"바지, 벗길게?"
뾰족하게 솟아오른 내 귓가에 들려오는 조곤조곤한 목소리.
서툰 손길이 슬금슬금 바지 허리춤을 잡고 아래로 향한다.
서로를 꼬옥 껴안은 상태로 옆으로 누운 상태인지라
쉽사리 벗겨지지 않는 게 불편한가보다.
한 명은 손을 꼼질꼼질 움직이고
다른 한 명은 허리를 움찔거리는 우스꽝스러운 모습.
눈과 눈이 마주치자 그녀도 같은 생각하고 있었는지
그녀의 눈초리가 휘며 아하핫, 웃음을 터트리고 만다.
"왜 그렇게 웃어?"
"너도 웃고 있으면서."
웃음소리가 잦아들도록 막아 버리는 입맞춤.
브로치를 제거하고 허리를 들어 올리니까
간단하리만치 제거되는 가벼운 옷차림.
가볍디 가벼운 금발 벽안의 소녀가 내 위에 올라탄다.
엘프는 인간이랑 뼈와 근육이 다른 가 싶을 정도로 가벼운 무게감.
자그마한 몸뚱어리 위에 사람 하나가 체중을 실었지만 부담은 전혀 없다.
오히려 느껴지는 건 음란과 포근함 사이에서 고민하게 되는 감촉.
아랫배를 꾹꾹 눌러대는 엉덩이는 농사로 다져진 탄탄한 몸매를 자랑하는 것 같다.
키만 조금 작을 뿐이지, 비율만 보면 성숙하고 잘 빠진 몸매긴 하지.
솔직히 말해서 통짜 몸매에 어린아이의 몸이었으면
엘프고 연상이고 이런 상황까지 안 오지 않았을까.
남녀가 역전되고 엘프가 실존하며 나보다 나이가 많다 해도
눈에 보이는 요소는 남자에게 정말로 중요하니까.
하지만 눈앞에 있는 건 애처럼 통짜 몸매를 가진 엘프가 아니라
잘록한 허리를 살금살금 흔들며 탱탱한 엉덩이로 날 꾹꾹 누르는 엘프다.
엉덩이의 끝을 밀어 내며 치솟아오르는 내 물건이 느껴졌을까.
꽃이 피어오르듯 새하얀 피부들이 연분홍색으로 달아오른다.
"으음…. 좋다, 진짜로."
"나도 좋아."
커다란 고양이처럼 상체를 숙여 내 가슴팍에 뺨을 부비는 그녀.
몽마의 마력이 그녀의 마음을 살그머니 읽어 낸다.
인간과 엘프의 수명 차이때문에 겪은 외로움.
그것은 지하실에 홀로 숨어 있던 나와 비슷한 감정이었다.
고립이 불러 온 애정결핍.
인간의 온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
"정아린 화신에게는 정말 고마운 마음 밖에 없어…."
"그러고 보니 화신들 때문에 우리가 만났던가."
쪽쪽, 소리가 나도록 쇄골과 목덜미에 입을 맞추는 그녀.
그와 동시에 엉덩이가 슬그머니 움직어 자리를 잡는다.
남자를 농락하는 게 능숙한 요녀보다는
이제야 성과 쾌락을 알아가는 처녀에 가까운지라
자연스럽게 삽입으로 이어지지는 않는 지진부진한 행위.
그러나 피부가 닿는 면적이 넓어진다는 것만으로 만족하는지
그녀는 나를 애태우듯이 아주 천천히 엉덩이를 움직였다.
삽입이 되던 말던 일단 껴안고 피부를 느끼겠다는 심보.
물론, 그것까지 참아주기에는 내 인내심이 너무 부족했다.
매끄러운 등을 잡고 있던 양손을 슬쩍 내려 엉덩이를 붙잡고
그대로 허리를 조금씩 움직여 끈적하게 젖어들어간 살틈바구니를 찾는다.
엘프와 엘프가 몸을 겹치니 방 안이 숲 속 공터라도 된 것처럼
상쾌하고 달큼한 풀꽃내음으로 가득해진 상황.
잘 익은 꽃봉우리처럼 찐득한 꿀이 가득한 곳으로
내 물건이 망설임 없이 쑤욱 파고든다.
"으음, 정아린에게 선물을 주면 네게 도움이 될, 꺗?!"
느긋하고 노곤노곤한 쾌락 너머에서
훅 하고 파고드는 날카로운 쾌감 때문인지
화들짝 놀라며 어깨를 들썩이는 게 느껴진다.
"너, 너어…?"
정말로 화들짝 놀랐는지 허벅지에 힘을 꾸욱 주는 그녀.
엉덩이 옆 쪽과 허리 부근이 꾸욱 죄여지며 나를 압박한다.
물론 겉보기보다 훨씬 튼튼한 엘프의 육체인지라
마음만 먹으면 그대로 허리를 쳐 올릴 수 있지만
조금 삐진 것처럼 삐줍대는 입술과 샐쭉한 눈초리를 보고 그대로 허리를 멈췄다.
"누나가 해 줄 테니까, 가만히 있어 봐…."
내 가슴팍에 제 가슴을 착 붙인 상태로
마치 모래 위를 움직이는 뱀처럼 꾸물텅 움직이는 그녀.
위아래로 방아를 찧는 것도 아니고 유연한 허리 놀림으로
엉덩이를 빙글빙글 돌리니 색다른 쾌감이 몰려온다.
그와 동시에 역으로 내 입술을 막아 버리는 그녀의 입술.
얼굴부터 가슴팍, 허벅지까지 따듯하게 달아오른
엘프의 여체로 휘감긴 상태로 아래만 쥐여 짜이는 상황.
정말로, 천 년만년 이대로 있고 싶다는 마음이 들 정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