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4화[19] >
대륙의 인재들이 잔뜩 모인 아카데미여서 그럴까.
일처리의 속도가 나의 상상보다 훨씬 빨랐다.
반 감금 상태로 살인범을 감시할 감금실이 준비되었고
그 감금실을 감시할 경호팀이 신설되었으며
화신과 성좌의 마력적 연결을 연구할 연구팀도 생겼다.
이 모든 게 반나절만에 이루어진 일이다.
'일처리 되게 빠릿빠릿하네.'
성좌와 관련된 일이기 때문일까?
분명 관공서처럼 부서가 나누어진 상태로
아래에서 위로 보고가 올라가 아카데미 총장에게까지 도달해야 하지만
그 길고 긴 행정적 처리가 고작 반나절만에 이루어진 것이다.
그렇게 되니 내가 할 일이 사라진다.
연구는 이하린이 하고 감시는 한예지가 하니
다시 병동에서 환자에게 마력을 뿜는 일밖에 남지 않는 거다.
그래서 시간도 남겠다, 격려도 해야겠다 싶어 한예지를 내 숙소쪽으로 불렀다.
요즘 김하은 때문에 다른 애들 한테 좀 소홀한 것 같았으니까.
"부, 부르셨나요 성좌님?"
맨날 내가 찾아가던 입장이어서 그런 걸까.
몇 번 와본 적 있는 숙소에 쭈뼛거리며 천천히 들어 온다.
"그래, 이리 와서 앉아."
툭툭, 기다란 소파를 두들겼다.
뻣뻣하게 굳은 몸, 어색하게 움직이는 팔다리.
빌려온 고양이도 아니고 장소 한 번 바뀌었다고
그새 낮을 가리는 모습이 마냥 귀엽게 보인다.
소파 옆에 앉으니 팔뚝이 마주 닿는다.
그 좁은 면적에서 느껴지는 체온조차 자극적이라는걸까.
말 없는 한예지의 얼굴이 발갛게 달아오른다.
원래대로라면 이야기 할 게 많았다.
아카데미 생활은 어땠는지, 일이 그렇게 없어서 감시팀을 만드는지,
아카데미에서 사격 훈련실에 주구장창 있는 데 점수는 많이 올렸는지
동 대륙에 홀로 두고 온 남동생은 걱정되지 않는지 등등.
하지만 그 이야깃거리는 목구멍 너머로 쏘옥 들어갔다.
왜?
"그러니까아…."
어색한 분위기에서 대화를 주도하려는 한예지가 귀여웠기 때문에.
학교와 편의점을 오가며 알바만 하던 그녀였다.
굳이 분류하자면 내향적인 그녀는 아싸 중에 아싸.
같은 팀이라서 먼저 말을 걸어준 팀원들을 제외하면
딱히 친구라던가, 대화 상대라던가 없는 것만 봐도 그렇다.
솔직히 말해서 화신이 되었으면 친구들이 난리가 날 법 한 데
편의점에 있었던 같은 교복의 여자애가 꺅꺅거리며 반응한 거 말고는
그녀가 화신이 된 것에 대해 연락이 오는 꼴을 보지 못했으니까.
첫 월급으로 사치를 부리라니까 양 적고 비싼 감자칩을 구매했었지.
취미는 인터넷 방송을 보는 거고 돈 쓰는 건 좀 비싼 음식 사 먹는 정도.
그런 내향적인 집돌이 겜순이인 한예지다.
남자의 방에 초대되어 이야기를 주도하는 일?
아마 그녀가 하던 그 어떤 게임보다 난이도가 높지 않을까.
감정을 읽지 않아도 이리저리 방황하는 눈동자가 이를 증명한다.
"으, 그러고 보니까 성좌님. 어제 말이죠."
마음을 다잡은 그녀가 어렵사리 입을 연다.
말해 보라는 의미로 고개를 돌려 그녀를 빤히 쳐다 보았다.
어깨와 팔뚝이 마주닿은 좁은 거리.
당연하게도 내 코 앞에 그녀의 말캉한 뺨이 보인다.
