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0화[19] >
도시의 중앙 광장에는 새하얀 분수대가 있었다.
사람 몇 명 들어가도 될 것 같은 거대한 분수대가 있는 광장.
그리고 그 광장으로부터 거미줄처럼 뻗어나가는 도로와 저택들까지.
거대한 분수대를 중심으로 설계된 도시는 참으로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판타지 세상의 아름다운 모습만 담아 둔 게임의 전경 같다고 해야 할까.
꿈속 세상답게 사람 하나 없이 고요한 도시를 보니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 사람 하나 없이-
'할 일이 늘었네….'
꿈속의 도시는 말 그대로 껍데기만 남아 있었다.
커다란 분수대는 물 한 방울 없이 메말라 있었다.
노점상 거리처럼 보이는 기다란 통로는 텅 빈 가판이 잔뜩 있고
시청 건물인지 유독 커다란 크기의 저택도 당연히 텅 비어있는 상황.
그러한 도시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가슴 한구석이 간질간질해진다.
이 도시를 어떻게 부흥시켜야 하는지 몽마로서 알게 되는 과정이다.
다시 생기 넘치는 도시의 모습을 불사르는 폭군이 원한다는 걸 포함해서.
그렇다고 해서 나쁜 일은 아니었다.
자각몽 속에 거대한 도시를 구현하는 보물 덕분일까.
안 그래도 많았던 마력이 더욱 단단하고 거대해진 상황이니까.
굳이 비유하자면 RPG 게임의 캐릭터가
영지니, 농장이네 하는 서브 콘텐츠가 오픈되어
보너스 스탯을 받은 기분이 드는 것이다.
물론 그만큼 해야 할 일이 늘어난 상황이지.
괜히 RPG 게임에 비유한 게 아니다.
마력을 일으켜 분수대에 때려 박는다.
정확히는 분수대 조각상에 박혀 있는 보석에.
몽마의 마력을 양껏 빨아들이자 메마른 분수대에서 물이 콸콸 흘러나온다.
분수대만 그런 게 아니라, 도시의 모든 것들이 마력에 반응한다.
"성좌님, 이건…?"
"너도 한번 해보렴."
마력을 머금은 길쭉한 가로등에 대낮부터 새하얀 빛이 비친다.
정류장처럼 보이는 곳의 간판부터 건물 내부의 등까지.
몽마의 마력이 무식하리만치 흡수하기 시작한다.
"생각보다 마력이 많이 필요하네요."
"그래, 너무 무리하지는 말고."
이래서 다른 몽마들이 제 꿈속 세상에 다른 사람들을 초대했구나.
나와 김하은의 마력이 특이할 정도로 많은 편이라 겨우 가능한 일이다.
보통의 경우에는 많은 사람을 불러 조금씩 마력을 받아 가는 일을 하겠지.
우리의 발걸음을 따라 조금씩 살아나는 도시를 보며 커다란 건물로 향했다.
분수 광장에서 가장 화려한 도로를 따라가면 나오는 화려하고 커다란 저택.
다른 부분은 다 현대적인 도시의 디자인인데 이 저택만 마치 판타지 세상 같네.
저택의 입구에서 마력을 쏟아부어 철창 대문을 열고 느낀 감상이었다.
물론 겉보기에만 저택이었던 건물의 내부로 들어가서
시장실이라 해야 할지 관제탑이라 불러야 할지
고민되는 가장 커다란 방에 들어가니 감상이 확 바뀌었지만.
"이건 좀, 게임 같네요."
"그렇네…."
젊은 여성이라 그런지 게임에 익숙한 걸까.
공부만 붙잡고 살던 김하은이 눈앞의 장면을 보고 작게 중얼거린다.
아무리 그래도 거대한 홀로그램 스크린은 생각하지 못했는데.
불사르는 폭군의 세상이 SF 세계관이기 때문일까?
유럽 귀족이 살 것 같은 저택의 거대한 방 안에는
고풍스러운 샹들리에와 SF 세계관의 기계장치가 공존하고 있었다.
홀로그램 안에 보이는 도시의 모습.
