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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7화 〉127화 : 기묘한 후일담 (127/169)



〈 127화 〉127화 : 기묘한 후일담

사건은 생각보다 쉽게 해결되었다.
꿈에서 정신을 차린 여제자가 현실에서도 의식이 돌아왔으니까.

김하은을 두드려 패면서 자신감을 얻은 건지
아니면 군인과 전쟁터 말고 다른 곳에서의 교류가
여제자의 영혼을 치료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일단 여제자는 주화입마에서 벗어나 요양을 위해 내륙으로 향했다.

"은혜를 입었습니다."

떠나는 날 나를 열기 가득한 눈으로 노려보듯 쳐다보는게  불안하긴 해.
아무리 봐도 기억을 잃은 것 같지는 않았다.
어쩌면 기억을 잃었지만 무의식에 새겨졌을지도 모르고.

그래도 아무  없이 스승과 제자들은 아카데미를 떠났다.
약속은 반드시 지켜질 것이라 말하며.

생각보다 문제가 된 것은 굴레를 베어내는 검이 아니라 김하은이었다.

"야, 너 그거…?"

화신들 사이가 어색하게 바뀔까 김하은이 내게 벌 받은  비밀로 하기로 정했다.
혼내는 건 이미 실컷 했는데, 겨우 친해진  사람을 갈라 놓기는 그렇잖아.
어색해서 대화도 안 나누던 두 명이 이제야 또래의 대화 상대를 찾았는데.

문제는 숨길  없는 부분, 그러니까 근원의 변화였다.

"나도 모르니까 그만 물어봐라."

아침 댓바람부터 내 숙소에서 김하은과 이하린이 소란을 피우고 있었다.
김하은이야 둘째 치고, 내게 정중하다 못해 복종하는 이하린이 아침부터?
그런 생각을 하며 침실로 쓰이는 방에서 거실로 나가보니-

"아마, 권능 때문인 것 같은데…."

뿔과 날개, 꼬리를 달고 있는 김하은이 보인다.

귀 바로 위쪽, 눈썹과 엇비슷한 높이에 부드러운 곡선을 유지하며 자라난  개의 뿔.
거기에 엉덩이 뒤에 끝자락이 하트 모양인 길쭉한 꼬리가 살랑거리고
등 뒤에 달린 박쥐 날개가 펄럭일 때 마다 가슴이 출렁거린다.

정말 전생의 19금 매체에 나올법  음탕한 악마, 서큐버스의 모습이다.

"그,  쪽팔리냐?"

"쪽팔리니까 제발 닥쳐줘…."

물론 내 감상만 그렇다.
이쪽 세상은 남녀역전세계.

건장한 근육질 남자가 박쥐날개와 하트 꼬리를 달고 다니면
와, 멋진 모습이다! 라는 감상보다  코스프레? 하는 반응이 돌아오겠지.
그게 어디 행사장도 아니고 아카데미 기숙사 내부라면 더욱 더.

'저건 내 탓이긴 한데….'

아마 근원을 만지며 온전한 몽마가 되기를 바랄 때
머리속에 서큐버스의 기본적인 이미지가 떠올라 반영된 게 아닐까.

내가 몽마가 될 때 영화 속 프레디 크루거를 떠올렸던  처럼.

자연적으로 보기 힘든 연보라색의 머리와 붉은 뿔
뒤에서 파닥거리는 박쥐 날개, 악마 꼬리.
아무리 봐도 코스프레 업소녀처럼 보인다.

자다 일어나서 옷차림도 헐렁하니까 더욱 더.

"성좌님, 일어나셨군요. 차게 식혀 둔 밀크티가 있는데 내 올까요? 아니면 뜨거운 거?"

같은 여자의 코스프레에 그닥 관심주기 싫었는지
방문을 연 내게 이하린이 쪼르르 달려온다.

"시원한 걸로 부탁해."

식사가 딱히 필요하지 않은 성좌의 육체이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입이 심심하면 음료만 주구장창 마시게 되었다.

그런 내가 익숙한지 자연스럽게 커다란 페트병에 담긴 밀크티를  내온다.

고급 호텔처럼 보이는 실내와 고급스러운 테이블을 생각하면서
멋들어지게 찻잔에 내오려고 하던 이하린도
슬슬  취향을 완벽하게 알아가는 것 같다.

페트병 째로 밀크티를 꼴깍꼴깍 마시고 있으니
인사를 넙죽 올린 이하린이 밀린  연구를 하러 떠났다.