뺨과 쇄골쪽으로 향하는 내 자그마한 숨결도 느껴지는 걸까.
마치 고장난 라디오처럼 한예지의 말이 다시 뚝 멈춰버렸다.
'이거 재밌네.'
뽀얀 목덜미가 고장난 선풍기처럼 움찔거린다.
나란히 앉았으니 앞을 봐야 할지
아니면 고개를 돌려 나를 마주볼지 고민중인가.
앞을 보자니 내가 시야 밖에서 장난을 치고
마주 보자니 숨결이 닿는 거리니까 부끄럽겠지.
꿈속에서는 욕망대로 휩쓸리는 한예지지만
현실에서는 생각보다 부끄러움이 많은 그녀였으니까.
이하린과 김하은은 꿈이나 현실이나 나를 똑같이 대하지만
한예지는 꿈과 현실을 생각보다 엄격하게 구분하고 있다.
자각몽은 성좌인 내게 어리광을 부리고 욕망을 표출하는 공간.
반대로 현실은 내게 복종하고 명령을 실행하는 공간.
뭐 대충 그런 느낌.
"그래서, 어제 무슨 일이 있었지?"
고개를 살짝 더 앞으로 숙이고 말을 건다.
사격술에 특화 되었다지만 화신의 육체는 민간인보다 예민하다.
그 때문인지 티슈 한 장도 날 리지 못할 숨결도 전부 느끼나 보네.
"어제, 사격장에서…."
깊게 숨을 들이쉰 그녀가 말을 이어나갔지만
역시나 몇 마디 내뱉지 못 하고 멈춰버렸다.
당연하지만 나 때문이다.
내가 슬그머니 손을 뻗어 그녀의 허벅지 위에 올렸으니까.
활동성을 중시한 것 같은 7부 반바지에 반팔 와이셔츠.
통풍도 신경 썼는지 옷감도 좀 앏은 것 같아서
손가락 끝으로 살금살금 만지는 맛이 있었다.
맨살을 만지는 것보다는 못 하지만
얇은 천조각 너머로 느껴지는 탄탄한 허벅지도 매력적이다.
"사격장에서, 그, 전보다 높은 기록을."
"그래? 전에도 꽤 높은 점수였을 텐데."
내 손장난에 적응한 그녀가 말을 이어나간다.
하기야 의사소통장애가 있는 수준도 아니고
손가락으로 톡 건드렸다고 말문이 아예 막힐 리 있나.
그 정도였다면 자각몽 속에서 포옹하는 순간 심장마비로 죽었지.
물론 내가 보고 싶은 건 부끄러워 하는 모습이지
태연하게 말을 이어나가는 모습이 아니다.
"그러면, 상이 필요하겠구나?"
"사, 상이요?"
"그래, 화신이 성과를 이루면 성좌가 보듬어주는 게 당연하지 않겠니?"
살금살금, 손가락을 움직였다.
어릴 적 들었던 동요 비스무리한 걸 떠올 리며.
거미가 줄을 타고 올라갑니다? 였나.
손가락을 거미 다리처럼 교차로 움직여 타박타박.
허벅지에서 무릎의 반대 쪽으로.
여성의 은밀한 곳으로.
"그, 그렇습니다."
긴장했는지 발그레한 얼굴에서 존댓말이 톡 튀어 나온다.
평소의 어벙하게 귀여운 그녀라면 '네, 그렇죠?' 하고
가벼운 분위기의 대답을 할 텐데.
어깨를 착 붙이고 손장난을 치는 음란한 분위기에 휘말렸는지
말년병장 앞 이등병마냥 각 잡힌 대답이 튀어 나오기 시작한다.
"그러면, 어떤 상이 좋을까?"
"제가 정하, 는, 걸까요?"
허벅지를 타고 올라간 손가락이 허리춤으로 향한다.
얇은 반바지라 해도 피부는 확실히 가리고 있으니까.
가볍게 끼우는 허리춤의 버클을 손가락으로 톡 벗겨낸다.
툭 소리와 함께 벌어지는 바지의 버클.
그리고 그 자그마한 틈사이로 보이는 회색 속옷.
