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0화 >
거기까지라면 별 문제 없겠지.
솔직히 제복이나 양호 가운이나 차이가 있나.
무의식 속에서 고등학생이 된 한예지와 찐득한 밤을 보냈다.
그러니까, 거기에서 멈췄더라면.
한예지의 무의식에서 벗어나 이하린의 무의식으로 향했다.
이번에도 눈 앞에 보이는 것은 학교의 양호실.
사람의 상상력과 경험의 차이가 있으니
세부적인 디자인은 당연히 다르다.
간단하게 생긴 철제 프레임의 양호실 침대와
그걸 가려줄 수 있는 새하얀 커튼이 같을 뿐.
'이거 괜찮은 거 맞나?'
머리 한 구석에 어제 인터넷에서 본 글이 지나간다.
귀두니 좆이니 부랄을 와랄랄랄하던 음담패설.
당연하지만 나야 웃고 지나갈 수 있는 글이고
한예지도 내가 그냥 넘긴다는 걸 알고 무시하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그걸 이하린도 보고 넘길 수 있을까?
성좌 얼굴 봤다고 게거품 물고 쓰러지는 애가?
"아, 선생님."
"무슨 일로 왔니?"
자각몽이 아닌 무의식이라서 다행이다.
아니었으면 화들짝 놀란 얼굴을 그대로 들켰을테니까.
수상할 정도로 어색한 반응이었지만 딱히 들키진 않은 상태.
약간 멍한 눈동자로 간이 의자에 앉은 이하린이 나를 부른다.
그 쪽을 향해 천천히 걸어가며 슬쩍 벽에 걸린 거울을 바라보았다.
새하얀 가운과 가슴팍에 달린 [양호교사] 명찰.
안에 입은건 푸른색 와이셔츠인가.
좀 얇긴 하네.
"그, 축구를 하다가 넘어져서요."
반바지 아래 살짝 까져서 핏방울 맺힌 무릎이 보인다.
이하린과 한예지는 물론 인터넷의 글만 봐도
전생이나 이쪽 세상이나 이런 망상은 방향이 비슷하구나.
'나한테 불똥 튈 일은 없겠지.'
순간적으로 무서운 상상이 머리를 헤집었지만
이하린이 아무리 화가 나도 나한테 뭘 하진 않겠지.
불이 붙을 걸 알아도 내게 불똥이 튀지 않으면 된 거다.
강 건너 불 구경이라는 단어가 왜 있겠어.
마음을 가다듬고 무의식 속 역할로 돌아갔다.
"그래? 무릎 좀 보여줄래?"
그러자 흙먼지 잔뜩 묻은 반바지가 스르륵 올라간다.
햇빛에 그을리지 않아 뽀얀 허벅지가 드러나지만
부끄럼 한 점 없는 얼굴로 그녀가 나를 빤히 쳐다본다.
시선이 날아오는 곳은 가운 사이로 드러난 와이셔츠.
정확히는 얇은 와이셔츠 너머의 가슴팍 아닐까.
그래도 군사대학 다니던 이하린은 조금 자중할 줄 아는데
혈기 넘치는 여고생으로 돌아간 이하린에게는 자중따윈 없다.
손으로는 체육복 반바지를 움켜쥐고 당겨 올렸지만
고개는 뻣뻣하게 굳은 상태로 나를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는 상태.
평소와는 달리 욕망으로 가득 한 모습에 절로 웃음이 나온다.
이러니까 자각몽이 아니라 무의식 속으로 들어오는 맛이 있지.
"으, 따가워."
"여자애가 엄살은."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으니 입이 저절로 움직인다.
이하린의 무의식이 원하는 대로 움직이니까
연기력이 딱히 필요 없어서 다행이다.
솔직히 나는 학창시절 때 양호실을 가본 적이 없으니까.
양호 교사는 성교육 시간에 만난 아줌마가 전부.
그러다보니 이런 양호실 플레이는 낯설기 그지 없다.