연이은 제사 때문에 일주일정도 일정이 밀렸다니 마음이 좀 급하겠지.

"너는, 오늘 일정이 없니?"

그렇게 의자에 대충 늘어져 앉아 있는데
곁에서 김하은이 계속해서  있는다.

"제가  하면 될까요?"

그러더니 그녀가 되려 내게 물어온다.
평소라면 인사만 꾸벅 올리고 마력을 모으러 갈 텐데.
생각해보니 내가 마력 흡수를 막아서 저런가?

어찌어찌 제 날개와 꼬리를 제어해 숨긴 김하은이 계속해서 나를 졸래졸래 쫒아다닌다.
평소에 없던 일도 만들어서 마력 모으는 것에 집착하던 모습과 너무나도 다른 행동.

'얘가 왜 이러지…?'

어째  맑아진  같은 연보라색 눈동자를 뚫어져라 바라본다.
제 잘못이 있는 그녀는 조금 움츠려 들다가도 내 시선을 제대로 이해했는지
다시 고개를 들고 눈을 마주친다.

복잡하면서도 간단한 그녀의 심정을 읽었다.
 상황에서 내가 할 것은 딱 하나.

"가서 평소대로 환자를 돌보렴. 점심 식사 전에 돌아와서 상황 보고하고, 제대로 악몽 수집해서 가져오면 마력을 주마."

"네, 알겠습니다."

명령.

내게 한 번 호되게 혼난 김하은에게 남은 것은 수동적인 면모다.
이하린과 조금 다른 방향이라고 볼 수 있는 복종이라 볼 수 있겠지.

부모가 시키는 대로 공부를 하고
부모가 원하는 대로 대학을 가고
부모가 기뻐할 만한 곳에 취직을 하려 했고.

 그게 김하은의 인생이었으니까.
대학 가고 놀아도 된다는 말을 철썩같이 믿으며
학창 생활에 게임도 하지 않고 명문대를 위해 공부만 하던 범생이.

마력 중독도 없어졌겠다,
부모님을 잃어 힘들다는 이유로 멋대로 날뛰던 것도 제어되었으니
이제 김하은에게 남은 것은 자기보다 높은 사람이 시키는 대로 움직이는 성격 뿐.

문제가 조금 있다면  교육이 무의식과 꿈의 공간에서 이루어 졌다는 점?
내가 명령하지 않으니 환자 치료를 하기 위해 떠나지 않는 모습을 봐라.
어쩌면 이 수동적인 모습은 완전한 몽마가  김하은 때문에

몽마의 성좌와 몽마의 화신이라는 관계가 가져오는 속박일지도 모르고.

이하린이 떠나고 김하은을 보내고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니 메시지가 하나 온다.
 번호를 아는  화신 셋과 아카데미 총장 뿐.

그 와중에 총장은 전할 말이 있으면 무조건 사람을 보내 정중하게 나를 부르니
당연히 문자를 보내는 사람은 정해져있다.

[성좌님 아카데미에서 무슨 일 있었나요?]

아카데미가 아니라 대륙 내부에 머무르는 한예지.
그녀가 다짜고짜 내게 질문을 던진다.

성좌에게, 남자에게 문자 보내는  어색한지
온갖 미사여구로 정중하게 보이려는 문자를 먼저 보내던 모습과 확연히 다른 모습.
평소와 달리 짧고 단도직입적인 문자에서 그녀의 당황이 적나라하게 읽힌다.

내 답장은 상관 없다는 것 처럼 우다다다 메시지가 몰려온다.
대체 아침 출근 시간부터 무슨 상황이 벌어졌길래 저럴까.
어느 생각 없는 교관이나 생도가 성좌 둘 섞인 이야기를 멋대로 인터넷에 퍼트린건가?

[오늘 출근때부터 이상한 사람이 자꾸 말 걸어요]
[칼 찬 근육질 여자들이 자꾸]
[흉터 있고 험상궂은 사람들이 자꾸 아는 척 해요]
[모르는 남자도 와서 절하구 가요]

다급하다면 다급하다 해야 하나.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혼란스러워하는 게 절절히 느껴진다.
어차피 아카데미엔 내가 할 일도 없으니 곧바로 성역으로 올라가
한예지가 무슨 일을 겪고 있는지 스크린을 통해 내려보았다.

"아뇨, 저기, 제가 순찰을 돌아야 해서."

"그렇습니까? 그럼 이거라도."

"제가 그, 뭘 받으면 안 되는지라."

