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4화 〉124화 : 훈육 1
꿈 속에 들어간 몽마는 본능적으로 정보를 알게 된다.
마치 물고기가 알에서 깨어나자마자 헤엄을 치는 것 처럼.
그렇게 알게 된 사실.
내가 봤던 동양풍 저택은 꿈 속 세상이 아니었다.
기억과 소망과 무의식이 섞인 찌꺼기 같은 기억이었을 뿐.
지금 내가 들어온 이 곳이 진정한 무의식과 꿈의 세상인 것이다.
그러니까-
"흐야아압! 한, 한 대만!"
"시선 흐트러트리지 말고!"
김하은이 여제자한테 목검으로 쥐어 터지는 이 세상이
진짜 여제자의 꿈이라는 뜻이다.
"…?"
그런데 여제자의 무의식 속인데 왜 김하은이 떡 하니 있지?
넓은 공터에서 열심히 싸우는 두 사람에게 다가갔다.
"디딤발 흐트러지지 말고, 손목 꺾이면 칼 놓친다!"
"악, 씨발!"
김하은이 무식하게 많은 마력을 이용하는 마법사쪽이라 생각했는데
오늘 보니까 목검도 꽤 능숙하게 다루고 있었다.
적어도 여제자가 휘두르는 검을 세 번, 네 번은 막아내니까.
그제서야 김하은의 권능이 떠올랐다.
희망 찬탈자.
타인의 꿈 속에 침투하여, 대상이 꿈꾸는 이상적인 미래의 모습을 흉내내는 권능.
아마 여제자가 상상하는 이상적인 검객의 모습을 흉내내기 위해 권능을 사용했겠지.
체력이야 아카데미 입학 이전에 박동하는 사자심의 화신에게 죽도록 굴렀으니 충분하고.
그러나 재능에도 한계와 급이 있는 법.
몽마의 마력을 천재적으로 다루는 김하은이라지만 굴레를 베어내는 검의 제자를,
그녀가 생각하는 완벽한 검객을 한 번에 베낄 수는 없었나보다.
'그야 당연하지, 쟤가 완벽하다고 생각하는 건 굴레를 베어내는 검이니까….'
상황을 이해하자조금씩 분노가 치밀어오르기 시작한다.
나의 악몽과 한예지의 악몽이 뒤섞여 만들어 냈던 꿈이 있다.
낡은 지하철 통로에서 게임 속 근육 괴물녀에게 쫒기던 악몽.
마찬가지로 이 세상은 김하은의 권능과 여제자의 무의식이 뒤섞인 세상.
다르게 말하자면-
'이 새끼가 빠져가지고….'
김하은이 나를 속였다.
김하은은 마력을 모아 강해지는 일에 집착한다.
아카데미의 환자들을 치료하는 것은 물론 성좌인 나와의 섹스까지
그저 마력을 빠르게 모으는 수단이라 생각할 정도니까.
그런 태도도 지금까지는 별 상관 없었다.
재능이 있는 화신이었고, 제 스스로 권능까지 깨우친 상태였으니까.
꿈 속에서 진득하게 들러붙어 정액을 착정당하는 것 또한 기분은 좋았으니까.
그래도 이건 아니지.
"서, 성좌님?!"
한 걸음, 다가서니 김하은이 나를 발견하고 사색이 된다.
김하은의 손에서 목검이 툭 떨어지니 곧바로 멈추는 여제자.
"지금 이게, 내가 생각하는 일 맞니?'
여제자의 무의식은 자존감이 깎일 대로 깎인 상태일 것이다.
그런 상태에서 자신과 대등한 재능을 가진(사실 권능으로 재능을 훔친)
김하은과의 지도 대련을 통해 욕망을 해소하는 상태일거고.
늘 두드려 맞던 존재가 반대로 누군가를 지도하는 상황이 되니 깎인 자존감이 올라가는거다.
물론 아무나 두드려 패서 해결 될 문제는 아니다.
실제로 여제자는 지원을 나가서 괴물들을 많이 베었던 상황.