"자, 떨어지지 않게 조심하고. 딱지진거 간지럽다고 긁다가 떼어먹지 말고."
그런데 뭔가 좀 이상하다.
정확히는 너무 건전하다고 해야 하나.
"네, 알겠습니다."
"요즘 축구하다 오는 여자애들이 너무 많은데 좀 조심해서 놀라 그래."
"에이, 제가 말한다고 애들이 듣나요?"
"그건 그렇지, 너라도 다치지 말고."
양호교사와 학생이라는 신분 치고는 친근한 대화.
하지만 슬금슬금 바디 터치가 일어나는 일 따위는 없다.
집게로 잡은 소독솜으로 상처를 톡톡 치료해주는게 끝.
이하린은 망설임 없이 양호실 밖으로 향하고
나는 의자에 등을 기대며 책상에 쌓인 서류로 향한다.
'대체 무슨 망상을 하는거지?'
이번 욕망은 꽤나 디테일한지 영화의 컷씬마냥 대충 넘어가는 일이 없었다.
텅 빈 서류와 인터넷 앞에서 몇 배는 빠르게 움직이는 시계를 구경했으니까.
그나마 시간이 빠르게 흘러서 다행이지
아니었으면 꼼짝없이 몇 시간동안 멍하니 있어야 할 뻔.
낯선 멜로디가 들려오고 학생들의 웅성거림이 커진다.
'방과 후에 오는건가? 망상이 꽤 디테일하네.'
양호 가운을 입은 나를 보고 좋아하던 한예지와 달리
이하린의 무의식은 학교, 방과 후, 양호실 등 구체적이었다.
그만큼 무의식 속에 쌓인 욕망이 가득하다는 뜻이겠지.
하긴, 한예지는 원하는 게 있으면 어리광을 부리며 바로 부탁하지만
이하린은 자기가 원하는 건 뒷전이고 내게 뭘 해주려 하니까
무의식 속에 욕망이 쌓이는 건 당연하리라.
창 밖의 하교하는 여학생들을 구경하고 있으니
똑똑, 정중한 노크 소리가 들려온다.
"네, 들어오세요."
"헤헤, 저 왔어요."
학생들도 대부분 떠나가 고요해진 학교.
쨍한 햇볕이 들어오는 양호실에 슬그머니 이하린이 들어온다.
무릎의 상처는 피가 멎었지만 붙여둔 밴드는 사라진지 오래.
"복도에서 뛰다가 떨어진거야? 아니면 간지러워서 긁은거야."
"아, 제가 뗀 거 아니에요. 수업 중에 그냥 떨어졌는데."
"반나절도 안 된게 혼자 떨어질 리 있니?"
"진짠데…."
입술을 삐죽인 그녀가 의자가 아닌 양호실 침대로 향한다.
그러더니 책가방을 침대 다리 옆에 대충 내려놓더니
몸을 훅 던져 침대 위에 털썩 엎드리는 게 아닌가.
그 여파로 말려 올라간 교복 치마 때문에
뽀얀 허벅지 라인이 그대로 드러난다.
'교복도 좋네.'
생각해보면 교복 차림으로 해본 적은 없었지.
남녀 역전 세상이다 보니 여자들이 편한대로 입고 다녀서
가벼운 옷차림을 보고 좋아한 적은 많았지만 말이야.
그런 생각을 하며 침대로 슬금슬금 다가갔다.
목표는 당연히 팬티가 보일듯 말듯 쓸려 올라간 교복 치마.
어깨까지 올라간 손바닥을 힘을 뺀 상태로 후려쳤다.
완만한 포물선을 그리며 휘둘러진 손바닥은
엉덩이와 허벅지 그 사이의 지점에 정확히 도착했다.
짜악-!
"요 녀석, 교복 치마를 얼마나 줄인거야?"
"아! 제가 남자애들도 아니고 좀 줄일수도 있, 죠…."
하기야, 조금 흐트러졌다고 팬티가 보이기 직전인데
그런 짧은 치마가 정식 교복일 리는 없겠지.