가장 야한 속옷은 젖어들어 가는 게 보이는 회색이라 했던가
전생에 들었던 것 같은 음담패설을 떠올 리며 손가락을 움직였다.
슬쩍 열린 바지 버클 너머로, 팬티 고무줄 위쪽을 꾹꾹 누르며.
엷게 갈라진 11자 복근이 있다지만 근접 전사도 아니고 저격수인 한예지다.
손가락으로 누르면 말캉말캉한 감촉이 느껴지는 게 당연하지.
배꼽 아래의 말랑말랑한 부분을 꾹꾹 누르다, 손가락으로 슥 흝는다.
"그래, 어떤 상이 좋겠니?"
부끄러움을 이기지 못 한 그녀는 말이 없겠지.
그러면 대충 손장난을 치다가 그대로 이어나가면 될 것이다.
뭐 그런 생각을 하며 손가락 끝에 느껴지는 보드라움을 즐겼다.
침을 꼴딱 삼킨 한예지가 빠르게 말을 내뱉을 때까지.
"서, 성좌님이 손으로… 해, 해 주셨으면."
일생일대의 용기를 낸 걸까.
예상이 엇나가서 조금 놀랄 지경이었다.
무의식 속에서 역할극을 할 때가 아니면
뭔가 먼저 요구하는 일이 없었는데.
이런 걸 성장이라고 불러도 될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한예지가 드디어 한 걸음 앞으로 내딛은 것이다.
"손?"
"아으, 네, 녜에…."
제 욕망을 입 밖으로 꺼낸게 창피했을까.
눈에 눈물이 맺힌 그녀에게서 후회의 감정까지 느껴진다.
기세를 타고 내뱉었는데 많이 창피한가보다.
대충 왜 그런 대답을 했는지 이해는 할 수 있으니 상관없지만.
애초에 나는 몽마 성좌로서, 마력으로 화신들의 육체에 간섭하는 상황.
껴안고 키스하고 피부를 맞대면 전희가 필요 없었다.
하지만 뭐, 인간의 욕망이 그렇게 얌전할 리 있나.
손으로, 입으로 애무를 받아보고 싶은 게 인간의 성욕 아닌가.
파이즈리, 펠라치오, 핸드잡 등등.
다양한 태그의 포르노 태그가 왜 인기가 있겠냐고.
"그래, 이렇게?"
"으, 으햑!"
그대로 양팔을 뻗어 그녀를 내 허벅지 위에 올린다.
엘프의 모습이라면 조금 이상한 모양새였겠지만
지금은 계속 거대한 근육남의 육체라서 다행이네.
한 손으로 그녀의 잘록한 허리를 휘감자
꾹 눌린 그녀의 심장 소리가 온몸으로 느껴진다.
말 그대로 터질 것처럼 두근거리는 심장.
그 상태에서 다른 손을 뻗어 바지 안쪽으로 집어넣는다.
젖어들어간 것이 확실히 느껴지는 얇은 천을 어루만지기 위해.
쯔꺽-
음란한 소리가 작게 울린다.
듣기도 힘들 정도로, 그러나 성좌와 화신에게는 들릴 정도로.
심장이 마치 과열된 엔진처럼 더욱더 더 빠르게 두근거리는 게 느껴진다.
"그러면 오늘은, 네가 원하는 대로 해 볼까-"
끈적하고 축축해진 팬티가 손가락 끝에 얽힌다.
그리고 그 너머에서 움찔거리는 뜨거운 살까지.
"……."
대답은 없었다.
고개를 작게 끄덕이느라 머리카락이 살짝 흔들리며
뽀얀 목덜미를 보여주는 부끄럼쟁이만 있을뿐.
그대로 고개를 숙여 그 뽀얀 목덜미를 입술로 쭈욱 빨아 들였다.
그와 동시에 손가락으로 도톰한 살을 꾹꾹 누르며 살금살금 괴롭혔다.
손가락으로 바지 안, 팬티 위를 멋대로 농락하다 보니
내 허벅지 위에서 탄탄한 엉덩이에 힘이 빡 들어 가는 게 느껴진다.
해는 이제 막 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