마력을 스크린에 보내면 밝게 빛나는 아이콘들.
아무리 봐도 XX 타이쿤이라는 이름이 어울리는 모습이다.
"여기 앉아서 한번 해볼래?"
커다란 회장님 의자에 김하은을 앉히고 어깨에 손을 올렸다
그녀의 마력 대부분을 내가 가져간 상황이니 마력을 불어넣기 위해.
물론 그녀의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네, 네에엣-!"
전기충격기에 지져진 것처럼 펄쩍 뛰는 모습.
어깨에 손을 올리고 마력을 불어 넣은 것뿐인데
어째서인지 발정한 암컷의 냄새가 풀풀 느껴진다.
'이런 몽마를 생각한 적 없는데….'
처음 성좌가 되었을 땐 악몽을 다루는 무시무시한 몽마 같은 걸 생각했지만
어째 지금까지의 행보를 보면 여자를 즐겁게 해주는 색마가 되어 있네.
새하얀 여체가 의자에 등을 기대고 축 늘어진다.
축 늘어지는 양팔과 힘을 잃는 고개.
그와 반대로 힘이 잔뜩 들어가 오므라드는 허벅지.
지난번에도 생각했지만, 단순히 마력 주입에 왜 이런 반응을 보이는 걸까.
'근원을 건드린 게 문제인가?'
예상이 가는 건 마력을 빼앗던 행위가 근원을 건드렸다는 것뿐.
사실 그 일을 제외하면 짐작이 가는 게 하나도 없다.
환자들이나 다른 화신들은 내 마력에 노출돼도 멀쩡하니까.
사람을 치료할 때마다 내 마력 때문에 발정이 난다면
아카데미의 치료동은 꽤 끔찍한 꼴을 보지 않았을까.
남녀를 가리지 않고 수백 명이 집단 발정이라니.
아무리 성좌라 해도 쉽게 넘어갈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아니, 오히려 성좌니까 더 끔찍한 일이 될 수도 있겠지.
발정과 난교의 성좌라니, 상상만 해도 등골이 오싹하다.
인터넷에 그런 식으로 박제된다면 창피해서 성역에 처박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니 손끝에 따듯한 감촉이 느껴진다.
차마 내 손을 어쩌진 못하니 뺨으로 눌러오는 건가.
어깨 위에 올린 손을 얼굴로 꾸욱 누르는 모습이
마치 커다란 고양이가 애교를 부리는 것으로 보인다.
그와 동시에 손목 쪽에 느껴지는 뜨거운 숨결.
"……."
그녀가 더운 숨결을 내뱉으며 나를 올려다본다.
성좌를 덮칠 용기는커녕 무언가를 요구할 용기도 없으니까.
하기야 대형 사고를 쳐서 벌을 받은 지 1달도 지나지 않은 상태다.
그 뜨거운 눈빛에 부응하기 위해 슬그머니 손을 미끄러트린다.
벌써 열기에 젖어 촉촉해진 가슴골을 향해서.
"흐으음-"
땀에 젖은 피부가 부드럽게 손을 감싼다.
발정이 난 것처럼 달아오른 요염한 얼굴과
숨을 내쉴 때마다 작게 들려오는 비음 때문일까.
별일 없는데도 벌써 아래에 피가 쏠린 게 느껴진다.
한 손으로 가슴을, 다른 손으로는 마력을.
육체는 명백히 달아오르고 있지만
명령이 없기 때문인지 축 늘어져 움찔거리는 모습.
그 수동적이면서도 피학적인 모습을 보면
남자로서의 음흉하고 어두운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지.
'어디까지 참을 수 있으려나?'
피부로 흡수하게 하는 상냥하고 느긋한 방법 대신
주사를 놓듯 깊숙하고 뾰족하게 마력을 때려 박는다.
"―!"
비명도 되지 못한 비음.
숨넘어가는 소리가 고요한 집무실에 울린다.
슬그머니 아래쪽을 내려다보면
이미 그녀의 바지와 의자는 엉망진창으로 젖어 든 상황.
앞으로 톡 숙이는 그녀의 고개 때문에 어깨 위에 올린 손이 자유로워진다.