볼기짝을 두드려 맞아 잠시 올라간 목소리가
눈치를 보며 그대로 살살 기어내려온다.
성좌와 화신, 교사와 학생.
수직적인 관계.
'얘는 무의식 속에서도 여전하구나.'
이쯤 되면 성좌 오타쿠가 아니라 마조히스트 같은데
그렇다고 해서 맞는 걸 좋아하지는 않고.
정신적 마조히스트라는 단어도 있나?
육체적으로 당하는 게 아니라
누군가에게 복종하는 것으로만 흥분하는 거.
"아, 아파요!"
"내일까지 치마 다시 늘려서 와, 알았어?"
"씨이, 담임도 아니면서."
"뭐?"
"알겠다구요…."
찰진 손맛을 다시 보기 위해 몇 번더 손바닥을 휘두르다가
슬그머니 치마의 끝자락을 손가락으로 집어들었다.
허리 위로 말려 올라가는 치마와 점점 드러나는 뽀얀 엉덩이.
현실의 이하린은 군사학교까지 다녀온, 전체적으로 건강미 있는 피부였다.
하지만 무의식의 이하린은 체육복 입고 놀러다니는 여학생.
허벅지 아래는 그을렸지만 허벅지 위 쪽은 뽀얗기 그지 없었다.
"그래, 선생님 말은 잘 들어야지."
"…."
대답은 없었다.
다만 엉덩이에 힘이 바짝 들어가는 게 보인다.
체육 때문에 입은 여성용 트렁크가 쫙 달라붙은 탱글한 엉덩이가.
"대답."
"네…."
짝 소리도 들리지 않을 정도로 가벼운 터치.
그러나 말려 올라간 치마 때문일까?
힘이 바짝 들어간 엉덩이를 톡 두드리니 등허리가 파르르 떨리는 게 보인다.
맞는 걸 좋아하는 거 같지는 않고
그냥 내가 뭘 명령하는 게 좋은건가?
내 질문에 내가 답을 하는 것 처럼 입이 곧바로 움직인다.
"그래, 그래. 말을 잘 들어야 상을 주지."
명령과 포상.
역시나 이하린 다운 무의식의 욕망이네.
손가락이 새까만 트렁크를 슬금슬금 쓰다듬는다.
그러더니 털썩, 고개를 묻고 있는 이하린의 옆에 나도 누워버렸다.
나는 누워있는 상태에 이하린은 내 옆에 엎드린 상황.
이하린은 침대에 몸을 던져 엎드렸고
나는 침대 끝자락에 엉덩이를 댄 상태지만
내 키가 훨씬 크다보니 이하린의 얼굴이 내 가슴 옆에 놓인다.
슬금슬금, 엎드린 상태로 눈치를 보던 그녀의 머리가
조금씩 옆으로 다가와 내 가슴팍에 기댄다.
그러더니 넙대대해서 판때기 같은 가슴 근육에
머리를 슬쩍 기울여서 뺨을 부빈다.
'얼굴 아프지 않나?'
당연하지만 나는 양호 가운에 와이셔츠까지 입은 상태.
그녀가 내 옆가슴에 머리를 열심히 비빈다면
그 보드라운 뺨이 양호 가운에 비벼지게 되는데
이 가운이라는 놈이 부드러움을 찾을 수 없는 빳빳한 녀석이다.
그래도 상관 없다는 것 처럼 머리를 들이밀다가
슬금슬금 몸을 돌려서 내 가슴팍 위에 얼굴을 처박는다.
그와 동시에 슬그머니 내 허리춤으로 내려오는 그녀의 손.
"어휴, 음흉한 거 봐, 정말."
거기까지는 아니라는 것 처럼 찰싹, 내가 이하린의 손등을 때린다.
나야 바지를 벗겨준다면 당장이라도 벗을 의향이 있었으나
이하린의 무의식은 조금 더 몸을 부비는 걸 택한 것 같다.
무안하다는 듯 헤헤, 웃어보인 그녀가
양 팔을 뻗어 내게 매달렸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