눈에 들어오는 것은 덩어리들에게 둘러 싸인 한예지였다.

당혹스러워하는 예지의 얼굴과는 달리
팀원  명은 그 장면을 흥미진진하게 구경하고 있는 상황.
둘러 싼 아마조네스 닮은 근육질의 여자들 표정도 나쁘지 않다.

'굴레를 베어내는 검, 제자가 몇 명이지?'

짐작이 가는 것은 굴레를 베어내는 검의 제자들.
화신 계약을 하지 않고 검술을 가르쳤다고 했으니
동대륙 곳곳에 퍼져 있다가 소식을 들은게 아닐까.

그리 생각하며 스크린에서 눈을 떼고 스마트폰을 보았다.

사람 생각하는 건  비슷한지
이쪽 세상에도 전생의  사이트와 비슷한  많아보이네.

유머 자료만 모아둔 사이트, 취향에 따라 세분화된 클럽이 존재하는 사이트,
사람들이 참여해 정보를 그러모으는 사이트까지.

굴레를 베어내는 검을 인터넷에 검색하자
성좌와 관련된 온갖 사이트가 툭툭 튀어나온다.
그 중 눈에 들어오는 것은 굴레를 베어내는 검/위업 이라는 문구.
전생에 게임 공략을 보러 찾아갔던 식물위키가 떠오르는 모양새였다.

'생각보다 엄청 많, 은 수준이 아니구나?'

사람들이 제 멋대로 의견을 올리면 정확성이 떨어진다지만
성좌의 업적에 대해 거짓말을 칠 사람은 없겠지.

잘 정리된 항목을 읽어보면 화신 하나 없는 굴레를 베어내는 검이
무슨 수단으로 포인트를 벌고 지불해서 지상에 강림하는 지 이해할 수 있었다.

단순무식하게 강한 성좌인 줄 알았는데
적당히 재능만 있으면 알고 있는 기술을  풀어버린 성좌.
박동하는 사자심의 체육관에서 무기술, 무술을 교육하는 트레이너 중
화신이 아닌 트레이너의 90%이상이 굴레를 베어내는 검의 제자라는 글이 보인다.

'화신 한 명 없이, 성좌의 인지도 포인트로만?'

그 외에도 다이어트 복싱 비슷한 운동부터
남성을 위한 호신술, 아이들 체력 증진을 위한 태권도장 비슷한 것 까지.
심지어 군대에서 배우는 무술도 굴레를 베어내는 검과 관련이 있다는 상황.

'아무리 권능을 포인트로 구매하지 않는다 해도, 대단하네.'

체육, 무술, 호신술에 연관된 대부분의 분야는 굴레를 베어내는 검과 관련이 있었다.
대한민국에 살 때 검도 하면 해동검도, 태권도 하면 용인태권도가 떠오르는 것 처럼
동대륙의 사람들은 굴레를 베어내는 검을 떠올리는 것이다.

"이거 몸에 좋은건데, 운동할 때 먹으면 좋아요."
"아 이건 우리 체육관에서 쓰는 신발인데-"
"평소에 운동 하는 곳 있으신가? 없으면 우리쪽이-"
"그, 개인 PT를 전문으로 하는 사람인데."
"총잡이면 관련된 호신술이 있는데."

굴레를 베어내는 검의 제자들은 무슨 커뮤니티라도 있는 걸까?
잠시 스마트폰으로 검색하는 동안 스크린 속 한예지가 인파에 파묻혔다.
동네에 존재하는 운동 관련 사장님들이 전부 그녀를 찾아 몰려 왔으니까.

"네, 죄송합니다, 감사합니다, 잠시만요?"

어어, 하는 사이에 한예지가 선물의 폭탄에 휘말린다.

신발이 슬쩍 갈아신겨지고, 손목 스트랩이 감기고
반대쪽 손에는 건강식품이 잔뜩 든 쇼핑백이 쥐어진다.

"음, 예지씨한테는 이게 안 맞는  같은데."
"아, 저 분들 동료인가?"

그 조차 부족한지 뒤에서 낄낄대며 구경중이던 정아린과 남궁희도 타겟이 된다.

어째 사건은 아카데미에서 김하은이 터트렸는데
가장 크게 영향을받은 건 내륙에 있는 한예지구나.

'그냥 꿈에서 설명해야지.'

순찰 복장 주머니에 누군가 넣어둔 진공 포장된 닭가슴살  쪽을 꺼내며
울상을 짓는 한예지에게 메시지로 설명하는  포기하고 시선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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