성좌인 굴레를 베어내는 검이 인정하고
그 제자이자 화신이자 스승이 될 여제자 또한 인정 할 정도의 재능이 있는 사람.
원래대로라면 그런 재능 넘치는 사람을 한 명 더 찾기 힘들겠지만
김하은은 그 재능을 꿈 속에서 베낄 수 있었으니 해결 된 거다.
여제자는 김하은과의 지도 대련을 통해 자존감을 회복한다.
김하은은 권능을 사용해 마력 뿐만 아니라 검술의 재능도 획득한다.
이론적으로 보면 손해 볼 것 없는 이상적인 관계.
"그, 그게 아니라-"
내게 허락을 받았더라면 말이지.
"하은아, 이렇게까지 할 정도로 마음이 급했니?"
문제가 있다면 지금의 상황이다.
굴레를 베어내는 검은 여제자를 치료하기 위해 내게 맹세까지 하며 절까지 올렸다.
아카데미는 6일 내내 제사를 올리기 위해 창고를 탈탈 털었으며
이하린도 나도 여제자를 돌보기 위해 일과가 변경되었다.
그런 상황에 자기 이익을 위해 입을 꾹 다물고 멋대로 행동하고있었다?
화신으로써 용납 될 태도가 아니다.
좋게 말하자면 성좌의 부족함을 화신이 몰래 보충하는 상황이지만
나쁘게 말하자면 화신이 제 욕심을 채우기 위해 성좌 둘을 속인 상황.
막말로 굴레를 베어내는 검이 자신의 맹세를 이끌어내기 위해 짜고 친 거 아니냐며 화를 내면
화신 단속도 못 한 초짜 성좌인 내가 대체 뭐라고 핑계를 댈 수 있겠는가.
그걸 아니까 김하은도 안색이 저리 새파랗게 질린 상태겠지.
"죄송, 죄송합니다!"
바닥에 털썩 무릎을 꿇은 김하은이 사색이 되어 외친다.
여기서 내가 짜증을 내며 계약을 끊어버릴 수 있다는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그럴 생각은 없었다.
계약서만10만 포인트고, 도시 5개를 넘게 뒤져도 보이지 않던 몽마의 재능이다.
화 좀 났다고 계약을 끊어버리면 내 손해도 너무 큰 상황.
'얘를 어떻게 해야 하나?'
가장 좋은 것은 벌을 줘서 버르장머리를 고치는 것.
꿈 속에서 나를 무슨 마력 주유기처럼 효율을 따지면서
착정하려 드는 건방진 모습도 겸사겸사 교정했으면 좋겠는데.
내게 버림받으면 그녀가 꿈꾸던 괴물들에게 대한 복수는 물 건너 가는 상황.
버림 받음에 대한 두려움과 일말의 희망이 뒤섞인 눈동자를 바라보며 마력을 사용했다.
초등학생 훈육도 아니고 말 안듣는다는 이유로 볼기짝을 두드릴 수 없으니까.
김하은이 꿈꾸는 것은 '주도적인 자신'의 모습.
괴물에게의 복수, 사회적 성공, 화신으로써의 활약.
그 어떠한 것이라도 자신이 주도하고 이끌어나가 성공하기를 바라는 것.
때문에 김하은이 두려워 하는 것은 도구처럼 다뤄지는 자신이다.
몽마의 뇌가 곧바로 그 쪽으로 핑핑 돌아가기 시작한다.
짜증도 나고 화도 난 상태에서 벌벌 떨며 고개를 조아리는 미녀.
검을 배우며 좀 험하게 굴렀는지 편하게 입은 옷차림이 흐트러져있다.
이 상황에 몽마가 할 것은 단 하나.
손아귀에 마력을 부어 물건을 만들어낸다.
만들어 낸 것은 찰그락 소리가 나는 쇠사슬 달린 목줄.
이하린이 내게 들고 온 것 보다 투박하고 거친 생김새였다.
"서, 성좌님?"
"내가 너를 너무 풀어준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이건?"
"가만히 있어."