그대로 그 손을 뻗어 턱을 잡고 고개를 들어 올려 보았다.
기절은 하지 않았는지 느릿하게 깜빡거리는 보라색 눈동자.
익숙하지 않은 쾌감인지 의문으로 가득 차 있는 게 느껴진다.
"그래서, 어떤 기분이니?"
"저, 저도 잘 모르겠-?"
모르면 맞아야지.
아, 이게 아닌가?
몽롱한 상황에 반사적으로 대답한 그녀가 눈을 크게 뜬다.
마력을 빼앗긴 거지 마력에 대한 재능을 빼앗긴 게 아니니까
내 손에 머금어진 마력을 바로 눈치를 챌 수 있는 상황.
"저어- 서, 성좌님?"
기대감과 두려움이 뒤범벅된 예쁜 보라색 눈동자.
땀에 젖어 흐트러진 머리카락이 이마에 찰싹 달라붙고
눈치를 채지 못한 채 입술 주변이 침에 젖은 상태로 나를 올려다본다.
음란하게 흐트러진 그 모습을 보고 참으면 남자가 아니지.
다른 한 손도 뻗어 반대쪽 어깨를 향한다.
물론 나도 그녀도 어깨가 종착역이 아니란 걸 아는 상황.
양어깨에 손을 올리고 조금씩 내려가 가슴으로 향한다.
'의자가 좀 커서 불편하네.'
그 와중에 방해가 되는 것은 커다란 회장님 의자.
등받이가 좀 커다래서 등 뒤에서가 아니라
옆에서 불편하게 손을 뻗어야 하는 상황.
김하은이 그걸 눈치를 챈 건지 비틀거리면서도 일어난다.
그와 동시에 귓가에 들리는 톡톡,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
다른 의미로 벌게지려는 그녀를 잡아서 돌려세운다.
힘없이 이끌려와 비틀거리는 모습에
의자에 앉아 앞에 무릎 꿇리고 즐겨볼까 했지만-
'어지간히 적셨네, 진짜.'
물기 어린 의자에 다시 앉을 생각은 들지 않았다.
다만 벽에 등을 기대고 서 살짝 어깨를 누를 뿐.
눈치 빠르게도 알아들었는지 그녀가 곧바로 무릎을 꿇는다.
바닥이 딱딱하다느니 자세가 불편하다는 건 전혀 상관없이.
내 허벅지를 껴안은 그녀가 고간에 천천히 뺨을 비벼온다.
가슴에서 손을 떼어냈어도 마력은 계속 이어져 있으니까.
바지 너머로 느껴지는 뜨겁고 말캉한 감촉.
한창때에는 이유도 없이 벌떡 일어나는 게 남성인데
앓는 소리를 내는 미녀가 얼굴을 비벼오면 당연히 일어날 수밖에 없지.
"아하, 저, 저 같은 걸로 괜찮으신 거죠…?"
그러나 남녀 역전 세계의 김하은에게는 조금 다르게 느껴졌나 보다.
이득을 얻기 위해 상대에게 진실을 숨겼다.
화신으로서 성좌를 속였으며
여성으로서 남성을 속인 상황.
성좌-화신의 관계에서도 남-녀 관계에서도
쉽사리 용서받기 힘들다고 생각했겠지.
아마 그녀에게는 이게 화해의 섹스 비슷하게 느껴지려나.
마치 간식을 기다리는 강아지처럼 내 허벅지에 뺨을 대고 나를 올려다보는 그녀.
그 애타는 눈동자를 마주 보며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곧바로 연보라색 눈동자 대신 보라색 머리카락이 시야를 가리고
그 아래에서 지이익- 하고 지퍼 열리는 소리가 들린다.
동시에 한 겹 벗겨진 천 조각 너머로 더운 숨결이 느껴진다.
그 상황에서, 다시 한번 그녀가 나를 올려다본다.
잔뜩 화가 나서 팬티를 밀어붙이는 걸 보면서도.
"끝까지 하렴."
"네-!"
대답은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뜨겁고 축축한 것이 곧바로 내 물건을 감싸왔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