반사적으로 고개를 뒤로 젖히는 그녀의 목덜미를 잡아 챘다.
이런 상황이 되니 검은 고양이가 왜 엘프의 외형을 쫒아내고
원래의 덩치 큰 근육맨의 아바타로 되돌렸는지 이해가 된다.
키 140cm짜리 미소년이 인상을 찌푸려봐야 위압감이 얼마나 있겠는가.
한 손으로 새하얀 목을 전부 잡아챌 수 있는 덩치가 이런 상황에 더 좋지.
입에 붙은 나긋나긋한 말투도 자연스럽게 바뀐다.
"언제부터 화신이 성좌를 이용하는 세상이 된 건지 모르겠네."
"그게 아니라-"
"가만히 있으라고 하지 않았던가?"
한 손으로 목덜미를 붙잡고 다른 손으로 목줄을 채웠다.
남녀 역전 세상이다 보니 뽀얀 피부의 미녀에게 목줄을 채워도
야한 상황이 아니라 폭력과 고문을 먼저 떠올리는지
불안감에 바들바들 떠는 모습이 남심을 자극한다.
'생각해보면 몽마, 존나 위험하긴 하구나.'
현실에서야 인신공양 및 온갖 범죄 행위가 금지되었다지만
꿈 속에서 몽마가 제 멋대로 날뛰는 걸 누가 무슨 법으로 막겠는가.
무서운 꿈, 잔인한 꿈, 폭력적인 꿈을 꾸는 걸 금지하는 법안?
세금 도둑이라고 욕만 진창 먹겠지.
철컥, 살벌한 소리와 함께 목줄이 채워진다.
부드러운 가죽으로 만든 애완용 개 목걸이처럼 보이던 이하린의 목줄과 달리
두껍고 투박한데다 뻑뻑해서 맹견용 입마개처럼 보이는 검은 목줄이.
고혹적인 모습에서 시선을 돌려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무것도 없는 흙먼지 가득한 공터.
아무리 그래도 이런 곳에서 뒹굴기는 좀 그렇지.
마력을 사용해 주변을 장악한다.
여제자가 검술 천재라 해도 꿈에 관한 재능은 없는지
손쉽게 공터가 자각몽에서 늘 보던 가정집으로 변한다.
하기야, 검에 대한 재능 말고 꿈에 대한 재능도 있었다면
주화입마에 걸린여제자가 진즉 김하은을 제압하고
이 공간을 마음대로 다루고 있었겠지.
망부석마냥 우두커니 서 있던 여제자가
또 소파 뒤로 비집고 들어가기에 그대로 방치한 뒤
나는 그대로 김하은의 목줄 사슬을 쥐고 안방으로 향했다.
입을 꾹 다문 채 얌전히 따라오는 그녀.
'제대로 쫄았네.'
김하은이 생각하는 나는 해달라는 거 다 해주는 무른 성좌니까.
한예지, 이하린을 대하는 내 모습만 봐도 소탈하고 자상한 모습만 알고 있을 거다.
침대에 걸터앉자 자연스럽게 내 앞에 무릎을 꿇는 김하은.
야시시한 뜻이 아니라 부모님에게 벌 받는 애처럼 내 앞에 앉는다.
'이제 어쩌지?'
벌을 주는 것도 좋고
조교랍시고 괴롭혀서 나를 깔보지 못하게 하는 것도 좋다.
그런데 내가 이런 쪽으로 아는 게 없으니 잠시 고민을 하다-
'걍 때려 박지 뭐.'
그대로 마력을 일으켰다.
여기가 삼류 야설 속 세상도 아니고
자지 하나로 반성 복종 세뇌 다 가능한 건 아니니까.
하지만 마력으로는 가능하겠지.
"이게 뭐-"
보라색 마력을 그녀의 몸 안에 우겨넣는다.
헉헉거리며 몸을 비틀고 허리를 펄떡이는 걸 무시하며
한 손으로 사슬을 잡고 다른 손으로는 심장어림을 꾹 누르면서.
"조용히 하라고."
새하얀 피부가 붉게 붉게 물들어간다.